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64화>
164. 시술 (2)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타카미네 병원의 훈련실.
백인 여성이 자신의 신장 만큼이나 커다란 도끼를 허공에 붕붕 휘두르고 있었다.
“나처럼 대형 무기를 사용하는 적한테는 무조건 붙어야 한다니까? 한대 얻어맞으면 죽을 거 같다고 거리를 벌리면 안 돼요. 그럼 진짜 뒤지는 거야.”
백인 여성, 알렉산더 애런의 말에 흑암대 세 명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 하지만…… 붙을 틈을 안 주잖아요.”
권후돈이 원망스럽게 말했다. 알렉산더 애런은 도끼로 권후돈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도련님! 그딴 약한 소리를 하면 안 돼! 내가 말했잖아. 안 붙으면 진짜 죽는다니까? 붙어도 죽지만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은 쪽을 선택해야 하지 않겠어?”
정론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세 명의 얼굴에 불만은 여전했다.
“말은 쉽죠. 하지만 어떻게 해내라는 거예요.”
메이홍이 툴툴거리며 따졌다. 알렉산더 애런이 검지를 좌우로 까딱까딱 흔들며 대꾸했다.
“쉽지 않은 일이니까. 내가 이렇게 가르쳐 주려는 거 아니야.”
어째 한 마디도 지지 않는다. 메이홍은 슬그머니 올라오려는 불만을 잠재웠다.
“오늘따라 대장님이 왜 나한테 너희들을 가르치라고 했는지 의아했는데. 이제 알겠다. 대장님의 수업을 듣기에 너희들은 너~무 부족한 점이 많아.”
알렉산더 애런이 혀를 쯧쯧 찼다.
“하지만 걱정 마라! 내가 오늘 너희들을 조금이라도 쓸 만하게 변하도록…….”
그 순간, 대뜸 알렉산더 애런이 권후돈을 향해서 도끼를 던졌다.
불시에 가해진 공격에 권후돈은 깜짝 놀라 대비하지 못했다. 도끼는 그대로 권후돈의 옆에 처박혔다.
그 직후, 뜨거운 액체가 권후돈의 얼굴로 확 튀었다.
“어, 어어?”
권후돈이 깜짝 놀라 아래를 내려다봤다. 알몸의 남자가 도끼에 찍힌 채 죽어 있었다.
“와…….”
도끼를 던진 장본인인 알렉산더 애런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은 또 뭐 하는 놈들이야?”
훈련실 곳곳이 물의 표면처럼 꿀렁거렸다. 이윽고 알몸의 남자들이 기어 나왔다.
“너희들 이 병원에 누가 있는지는 알아?”
침입자들은 알렉산더 애런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양손을 들어올렸다.
팔뚝부터 수십 개의 힘줄이 돋아나더니 손톱이 짐승의 것처럼 변했다. 그 모습에 알렉산더 애런이 고개를 갸웃했다.
“스킬은 아닌 거 같고…… 대체 뭐야?”
침입자들이 손톱을 세운 채 일제히 달려들었다. 알렉산더 애런뿐만 아니라 흑암대 세 명까지 노렸다.
그 모습에 알렉산더 애런이 발을 들어 올리더니 힘껏 땅을 찍었다.
지신밟기.
스킬이 발동됨과 동시에 침입자들의 몸이 압착기에 눌린 것처럼 찌그러졌다. 으스러진 살점이 바닥에 퍼졌다.
“진짜 뭐 하는 놈들이지?”
알렉산더 애런이 의아해할 때였다.
-애런, 들리나?
머릿속에서 김 비서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의 스킬 ‘카라마의 전령’을 통해서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권미 님께서 습격을 당하셨다. 그쪽은 이상 없나?
“대장님께서요? 와, 이놈들 진짜 미쳤네. 이쪽도 공격을 당하긴 했어요. 제가 다 죽였지만요.”
-역시 그랬군. 마침 다른 대원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똑같이 공격을 당했다더군.
병원 곳곳에 흩어져 있던 대원들이 동시에 습격을 당했다. 적들이 하루 이틀 준비한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흉수는 누군지 특정이 되나요?”
-습격 직전에 결계가 병원을 감쌌다. 주하연의 추측에 의하면 이온이라고 하더군.
“메이 가문이 아니라고요?”
알렉산더 애런은 이상하게 여겼다.
권미가 권한울의 호위를 맡은 이유는 혈화검 메이샤오 때문이었다.
그런데 메이 가문이 아니라 이온이 습격을 하다니?
