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62화>
162. 일본행 (2)
“고모님께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타카미네 병원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권한울이 입을 열었다.
“영광으로 알고 있으렴. 만사 재껴 놓고 널 위해서 왔으니까.”
맞은편에 앉아 있던 권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내부 공간이 넉넉했기에 의자도 서로 마주보게끔 배치가 되어 있었다.
“겸사겸사 우리 후돈이 얼굴이나 많이 보려고 했는데…… 대체 왜 독대를 원한 거니?”
권미가 질책하듯이 말했다.
차량에 탑승하기 전, 권한울은 권미와 단 둘이 자동차에 탑승하기를 바랐다.
물어볼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장님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에 아주 잠깐 권미의 표정이 굳었다.
“……아버지께서 뭐라고 하시든?”
권한울은 회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부 빠짐없이 말했다. 그런 뒤, 물어봤다.
“전부 사실입니까?”
“아마 그럴 거야.”
아마?
권한울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 나는 어렸단다. 경쟁에 참가할 수 없는 나이였지. 그래서 네 아버지에 대한 소문을 소식으로만 전해 들었어.”
“그 소문은…… 어땠습니까?”
“네가 말한 그대로였어. 천이 오빠가 실패하고, 아버지께서 노발대발하셨지. 며칠 뒤에 사형선고가 떨어졌고.”
권미가 창밖을 내다봤다.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
“그 이후에 고모님께서도 경쟁에 참가하셨습니까?”
권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나도 혁이 오빠와 싸워서 자격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께서 아무 것도 시키지 않으셨어.”
대신 다른 방식으로 가치를 매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권천 때보다 훨씬 안전하고 유한 방법으로.
“그 당시의 아버지는…… 뭐라고 해야 할까. 영혼이 없는 것 같았어.”
권한울은 입을 다문 채 권미의 말을 듣기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물었다.
“제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흑천 답지 않은 사람이었지.”
“나쁜 의미입니까?”
“좋은 의미로 그렇다는 소리야. 자존심을 내세우는 법이 없고, 항상 말을 조심하고…….”
의외였다.
권미의 입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올 줄이야.
“나는 네 아버지를 좋아했단다.”
별안간 권미가 말했다.
“천이 오빠는 혁이 오빠와는 달랐어. 분위기 자체가 편안한 사람이었지. 옆에 있으면 날 신경 써 주는 게 느껴졌단다. 그래, 정말로 오빠 같은 사람이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을 가지고 있다. 그 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하지만 흑천은, 그중에서도 가주의 직계는 그런 것을 느낄 수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서로 다퉈야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약한 사람도 아니었지. 책임감이 무척 강했어. 그런 점에서는 정말 흑천의 혈족이라 할만 했지.”
권천에 대해서 말하는 권미의 얼굴은 무척 부드러웠다.
“그래서 믿을 수 없었단다. 네 아버지가 가문을 도망친 게 말이야. 그때는 정말…… 크게 실망했지. 흑천의 혈족이라면 자신의 누명을 벗을 방법을 찾아야지. 그런 식으로 도망치면 안 됐으니까.”
권미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네가 그룹으로 돌아왔을 때,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단다.”
혈육에 대한 실망감은 분노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자식은 권한울에게 집중되었다.
“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생각은 없단다. 대신 네가 가주직에 도전할 생각이라면…… 나는 널 지지하도록 하마.”
그 말에 권한울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들 제 아버지 일로 제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빚이 아니라…….”
“저는 신경을 안 쓰는데 말이죠.”
저번 날 회장에게 했던 말이었다,.
“어차피 저는 아버지랑 어머니…… 두 분의 얼굴도 기억이 안 나거든요.”
그렇기에 주변 사람들이 미안한 기색을 보여도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도움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권한울이 내밀며 말했다. 권미는 뚱한 얼굴로 말했다.
“이게 어디서 어른한테 악수를 청해.”
그럼에도 권미는 권한울의 악수를 받아들였다.
* * *
일행은 별 탈 없이 타카미네 병원에 도착했다.
