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59화>
159. 과거 (1)
비가 쏟아지던 월요일 오후였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으나 먹구름이 잔뜩 껴서 온 세상이 어두웠다.
“제발…….”
옷은 모두 젖어 버렸다. 머리카락도 그랬다. 그래도 메이홍은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신을 꽉 끌어안고 있는 어머니의 체온 덕분이었다.
“이 아이만큼은…… 살려 주세요.”
어머니도 비를 피했으면 좋으련만.
메이홍은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헛된 바람이었다. 어머니를 포위하고 있는 이들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새하얀 바탕에 붉은 귀신을 그려 놓은 가면을 쓰고 있는 자들이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다.
암살검대.
메이 가문에서 자신의 적들을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없애버리기 위해 만들어 낸 자들.
삶도, 명예도, 죽음도 전부 어둠 속에 묻어 버렸다는 검귀들.
“이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그러니 제발…….”
어머니는 그 검귀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무척이나 간곡한 어조였다. 품에 안고 있는 메이홍만 아니라면 바닥에 엎드릴 기세였다.
“부인.”
암살검수 중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여자인지 목소리가 높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지요. 저희 암살검수들 역시 메이 가문의 혈족입니다. 그런데 설마 어린 혈족에게 해코지를 하겠습니까.”
암살검수들 중에서 특히나 기세가 날카롭다.
어린 메이홍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 여자가 암살검수들의 수장이라는 것을 말이다.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부인, 저는 조금 의심스럽군요. 부인께서는 부군께서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알고는 사죄를 하시는 겁니까?”
“다, 당연히 알고 있어요.”
“그럼 한번 말씀해 보시지요.”
여자가 말을 딱 끊었다. 어머니는 당황한 얼굴로 그 여자를 올려다봤다.
“부군께서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어떤 식으로 가문에 해를 끼쳤는지. 어째서 우리가 당신을 뒤쫓았는지. 그 입으로 자세히 말씀해보란 말입니다.”
어머니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메이홍도 어머니의 옷자락을 꽉 움켜잡았다.
죄라고? 그런 게 있을 리가 있겠는가. 전부 저들이, 아버지를 싫어하는 자들이 누명을 씌웠으면서.
“그, 그건…….”
그렇기에 어머니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고하라니. 아내가 남편의 명예를 직접 깎아 내라는 소리였으니까.
“설마 그런 것도 모르고 저희에게 사죄를 하신 겁니까? 그런 사죄에 어찌 진심이 담겨 있겠습니까. 자식을 살리고 싶은 부인의 마음마저도 의심스럽군요.”
여자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어머니는 당황해서 재빨리 말했다.
“가, 가문의 재산을 멋대로 차, 착복했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요.”
메이홍을 끌어안는 어머니의 힘이 더욱 강해졌다.
“공략이 끝난 던전의 보상을…… 가주께 진상될 유물을…… 훔, 훔쳤습니다. 그리고 그걸 눈치 챈 혈족을…… 주, 죽였습니다.”
메이홍은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얼굴을 봤다.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당연했다. 아버지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너무 착해서, 미련할 만큼 순해서, 바보 같을 만큼 고결해서.
언제나 손해를 보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웃으며 넘기던 사람이었다. 모두가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정확히 잘 알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부인, 저는 통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자가 고개를 내렸다. 어머니의 귓가에 입을 대고 말했다.
“쓰레기 같은 년. 다 알면서도 지아비를 욕해?”
어머니의 눈동자가 커졌다. 무슨 소리냐는 듯한 어머니를 향해 여자가 비웃음을 흘렸다.
“저는 부인 같은 여자가 제일 싫습니다. 사람이라면 지조가 있어야죠. 그걸 헌신짝처럼 버리는 년이라니.”
“하, 하지만…… 다, 당신이…….”
“그럼 제게 다시 말씀해 보시겠습니까. 당신의 남편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모든 것은 누명이며, 메이 가문 전체가 놀아나고 있는 거라고.”
어머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나 결국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메이홍이 어떻게 될지 몰랐으니까.
“자신의 죄를 정확히 알고 계신 듯하니 이제 처벌을 받으셔야겠군요.”
여자의 비웃음이 뚝 멈췄다. 그 순간, 한 자루의 장검이 어머니의 심장을 꿰뚫었다.
“어……?”
장검이 뽑혀나갔다. 피가 쏟아졌다. 메이홍을 안고 있던 어머니의 팔이 풀려 나갔다.
“끅! 끄윽……!”
어머니는 가슴을 움켜잡고 괴로워했다. 그러나 구멍에서 샘솟는 피를 막을 수는 없었다.
여자는 어머니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장검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딸은 데려가세요. 대공자께서 원하십니다.”
암살검수 한 명이 메이홍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메이홍은 힘없이 끌려 나갔다.
