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81화>
181. 공개 (3)
권한울은 놀란 얼굴로 환수의 심장을 바라봤다.
오딘이 판데모니엄의 악인들에게 환수의 심장을 주겠다고 소리쳤을 때는 그리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사람은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설마 진짜로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화, 화, 환수의 심장이잖아요!”
뒤늦게 환수의 심장을 본 주하연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그 과묵하던 주하연도 놀랄 정도로 환수의 심장은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 SS급 영약이라 하면 섭취조건이 까다롭거나 상승시킬 수 있는 능력이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환수의 심장은 어떤 제약도 없었던 것이다.
“그냥 드시면 안 돼요! 당분간 건강을 유지하고, 방해꾼이 없는 안전한 장소에 들어가셔서, 영단을 완전히 흡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알겠으니까 진정하세요.”
권한울은 주하연을 말렸다. 그녀가 너무 흥분한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많이 준비하지 않아도 그냥 흡수할 수 있어요.”
과장이 아니라 진짜였다.
환골탈태를 끝낸 신체는 굉장히 튼튼할 뿐만 아니라 용량도 커졌다.
환수의 심장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영약도 흡수할 자신이 있었다.
“이걸 어떻게 먹냐 보다는 어떤 능력치를 상승시킬지가 더 큰 고민이죠.”
근력, 민첩, 체력, 마력, 감각, 정신
상태창에 표시되는 능력치는 총 여섯 개다.
SS급 영약은 지극히 구하기 힘든 만큼 이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가 무척 중요했다.
“지금 섭취하시게요?”
권한울의 말에 메이홍이 눈동자를 빛냈다. 권후돈과 가엘 가르시안도 관심을 보였다.
“민첩! 민첩을 상승시키도록 하죠!”
“미, 미, 민첩보다는 체력이 낫지 않을까?”
“저는 감각이 좋을 것 같습니다.”
SS급 능력치는 모든 헌터의 이상향이다.
다들 한 번씩은 꿈꿔 왔던 일이기에 세 명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권한울에게 능력치를 추천하기 시작했다.
“싸움은 민첩이 중요하죠! 순간의 움직임이 생사를 가르는 거 모르세요?”
“아무리 빨라도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법이야!”
“두 분 다 잊으셨나 봅니다. 전투 때, 가장 중요한 건 민첩도, 체력도 아닌 감각입니다.”
어느새 세 사람은 열띤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권한울은 세 명을 내버려두고 주하연에게 물었다.
“하연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마력을 추천드립니다.”
주하연 역시 곧바로 대답했다. 이내 다른 말을 덧붙였다.
“다른 분들이 제게 물어본다면 그렇게 말씀드렸겠지만…… 권한울 님께서는 상황이 특수하시니 다른 방향으로 고민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권한울은 수많은 혈통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권한울에게 기존의 방식은 어울리지 않는다.
실제로 권한울은 오딘을 허수아비처럼 몰아붙여 꺾어 버렸다.
“어떤 능력치가 가장 급하지 않은지. 어떤 능력치가 부족한지…… 정리하자면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능력치를 상승시키는 게 최선의 선택일 겁니다.”
권한울은 속으로 고민했다.
우선 근력과 마력은 제외해야 한다. 그에게는 초인혈과 용심혈이 있기 때문이다. 두 혈통의 권능을 사용하면 잠시나마 SS급에 근접할 수 있다.
감각도 빼야 한다. 흑룡혈이 부여하는 용의 본능은 엄청난 것들을 느끼게 해준다. 흑룡혈을 얻은 이후로 권한울의 감각은 언제나 날카롭게 갈고닦여 있었다.
남은 것은 민첩과 체력, 정신이다.
‘체력도 빼야겠군.’
건강혈의 권능이 있기에 체력적인 문제를 느낀 적이 없었다.
‘민첩과 정신…….’
사실 이것도 정답이 정해져 있었다. 정신 쪽도 천재혈과 권속혈이 있기 때문이다.
민첩을 상승시키는 쪽이 훨씬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권한울은 좀 더 멀리 내다보기로 했다.
‘각 혈통의 동화율이 조금만 더 높아진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현재 권한울의 신체는 환골탈태 덕분에 모든 혈통의 동화율이 80%까지 도달했다.
그렇기에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혈통들의 힘이 조금만 더 커진다면 관련된 능력치들 역시 눈부신 성장을 하게 될 것이다.
분명 SS급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현재 내 몸은 동화율을 상승시킬 여유가 없다는 거지.’