“그럼 우리는 병원 주변을 살펴보고 오마. 너희들도 따라오렴.”
권미는 흑예대와 흑암대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 사이, 권한울은 타카미네 료코와 따로 대면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타카미네 료코는 권한울을 병원의 내부 시설로 안내했다. 환골탈태의 시술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이럴 때만 오시다니.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많이 바빠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 맞다. 저도 여기저기서 많이 소식을 들었어요. 어마어마하셨던데요.”
병원의 복도를 걸으며 타카미네 료코가 재잘거렸다. 권한울을 만난 게 굉장히 반가운 기색이었다.
“방송도 실시간으로 봤어요.”
“무슨 방송 말씀이십니까.”
“권한울 님께서 진혈을 선언하실 때 말이에요. 와, 설마 절 구해 주셨던 분이 진혈일 줄이야…….”
타카미네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나중에 피 좀 뽑아 가도 될까요?”
“뽑아도 소용없을 텐데요…….”
진혈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진짜 핏속에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니다. 혈통은 권능으로서 존재하니 말이다.
“제가 너무 떠들어댔네요. 더 급한 일이 있는데.”
실수를 했다는 듯 타카미네 료코가 말을 돌렸다.
“환골탈태 시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환골탈태에 대해서는 들어봤지만 어떤 시술인지는 모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런 거예요. 권한울 님이라는 철체인형을 녹인 다음, 거기에 다른 금속을 추가해서 새롭게 조형을 하는 거죠.”
상당히 불길한 설명이었다.
“방법은 간단해요. S급 영약 다섯 개를 조합하면 신체를 녹이는 극독이 된답니다. 여기에 내부 장기와 뼈가 잘 섞이도록 열다섯 가지 약재를 더한 다음에…….”
타카미네 료코의 설명이 이어질 수 록 권한울은 질색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하면 사람 죽겠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초기에는 많이 죽었다고 해요.”
“…….”
더 자세히 물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방법으로 정말 환골탈태가 가능한 겁니까?”
“이것만으로는 불가능하죠.”
타카미네 료코의 걸음이 멈췄다.
곳곳에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묘한 방이었다.
병원의 의료실이라기 보다는 전산실을 보는 듯했다.
“저걸 봐주시겠어요?”
타카미네 료코가 방의 중앙을 가리켰다. 최신식 기계들 사이로 오래된 석관이 놓여 있었다.
“저희 타카미네 병원은 유물을 이용해서 헌터들을 치료하는 방법에 정통해 있죠.”
자주 들어봤다. 그래서 타카미네 병원은 헌터 전문 병원이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수많은 유물 중에서도 타카미네 병원이 자랑하는 한 가지가 저것이랍니다. 상생의 관이라고 불리는 물건이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권한울은 석관에 다가갔다. 손바닥으로 관을 쓸어 담았다.
단순히 접촉한 것만으로 관에서 느껴지는 기운 때문에 피부가 찌릿찌릿했다.
“내부에 들어간 사람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특이한 유물이랍니다. 그게 있어야지만 환골탈태 시술이 가능하죠.”
관을 살피던 권한울은 깨달았다.
“……내구도가 거의 바닥이 나 있군요.”
“그래도 시술을 한 번 시행할 정도는 돼요.”
그 말은 다시 말하자면 이번 한 번으로 관이 망가진다는 뜻이다.
그럼 두 번 다시 환골탈태 시술을 할 수 없다.
“그 한 번을…… 제게 주셔도 되는 겁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섭섭하죠. 권한울 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해 주시고, 이 병원의 다시 지배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잖아요?”
타카미네 료코가 웃으며 말했다.
“그 가치를 생각하면 오히려 싸다고 할 수 있죠.”
권한울은 잠시 고민하다 타카미네 료코에게 말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 *
권한울이 타카미네 료코와 대면하고 있을 때, 권미는 흑암대와 마주보고 있었다.
“내가 왜 너희들을 따로 불렀는지 알고 있니?”