“아…… 아가…….”
어머니가 피 묻은 손을 뻗었다. 하지만 멀어지는 메이홍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암살검수들에게 끌려가는 내내 메이홍은 어머니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메이홍의 턱을 움켜잡고 억지로 돌렸다.
어머니를 죽였던 그 여자였다.
“메이홍이라는 이름이었던가?”
여자가 가면을 벗었다. 눈매가 무척 날카로운 여자였다.
“용케 울지 않는구나. 그래야지. 네 부모의 죄 값 때문에 앞으로 지옥을 구르게 될 텐데.”
여자가 생긋 웃었다. 초승달처럼 휘는 두 눈과 입이 참기 힘들 만큼 역겨웠다.
“그럼 어디 잘 버텨 보려무나.”
암살검대의 수장.
메이샤오가 웃으며 말했다.
* * *
메이홍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침대 위에 몸을 웅크린 채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괘, 괜찮아?”
옆을 돌아보자 권후돈의 얼굴이 보였다.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메이샤오는 어떻게 됐죠?”
“하, 한울이한테 경고를 남기고 사라졌어. 조만간 죽이러 올 거래.”
“저에 대해서는요?”
권후돈이 입을 다물었다. 두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그, 그게…….”
“사실 그대로 말씀해주세요.”
평소 같으면 웃으면서 말할 텐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 터질 듯한 분노를 억누르는 것도 벅찼다.
“……아무 말도 없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비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허탈함이 흘러나왔다.
“하.”
허탈함은 곧 실소로 바뀌었다.
“하핫.”
메이홍은 한참 동안 웃었다. 권후돈은 불안한 얼굴로 메이홍일 지켜봤다.
“후돈 오빠, 잠깐 혼자 있어도 될까요?”
“응…….”
권후돈은 군말 없이 방을 나갔다. 홀로 남은 메이홍은 아무 것도 없는 벽을 한참 동안 노려봤다.
“……아무 말도 안 남겼다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신경 쓸 필요도 없을 만큼 하찮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다 이거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동시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메이샤오와 대면했을 때, 메이홍은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녀의 마력, 기운, 존재감 그 어떤 것도 말이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딱 한 가지였다.
결코 좁힐 수 없는 절대적인 격차가 있는 것이다.
“……난 영원히 그 여자를 따라잡을 수 없겠구나.”
메이홍의 얼굴에 절망이 내려앉았다.
* * *
바벨의 선박에서 돌아온 그날 밤이었다.
잠자리에 들려던 찰나, 권한울은 권선우에게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에 대해서 말해 주마. 밖으로 나오거라.
결국 권한울은 잠옷을 벗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을 수밖에 없었다.
갑판으로 나왔으나 권선우는 보이지 않았다. 권한울은 밤바다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선실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왔다.
“대장님?”
권선우인가 싶었지만 메이홍이었다.
“이 야밤에 어쩐 일이세요?”
“누구를 좀 기다리고 있었어요.”
“기다린다고요?”
메이홍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내 다 알겠다는 듯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하연 언니랑 밀회라도 즐기시려고요?”
“그런 거 아닙니다.”
“정말요? 아닌 거 같은데. 솔직하게 말해 보세요.”
“메이홍.”
“다른 사람한테는 말 안 할게요.”
“괜찮은 겁니까?”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메이홍은 속내를 들킨 것처럼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티 많이 나요?”
“납니다.”
평소랑 비교하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밝다. 그런데 눈빛은 탁하다. 무언가를 꾹 눌러 참고 있다는 증거였다.
“……메이샤오는 제 어머니의 원수에요.”
“알고 있습니다.”
메이홍을 영입하던 그날, 직접 들었다. 메이샤오가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제가 대장님의 팀에 들어온 이유도 그 여자를 죽이기 위해서였어요.”
“예, 그랬죠.”
“언젠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장님은 매중제일검을 죽였으니까. 매중제일검의 제자인 메이샤오는 분명 대장님을 죽이려 할 테니까요.”
“그 예상이 정확히 맞았네요.”
권한울은 농담을 섞어서 말했다. 하지만 메이홍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근데 정작 메이샤오가 찾아왔을 때, 저는 아무 것도 못했네요.”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
“후돈 오빠한테 들었어요. 메이샤오는 저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면서요.”
어느새 메이홍이 두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어깨가 미세하게 떨려 왔다.
“그건…….”
무슨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메이샤오가 그녀에게 관심도 주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메이홍이 자신에게 어떤 위협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조롱을 받는 게 나아요. 어머니의 일로 모독을 당하는 게 덜 괴로울 거예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무시를 당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이제 전 어떻게 해야 하죠……?”
그리고 더 괴로운 점은 메이홍 자신도 결코 메이샤오를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피부로 직접 느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거죠……?”