혈통들의 힘이 갑자기 급상승한 탓에 현재 권한울의 신체는 정돈이 안 된 무질서한 상태였다.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혈통들끼리 서로 기 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원래는 흑룡혈의 힘이 가장 강한 탓에 문제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모든 혈통의 힘이 비슷해지면서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것들은 또 왜 싸우고 난리야.’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으나 이를 정리하려면 꽤 오랜 시간을 사용해야 했다.
‘혈통들을 최대한 빨리 안정시키고, 완벽하게 통제해야 동화율을 상승시킬 수 있다.’
“결정했습니다.”
권한울의 입을 열자 주하연도, 한창 격한 토론을 벌이던 세 명도 그를 쳐다봤다.
“역시 민첩이죠?”
“체력이지 한울아?”
“감각이 좋습니다!”
세 명이 한껏 기대하며 권한울을 쳐다봤다.
권한울은 쓴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저었다.
“셋 다 아니야.”
권한울은 환수의 심장을 입에 넣었다.
마치 살얼음을 씹는 것 같았다. 식감은 아삭아삭했고, 부서지자마자 녹아내렸다.
몸 전체에 정순한 기운이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권한울은 눈을 감은 채 그 기운들을 흡수했다.
<환수의 심장을 섭취하셨습니다.>
<상승시킬 능력치를 선택해주십시오.>
‘정신을 선택하겠다.’
흡수한 기운들이 권한울의 머리로 집중이 되었다.
천재혈과 권속혈이 있음에도 정신을 선택한 이유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천재혈은 외부의 간섭을 차단할 뿐이다. 권속혈은 정신력을 증폭시켜주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혈통들을 안정시킬 수는 없다.
그렇기에 권한울은 정신을 선택했다.
<‘정신’이 SS급에 도달합니다.>
<‘풍운선람(風雲旋嵐)’의 흐름을 깨닫습니다.> <‘등천조원(登天助援)’의 방법을 내다봅니다.> <‘행불유경(行不由徑)’의 이치를 개안합니다.> D등급부터 S등급까지.
능력치의 상승을 겪어오면서 이런 경우는 없었다.
단순히 정신력이 강해진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거대한 흐름이 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고고한 영산의 봉우리에 올라서 세상을 내다보는 듯 했다.
<흑룡혈이 머리를 숙입니다.>
<아수라왕이 불만을 감춥니다.>
<초인혈이 무릎을 꿇습니다.>
혈통들도 권한울의 변화를 눈치채고 순응하기 시작했다.
서로 아웅다웅할 때는 언제고 길들여진 개처럼 조용해졌다.
권한울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경외심 어린 얼굴들이 보였다.
“와…….”
권후돈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 정도로 영단을 먹기 전과 후의 권한울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환골탈태를 막 끝냈을 때의 권한울의 기운은 무척 강대했으나 거칠고 두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놀랍도록 안정되어 있었으며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울이 너…….”
SS급 영약을 섭취했으니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야 당연하다.
하지만 권한울의 변화는 그런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마치 근원이 달라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 말은 하지 않았으나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지금의 권한울은 방금 전의 권한울보다 배 이상으로 강해져 있었다.
“……그래서 대장님.”
메이홍이 손을 들며 물었다.
“결국 무슨 능력치를 선택하셨나요?”
“그, 근력이지? 그치?”
“감각을 고르셨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세 명이 권한울을 둘러싸고 물었다. 권한울은 한숨을 내쉬며 손짓했다.
“나중에 말해 줄 테니까. 이만 물러나세요.”
* * *
그 뒤로도 세 명은 끈질기게 달라붙었으나 권한울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결국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각자 할일을 시작했다.
자유로워진 권한울은 소파에 앉아서 잠시 쉬기로 했다. 고민해야할 일들이 굉장히 많았다.
“대장님.”
그런데 어느새 메이홍이 옆자리에 와 있었다.
“능력치라면 말 안 해 줄 거예요.”
“그거 때문에 온 거 아니에요. 물론 알려주시면 좋지만.”
“그럼 무슨 일인데요?”
메이홍은 크흠, 헛기침을 했다. 괜히 분위기를 잡으며 물었다.
“대장님, 부회장님이랑 싸울 생각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랬죠. 왜요 갑자기 무서워졌나요?”
“절 뭘로 보시고 그런 소리를…… 농담이라도 그러지 마세요.”
권한울의 물음에 메이홍이 뚱한 표정으로 답했다.
“대장님이 계시니 걱정 안하고 있어요.
