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78화>
178. 마지막 (4)
주하연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오딘!”
적의 이름을 외치며 정면을 쳐다봤다. 기절해 있는 권후돈과 주하연, 가엘 가르시안이 보였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시선을 옮기던 주하연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시술실의 문이 박살이 나 있었던 것이다.
“……권한울 님.”
주하연은 시술실 쪽으로 뛰어가려 했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자마자 다시 땅으로 넘어졌다.
오딘이 남긴 저주가 아직도 그녀의 몸을 괴롭히고 있었다.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야.”
주하연은 주먹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쾅쾅 내리쳤다. 그러나 다리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안 돼…….”
주하연이 절망스러운 말을 읊조렸다.
그때, 시술실 안쪽에서 강대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거대하고, 살의로 가득 찬 힘이었다.
“권한울 님?”
주하연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저 안에서 권한울이 분노하고 있다.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감정에 사로잡혀 울분을 토해 내고 있었다.
“으, 으윽 이게 무슨 일이야…….”
“쿨럭, 쿨럭.”
쓰러져 있던 사람들이 권한울의 기운에 반응하여 하나둘 눈을 떴다.
그리고 시술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을 느끼고 그 자리에서 굳었다.
“하연 언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메이홍이 주하연에게 물었다. 주하연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몰랐다.
갑자기 굉음이 울려 퍼졌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우르르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권한울의 기운이 하늘 위로 올라갔다. 모두 반사적으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거대한 두 개의 기운이 서로 충돌했다.
한쪽은 권한울, 반대쪽은 오딘이었다.
“……권한울 님과 오딘이 싸우고 있어요.”
주하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오딘은 권미조차 쓰러트린 강자다. 설사 권한울이 환골탈태를 마쳤다 하더라도 오딘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권한울의 기운이 변했다.
어딘가 무겁고, 버거우며, 당당하다.
“……초인혈?”
주하연은 스스로 말을 하고도 의아하게 여겼다.
어째서 권한울에게서 초인혈의 기운이 느껴진단 말인가.
“오딘의 저주 때문에 감각이 망가졌나……?”
주하연이 그렇게 중얼 거리자마자 병원이 또 다시 뒤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권한울의 기운이 강해졌다. 그 바람에 주하연은 확신할 수 있었다.
“진짜 초인혈의 힘을 쓰고 계시잖아……?”
주하연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당장 위로 올라가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주하연은 그럴 수 없었다.
“쿨럭.”
바닥에 쓰러져 있던 권미가 피를 토해 냈다. 모두들 권미에게 달려갔다.
“엄마? 괜찮아?”
“엄마는 괜…….”
권미가 격하게 기침했다. 그럴 때마다 피가 터져 나왔다. 권후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엄마!”
* * *
권한울은 오딘의 팔을 힘껏 잡아당겼다.
처음에는 강한 반발력이 느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상대는 판데모니엄의 대의원이다.
그 위치까지 올라간 남자의 능력치가 권한울보다 낮을 리가 없으니까.
<‘역발산기개세’가 근력 스텟을 강화합니다!> 그러나 권한울의 몸속에는 초인혈이 있었다. 초인혈의 권능이 권한울의 행동을 도왔다.
오딘의 몸이 치솟았다. 호선을 그리며 하늘 높이 떠올랐다.
<‘육체쇠약’의 저주가 당신의 힘을 약화시킵니다!> <‘정신오염’의 저주가 판단력을 흐립니다!> 그때, 오딘이 걸어놓은 저주가 권한울을 방해했다.
건강혈과 천재혈에 의해서 해주가 되기는 했으나 그 잔재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건강혈’이 ‘육체쇠약’의 저주를 감지합니다!> <권능 ‘만수무강’이 발현됩니다!>
<‘전재혈’이 ‘정신오염’의 저주를 파악합니다!> <권능 ‘독견지명’이 발현됩니다!>
환골탈태로 인해서 변한 것은 육신뿐만이 아니다. 권한울의 신체에 있던 혈통들 역시 변화를 겪었다.
그 결과 건강혈과 천재혈은 새로운 권능 ‘만수무강’과 ‘독견지명’을 개방했다.
<‘육체쇠약’의 저주가 모조리 소멸됩니다!> <‘정신오염’의 저주가 완전히 해결됩니다!> 미약하게나마 권한울을 괴롭히던 저주들이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막는 장애물은 없었다.
하늘에 붕 떠 있는 오딘을 힘껏 잡아당겼다.