“이온이 왜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데.”
“그건 모르겠군. 권미 님께서는 권한울 님께서 진혈이라 이온이 노리는 게 아니냐고 하셨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이유로 흑천을 건드린다고요?”
예전에 한 번, 흑천에서는 이온을 괴멸 직전까지 몰아넣은 적도 있다.
그런 상황에 몰린 적이 있음에도 권한울 때문에 흑천을 건드리다니?
-권미 님께서는 주동자를 찾기 위해서 개별적으로 움직이겠다고 하셨다. 나는 주하연과 같이 권한울 님을 지키러 가겠다.
“아, 그럼 나도 대장님처럼 돌아다니면서 싸울래요.”
-자네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네. 하지만 뭔가를 잊고 있지 않나?
아, 맞다.
알렉산더 애런은 흑암대를 돌아봤다. 이곳에는 권후돈과 메이홍, 가엘 가르시안이 있었다.
-도련님과 두 후배를 내가 있는 쪽으로 데려와라. 그 이후에 다른 흑예대와 합류하도록.
“옙, 알겠습니다.”
알렉산더 애런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아, 김 비서 님.”
-왜 그러나?
좀 늦어질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문득, 알렉산더 애런의 어조가 변했다.
“또 이상한 사람이 와서요.”
훈련실의 입구.
그곳에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남자가 서 있었다.
-문제없나?
“없어요.”
알렉산더 애런은 자신 있게 말하며 침입자를 쳐다봤다.
“누구야? 아, 이온의 마법사인 건 알고 있어.”
“본인은 백색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평범한 음성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흑천을 죽이라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오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사명을 완수하게 되었군.”
“응? 미안한데. 나는 네 사명을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
딱.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백색의 몸이 두 개로 늘어낫다.
딱.
또 손가락을 튕겼다. 이번에는 네 개로 늘어났다.
딱딱.
이번에는 두 번. 그러자 백색의 몸이 여덟 개에서 여섯 개로 늘어났다.
딱, 딱, 딱.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백색의 몸이 늘어난다. 이윽고 훈련실의 반 이상을 백색이 채웠다.
“마법은 스킬 따위와는 비교도할 수 없을 만큼 고등한 기술이다.”
백색이 입을 열었다. 수백 명의 백색이 동시에 말했다.
“알렉산더 애런. 너는 마법의 위대함에 굴복하게 될 거다.”
* * *
“1진은 전멸한 거 같은데요?”
타카미네 병원의 외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 청년이 말했다.
“이거 작전 조진 거 아니에요?”
“뭘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군.”
옆에 서 있던 노인이 청년에게 핀잔을 줬다.
특이하게도 두 눈동자가 전부 검은색인 노인이었다.
“지금 투입한 친구들은 흑예대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수준을 확인하기 위한 맛보기에 지나지 않아.”
“그래요?”
“진짜는 지금부터일세.”
노인, 아제트 헤르메스가 즐겁다는 듯이 말했다.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 이온은 과거에 흑천에게 공격당해서 한 번 멸망할 뻔했지.”
“진짜 늙어버리셨네. 다짜고짜 옛날이야기라니.”
청년의 조롱에 아제트 헤르메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쨌든 그날 이후 이온에서는 흑천에 대항하기 위한 전력을 양성했지.”
“오, 그래요? 근데 뭐 하러 그런 고생을 하셨나 몰라. 그냥 나한테 부탁하지.”
아제트 헤르메스는 말없이 청년을 흘겨봤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청년에게 그런 권한을 줄 수는 없었다.
그는 한때 이온에 소속되어 있던 마법사지만 지금은 별개의 노선을 걷고 있으니까.
“이제 그들이 흑예대를 상대할 걸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타카미네 병원에서 거대한 마력의 충돌이 발생했다.
“시작되었군.”
아제트 헤르메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 * *
-우리가 도착할 지구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걱정되는데.
잘못들은 게 아니었다. 분명 저 악마는 지구라는 말을 언급했다.
-걱정도 팔자군. 예언가들이 말하지 않았나. 그 지구야 말로 우리들의 세상을 이어 가기에 최적화된 곳이라고.
-예언가들의 말은 애매한 부분이 많아. 무조건 우리에게 득이 된다고 할 수 없어. 너도 알고 있잖아.
-알지.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선택지도 남아 있는 것도 아니잖아.
