<혈통이 깡패임 189화>
189. 복수자 (4)
뇌전에 휩싸인 주먹이 섬광을 그렸다.
권한울은 양팔을 교차해서 주먹을 막아 냈다. 묵직한 충격이 몸을 강타했다.
팔뚝 너머로 라이신과 눈이 마주쳤다. 권한울이 자신의 주먹을 막은 게 의외였는지 라이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막아?”
그 순간, 라이신의 몸이 사라졌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는 뇌력이 잔상처럼 남았다.
두 눈으로 쫓기도 전에 등 뒤로 라이신이 나타났다. 권한울이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라이신이 다리를 옆으로 내질렀다.
옆발차기가 권한울의 등을 강타했다.
뇌전이 전신으로 퍼지는 강렬한 통증과 함께 권한울은 뒤로 밀려나갔다. 하지만 곧 자세를 바로 잡으며 라이신을 쳐다봤다.
‘근력과 마력은 호각.’
단 한 번의 공방이었으나 권한울은 라이신의 수준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첩은 저쪽이 압도적이군.’
20위권이라는 높은 순위. 벽력권의 제자라는 위치.
아마도 라이신은 민첩 능력치를 SS급까지 올려놨을 것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방금 전의 움직임이 설명이 되지 않았다.
SS급의 민첩과 벽력굉천권이라는 세계최속의 권법.
즉, 권한울은 자신의 움직임을 아득히 뛰어넘는 강자를 상대로 싸워야 했다.
“이거 재미있군.”
불리한 상황이었으나 권한울은 웃기 시작했다. 잠시 잊고 있던 호승심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재미있어?”
그 행동이 라이신에게는 거슬리게 느껴졌다.
“언제까지 그런 헛소리가 나오나 보자.”
라이신을 둘러싸고 있던 뇌전이 한층 더 강해졌다.
이윽고 뇌력이 사방으로 퍼지는 것과 동시에 라이신의 몸이 사라졌다.
‘뒤쪽이군.’
권한울은 재빨리 허리를 틀었다. 뒤에 나타난 라이신이 내지른 주먹을 팔뚝으로 막아 냈다.
‘왼쪽.’
막는 것과 동시에 이번에는 옆에서 라이신이 나타났다. 뇌력을 머금은 수도가 권한울을 베려 했다.
‘정면.’
수도를 쳐 냄과 동시에 이번에는 정면에 라이신이 나타났다. 높게 쳐든 다리를 힘껏 내려찍었다.
권한울은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였다. 두 손은 물론이고 다리까지 동원해서 라이신의 공격을 막아 냈다.
반격은 꿈도 꿀 수 없다. 지금은 라이신의 공격에 대처하는 것도 힘들었다.
‘믿기 힘들 만큼 빠르군.’
새삼 권한울은 라이신의 별칭이 왜 환수인지 알 것 같았다.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실체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야 말로 환수나 다름없었다.
그때였다.
별안간 라이신의 공격이 뚝 끊어졌다. 불길한 예감에 권한울은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뇌력을 끌어모으고 있는 라이신의 모습이 보였다.
소름이 돋을 만큼 막대한 양의 뇌력이 라이신의 몸을 시퍼렇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이건 좀 위험하겠는데.’
그렇게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라이신은 뇌력을 해방하며 권한울에게 달려들었다.
벽력굉천권 일천(霹靂轟天拳 一天)
광명무영(光明無影)
수십 명이 넘는 라이신이 권한울을 둘러쌌다.
그 직후, 수백 개가 넘는 권격이 쏟아졌다.
권격이 권한울을 강타할 때마다 번개가 쳤다. 빛이 터져 나왔다. 뇌력이 땅을 불태웠다.
번개의 다발 속에서 권한울은 이리저리 흔들릴 뿐이었다.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허수아비 같았다.
별안간 번개가 뚝 끊어졌다. 라이신은 땅 위에 선 채 가쁜 숨을 내뱉었다.
“너…….”
이윽고 그녀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이걸 버텨?”
그녀가 공격을 퍼부었던 땅은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그 위에 서 있던 권한울은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권한울의 몸 곳곳에 검은 갑주가 피부를 뒤덮고 있었다.
용린마갑(龍鱗魔鉀).
흑룡혈의 권능 중에서도 최강의 방패라 불리는 것이었다.
라이신이 퍼부은 공세는 권한울로서는 도저히 대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권한울도 용린마갑을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이 미친 새끼.”
하지만 라이신의 실력은 흑린마갑 하나에 막힐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그녀의 주먹은 흑린마갑을 부수기에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라이신의 공격속도는 권한울이 용린마갑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더 빨랐다.