심장이 박동했다. 전신의 근육에 용력이 깃들었다. 초인혈이 권능을 발휘했다.
온 힘을 담아서 오딘을 바닥에 내리쳤다.
허공에서 한 번 공기가 터진다. 뒤이어서 오딘의 몸이 바닥에 부딪히자 굉음과 함께 바닥 전체에 금이 갔다.
“컥! 커억!”
오딘이 비명을 질렀다. 온몸의 뼈가 동시에 금이 가는 것 같았다.
정신이 아득해질 것만 같은 격통이 오딘의 머리를 때렸다.
“악! 아악! 으아아아악!”
오딘은 비명을 질렀다. 살면서 이렇게 소리를 친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권한울은 무심한 얼굴로 다시 오딘의 팔을 잡아당길 뿐이었다.
오딘의 몸이 또 다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권한울은 반대쪽으로 힘껏 오딘을 휘둘렀다.
두 번째.
오딘이 바닥과 충돌했다. 금이 갔던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두 사람은 아래층으로 떨어졌다.
“커…… 커걱…….”
간헐적인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첫 번째가 전신의 뼈에 금이 가는 것 같았다면 두 번째는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이건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권한울은 그런 오딘의 팔을 다시 끌어당겼다.
“그, 그만해!”
오딘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권한울은 오딘의 몸을 허공으로 띄운 채였다.
세 번째.
오딘이 바닥에 떨어졌다.
“끄아아악!”
오딘이 비명을 질러댔다. 내장이 전부 파열된 것만 같았다. 파열된 내장이 뒤섞이는 듯했다.
권한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마구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권한울의 손은 족쇄처럼 풀리지 않았다.
“놔! 놓으란 말이야!”
권한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오딘의 몸을 들어서 다시 반대쪽으로 내리쳤다.
또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잔해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권한울과 오딘은 또 아래층으로 떨어졌다.
“끅, 끄윽!”
오딘이 숨이 끊어질 듯한 소리를 냈다. 어느새 어깨 관절이 빠져 있었다.
“그, 그만…… 제발 그만…….”
오딘이 몸이 다시 떠올랐다. 또 다시 오딘의 몸이 바닥과 충돌했다.
이제는 한 번 휘두르고 대기하지 않았다.
권한울은 연달아 오딘을 휘둘렀다. 바닥이 박살이 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그렇게 몇 번이나 휘둘렀을까.
1층에 도달하고 나서야 권한울은 오딘을 놔줬다. 거의 집어던지다시피 해서 내동댕이쳤다.
“컥, 크윽, 크아아악!”
폭력은 끝났으나 고통은 그렇지 않았다. 오딘은 바닥에 엎어진 채 괴로워했다.
“이, 이……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는…… 이 덜떨어진 놈이!”
오딘의 두 눈동자는 뒤집혀 있었다. 고통으로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닌 듯 했다.
“네 몸에는 상상도 못할 만큼 거대한 보물이 있어! 그걸 사용하는 방법만 알아도 우리 인류는…… 인간은 엄청난 진보를 할 거다! 근데…… 근데 날 방해해? 이 원숭이만도 못한 저능아 같으니라고!”
권한울이 걸음을 옮겼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권한울의 모습에 오딘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오, 오지 마.”
권한울은 오딘의 말은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오지 말라고!”
오딘은 비명을 지르며 저주의 덩어리를 소환했다. 그것들을 마구 집어던졌다.
그러나 오딘이 날린 저주의 덩어리들은 모두 권한울의 몸에 닿자마자 소멸해 버렸다.
“오지 말란 말이다!”
오딘은 모든 마력을 쥐어짜냈다. 권한울의 주변에 저주의 폭탄이 나타났다.
폭탄이 터졌다. 검은 화염이 권한울을 집어삼켰다. 오딘의 얼굴이 안도감이 떠올랐다.
그러나 곧 이어 권한울이 멀쩡한 모습으로 화염을 뚫고 튀어나왔다.
“아, 아악! 으아아악!”
오딘은 비명과 함께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뜯겨나간 팔 때문에 중심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그 찰나였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래?”
“와, 다 박살 나 있네.”
권한울이 박살 낸 탓에 병원은 모든 층이 뚫려 있었다.
각 층마다 판데모니엄의 악인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저거 의원님 아니야?”
