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60화>
160. 과거 (2)
빌어먹을 노인네 같으니.
권한울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런 권한울에게 권선우가 말했다.
“왜 그러느냐? 자신이 없는 얼굴이구나. 내 몸에 손을 대라는 게 아니다. 그저 버티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조차 자신이 없는 게냐?”
권선우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덧붙였다.
“나는 마력과 스킬을 사용하지 않으마. 신체능력도 제한하겠다. 딱 네 수준에 맞춰 주마.”
그 말을 듣는 순간, 권한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신 너는 모든 능력을 발휘해도 좋다. 힘을 제한하지 마라. 이 배를 부숴도 좋다. 이 정도 조건이면 만족하느냐?”
말이 끝나기도 전에 권한울의 기세가 폭풍처럼 밀려왔다.
“봐준다고 신경질을 내? 이런 건방진 놈을 봤나.”
그러나 말과 달리 권선우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이래야 흑천이지.”
“다치셔도 모릅니다.”
“애송이 놈. 덤비기나 해라.”
권선우가 손을 까딱거렸다. 권한울은 망설임 없이 땅을 박찼다.
* * *
권한울이 보는 세상은 남들과 달랐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혈통들은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수라혈은 무의 재능을.
천재혈은 사고능력의 확장을.
흑룡혈은 용의 본능을 부여해 준다.
그리고 이 세 개의 능력이 합쳐짐으로서 권한울은 적의 움직임을 예측에 가까운 수준으로 읽어 내는 게 가능해졌다.
권선우는 마력과 스킬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신체능력 역시 권한울과 똑같은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했다.
즉, 권선우는 순수하게 기술로만 권한울과 맞서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권한울이 질 리가 없었다.
“얻어맞고 화내시면 안 됩니다.”
“말이 많구나.”
권한울은 곧바로 권선우에게 뛰어들었다. 권선우의 얼굴을 향해 망설임 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으나 권선우는 곧바로 손등으로 주먹을 쳐냈다. 하지만 그게 바로 권한울이 노리던 바였다.
주먹과 손등이 얽히는 순간, 권선우의 시야가 살짝 가려졌다. 권한울은 그 틈을 노리고 복부를 향해 발끝을 내질렀다.
그러나 발이 닿기 직전, 권선우가 손바닥을 내리쳤다. 발끝은 권선우의 복부가 아니라 그 밑으로 향했다. 권한울의 주먹을 쳐 냈던 손을 그대로 아래로 휘두른 것이다.
“이게 고작이냐?”
“그럴 리가요.”
권한울이 땅을 박찼다. 동시에 다리를 높이 들어올렸다.
방어를 부수겠다는 각오로 발꿈치를 내려찍었다. 그 순간, 권선우가 손바닥으로 발꿈치를 휘감았다.
발꿈치가 미끄러지듯 빗겨나가더니 권선우의 옆에 있는 땅에 꽂혔다.
권한울은 당황한 얼굴로 땅에 꽂힌 발꿈치를 쳐다봤다.
“시시하구나.”
권한울이 이를 악물었다. 곧바로 권선우를 향해 연격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 모든 공격을 권선우는 한 손만으로 쳐 냈다.
‘이런 미친.’
그 모습에 권한울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수 싸움에서 완전히 밀리고 있었다. 두 손으로 한 손을 당해 내지 못하는 게 그 증거였다.
“왜 그러느냐.”
권선우가 입을 열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권선우는 처음과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벌써 지친 게냐?”
반면 권한울은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쉴 새 없이 공격을 쏟아 냈기 때문이다.
“……어떻게 다 막아 내신 겁니까.”
권한울은 여러 가지 혈통을 보유하고 있다. 그 덕분에 미래예측에 가까운 수읽기 능력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그 모든 능력이 지금 권선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단순한 것을 묻는구나.”
그 물음에 권선우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네 기량이 나보다 부족한 것뿐이지.”