“절 너무 믿으시는데요.”
“사실 거짓말이긴 해요. 대장님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상대는 권혁이잖아요?”
동아시아의 최강이라 불리는 흑천 그룹의 부회장.
가주 권선우의 장남이자 실질적인 후계자라고 여겨지는 남자.
권혁이 가진 힘과 권력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했다.
“지금부터 권혁과 싸울 준비를 하셔야 하는데. 아무래도 준비가 좀 부족하잖아요. 장비도 부실하고.”
누가 들으면 어이가 없었으리라.
여기 비행기에 타고 있는 네 사람은 흑천 비고에서 얻은 장비들로 무장을 하고 있다.
흑천 비고는 흑천의 역대 보물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하나만 외부에 유출되어도 피바람이 불 게 분명했다.
“그건 그래요.”
하지만 상대가 권혁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권혁은 오랫동안 흑천의 2인자로 있었다. SS급 몬스터를 사냥해서 장비를 제작하고, 전 세계에서 몇 개 없다는 보물들을 수집해 왔다.
흑천 비고의 물건들조차 권혁과 비교하면 한 끗발 부족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무슨 묘책이라도 있으십니까?”
권한울의 물음에 메이홍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웃음을 참는 어린아이 같았다.
“예전에 권한울 님께 절 팀원으로 삼아달라고 부탁하면서 드린 말씀이 있는데. 기억나세요?”
무엇이었더라. 권한울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불현듯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 설마?”
“흐흥, 기억나신 모양이네요.”
메이홍이 허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메이 가주의 보물창고를 열러 가요!”
* * *
흑인대의 김초희가 아제트 헤르메스를 끌고 간 곳은 일본의 어느 고급 호텔의 로열스위트룸이었다.
“자, 어서 들어가세요. 빨리요.”
김초희는 방의 안쪽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입구에서 아제트 헤르메스를 들여보냈다.
아제트 헤르메스는 긴장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가자 거실의 푹신한 소파에 앉아 있는 권혁이 보였다.
“이쪽으로 와서 앉으시죠.”
권혁은 자리에 앉은 채 옆자리를 가리켰다.
마치 아랫것을 대하는 태도에 아제트 헤르메스는 속이 조금씩 끓는 것을 느꼈다.
“흑천의 고귀한 분께서 이 늙은이는 왜 보자고 했는지 모르겠군.”
아제트 헤르메스는 한껏 비꼬며 권혁이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권혁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 마디를 툭 내뱉었을 뿐이다.
“태도가 까칠하시군요. 그래도 저는 어르신의 은인인데 말입니다.”
“은인이라고? 그게 무슨 헛소리인가.”
“제 수하가 어르신의 목숨을 구해 주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아제트 헤르메스의 두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그래, 그것도 묻고 싶었다! 어째서 그쪽의 부하가 그곳에 있었지? 그리고 왜 흑예대를 돕지 않은 것이냐!”
아제트 헤르메스는 권혁을 믿을 수 없었다. 어딘가 껄끄럽고 불길하게만 느껴졌다.
흑천 일가는 같은 혈족을 위해서라면 가문 전체가 움직일 만큼 정신 나간 작자들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남자는 전혀 다른 행동방식을 보이고 있었다.
“말해라! 대체 무슨 속셈인 게냐!”
“말씀드리지 못할 것도 없죠. 제 수하가 그 자리에 있었던 이유는 권한울의 성장세를 가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성장세라고 했나?”
“예, 환골탈태를 겪고 얼마나 강해질지 궁금했거든요.”
권혁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리고 흑예대를 돕지 않은 이유는 제가 명령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흑예대와 권한울을 도울 생각이 없었거든요. 이제 의문이 풀렸셨습니까?”
“도울 생각이…… 없었다고? 지금 내게 거짓말을 하는 건가?”
“거짓말이라뇨. 역으로 질문드리죠. 제가 왜 그들을 도와야 하는 겁니까. 그래봤자 이득이 없는데.”
아제트 헤르메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권혁이라는 인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조사를 해봤다.
겉으로는 언제나 웃음기를 머금고 있고, 친절한 인간이지만 전부 거짓이다.
실제로는 굉장히 잔인하고 포악한 인간이 바로 권혁이다.
하지만 혈족을 저버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쓸데없는 이야기는 이쯤하고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죠.”
권혁은 느긋하게 와인병을 따고 잔에 따랐다. 유리잔에 차오르는 붉은 액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온의 힘이 필요합니다. 1년 정도 내가 시키는 일을 맡아주셔야겠습니다.”