“대의원님, 상황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판데모니엄의 악인들은 오딘을 보며 낄낄거렸다. 애초에 동료의식이 없는 자들 같았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오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주, 죽여! 다, 당장 권한울을 죽이란 말이야!”
그 말에 악인들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떠올랐다.
“저런 거랑 싸우라고?”
“우리가 미쳤습니까.”
판데모니엄의 악인 정도 되는 자들이 권한울의 실력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
안 그래도 오딘과 권한울이 싸울 때, 그 여파만으로 다들 기가 질려 있었다.
이렇게 구경하다 여차하면 도망칠 생각이었다.
“우리는 할 만큼 했지.”
“맞아. 돈 받은 만큼은 했수.”
판데모니엄의 악인들 중에 멀쩡한 사람은 없었다. 흑예대와 싸우느라 생긴 상처로 가득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오딘의 얼굴이 서서히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오딘의 얼굴에 비장감이 떠올랐다.
“지금 이 자리에서 권한울을 죽이는 사람에게는 환수의 심장을 주도록 하겠다!”
환수의 심장이라는 말에 악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환수의 심장? 아무 능력치나 SS급을 만들어 준다는 물건이잖아……?”
“판데모니엄에 매물이 딱 하나가 들어왔고 들었는데. 의원님이 가지고 있었어요?”
SS급 영약은 흑천 일가조차 쉽게 구하지 못하는 귀물.
그것을 준다는 말에 악인들의 얼굴이 탐욕에 물들었다.
“근데 딱 봐도 죽이기 힘들 거 같은데.”
“다 같이 덤비면 되지 않을까?”
“눈 먼 칼이라도 좋으니 쑤시다 보면 죽겠지.”
“그래도 난 영 내키지가 않는데.”
“나도 동감이야. 저놈한테서는 아주 불길한 냄새가 나.”
판데모니엄의 악인들은 갈등했다.
당장이라도 권한울을 죽이려는 자. 좀 더 상황을 지켜보려는 자. 그냥 포기하려는 자.
다양한 반응이 뒤섞였다.
“판데모니엄의 쓰레기들이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군.”
그들을 향해 권한울이 소리쳤다.
“난 너희 버러지들을 단 한 명도 살려 둘 생각이 없다.”
이들은 타카미네 병언을 침범하고, 흑예대를 공격했다.
“너희들은 전원 내 손에 죽는다. 그러니 죽기 직전에 발버둥이라도 쳐 봐라.”
흑천에 이를 드러낸 저들을 곱게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반드시 대가를 받아내야 했다.
“하, 저 도련님이 미쳤나.”
권한울의 말은 역으로 판데모니엄의 악인들을 자극했다. 망설이던 이들조차 모두 권한울을 향해 살기를 드러냈다.
“어디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보시지.”
“팔 한 짝은 내꺼다.”
“그런 게 어디 있어. 좀 더 잘게 나눠야지.”
악인들이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광인들이 따로 없었다.
“어디 도련님 솜씨나 한번 볼…….”
하나 둘, 악인들의 말문이 막히기 시작했다. 권한울의 몸에서 느껴지는 마력 때문이었다.
<환골탈태에 성공하셨습니다!>
<용심혈의 동화율이 80%에 도달합니다!> <드래곤 하트의 완성도가 80%에 도달합니다!> <권능 ‘용언-원소’가 개방됩니다!> <권능 ‘용언-물리’가 개방됩니다!> <권능 ‘용언-초능’이 개방…….>
권한울은 드래곤하트를 가동했다. 그 순간, 병원 전체가 권한울의 마력으로 가득 찼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악인 중 한 명이 멍하니 말했다.
판데모니엄의 의원 중에는 강대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권한울이 한 것처럼 병원 전체를 마력으로 채워 넣을 수는 없다.
그것도 이렇게 농도가 짙은 마력이라니. 마치 물속에 잠겨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들어라.
권한울이 입을 열었다. 용언이 마력을 타고 병원에 있는 모든 판데모니엄의 악인들에게 전달되었다.
-내게 악의를 품고 있는 자.
판데모니엄의 악인들은 지금 권한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용언이란 사람이 알아들 수 없는 언어다.
이들에게 권한울의 말은 생전 처음 듣는 언어로 들렸다.
-내게 해를 끼치려 한 자.
하지만 악인들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위험하다.
이 자리에 있으면 위험하다. 무언가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내게 영역을 침범한 자.
몇몇 악인들은 몸을 돌렸다. 병원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모두 소사(燒死)하라.
