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163화 (163/221)

<혈통이 깡패임 163화>

163. 시술 (1)

그 이후, 권한울은 타카미네 병원에 입원해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권한울 님의 신체에 맞춰서 상생의 관을 조율해야 하거든요. 되게 섬세한 유물이라서 심혈을 기울여야 해요.”

그 때문에 권한울은 3시간마다 신체검사를 받거나 정체모를 약물을 들이켜야 했다.

그렇게 삼 일쯤 지났을 때였다.

“심심하다…….”

권한울은 지독한 무료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 * *

가만 생각해 보면 이렇게 오랫동안 쉰 적은 처음이었다.

임무를 마치면 흑천 일가로 복귀해서 저택에서 머물기는 했으나 다음 임무 준비를 위해서 훈련하는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물론 타카미네 병원 역시 헌터 전문 병원이기에 훈련실이 갖춰져 있었다. 설비도 무척 뛰어났다.

문제는 권한울이 거친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권한울 님께서 복용한 약물은 천천히, 조금씩 신체를 바꿔갈 거예요. 근데 만약 훈련을 한다? 땀을 흘린다? 그럼 약물의 영향이 더 커져요. 그럼 어떻게 될까요? 기껏 조율한 상생의 관을 처음부터 다시 만져야 해요.”

그러니 절대로 격하게 움직이지 말라는 게 타카미네 료코의 설명이었다.

그런 와중이니 어찌 함부로 움직이겠는가.

“아, 심심하네.”

TV를 보려고 해도 일본 방송뿐이라 정서에 맞지 않았다. 독서에 취미도 없었다.

그런 상황이니 권한울은 병원 주변을 산책하며 시간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버러지 새끼들!

심심해서 훈련실까지 왔을 때, 권한울은 기이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권미가 화가 잔뜩난 얼굴로 화를 내고 있던 것이다.

-내 몸에 손도 대지 못했으면서 벌써 지쳐? 이러고도 너희가 흑천의 소속이냐!

권미의 주변에는 권후돈과 메이홍, 가엘 가르시안이 쓰러진 채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얼마나 얻어맞은 것인지 몸 곳곳이 먼지투성이였다.

-1분 주겠다! 당장 일어나서 나한테 달려들어! 그러지 않으면 오늘 밤새 단련을 시킬 줄 알아!

권미의 으름장에 세 명은 마지못해 일어났다. 기운이 다 빠진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러고 다시 권미에게 얻어터진 채 날아갔다.

“권한울 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하연이 수건과 물통을 한아름 든 채 서 있었던 것이다.

“저게 다 무슨 일이죠?”

“아, 권미 님께서 흑암대의 수준이 너무 낮다고 이번 기회에 직접 지도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아하…….”

그래서 저렇게 개고생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식인 권후돈에게도 엄격한 게 권미다웠다.

“부럽네요.”

몸은 고생을 좀 하겠지만 천금과도 같은 기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권미가 직접 지도를 해 준다니.

권한울은 몸이 근질근질 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도 권미에게 한수 부탁을 하고 싶었다.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불쑥, 뺨에 물병이 닿았다. 그 찬 기운에 권한울은 정신을 차렸다.

“권한울 님께서는 시술을 앞두고 계시지 않습니까. 함부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아, 그랬죠.”

권한울은 아쉬움을 삼키며 물병의 뚜껑을 열어서 물을 들이켰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 덕분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하연 씨.”

“왜 그러시나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요? 안색이 어두운데요?”

그 말에 주하연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별일 아닙니다.”

별일이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권한울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속으로 꾹 눌러 참았다. 더 이상 물어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권한울 님께서도 괜히 저한테 신경을 쓰지 말고 안정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큰 시술을 앞두고 계시지 않습니까.”

“안정이야 실시간으로 취하고 있죠. 권미 고모님과 흑예대가 있잖아요? 전 세계에서 여기처럼 안전한 곳도 없을 걸요.”

권한울은 웃으며 말했다.

메이샤오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지만 그리 걱정이 되지 않았다. 권미라면 충분히 메이샤오를 막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설사 메이샤오가 권미보다 강하다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곳은 일본이다. 흑천 일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만약 비상사태가 발생해도 권선우가 도와줄 게 분명했다.