권한울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납득이 되었다.
권선우는 동아시아의 최강이자 어쩌면 세계 최강일지도 모른다고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런 존재와 싸우는데 이 정도 벽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분하면 마력과 스킬을 사용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건 싫군요.”
“어째서냐?”
“자존심이 상해서요.”
솔직한 고백에 권선우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대단한 자신감이구나. 하지만 그래서야 나한테 곧바로 당할 텐데?”
“아무리 회장님이라 해도 그건 힘들…….”
그때였다.
권선우가 땅을 박찼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더니 권한울의 명치를 팔꿈치로 찍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방심하고 있던 찰나에 들어온 탓에 미처 대비를 하지 못했다.
팔꿈치고 권한울의 명치를 강타했다. 그 충격에 몸이 뒤로 밀려나갔다. 정말 깔끔한 일격이었다.
“흠.”
그러나 권선우는 썩 만족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감촉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권한울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허.”
권선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 일격으로 끝날 줄 알았거늘…… 몸을 띄울 줄은 몰랐구나.”
권한울은 권선우의 공격을 버티지 않았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을 뒤로 날렸다. 충격을 최대한 흘리기 위해서였다.
“한 번.”
권한울이 명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한 번 버텨 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에 대해서 말하라.
권선우는 그 강요를 받아들였다.
“흑천의 가주를 선출하는 방법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느냐?”
권한울은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정보였다.
“흑천의 가주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 직계도, 방계도 상관없다. 자격을 증명하기만 하면 누구든 가주가 될 수 있었지.”
이는 흑천 일가가 흑룡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혈은 직계와 방계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그렇기에 굳이 직계를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설사 모든 직계가 자격을 증명하지 못한다 해도 가주는 개입해서는 안 된다. 자격이 없는 자에게 가주직을 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강한 자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
흑천의 혈족이라면 모르는 자가 없는 이념이었다. 그리고 이건 직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격을 증명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 줄 아느냐? 바로 경쟁을 붙이는 것이다.”
낯설지 않은 말이었다. 권선우가 지겹도록 말하던 가치의 증명이랑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흑천의 직계는 태어난 순간부터 경쟁을 해야만 한다. 자신의 형제 중에서 자기가 가장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방계들까지 놓고 봐도 자신이 가장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그렇다면.
그리 말하며 권선우가 권한울을 쳐다봤다.
“경쟁에서 밀려난 직계는 어떻게 될 것 같으냐?”
“죽는 겁니까?”
“경쟁에서 밀려난 직계는 어떻게 될 것 같으냐? 목숨을 잃는다.”
섬뜩한 말이었다.
그 말은 다시 말하자면 혈족 간에 상잔을 시켜서 살아남은 사람을 가주로 세운다는 뜻이었으니까.
“나 역시 그런 경쟁을 통해서 가주직에 올랐느니라. 내 아버지께서는 여자를 퍽 좋아하는 분이셨지. 그래서 두 자릿수나 되는 형제들과 싸워야 했느니라.”
“권명우 할아버님과도 싸우셨습니까?”
“명우는 처음부터 내게 복종했다. 나를 가주에 앉히기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며 신하를 자처했지.”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권명우처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처음부터 권선우에게 복종했다니.
“하지만 다른 형제들은 그렇지 않았지. 가주가 될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어. 그래서 나와 명우는 손수 형제들을 죽여야 했느니라.”
두 자릿수가 넘었다는 형제는 이제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
권선우의 손에 얼마나 많은 피가 묻었을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그리하여 나는 가주가 되었다. 그리고 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후계자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지.”
권선우의 시선이 먼 하늘로 향했다.
“내 아버지는…… 물론 여성편력이 심한 것도 있었지만 최대한 많은 자식을 경쟁시킴으로서 흑천의 차기 가주를 완성시키려고 하셨지.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권선우는 완성된 후계자를 얻기 위해서는 그렇게 많은 자식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딱 세 명의 자식만 얻었다. 권혁, 권천, 그리고 권미였지. 권미는 늦게 얻었기에 후계자로서의 자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네 큰 아버지와 아버지는 아니었지.”