말이 끝나는 순간.
병원 전체에 불길이 치솟았다.
* * *
곳곳에서 지독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끄아아악!
수십 명이 넘는 악인들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누, 누가 물…… 물!
-사, 살려! 으아아악!
악인들은 불길을 끄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바닥을 구르기도 하고 스킬로 물을 소환해서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몸에 붙은 불은 결코 꺼지지 않았다.
-아아아악!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이 고통을 느낀 시간이 지극히 짧다는 것이었다.
불길은 순식간에 그들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더 이상 태울 게 없어지고 나서야 불길은 사그라졌다.
“……후우.”
악인들이 모두 죽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권한울은 드래곤하트의 가동을 정지했다. 병원을 감싸고 있던 마력이 모두 사라졌다.
“바, 방금…….”
모든 악인이 죽은 것은 아니었다.
“무, 무무, 무슨 짓을…… 하, 한 거냐.”
오딘은 용언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말 한 마디로 죽이기에는 오딘이 격이 너무 높기 때문이었다.
“용심혈……?”
그러나 오딘이 정신은 멀쩡하지 못했다. 자신이 본 광경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흑룡혈에…… 초인혈에…… 건강혈, 천재혈도 모자라서…… 용심혈?”
하나만 있어도 최강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진혈들이 무려 다섯 개.
그것도 단순히 소유한 정도가 아니다. 권능을 개방해서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 이제야 이해가 가네…….”
권한울과의 전투에서 오딘은 처참한 패배를 맛봤다.
본래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딘은 판데모니엄의 대의원으로서 SS급 능력치를 여럿 가지고 있으니까.
“다수의 혈통이…… 그 엄청난 권능들이 한 몸에 집중되었으니 이렇게 괴물 같이 강할 수밖에 없는 거야.”
혈통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권능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다.
권능이 뒤섞이면서 일으킨 시너지는 대단하다 못해서 폭발적이었다.
SS급 능력을 단 하나도 지니지 못한 권한울이 오딘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말도 안 돼…… 인간이 담을 수 있는 용량에는 한계가 있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문득 오딘의 머릿속에 어떤 가설이 떠올랐다.
“그래…… 나는 그릇을 가진 실험체가 임신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실험해 본 적이 없어…….”
오딘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그의 얼굴이 환희에 가득 찼다.
“그래! 그거다! 그거였어! 그래서 가능했던 거야! 역시 너는……! 한울이 너는 신이 내게 내린 선물이다……! 자, 가자! 가서 나랑 함께 이 세상의 진리를 탐험하자!”
권한울은 짧게 혀를 찼다. 그리고 오딘에게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오딘의 허리가 숙여지는가 싶더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욱, 우욱.”
격통이 뇌를 때렸다. 그제야 오딘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를 떠올렸다.
“그만!”
오딘은 다시 비명을 지르며 애원했다. 그러나 권한울은 멈추지 않았다.
목덜미를 붙잡아서 일으켜 세운 뒤, 늑골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오딘은 숨넘어갈 듯한 소리를 냈다.
“사, 살려 줘! 제, 제발……!”
권한울은 무자비했다. 오딘의 애원에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제야 오딘은 권한울이 순수하게 자신을 때려죽일 속셈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나, 나는 죽을 수 없어!”
간신히 그릇의 진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죽을 수는 없다.
오딘은 줄곧 망설이고 있던 금단의 마법을 사용했다.
“해, 해방한다!”
오딘은 저주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던 악령들을 전부 해방시켰다.
-히힉, 히히힛!
-끄아앗, 끄아아악!
그림자에서부터 수천 명도 넘는 악령들이 뿜어져 나왔다.
해방된 악령들은 지독한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오심은 눈앞에 있는 두 생명체에게 집중되었다.
악령들은 증오어린 괴성을 내뿜으며 두 사람을 덮쳤다. 그 몸을 빼앗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어, 어때? 모, 못 움직이겠지?”
악령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오딘이 말했다.
“죽은 자의 증오는 무척 집요하지. 아무리 너라도 이들을 다 뿌리치는 건 힘들 거다.”
오딘은 악령들을 지겹게 다뤄 봤기에 이 상황에 익숙했다. 악령들이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정신을 유지할 자신이 있었다.
다만, 이 방법을 망설인 이유는 기껏 모아 놓은 저주의 덩어리를 전부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찮아! 너만 데려가면 다 해결되니까!”
