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57화>
157. 서로의 원수 (1)
권선우가 주하연의 안내를 받으며 귀빈실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권선우가 가슴을 움켜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주하연이 감짝 놀라서 권선우를 부축했다.
“회장님!”
주하연이 다급하게 말했지만 회장은 대꾸할 여력이 없었다. 그저 식은땀을 흘리며 가슴의 통증을 견뎌 낼 뿐이었다.
“……후우.”
한참 뒤에야 고통이 사라졌다. 회장은 복도의 벽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내쉬었다.
“나는 괜찮다. 너무 걱정하지 말 거라.”
회장은 주하연을 향해 말했다. 그럼에도 주하연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질 못했다.
“여의주를 사용해서 그런지 이번에는 반동이 한층 거세구나.”
대다수의 사람은 화신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저 괴물로 변함으로써 훨씬 강해진다고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화신체는 실제로 그보다 훨씬 가혹한 힘이었다. 권선우조차 화신체를 사용할 때마다 큰 부담을 느낄 정도였다.
당연했다. 혈통을 소유하고 있다 한들, 겨우 인간 따위가 용의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고통을 감내하실 정도로 권한울 님이 소중하셨던 겁니까?”
갑자기 주하연이 권선우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회장님의 성격을 생각하면 악마왕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존재가 나타나도 먼저 나서지 않으셨을 겁니다.”
권선우는 최후의 전력이다. 워낙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권선우의 패배는 곧 흑천의 패배. 그렇기에 권선우는 여간해서는 자신의 힘을 드러내지 않았다. 적들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권선우는 권한울을 구하기 위해서 화신체로 변해서 날아왔다. 그것도 천공투기장처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자리에서 말이다.
“헛소리를 다 하는구나.”
권선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저 진혈을 잃는 게 아까워서 나선 것뿐이다. 권한울 그 녀석 때문이 아니야.”
주하연이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권선우가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권한울에게 그런 말은 하지 마라. 알겠느냐.”
“어째서 그런 명령을 내리시는 겁니까.”
권선우는 입을 다물었다.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래야 그 녀석이 날 원수라고 생각할 게 아니냐.”
너무 작은 목소리라 주하연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녀는 어리둥절해 하며 되물었다.
“회장님? 다시 한번 더 말씀을…….”
주하연이 되물었으나 권선우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이만 쉬어야겠다.”
* * *
“메이샤오!”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메이홍이 장검을 빼들며 메이샤오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메이샤오가 메이홍의 등 뒤에 나타났다. 손날로 그녀의 목을 내리쳤다. 메이홍은 달려드는 자세 그대로 쓰러졌다.
권한울은 반사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권후돈과 가엘 가르시안도 전투 태세를 취했다.
“다들 진정해요.”
메이샤오가 빈손을 내보이며 말했다.
“잠시 기절시킨 것뿐이에요. 되도록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거든요. 그랬다가는 배 안에 계신 회장님이 절 눈치 챌 테니까요.”
그 말에 권한울은 위화감을 눈치챘다. 메이샤오 정도 되는 존재가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데. 권선우가 몰라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왜 흑천의 회장님이 오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네요?”
메이샤오가 이미 짐작하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죠. 지금 그쪽 회장님이 화신체를 사용하느라 지쳐있다는 점. 그리고 제가 원래 암살검수라는 점.”
화신체를 사용한 지금 권선우는 몹시 지쳐 있었다. 감지 능력이 떨어진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메이샤오는 암살을 주업으로 삼던 암살자다. 기척을 숨기는데 능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소란이 더 커지면 회장님도 절 눈치 챌 게 분명해요. 그러니까 부탁드릴게요. 부디 조용히 있어 주실래요?”
“싫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권한울이 도발적으로 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불리한 쪽은 메이샤오였다. 아무리 그녀가 뛰어난 검사라 해도 권선우를 이길 수는 없으니까. 권선우가 지쳐 있다 하더라도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싫으면 어쩔 수 없죠. 이 자리에서 회장님께 죽을 수밖에.”
메이샤오는 순순히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다.