바알은 계단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전부 다 망가 버렸어. 땅이 황폐화된 정도가 아니라 차원이 쪼개져 버렸다고. 그나마 방주를 사용해서 남아 있는 것들을 전부 지구로 전송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바알의 말에 악마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지구가 어떤 장소든 여기 있는 우리 동족들이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테니까.
바알이 안심하라는 듯 악마의 등을 두드렸다. 그제야 악마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별안간 악마의 얼굴이 진지하게 변했다.
-이제 곧 방주가 지구에 도착한다.
악마가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건물의 벽을 가리고 있던 커튼이 걷혔다.
커튼 뒤에 있던 것은 벽이 아니었다. 거대한 유리창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새까만 공간이 보였다. 우주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별이 보였을 테니까.
-이제 차원의 방벽을 넘는다.
그때였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악마들은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넘어졌다.
-이게 대체…….
바알이 당황해서 악마를 돌아봤다. 악마는 바닥에 웅크린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왜 이러는 거야? 정신 차려!
-차, 차원 방벽이…… 우, 우리를 거부하고 있…….
악마의 가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불에 달군 쇳덩어리를 보는 것 같았다.
-바, 방주를 제어할…… 어, 없어…….
건물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바닥과 천장, 벽, 모든 것들이 산산조각 났다.
붕괴된 건물의 잔해와 악마들이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유일하게 그러지 않은 사람은 권한울뿐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어둠을 딛고 선 채로 권한울은 고민에 잠겼다.
‘이제부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별안간 환한 빛이 쏟아졌다.
어둡던 공간이 밝아지며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새파란 하늘, 그 밑에 펼쳐진 초목. 저 멀리 보이는 도시.
보자마자 깨달을 수 있었다. 이곳은…….
‘지구잖아?’
권한울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였다.
“으, 으윽…….”
바닥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옮기자 바알과 이야기 하고 있던 그 악마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차, 차원의 벽을…… 너, 넘는 게…… 이,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악마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상처투성이일 뿐만 아니라 상처에서 마력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팔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서 땅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다녔다.
-회, 회복을 해야 해…….
악마는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바, 방주만이라도…… 저, 전해줘야…….
그때였다.
“이게 뭐지? 처음 보는 몬스터인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년이 악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너는……?
“으, 으아아악!”
악마가 입을 열자 청년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모, 몬스터가 마, 말을 하잖아!”
청년이 당황한 것만큼이나 악마 역시 놀란 상태였다.
-지, 지구의 생명체인가?
악마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그는 도무지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최대한 구슬려야 했다.
-이봐, 날 자네를 해칠 의도가 없어. 날 도와주면…….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그보다 먼저 청년이 칼을 꺼내서 악마의 목을 베어 낸 것이다.
-컥, 커으어어억!
멀쩡한 상태였다면 이깟 상처는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차원의 벽을 넘으면서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으로는 불가능했다.
-바, 방주를……
결국 악마는 생명을 잃었다. 몸은 붕괴되어서 흩어졌다.
“후…… 위험한 몬스터일수록 방심하면 안 되지.”
흩어진 악마의 사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중 일부가 청년을 향해 날아갔다.
“어? 어어?”
당황해서 팔을 마구 휘저었지만 소용없었다. 악마의 신체는 청년에게 흡수가 되었다.
청년은 한동안 눈을 감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이윽고 눈을 떴을 때, 청년의 눈동자는 검게 변해 있었다.
“……하.”
청년에게 생긴 변화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청년의 머릿속에는 평생 살면서 익힌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물론 청년은 그 모든 지식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아주 약간만 알 수 있었을 뿐.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렇게 쓰는 건가?”
청년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마력이 복잡하게 얽히며 ‘어떤 현상’을 일으켰다.
바닥에 피어 있던 잡초가 갑자기 크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무처럼 크게 변했다.
스킬이 아니다. 특성도 아니다. 기프트도 아니다.
이것은…….
“마법. 이것이…… 마법이로군.”
최초의 마법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 하핫…… 이 아제트 헤르메스의 인생에 이런 기연이 생기다니.”
청년은 한참을 웃으며 기뻐했다.
그때, 청년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악마가 죽은 자리에 빛 덩어리가 떠올라 있었던 것이다.
청년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빛의 구체로 다가갔다. 양손으로 구체를 붙잡았다.
그 순간, 악마에게 흡수했던 지식이 번갯불처럼 타올랐다.
“……이거다.”
최초의 마법사. 아제트 헤르메스는 환호했다.
“이것만 있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이 순간, 아제트 헤르메스의 마음속에 한 가지 야망이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