-누가 한눈 팔래! 정신 차리지 못해!

그때, 권미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한울은 다시 흑암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즐거운 산책되시기 바랍니다.”

“같이 가실래요?”

“음…….”

주하연은 잠시 고민하다 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잠시만 권한울 님의 시간을 뺏겠습니다.”

그렇게 권한울은 주하연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병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뒤, 시술 날짜가 잡혔다.

* * *

타카미네 병원에 온지 일주일이 되었다.

시술 당일, 권한울은 상생의 관이 있는 의료실에 와 있었다.

“마지막 약재예요.”

타카미네 료코가 커다란 잔을 내밀었다. 안에는 무지개색 액체가 들끓고 있었다.

“S급 영약들을 조합해 만든 약재예요. 이번 시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

권한울은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내부 장기를 녹여 버린다는 그 약재 말인가?

색은 둘째 치고 스스로 들끓는 액체라니? 불길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한 번에 쭉 들이키세요.”

권한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타카미네 료코는 환하게 웃으며 재촉했다.

먹어도 죽지는 않겠지. 아, 상생의 관이 없으면 죽는댔던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액체를 쭉 들이켰다.

걸쭉한 무언가가 식도를 타고 위장에 쌓이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예상대로 그리 맛있지는 않았다.

“느낌이 어떠세요?”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네요.”

“맛은 어떠세요?”

“더럽게 맛이 없네요.”

“복용한…… 직후는…… 변화가…… 없다…… 약품은…… 맛이…… 없다…….”

타카미네 료코는 들고 있던 종이에 권한울의 말을 기록했다. 권한울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물었다.

“그런 걸 뭐 하러 적으시는 겁니까?”

“나중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아, 이제 석관 안에 누우세요.”

권한울은 타카미네 료코의 말대로 석관 안에 누웠다. 바닥에 아무것도 깔아 놓지 않아서 딱딱하고 불편했다.

권한울인 석관에 눕자 의사들이 낑낑거리며 석관의 뚜껑을 덮었다.

그러자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이 권한울의 시야를 덮었다.

“권한울 님, 제 말 들리세요?”

“예, 들립니다.”

“이제부터 걱정하지 마시고 한숨 푹 주무시면 돼요. 그럼 저희들이 다 알아서 권한울 님의 몸을 조정할 거예요.”

잠이라.

권한울은 쓴웃음을 지었다. 관 안에 누워서 잠을 자라니. 이렇게 고약한 부탁이 있나 싶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부터 권한울의 목숨은 타카미네 료코에게 달려 있으니 그녀의 말을 잘 듣는 수밖에.

권한울은 두 눈을 감았다. 어차피 석관 안은 온통 어둠으로 가득해서 눈을 뜨나 감으나 별 차이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몸속 깊은 곳에서 서늘한 냉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원하다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한이 들 정도로 차가워졌다.

하지만 괴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의식이 점점 몽롱해졌던 것이다. 마치 의식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듯 했다.

‘이제 잠드는 건가?’

잠드는 것을 의식한다니. 그것만큼 어처구니없는 소리도 없었다.

하지만 현재 권한울의 상태는 그런 식으로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권한울의 의식이 완전히 흩어질 무렵이었다.

<‘???’의 심층에 접속하셨습니다.>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깜짝 놀란 탓에 흩어지려던 의식이 다시 또렷해졌다. 하지만 몸에 감각이 없었다.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의 @!$!%!가 [email protected]!됩니다.> <[email protected]#$#!!를 !$!$!가 !$#!!%[email protected]$.> <@!%#@!%^%&$%^$&%^%&.> 메시지가 쉴 새 없이 떨어졌다. 하지만 제대로 된 문장이 하나도 없었다.

<회상을 시작합니다.>

겨우 제대로 된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 갑자기 눈앞이 밝아졌다.

권한울은 당황해서 한동안 아무 생각도 들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권한울의 눈에 보이는 풍경은 석관의 안이 아니었다. 타카미네 병원도 아니었다.

황금색 궁전에 와 있었다.

벽도, 기둥도, 천장도 온통 황금색이었다. 그 휘황찬란함에 두 눈이 부실 정도였다.

하지만 권한울은 이 장소의 화려함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저들은……?’