“내가 공격하는 지점에만 용린마갑을 만들어 내?”
그 단점을 권한울은 부분적으로 용린마갑을 만들어 냄으로써 해결했다.
용린마갑을 넓게 퍼트리는 게 아니라 필요한 부분에만 만들어 냄으로써 라이신의 공격을 모조리 방어해 낸 것이다.
“너 대체 뭐야.”
라이신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공격지점에만 정확히 용린마갑이 만들어진다.
그 말은 권한울이 그녀의 공격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아무리 진혈이라지만……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재능의 영역이 아니다. 어떤 천재도 이렇게는 할 수 없다.
지금 라이신에게는 권한울이 인간의 탈을 쓴 괴물로 보였다.
“아직 전투도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러면 어쩌나.”
권한울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에 라이신도 정신을 차렸다.
“……그래, 아직 안 끝났지.”
라이신은 권한울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러나 주먹을 뻗기 직전, 권한울의 몸에서 폭풍이 휘몰아쳤다.
강대한 바람이 라이신을 멀리 날려버렸다. 라이신은 당황한 얼굴로 권한울을 쳐다봤다.
“이건 또 뭐야……?”
* * *
벽력권은 할 말을 잃은 채 두 사람의 전투를 지켜봤다.
두 사람의 전투가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벽력권의 판단으로는 권한울은 라이신을 이길 수 없었다.
라이신은 SS급의 민첩을 소유함과 동시에 벽력굉천권을 익히고 있다.
동급의 헌터 중에서는 라이신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존재가 없다. 아니, 라이신보다 강하다는 10위권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권한울이 라이신의 공세를 버티고 있었다.
속도를 따라잡고 있는 게 아니다. 속도는 계속 라이신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라이신이 권한울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다 예측하고 대처하고 있군.”
두 사람보다 아득히 높은 수준에 있기에 알 수 있었다.
권한울은 라이신의 행동을 예측하고 미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라이신의 공세를 버텨 낼 수 있는 것이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도 벽력권은 납득할 수 없었다.
수를 예측한다는 것은 고수와 하수의 전투에서나 통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라이신은 권한울보다 높은 랭킹의 헌터다. 게다가 권한울보다 아득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그런 라이신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권명우.”
결국 혼란을 받아들이지 못한 벽력권이 권명우를 돌아봤다.
“대체 저 아이는 무엇이냐.”
진혈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흑천의 순혈들이 지니고 있는 강함을 생각하면 진혈은 그보다 훨씬 강하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건 정도를 넘어섰다.
“대체 흑천은 어떤 괴물을 키워 낸 것이냐.”
그 물음에 권명우는 씩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왜 웃기만 하는 것이냐!”
벽력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갑자기 터져 나온 폭풍이 벽력권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 * *
강대한 폭풍이 권한울을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그 광경에 라이신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흑천의 권능 중에 이런 게 있었나?”
라이신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스승, 벽력권은 흑천제일권과 가장 오랫동안 맞수를 이뤘던 라이벌이다.
그렇기에 흑천의 권능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벽력권에게 들은 흑천의 권능 중에 저런 것은 없었다.
“이제 좀 감이 잡히는군.”
폭풍 속에서 권한울이 만족스럽게 말했다.
“지금부터는 좀 다를 거다.”
그저 목적 없이 소용돌이치던 바람이 권한울의 몸을 휘감았다.
그 순간, 갑자기 들이닥친 강풍이 라이신의 앞머리를 흔들어놓았다. 동시에 권한울의 주먹이 눈앞에서 나타났다.
“……!”
라이신이 재빨리 권한울의 주먹을 막아 냈다. 그녀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한순간이지만 권한울의 움직임을 놓쳤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 한수를 숨기고 있을 줄 알았다!”
라이신은 고함을 지르며 땅을 박찼다.
섬광이 번쩍이며 라이신의 주먹이 권한울의 머리를 꿰뚫었다.
그러나 머리를 때리기 직전, 주먹이 권한울의 손에 붙잡혔다.
“……!”
막아 낸 것도, 피한 것도 아니다. 붙잡았다.
전투가 시작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말했잖아. 이제부터 다를 거라니까.”
권한울은 줄곧 라이신의 몸에 흐르고 있는 마력을 눈여겨봤다.
환골탈태를 거치면서 예민해진 감각. 극에 달한 혈통들의 권능.
지금 권한울의 눈에는 라이신이 어떤 방식으로 마력을 운용하는지 자세하게 보였다.
그 덕분에 권한울은 천공비로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었다.