그 말에 아제트 헤르메스의 입 꼬리가 꿈틀거렸다.
“이온은 누구의 의뢰도 받지 않는다네.”
“뭔가를 착각하시는 것 같군요. 저는 의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명령을 내리는 것이지요.”
까득.
아제트 헤르메스는 이를 갈았다. 간신히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명령이라면 더더욱 듣지 않네. 그러니 건방진 소리는 그쯤하게나.”
“저런…… 제 말이 거슬리셨나 봅니다. 그럼 협박은 어떻습니까?”
“협박?”
아제트 헤르메스는 가당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날 협박한다고 이온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나?”
아제트 헤르메스는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이온은 그릇을 탐구하고자 하는 아제트 헤르메스의 욕망에 의해서 탄생한 집단이다.
그러나 아제트 헤르메스는 오랫동안 이온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유사시에 자신이 없어도 조직이 유지되게끔 여러 가지 안배를 해놓은 것이다.
“꿈깨시게. 날 확보해도 이온은 자네의 말을 듣지 않을 테니.”
아제트 헤르메스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권혁을 쳐다봤다.
그때, 권혁이 무언가를 툭 던졌다.
제법 두꺼운 종이 뭉치였다.
“이게 뭐지?”
“그 눈으로 직접 확인하시지요.”
아제트 헤르메스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종이 뭉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몇 장을 넘겨서 내용물을 확인했다.
“허, 허억!”
그 직후, 아제트 헤르메스는 기겁을 하며 종이뭉치를 집어던졌다.
종이에는 이온의 마법사들이 자주 집결하는 장소, 마법서를 은닉하는 창고, 심지어 암구호까지 전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 이것들을 전부 어, 어떻게…….”
“예전에 한번 이온의 마법사와 일을 한 적이 있죠.”
권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뭉치를 집어 들었다.
“그때 일처리 하는 솜씨가 제법 뛰어나기에 언젠가 다시 쓸데가 있을 것 같아서 오랫동안 조사를 해 왔습니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
이온은 존재가 알려져서 좋을 게 없는 집단이다.
그렇기에 아제트 헤르메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직을 은폐해왔다.
과거 흑천이 이온을 공격했을 때도 이렇게 많은 비밀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흑천에 불가능은 없습니다. 하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죠.”
권혁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제 명령을 따르시겠습니까. 그게 아니면…….”
권혁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알량한 자존심과 함께 이온 전체가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시겠습니까?”
아제트 헤르메스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살면서 이렇게 치욕스러운 적은 없었다.
“……자네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하지만 그보다는 단체의 존속이 우선이었다. 아제트 헤르메스는 굴욕을 받아들였다.
“제안?”
그러나 권혁은 아제트 헤르메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잔악한 인물이었다.
“지금 제안이라고 하셨습니까?”
“……말실수를 했네. 자네의 명……령을 따르도록 하지.”
그제야 권혁은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 뜻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드래곤슬레이어에게 연락을 보내셔야겠습니다.”
역시 권혁은 이온과 드래곤슬레이어와의 관계까지 알고 있었다.
짐작은 했으나 한 번 더 기가 죽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온이 행했던 실험 기록 말입니다만.”
그러나 다음에 들려오는 말은 아제트 헤르메스조차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혈통의 권능을 강화시키는 실험이 있던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아낸 거지?”
“다 방법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 실험의 목표가 화신체를 완성시키는 것이던데. 어째서 실패를 한 겁니까? 원인은 파악이 됐습니까?”
“……실험체의 질이 너무 나빠서 어쩔 수 없었네.”
아제트 헤르메스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가문에서 신경을 쓰지 않는 저급한 혈족들만 납치해서 실험을 했기 때문에 결과도 신통찮았지.”
“그 말은 괜찮은 실험체가 있으면 화신체를 완성시킬 수 있는 겁니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네.”
그 순간, 아제트 헤르메스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권혁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너무 잔악했기 때문이다.
“그거 잘됐군요. 마침 제게 실험체로 쓸 만한 적당한 혈족이 있습니다.”
“저, 적당해서는 안 되네. 사, 상위 혈통을 가지고 있어야…….”
“그건 걱정 마십시오. 순혈인데다 명실상부한 최고의 적성을 가진 혈족이니까요.”
“그런 인물을…… 실험체로 제공해 주겠다고?”
그 물음에 권혁이 짧게 혀를 찼다.
“머리통이 텅 비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졌지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