이미 장성한 권혁.
그보다는 어리지만 그래도 성인이 된 권천.
권선우는 이 두 자식의 자격을 확인하고자 했다.
“권혁은 성공적이었다. 내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해 줬지. 하지만 네 아버지 권천은 아니었다.”
권천의 재능은 무척 뛰어났다. 순혈들 중에서도 특히나 대단했으니까.
하지만 권천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성정이 너무 유약했다. 가주라는 자리에 뜻을 두지 않았지. 자신의 형을 도울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는 녀석이었다.”
“할아버님과…… 작은할아버님처럼 말입니까?”
“아니, 아니다.”
권선우는 곧바로 부정했다.
“명우는 야망이 있었다. 나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가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다른 방식으로 정상에 오르자고 했다. 그래서 내 밑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권천은 그게 아니었다. 야망도,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네 아버지는 그저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형을 지지했을 뿐이지.”
권선우의 목소리에 분노가 담겼다.
“가주에 뜻이 없다고? 흑천으로 태어난 놈이 그딴 말을 입에 담아?”
이는 권선우의 입장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좋다. 가주가 되기 싫다는 그 뜻은 잘 알겠다. 그렇다면 가주가 되지 않아도 좋다. 대신 그 거름이라도 되어야지.”
거름이라는 말에 권한울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네 아버지를 억지로 끄집어냈다. 최소한 권혁을 자극시키기 위한 도구라도 되라는 뜻에서. 하지만 네 아버지는 그 역할마저 완수해 내지 못했지.”
“그래서.”
권한울이 입을 열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입이 메말라 있었다.
“아버지에게…… 사형을 명하신 겁니까?”
“그렇다.”
권선우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네 아비가 도망친 탓에 사형을 집행하지는 못했다만.”
* * *
긴 침묵이 흘렀다.
권한울도 권선우도 입을 다문 채 서로를 노려봤다.
“이야기는 끝났다.”
권선우가 양팔을 벌렸다.
“어쩌겠느냐. 지금 이 자리에서 네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느냐?”
모든 마력을 잠재웠기에 지금의 권선우는 너무나 무방비했다.
권한울이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아뇨.”
그러나 권한울은 주먹을 내렸다.
“절 바보로 아시는 겁니까. 이 자리에서 제가 회장님을 해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흑천 그룹 전체가 적이 될 거 아닙니까.”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어떻게 선택을 한단 말인가.
“내가 이 자리에서 가주직을 너에게 이양한다면.”
그때, 권선우가 덧붙였다.
“너는 흑천 그룹을 적으로 돌리지 않고도 날 죽일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냐.”
권선우가 다시 한번 더 물었다.
“날 죽여서 네 아비의 복수를 하겠느냐?”
권한울은 권선우의 얼굴을 살폈다. 이 모든 게 자신을 시험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둡게 가라앉은 권선우의 눈동자를 본 순간, 그런 의심을 버렸다.
지금 권선우는 권한울을 시험하려는 게 아니었다. 순수하게 의문을 가질 뿐.
“안할 겁니다.”
그렇기에 권한울도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예, 진심입니다.”
권한울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별 생각이 안 듭니다.”
생전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버지다. 약간의 정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런 마당에 복수할 마음이 들 리가 있겠는가.
“기억도 안 나는 아버지를 위해서 위험을 짊어질 수는 없죠.”
권한울이 별 생각 없이 말했다.
“……말에는 힘이 있다.”
그때, 권선우가 입을 열었다.
“내뱉은 말이 비수가 되어서 너에게 되돌아올지도 모르지.”
권선우가 몸을 돌렸다. 선실로 향하며 덧붙였다.
“그러니 항상 말을 조심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