“하지만 회장님이 도착하기 전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저한테 죽을 걸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살기를 일으키지 않고 말을 했을 뿐인데도 죽음이 눈앞에 들이닥친 것 같았다.
“우리 모두 살고 싶잖아요? 그러니까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도록 하죠. 애초에 나는 오늘 당신을 만나러 온 것뿐이거든요.”
권한울은 한동안 그녀를 노려보다가 주먹을 풀었다.
“무슨 용건이십니까.”
“제 마음을 알아줘서 기쁘네요.”
“대답이나 하시죠.”
“제 스승님.”
메이샤오의 얼굴에 표정이 사라졌다. 물기가 모조리 메말라 버린 사막같은 얼굴로 물었다.
“매중제일검의 최후는 어땠죠?”
* * *
매중제일검 메이룽.
한때, 메이 가문의 최강자라고 알려져 있던 남자.
하지만 이전에 흑천 일가와 메이 가문의 전쟁이 벌어졌을 당시 권명우에게 패배했다.
비록 매중제일검이 패배한 대상은 권명우였으나 그를 죽인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권한울에 의해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걸 꼭 들으셔야겠습니까?”
혈화검 메이샤오는 매중제일검 메이룽의 제자였다.
메이홍의 말에 의하면 메이샤오는 제자일 때, 이미 스승인 메이룽을 뛰어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승의 명예를 위해서 암살검수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그 정도로 메이샤오는 스승을 광신적으로 추종하는 제자였다.
“예, 저는 꼭 들어야겠어요.”
그런 메이샤오가 스승의 원수 중 한 명인 권한울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을지는 뻔했다.
“당시에 매중제일검은 권명우 이사님과의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권강에 몸통이 관통당해서 심장까지 소실되었죠.”
그때, 매중제일검은 이미 살아남을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최소한 저만이라도 죽이라는 가주의 명령을 이행하고자 유물을 사용해서 저와 자신을 아공간에 격리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매중제일검이 제게 목숨을 잃고 말았죠.”
권한울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다만, 어떻게 죽였는지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수라혈을 밝혀야할 테니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메이샤오는 권한울의 말을 단칼에 부정했다.
“그때 당시 스승님과 당신의 격차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에요. 설사 죽음을 눈앞에 뒀다고 해도 마찬가지에요. 분명 다른 이유가 더 있었겠죠.”
있기야 있었다. 그때, 권한울은 아수라왕을 사용했으니까.
“메이룽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걸 사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으리라.
“저한테 죽을 리 없다는 그런 오만한 태도 때문에 제게 목숨을 잃었죠.”
“거짓말 하지 마세요. 그럴 리가 없어요.”
“거짓말이라뇨. 제가 살아 있는 게 그 증거가 아닙니까.”
반박할 말이 없었는지. 메이샤오는 입을 다물었다.
“……진짜 그쪽이 스승님을 죽인 건가요?”
“그렇습니다.”
“정말 당신이 스승님의 원수라는 소리군요.”
그 순간, 메이샤오의 표정이 변했다.
섬뜩하고, 징그러우면서도 어딘가 기뻐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귀신이 웃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지금까지 당신을 내버려 뒀는지 알아요?”
권한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유를 어찌 알겠는가.
“스승의 원수를 별볼일 없는 채로 죽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러면 제 스승님의 위신이 깎여 나갈 테니까요.”
매중제일검을 죽이고 나서도 권한울은 그다지 유명한 인물이 아니었다.
호사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는 했으나 결국 권명우가 다 요리해놓은 음식에 숟가락만 얹은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명성이 높아지기는 했으나 매중제일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천공투기장의 사건 때문에 전 세계에 당신의 이름이 알려졌어요. 모두가 당신을 동경하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있죠.”
이제 권한울의 명성은 높아졌다. 메이샤오의 입장에서는 비로소 암살할 가치가 생겼다.
“오늘 직접 찾아온 이유도 그것 때문이에요. 이건 단순한 암살이 아니에요. 제 스승님과 메이 가문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복수니까요.”
그렇기에 메이샤오는 권한울과 대면했다. 그리고 직접 선언했다.
