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169화 (169/221)

<혈통이 깡패임 169화>

169. 판데모니엄 (4)

알렉산더 애런이 판데모니엄의 악인을 막는 동안 권후돈, 메이홍, 가엘 가르시안은 시술실을 향해 달려갔다.

“에엥? 이 애송이들은 대체 뭐야?”

하지만 병원을 공격한 악인들의 숫자는 너무 많았다. 세 사람은 시술에 도착하기도 전에 판데모니엄의 악인과 마주쳤다.

고릴라처럼 온몸에 털이 북슬북슬한 남자였다. 그런 주제에 제대로 씻지 않았는지 털들은 전부 뒤엉켜 있었으며 고약한 냄새가 났다.

“마침 잘됐네. 나 혼자 심심했는데.”

더러운 남자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말을 할 때마다 냄새가 한층 더 심해졌다.

“어, 어쩌지?”

권후돈이 메이홍과 가엘 가르시안을 돌아보며 물었다. 하지만 괜한 물음이었다. 두 사람은 이미 전투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뭘 어떻게 해요. 베고 지나가야죠.”

“동감입니다.”

메이홍이 유려한 손놀림으로 장검을 빼들었다. 가엘 가르시안의 머리에 동물귀가 돋아났다.

“허, 참나. 이 애송이들이 날 우습게 보고 있네?”

더러운 남자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팔다리가 몽땅 부러지고 나면 그딴 소리는 못할 거다.”

남자의 몸에서 털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고릴라와 비슷했던 외형이 이제는 진짜 고릴라로 변해 버렸다.

늘어는 털이 서로 엉키더니 갑옷처럼 몸을 둘러쌌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상당히 괴상한 스킬이었다.

“일단 너부터 손봐 주마!”

남자가 메이홍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차 하는 사이에 메이홍의 코앞에 나타나서 주먹을 휘둘렀다.

움직임만 보아도 이 남자의 능력치는 세 사람보다 뛰어났다. 하지만 이쪽은 숫자에 이점이 있었다.

권후돈이 남자의 앞에 끼어들었다. 흑린갑을 두른 팔로 남자의 주먹을 막아 냈다.

“커흑!”

흑린갑으로 막았음에도 몸이 허공에 붕 떴다. 남자는 짜증난다는 듯이 소리쳤다.

“애송이 주제에 나대지 말…….”

그 순간, 가엘 가르시안이 굵은 손톱이 돋아난 팔로 남자의 얼굴을 후려쳤다.

몸을 뒤덮은 털 때문에 손톱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충격 때문에 남자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이 자식이!”

남자는 돌아간 고개를 다시 제 자리로 되돌렸다. 그 순간, 섬광과도 같은 참격이 남자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목을 보호하고 있던 털과 안쪽의 피부가 같이 잘려나갔다.

“……허.”

남자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근육은 베이지 않았지만 자신의 스킬이 뚫렸다는 섬뜩함 때문이었다.

“나름 가시가 있는 애송이들이었군…….”

남자의 몸에서 더 많은 털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털들이 겹치고 엉키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연갈색이었던 몸이 이제는 고동색으로 변해 버렸다.

“이제부터 제대로 해 주지.”

남자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짙은 살기에 세 사람의 몸이 움찔 떨려 왔다.

저 모습을 본 순간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는 방심을 한 것을 넘어서 아예 세 사람을 적으로 생각하지조차 않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좀 할 만하겠네.”

“동감입니다.”

“두 사람 모두 너무 여유로운 거 아니야…….”

하나, 한수를 숨기고 있었던 것은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이 일으키는 기운 역시 더욱 강해졌다.

그때였다.

오러로 이루어진 다섯 개의 고리가 소리 없이 날아들었다. 고리는 남자의 몸 곳곳에 틀어박혔다.

“……쿨럭!”

남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피를 한 움큼 토해 내며 절명했다.

세 사람은 깜짝 놀라서 고리가 날아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김 비서가 손으로 벽을 집은 채 서 있었다.

“김 비서 님?”

권후돈이 달려가서 김 비서를 부축했다. 김 비서는 짧게 감사를 표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세요?”