천공비로(天空飛路)
제 3차로 풍류(風流)
바람과 신체를 동화시킴으로서 신체의 움직임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기술.
이 기술을 터득한 덕분에 권한울은 라이신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다를 거라고?”
라이신의 얼굴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그녀는 이내 입술을 깨물며 소리쳤다.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어!”
라이신이 다시 달려들었다.
그녀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번개가 치고 뇌력이 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번도 넘는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모든 공격을.
“이제 그 정도로는 안 되는데.”
권한울은 하나도 빠짐없이 막아 냈다.
공격을 막아낸 권한울이 땅을 박찼다.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는 라이신에게 따라붙었다.
권한울이 자신과 나란히 달리고 있자 라이신의 눈동자가 빠질 듯이 커졌다.
“이제부터는 내가 공격할 차례다.”
용마기가 권한울의 팔다리를 휘감았다.
권한울의 주먹이 라이신의 급소 곳곳을 노렸다. 검은 오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큭!”
라이신도 이를 악문 채 응수했다. 뇌력과 용마기가 쉴 새 없이 충돌했다.
다른 사람들은 두 사람의 잔영조차 제대로 포착할 수조차 없었다. 그저 검은 오러와 푸른 번개의 폭발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폭발이 계속 이어지던 그때였다.
용마기의 움직임이 변했다. 폭발한 뒤에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고 한쪽으로 모여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현룡승천공 상승형(玄龍昇天功 上乘形)
기격식 용성후(氣擊式 龍聲吼)
소용돌이치던 용마기가 거대한 울음소리가 되어 뇌력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큭!”
용성후에 노출된 라이신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권한울이 주먹을 내질렀다.
권한울의 주먹이 라이신의 명치를 꿰뚫었다.
* * *
라이신이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바닥을 몇 바퀴 굴렀다.
“컥, 커억.”
라이신은 배를 움켜잡으며 괴로워했다. 입술 사이로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승부는 끝났다.”
권한울은 쭉 뻗은 주먹을 거둬들이며 말했다. 라이신이 소리쳤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 몸으로 싸우려고? 나는 그쪽을 죽일 생각은 없는데.”
노골적으로 깔보는 말에 라이신은 빠득 이를 갈았다.
주먹을 단단히 움켜쥔 채 라이신이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에 권한울은 조금 감탄했다.
“내부를 뒤흔들어 놨는데. 용케 일어나는군.”
라이신의 부상 자체는 대단한 게 아니다.
하지만 권한울은 복부를 때리는 순간, 오러를 퍼트려서 그녀의 내장을 모두 건드려 놓았다.
지금 그녀가 느끼고 있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터.
그러나 라이신은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전투를 이어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사제는.”
입가의 피를 닦으며 라이신이 말했다.
“그렇게 죽어도 될 아이가 아니었어.”
라이신의 두 눈동자에는 여전히 적의가 들끓고 있었다.
“너 따위가 짓밟아도 되는 아이가 아니었다고!”
라이신이 체내의 모든 마력을 일으켰다.
세계랭킹 20위권. 그 막강한 실력자가 바닥까지 긁어모은 마력은 주변을 모두 압도할 만큼 거대했다.
라이신의 팔을 높이 들어올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이건…….”
권한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냥 넘길 수 없군.”
권한울이 섬뜩함을 느낄 만큼 라이신이 준비하고 있는 기술은 격이 달랐다.
“이미 늦었어.”
라이신이 피묻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높이 뻗었던 팔을 아래로 내렸다.
벽력굉천권 일천(霹靂轟天拳 一天)
뇌신강림(雷神降臨)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쳤다. 번개가 라이신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라이신은 자신을 향해 떨어진 번개를 모조리 흡수했다. 그녀의 몸이 뇌력으로 물들며 시퍼런 빛을 내뿜었다.
눈앞에 있는 존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강대한 뇌력으로 이루어진 괴물만이 있을 뿐.
보통 방법으로는 지금의 라이신을 이길 수 없다.
“후우…….”
권한울은 지그시 눈을 감고 흑룡혈의 권능을 끌어올렸다.
<권능 ‘천리용안(天理龍眼)’을 발휘합니다.> <권능 ‘청해용각(淸海龍角)’을 발현합니다.> 권한울의 이마가 갈라지며 세 번째 눈동자가 나타났다. 머리에 검은 뿔이 돋아났다.
두 가지 권능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지금부터 권한울이 하려는 일은 중요했다.
<권능 ‘여의주 – 오행’을 발현합니다.> 권한울의 손바닥을 펼쳤다. 그 위로 오색으로 빛나는 구슬 하나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