많은 이들이 궁전을 배회하고 있었다. 전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이들이었다. 혹은 검붉은 색이었다.

이전에 몇 번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악마잖아?’

무수히 많은 악마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다들 담소를 나누거나 음료수를 마시는 등등.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권한울이 아는 악마란 전부 포악하고 두려운 존재들이었으니까.

-이봐, 왜 그렇게 멍청하게 서 있는 거야?

바로 근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한울은 당황해서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알?’

악마의 왕. 바알이 서 있었다.

인간 사이즈였지만 틀림없었다. 악마의 왕이 눈앞에 서 있었다.

권한울은 바알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당신이 개수작을 부린 건가?’

그러나 바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권한울은 다시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말해! 내게 무슨 짓을…….’

-왜 대답이 없는 거야?

별안간 바알이 다가왔다. 권한울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권한울이 물러나는 것보다 바알의 걸음걸이가 더 빨랐다.

그리고 바알은 권한울을 통과해서 뒤로 지나갔다.

‘……뭐?’

권한울은 너무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바알은 다른 악마의 어깨에 팔을 얹고 있었다.

-감히 왕의 말을 무시하다니. 사형에 처하고 싶어?

-마음대로 해 보시지. 그랬다가는 이 방주도 무사하지 못할 걸?

-어이구, 농담도 못하냐? 이 재미없는 놈.

바알은 짓궃게 웃으며 악마의 뺨을 꼬집었다. 악마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바알의 손가락을 뿌리쳤다.

-왜 이렇게 긴장을 하고 있어?

-긴장할 수밖에 없지. 우리 종족은 이대로 차원에 틀어박히는 거 아니야.

-하하, 너도 무섭다고 느낄 때가 있었군. 이런 진귀한 광경을 보게 되다니.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악마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네가 너무 태평한 거야. 나는 이대로 방주가 제대로 도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악마는 한 번 숨을 마신 뒤, 뒤이어 말했다.

-우리가 도착할 지구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걱정되는데.

* * *

“방금 막, 권한울 님의 시술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김 비서의 보고에 권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술이 완료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고 했죠?”

“약 10시간 입니다.”

“기네요. 그동안 바짝 정신을 차려야겠어요.”

“이미 흑예대 전체에 전달했습니다.”

“역시 김 비서밖에 없어요.”

권미는 미소를 지으며 김 비서의 어깨를 두드렸다. 김 비서는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하연이도 걱정이 많이 되는 모양이네?”

권미가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주하연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권미 님께서 계시는데 걱정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숨길 필요 없단다. 한울이가 시술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그게 불안한 거잖니?”

속마음을 들켰는지 주하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여간 요즘 널 보면 신기하다니까. 그 딱딱하던 애가 언제 이렇게 감정이 풍부해졌는지. 이것도 다 한울이 때문인가?”

주하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권미는 정체모를 가학심을 느꼈다. 조금 더 괴롭히고 싶었지만 꾹 참기로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권미가 고개를 처올렸다. 창밖의 하늘을 노려봤다.

“저건?”

흐릿한 장막이 병원 주변을 뒤덮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현상에 권미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이게 무슨…….”

그 순간, 권미의 옆에 있던 벽이 꿈틀거렸다. 벽에서 알몸의 남자가 튀어나왔다.

“권미 님!”

김 비서가 곧바로 튀어나갔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권미의 손이 남자의 숨통을 틀어쥐었다. 그대로 남자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정체가 뭐냐?”

숨이 막혀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와중에도 남자는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권미는 대답을 듣는 것을 포기하고 남자의 목을 부러트렸다.

“김 비서, 본가에 연락을 하세요.”

권미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흑천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습격을 했다. 그 말은 적들에게 자신이 있다는 소리다.

만약 권미와 흑예대만 있었다면 정면에서 돌파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권한울이 있다. 약간의 변수도 허용할 수 없었다.

“소용없을 겁니다.”

그때, 주하연이 말했다. 주하연은 적의로 가득한 눈동자로 밖에 펼쳐진 장막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법으로 형성한 결계에요. 마력의 파장으로 보건데 주변을 단절시키고 차단하는 마법이에요.”

“마법? 설마…….”

당황한 권미에게 주하연이 말했다.

“이온이 온 것 같습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