“오딘이라는 남자에게 당했습니다. 권미 님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몸 상태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딘의 저주가 남긴 여파가 그만큼 큰 탓이었다.

“오딘이라고 하셨나요?”

권후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헌터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권후돈이다. 오딘을 모를 리가 없었다.

판데모니엄에서 17명밖에 없다는 대의원.

악명이 하늘을 찌르는 그 남자와 어머니가 싸운다고 하니 걱정이 된 것이다.

“권후돈 님,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김 비서는 권후돈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는 입을 열었다.

“어머님께서 얼마나 강하신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판데모니엄의 대의원이라 해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김 비서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자신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듯이.

덕분에 권후돈도 불안감을 잊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세 사람 모두…… 이 남자를 상대로 잘 버티셨군요.”

김 비서는 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시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메이홍이 의문을 담아서 물었다.

“누군지 아시나요?”

“김문석이라는 놈입니다. 항해 중인 선박의 선원들을 인질로 삼고 해방비를 요구하며 먹고 살던 쓰레기죠.”

김 비서의 눈빛에 경멸감이 어렸다. 흑예대의 소속임을 자부심으로 삼고 살아가는 그에게 김문석 같은 놈은 그야말로 상종하고 싶지 않은 쓰레기였다.

“하지만 실력은 확실한 놈인데…….”

김문석을 잡겠다고 나섰다가 역으로 바다에 수장당한 세계랭커가 다섯 명이 넘는다.

이 세 명은 그런 실력자의 공격을 버텨 냈다. 아니, 버틴 게 아니다. 역으로 몰아세우기까지 했다.

물론 김문석은 진심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 비서는 어쩐지 김문석이 처음부터 전력을 꺼내들었어도 이 세 명을 쓰러트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지하로 내려가시죠. 또 어떤 놈을 만날지 모르니까요.”

* * *

세 사람은 김 비서와 함께 지하로 내려갔다.

시술에 도착하자마자 네 사람은 진한 피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계단에서 시술실의 출입구까지 통하는 복도가 온통 피와 살점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주하연이 서 있었다.

전투를 치룬 직후였는지. 주하연은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다들 오셨군요.”

주하연은 네 사람을 알아보고는 반갑게 맞이했다.

“세 분께서는 왜 그렇게 멀찍이 서 계십니까?”

주하연이 권후돈과 메이홍, 가엘 가르시안을 향해 물었다. 세 사람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음…… 설마 언니가 이 많은 사람들을 다 상대한 거예요?”

“그렇습니다만.”

세 사람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반면, 주하연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다들 잊은 모양이군. 주하연 양이 어느 팀에 속해 있었는지.”

김 비서의 지적을 듣고 나서야 세 사람은 떠올렸다.

주하연이 다름 아닌 회장의 팀에 속해 있던 헌터였다는 사실을.

“몸이 왜 이렇게 심하게 망가지신 겁니까?”

“오딘을 만났네.”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주하연의 얼굴에 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 남자가 이곳에 와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지금은 권미 님께서 그 남자를 상대하고 있지.”

그 말을 듣고도 주하연의 표정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김 비서는 안심하라는 듯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가 그 남자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네의 복수를 우선시할 수는 없네. 권미 님께서 그 남자의 수급을 가지고 돌아오실 테니 그걸로 만족하게나.”

“……알겠습니다.”

주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차마 숨기지 못한 불안감이 엿보였다.

“그보다 가능한 빨리 흑예대원들에게 지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주하연의 표정이 문득 심각해졌다.

“지금까지는 저 혼자서 잘 막아 냈습니다만…… 요행에 불과합니다.”

지금 이 병원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이 시술실이다. 적들의 목표가 바로 권한울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서 이곳을 지키고 있는 전력은 너무 빈약했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주하연 뿐, 김 비서는 저주 때문에 전력이 대폭 감소된 상황이었다.

“잠시 기다리게.”

김 비서는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모두 긁어모아서 카라마의 전령을 사용했다. 병원 곳곳에 있는 흑예대원들에게 말을 전했다.