오딘은 그렇게 소리치며 마지막으로 아껴 놨던 단검을 빼서 휘둘렀다.
단검은 권한울의 어깨에 꽂혔다. 그러나 권한울의 금강불괴를 뚫지 못하고 칼날이 깨졌다.
“됐다! 됐어!”
하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오딘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혈통을 죽이는 뱀의 사용조건을 만족했다!”
깨진 단검에서 보라색 점액질이 튀어나왔다. 점액질은 권한울의 피부에 달라붙어서 흡수되었다.
“네 잘난 고모도 이 저주에 아무 것도 못하고 당했지!”
체내의 혈통을 억제하고 파괴하는 저주.
일찍히 바벨의 가주에게 사용해서 그 효용성을 입증하고, 권미와의 전투에서 톡톡히 활약했다.
하지만 이 저주를 걸기 위한 조건은 까다롭기 짝이 없었다.
저주가 담긴 주물을 신체에 직접 접촉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권한울, 되도록 마력을 쓰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랬다가는…….”
그때였다.
권한울의 주변에 붉은 기운이 나타났다. 무척 불길하고 섬뜩한 기운에 오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환골탈태에 성공하셨습니다!>
<수라혈의 동화율이 80%에 도달합니다!> <아수라와의 힘이 이전과 비교도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집니다!> 권한울은 수라혈의 권능을 사용했다. 아수라왕이 눈을 떴다.
<권능 ‘부분 구현화’를 사용합니다!> <‘아수라왕’의 신체가 일부분 실체화 됩니다!> <권능 ‘삼계육도 – 아귀도’를 습득합니다.> <권능 ‘삼계육도 – 축생도’를 습득합니다.> <권능 ‘삼계육도 – 지옥도’를 습득…….> 아수라왕이 기쁨에 몸부림쳤다. 그의 강대한 힘이 깨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아수라왕이 악령들을 굴복시킵니다!> 권한울을 둘러싸고 있던 악령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모조리 물러났다.
그 일사불란한 모습에 오딘은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소용없다! 이미 저주는 들어갔어! 조금 뒤면 모든 권능을 잃어버릴 거다!”
오로지 혈통을 없애기 위해서 만들어진 저주다. 천재혈도, 건강혈도 저것을 어쩔 수 없다.
그 증거로 방금 전, 단검에 닿은 권한울의 어깨는 짙은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반마혈’이 악마의 권능을 흡수합니다.> <동화율이 소폭 상승합니다.>
<0% -> 3%>
권한울의 몸에 침투했던 저주는 순식간에 권한울의 몸에 흡수되었다.
보라색으로 물들었던 피부가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어? 어어어어?”
이것만큼은 오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또, 또 무슨 혈통을 사용한 거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반마혈이란 이온에서도 파악하지 못한 혈통이었으니까.
“무슨 짓거리를 하는지 궁금해서 지켜봤다만.”
권한울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히 기다려 줬군.”
권한울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주위로 용마기가 휘몰아쳤다.
“아, 아아…….”
오딘의 얼굴이 죽음의 공포가 떠올랐다. 이번에야 말로 끝이다. 정말로 죽는다.
아니, 사실 오딘은 믿고 있는 구석이 하나 더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이의 저주.
그것을 사용하면 권한울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잘 가라.”
권한울이 주먹을 휘둘렀다. 용마기가 담긴 주먹이 오딘의 몸통이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그 순간, 오딘은 남아 있는 마력을 전부 쥐어 짜냈다.
몸에 뚫린 구멍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중 일부가 권한울에게 되돌아갔다.
엄청난 충격이 권한울을 강타했다. 오딘은 안도하며 소리쳤다.
“하! 내 비장의 수단이다! 네놈의 공격에 역으로 당하니 기분이…… 어떻…….”
분명 몸통에 구멍이 뚫려야 하는데. 권한울은 멀쩡했다.
어느새 검은색 비늘이 권한울의 몸을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버러지에 불과했군.”
권한울이 다시 주먹을 쥐었다. 용마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부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받기를 바란다.”
권한울이 주먹을 내질렀다. 소용돌이치던 용마기가 해방되었다.
현룡승천공 상승형(玄龍昇天功 上乘形)
기격식 승룡권(氣擊式 昇龍拳)
흑룡의 머리가 아가리를 벌렸다.
“제발 가설만이라도 증명할 수 있도록…….”
오딘이 애원하는 듯이 말했다.
그 직후, 용의 머리가 오딘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