메이홍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허리를 숙인 채 울었다.
“메이홍.”
그 손을 권한울이 움켜잡았다. 천천히 얼굴에서 떼어 놓았다. 그러자 퉁퉁 부어오른 메이홍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있잖습니까.”
메이홍의 눈동자가 순간 커졌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어째서 좌절하는 겁니까.”
바로 옆에 내가 있는데.
“내게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바라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지만.
“당신의 원한과 복수를 내게 맡겨 주십시오.”
메이홍의 입이 달싹거렸다. 입이 굳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메이홍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럼 됐네요.”
권한울은 메이홍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아, 혹시 부담 가지지 마세요. 어차피 저도 메이샤오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입장이니까요.”
권한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순간, 메이홍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대장님, 잠깐만요. 설마 어차피 메이샤오랑 싸워야 하니까 겸사겸사 제 복수를 해 주시겠다는 소리였어요?”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
메이홍이 권한울을 무섭게 노려봤다. 권한울이 당황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원한에 가득 차 있었다.
“어…… 하지 말까요?”
메이홍이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등신이지.”
“제가 혹시 말실수를 했나요?”
“됐어요. 이만 들어갈게요.”
메이홍은 선실로 향하는 문을 벌컥 열더니 사라졌다.
혼자 남겨진 권한울은 영문을 모르게다는 듯이 멀뚱멀뚱 서 있었다.
“이제야 돌아가는구나.”
권한울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옆에 권선우가 서 있었다.
“언제 오신 겁니까?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너 같은 애송이가 날 감지할 수 있을 것 같더냐?”
권한울은 속으로 툴툴거렸다.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해야겠냐면서.
“메이홍이라고 했던가? 담고 있는 게 많은 모양이구나.”
“그런 모양입니다.”
“하연이를 울리지 마라.”
전혀 문맥에 맞지 않은 말이었다. 권한울은 인상을 쓰며 권선우를 쳐다봤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계집과 친해 보여서 한 말이다.”
“팀원이랑 사이가 가까우면 좋은 거 아닙니까.”
그 말에 권선우가 실로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권한울을 쳐다봤다.
“쯧쯧.”
“왜 그러십니까.”
“신경 쓰지 마라.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권선우가 고개를 돌렸다.
“화가 나지 않으십니까?”
“뭐가 말이냐.”
“메이샤오가 왔다 가지 않았습니까.”
현재 메이샤오는 흑천의 유명대를 습격한 죄목으로 추적을 받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수장인 메이샤오가 권선우의 면전에 나타났다. 권한울은 당연히 권선우가 노발대발할 줄 알았다.
“확실히 좋은 기분은 아니지.”
권선우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뒤쫓아서 찢어 죽여 버리고 싶다만…… 네가 올린 보고서를 보니 제법 송곳니를 날카롭게 갈아놓은 듯하더구나.”
지쳤다고 하지만 권선우의 감지를 속였다. 그뿐만 아니라 검강까지 완성을 했다.
검강이란 절대자의 기예다. 길고 긴 헌터의 역사 동안 강기를 완성한 자는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메이샤오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다섯 명이 채 안 될지도 몰랐다.
“위험도를 높여야겠군. 명우 그 녀석에게 미리 말해 놔야겠다.”
그렇기에 권선우도 신중하게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 년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자. 우리의 볼일은 따로 있지 않느냐.”
그 말에 권한울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약속대로 제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권선우는 난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두 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밤바람을 맞았다.
“그래, 말해 줘야지. 약속을 했으니까.”
권선우는 잠시 밤바다를 바라봤다. 마음 준비가 필요한가 싶어서 권한울은 잠자코 기다렸다.
“하지만 그냥 알려 주는 건 재미가 없구나.”
대뜸 권선우가 그렇게 말했다. 그 직후, 권선우의 몸이 사라졌다.
뒷목이 오싹했다. 권한울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며 양팔을 교차했다.
일직선으로 뻗어 나온 장법이 권한울의 팔뚝을 후려쳤다. 몸이 꿀렁이는 감각과 함께 뒤로 쭉 밀려 나갔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
말을 다 내뱉을 시간도 없었다. 어느새 뒤쫓아온 권선우가 손날을 내질렀다.
권한울은 고개를 옆으로 확 꺾었다. 권선우의 손끝이 목덜미를 스치며 지나갔다.
칼에 베인 것처럼 목덜미가 갈라졌다. 피가 흘러내렸다. 권한울은 목을 움켜잡은 채 뒤로 물러났다.
“제법 날렵하구나.”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그냥 말해 주기는 재미없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권선우가 손가락 끝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말했다.
“네 실력도 구경할 겸. 내 공격을 버틸 때마다 네 아버지에 대해서 말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