-전투가 끝난 자들은 지금 당장 지하에 있는 시술실로 와라. 전력이 부족하다.

김 비서는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왜 아무도 대답이 없는가.

-아, 바빠서 대답도 못했네.

그때, 비로소 대답이 들려왔다. 알렉산더 애런이었다.

-아저씨, 미안한데. 나는 도와주러 갈 수가 없어. 이 놈이 좀…… 할 줄 아는 놈이라 시간이 더 필요해.

알렉산더 애런은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다. 상황이 좋지 못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애런?

-그럼 이따 다시 연락할게!

그 말을 끝으로 알렉산더 애런과의 연결이 끊겼다. 뒤 이어 다른 대원에게 연락이 왔다.

-응답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빨리 마무리 짓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과를 해야겠군. 솔직히 말해서 이쪽은 여유가 없다.

-쿨럭…… 지금은…… 쿨럭…… 곤란…….

응답이 돌아올수록 김 비서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갔다.

상황이 좋지 못하게 흘러가고 있다. 흑예대원들이 전부 밀리고 있는 상황이라니.

“……다들 올 수 없는 듯하군.”

김 비서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걱정 말 게. 권미 님께서 오딘을 처리하고 오면 모든 게 달라질…….”

별안간 김 비서가 계단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뒤 이어 주하연과 나머지 세 명도 그곳을 노려봤다.

터벅.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저벅, 쿵.

소리는 연속적으로, 그리고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이내 다섯 명의 시야에 그것이 들어왔다.

“오? 여기에 왜 이렇게 많이 모여 있데?”

노인처럼 푸석푸석한 회색머리.

그에 비해서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청년이 밝게 웃으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이거 괜히 보물을 발견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은 걸.”

청년은 머리채를 붙잡은 채 누군가를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그 누군가의 얼굴을 본 순간, 권후돈의 얼굴이 멍해졌다. 이윽고 불길처럼 분노가 번졌다.

“우리 엄마한테 무슨 짓이야!”

김 비서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막아!”

가엘 가르시안과 메이홍이 권후돈의 몸을 움켜잡았다. 그 바람에 권후돈은 앞으로 튀어나갈 수 없었다.

“엄마? 아하…… 네가 이 여자의 아들이구나.”

청년, 오딘은 머리를 붙잡은 손을 들어올렸다. 권미의 머리가 딸려 올라왔다. 그 뺨을 찰싹찰싹 때리며 말했다.

“야, 봐봐. 네 아들이야.”

권미는 신음만 흘릴 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오딘은 낄낄 웃으며 권미를 한쪽으로 내동댕이쳤다.

“정신을 못 차리네. 야, 미안하다. 네 엄마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서.”

권후돈이 분노를 터트리며 달려들려 했다. 메이홍과 가엘 가르시안은 필사적으로 권후돈을 붙잡았다.

“……권미 님께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 하기는 했지. 내가 요즘 만들어 낸 특제 마법이 하나 있거든.”

“마법? 헛소리 하지 마라!”

김 비서는 고함을 내질렀다.

“권미 님의 몸에서 아무 마력도 느껴지지 않거늘! 마법 따위로 그런 짓을 했단 말이냐!”

김 비서는 알 수 있었다. 지금 권미의 내부에는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강대한 마력도, 흑룡혈 특유의 위압감도.

지금의 권미는 마치 일반인과 같았다.

“아까도 느꼈지만 제법 예리하네.”

오딘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말하란 말이다!”

“근데 예리하기는 한데. 눈치는 없다.”

오딘이 권미를 가리켰다.

“내가 왜 저 년을 죽이지 않고 살려서 데려왔을 거 같아? 내가 이렇게 무서운 놈이니까 대들지 말라는 소리야.”

짝, 오딘이 손뼉을 쳤다.

“기회를 주지. 너희들 손으로 저 문을 열고 권한울을 내 앞에 데려와 그럼 살려서 보내 주마.”

아, 맞다.

오딘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덧붙였다.

“한 명은 보내 줄 수 없어.”

오딘의 시선이 주하연을 향했다.

“주하연, 너는 나랑 같이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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