“조만간 다시 찾아오도록 하죠. 그때, 당신의 목숨을 가져가도록 하겠어요.”
메이 가문 최고의 암살자.
더불어 최고의 검사가 선언했다.
권한울을 죽이겠노라고.
“흑천이 당신을 내버려 둘 것 같습니까?”
“안 그러겠죠. 하지만 상관없어요.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을 테니까요.”
메이샤오가 메이홍이 들고 있던 장검을 집어 들었다.
자연스럽게 장검을 빼들었다. 그 시퍼런 날을 하늘 높이 치켜세웠다.
칼날의 표면에 검기가 맺혔다. 마치 아지랑이와 연기가 반반씩 섞여서 칼날을 휘감고 있는 것 같았다.
“가문으로 숨어도 좋고, 호위를 데리고 다녀도 좋아요. 하지만 제가 장담하죠. 그 어떤 짓을 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이윽고 검기의 모습이 변했다.
기체와도 같았던 형상이 서로 압축이 된다. 고체로 변하더니 이내 환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권후돈과 가엘 가르시안은 그게 무엇인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나 권한울은 한눈에 알아봤다. 실제로 다뤄 본 적이 있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검강.”
검기, 혹은 오러라 불리는 기술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기예.
그 무엇이든 파괴할 수 있다는 절대적인 병기.
매중제일검조차 얻지 못했던 검강이 지금 메이샤오의 손에 의해 펼쳐지고 있었다.
메이샤오는 허공에 칼을 휘둘렀다. 검강이 촛불처럼 휙 꺼졌다.
“최대한 발버둥 치세요. 그래야 제 복수가 더욱 각별할 테니까요.”
메이샤오는 장검을 내려놓으며 허리를 숙였다.
“那我們下次再見.”
그 직후, 메이샤오의 몸이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 * *
메이샤오가 사라졌음에도 권한울은 좀처럼 긴장감을 풀 수가 없었다. 권후돈과 가엘 가르시안도 마찬가지였다.
“……하, 한울아. 회장님께 도움을 요청하자.”
권후돈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
메이샤오가 암살을 선언한 지금,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괴물 같이 강했던 인간이 검강까지 손에 넣었다. 도무지 권한울이 살아남을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권한울은 권후돈의 제안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후돈아. 일단 메이홍을 침실로 옮겨 주겠어?”
“으, 응.”
권후돈은 군말 없이 메이홍을 들어 올린 뒤, 배 안으로 들어갔다.
“가엘.”
“예, 말씀하십시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권후돈 님의 말대로 흑천에 도움을 청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생각이로군.
권한울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하지만 권한울 님의 생각은 다르신 것 같습니다.”
가엘 가르시안이 의외의 대답을 했다.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화가 나신 듯 합니다.”
그 말이 권한울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 꼬리가 비틀렸다.
“맞아요. 오랜만에 아주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거든요.”
흑천에 처음 왔을 때, 권한울은 배반자의 자식이라며 만나는 사람에게 모두 모독을 당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권지석, 권찬성, 심지어 권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권한울을 깎아내리고 억압하려고 했다.
“어이가 없지 않습니까. 결국 흑천에 지고만 패배자들을 이끄는 주제에 이토록 당당하게 나온다는 게.”
빠득, 권한울은 이를 갈았다.
“미리 말해 둔 것도 죽기 직전까지 벌벌 떨고 있으라는 소리겠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살의가 들끓었다.
이 순간, 권한울은 결정했다. 반드시 메이샤오를 자신의 손으로 처단하겠다고 말이다.
“회장님의 말씀이 맞았네요.”
권선우의 말이 맞았다. 여유를 부릴 틈은 없다. 악착같이 강해져야 했다.
그리고 강해지기 위해서 반드시 확보해야 할 물건이 있었다.
능력치를 SS급까지 상승시킬 수 있는 비약 말이다.
“가엘. 부탁 하나만 할게요.”
“명령하십시오.”
“지금 당장 바벨 가문의 배로 가서 제 말을 전해주세요.”
권한울은 품에 넣었던 편지를 도로 건네며 말했다.
“내일 새벽에 방문하겠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