권후돈, 메이홍, 가엘 가르시안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기색이었다.
“오랜만에 후돈이를 보니까 반가워서…… 아니, 이게 아니지.”
권미는 헛기침을 한 뒤, 다시 말했다.
“툭 까놓고 말하마. 너희 세 명은 한울이에 비해서 너무 약하다.”
그리 말한 뒤, 권미는 세 사람의 얼굴을 살폈다. 놀랍게도 모두 납득하는 얼굴이었다.
자신들의 처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니. 권미는 속으로 이 세 명을 고평가했다.
“무력은 말할 것도 없고 지식도 경험도 부족하지. 그러니 이번 기회에 흑예대를 보고 배우라는 뜻에서 너희들을 불렀단다.”
“질문 있습니다.”
그때, 가엘 가르시안이 손을 들었다. 권미는 그를 가리켰다.
“물어보렴.”
“흑예대를 보고 배우면 대장님을 보좌할 수 있겠습니까.”
호오.
권미는 속으로 감탄했다. 능력은 부족하지만 자세는 잡혀 있다. 권한울은 벌써부터 쓸 만한 인재를 곁에 두고 있었다.
“불가능하지.”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한울이의 무력을 생각하면 너희들은 도움이 안 된다.”
권한울은 천공투기장에 참가하기 전부터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쓰러트렸다.
환골탈태를 경험한 이후, 권한울이 얼마나 강해질지 권미조차 예측이 되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노력해야지.”
“만약 지금 당장 대장님이 위험에 처한다면요?”
권미는 다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우직한 인물이라니. 자신의 조카는 인물복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한울이가 위험해질 정도의 적이라면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지.”
하지만 역시나 권미는 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설사 목숨을 내버린다 해도 한걸음조차 붙잡지 못할 수도 있다.”
절망적인 평가에도 가엘 가르시안의 눈빛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야. 아주 약간, 시간을 번 것만으로 상황이 바뀔지도 모르지.”
그러니.
“너희들의 목숨을 너무 하찮게 생각하지 마렴.”
권미는 진심어린 조언을 했다.
“아, 그렇다고 후돈이 너까지 목숨을 걸지는 말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절 왜 불러내신 겁니까?”
일행에게서 멀리 떨어진 장소.
주하연은 권미의 김 비서와 마주보고 있었다.
“시간을 내줘서 고맙군.”
김 비서는 짧게 감사를 표했다.
사실 두 사람은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거의 모르는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주하연이 이 남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권미의 심복이라는 점.
그리고 광범위한 의사전달 스킬을 보유 하고 있다는 점뿐이다.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정보가 들어와서 말이지.”
“정보라뇨?”
“그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네. 자네의 과거에 대해서 말이야.”
과거.
주하연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만큼 불쾌한 화젯거리였기 때문이다.
“괜찮겠나?”
그러나 김 비서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짧게 끝내 주시죠.”
“자네는 이온에 소속되어 있었지 맞나?”
주하연의 입가가 비틀렸다.
“저는 이온의 실험체였을 뿐입니다. 이온에서 제게 마법을 알려준 것도 절 이용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죠.”
“괜한 것을 물어봐서 미안하게 됐네.”
“신경 쓰이는 정보가 뭔지나 말씀해 주시죠.”
“오딘이라고 들어봤나?”
주하연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오딘.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전 세계의 악인들이 모두 모여 있다는 판데모니엄에서도 단 열일곱 명밖에 없다는 대의원의 자리에 있는 남자.
암흑계에서 자신의 왕국을 확실하게 다져 놓은 권력 자.
하지만 주하연이 놀란 이유는 오딘의 이름값 때문이 아니었다.
“그, 그 남자를 대체 왜…….”
“오딘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네. 내 생각이 맞다면 자네와 그 남자는…….”
주하연은 양팔로 자신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떨었다.
오딘.
판데모니엄의 대의원이자 이온에 속해 있는 마법사.
그리고 주하연을 납치한 뒤, 마녀로 만든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