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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153화 (153/221)

<혈통이 깡패임 153화>

153. 악마 (1)

“죽은 건가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권한울은 고개를 돌렸다. 사샤 바벨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쪽은…….”

“사샤 바벨이요. 설마 잊은 건 아니겠죠?”

권한울은 작게 웃었다. 잊을 리가 있겠는가. 다름 아닌 바벨 가문의 참가자인데.

“마노 스톤라이트는 죽은 건가요?”

“글쎄요.”

권한울은 별 관심없다는 듯이 말했다. 죽일 각오로 머리를 내려찍었으나 살아 있어도 상관없었다. 그 정도로 마노 스톤라이트는 권한울에게 하잘 것 없는 존재였다.

“저 여자는 드래곤슬레이어의 제자에요.”

그 대답에 사샤 바벨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죽여서 좋을 건 하나도 없어요. 저라면 가능한한 살려두고 이득을 취할 방법을 고민했을 거예요.”

“흑천은 원한을 잊지 않습니다.”

권한울은 딱 잘라서 말했다. 설사 마노 스톤라이트가 죽음으로 인해서 드래곤슬레이어를 자극했다 해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러니 흑천의 방식에 참견하지 마십시오.”

권한울이 싸늘한 눈동자로 사샤 바벨을 쳐다봤다. 사샤 바벨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제가 너무 무례하게 굴었네요.”

“아시면 됐습니다.”

“살려 주셔서 감사해요.”

그 말에 권한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쩌다 그렇게 됐을 뿐이니까.”

권한울은 딱히 사샤 바벨을 살리고자 싸운 게 아니었다. 마노 스톤라이트를 만났고, 원한울을 갚았을 뿐이다.

“……그래도 덕분에 제가 살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죠.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럼 바로 그 은혜를 갚으시죠.”

“예?”

“어쩌다 그렇게 쉽게 당한 겁니까?”

마노 스톤라이트는 생체기 하나 없었으나 사샤 바벨은 망신창이었다. 전투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는 이유였다.

언젠가 드래곤슬레이어와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사샤 바벨이 어떻게 당했는지. 미리 알아두면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저도 잘 몰라요. 마노 스톤라이트가 던진 비도에 상처를 입었는데. 적룡성의 기운이 몸을 잠식하더니 용심혈의 기운을 사용할 수 없게 됐어요.”

“적룡성에 그런 능력이 있다고요?”

바벨 가문만 적룡성을 경계하는 게 아니었다. 흑천 일가 역시 적룡성을 경계하고 있었다.

권한울은 이미 주하연과 흑천의 정보부를 통해 얻은 정보를 통해서 적룡성에 대해서 공부했다.

그러나 어떤 자료에도 적룡성이 혈통의 기운을 억제할 수 있다는 말은 적혀 있지 않았다.

“너도 놀라는 중이에요. 바벨 가운의 정보에는 이런 능력이 없었는데…….”

기프트란 선천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변하지 않는다.

사샤 바벨을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있으면 풀릴 것 같아요. 그러니 전 신경 쓰지 말고…….”

어느새 권한울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사샤 바벨은 말문이 턱 막혔다.

지금 이곳에는 자신과 권한울 둘뿐이다. 게다가 사샤 바벨은 용심혈을 쓸 수 없다. 만약 권한울이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저항할 수 없다.

“저기…….”

설마 흑천의 혈족이 그럴까 싶지만 오래전부터 가주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남자들은 모두 늑대라고.

게다가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사샤 바벨은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왜 갑자기 이렇게 가까이…….”

그때, 권한울이 대뜸 사샤 바벨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사샤 바벨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팔뚝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렸다. 머릿속으로 가주의 얼굴을 떠올리며 소리쳤다.

“거, 건드리지 마요! 조금이라도 제 몸에 손댔다가는 혀 깨물고 죽을 거예요!”

사샤 바벨은 한참옹안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권한울은 손목만 잡고 있을 뿐, 그 이상 어떤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사샤 바벨은 권한울이 자신을 어떤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지 깨달았다.

몹시 안쓰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질문이 실례인 줄은 아는데…… 혹시 어디 머리가 안 좋으신 겁니까?”

“아, 아니 그게…… 갑자기 제 손을 잡으니까…….”

권한울의 손을 타고 마력이 흘러들어왔다. 사샤 바벨의 몸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적룡성의 기운이 지워집니다!>

<감소된 능력치가 회복됩니다!>

줄곧 몸을 지배하고 있던 적룡성의 기운이 사라졌다. 동시에 용심혈의 돌아왔다.

“적룡성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걸 제 힘을 없앨 수 있을지 확인해본 겁니다.”

그리 말하며 권한울은 손목을 확 놓았다.

“혹시라도 나중에 드래곤슬레이어와 싸우게 될지 모르니까요. 이제 오해가 좀 풀리셨습니까?”

그 말에 사샤 바벨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 * *

적룡성의 악영향에서 벗어났으나 사샤 바벨은 경기를 지속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몸에 입은 외상이 심했으니 말이다.

사실 몸이 멀쩡했어도 여기서 포기할 생각이었다. 권한울과 마노 스톤라이트의 전투를 직접 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그만큼 압도적이었으니까.

“…….”

솔직히 말하자면 다 핑계에 불과했다.

권한울에게 보인 추태가 부끄러워서 뭘 어쩔 수 없었다. 사샤 바벨은 권한울에게서 얼굴을 돌린 채 부끄러움을 애써 억눌렀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사샤 바벨에게 전투 의사가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권한울은 다시 미로 중앙을 향해 이동하려 했다. 아직 천공투기장은 끝나지 않았다.

“잠깐만요!”

그런 권한울을 사샤 바벨이 붙잡았다. 권한울은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왜 부르는 겁니까. 한번 붙어보려고요?”

“서, 설마요! 그, 그런 게 아니라…….”

사샤 바벨은 침을 꿀꺽 삼킨 뒤 말했다.

“방금 절 어떻게 치료하신 거죠?”

“흑천의 비기라 말할 수 없습니다.”

“흑천에 그런 비기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흑천과 바벨은 오랜 앙숙이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해서 정통했다.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권한울은 굳이 사샤 바벨을 납득시키려 하지 않았다. 굳이 그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진혈이라 가능한 건가요?”

“마음대로 생각하시라니까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그 능력은 당신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부탁을 드릴 게요.”

정답을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의외로 예리한 부분이 있는 여자였다.

흑천의 혈족 중에서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이는 권한울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파티장에서 만났던 알리아 다비를 기억하시나요?”

“기억합니다.”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 질병을 앓고 있냐고 물었죠?”

“그랬죠.”

“당신의 능력으로 그분을 치료할 수 있나요?”

권한울은 잠시 고민했다. 과연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 불가능할 것인가. 심사숙고한 뒤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대답을 듣자마자 사샤 바벨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땅에 무릎을 꿇고 권한울을 올려다봤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천공투기장이 끝나고 그분을…… 알리아 다피를 치료해 주세요.”

“거절하겠습니다.”

곧바로 나온 대답에 사샤 바벨의 눈동자가 커졌다.

쐐기를 박듯이 권한울이 덧붙였다.

“알리아 다비는 바벨의 혈족이잖습니까.”

그 말에 사샤 바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그걸 어떻게…….”

“그것만 아는 줄 아십니까? 알리아 다비가 바벨 가문 내에서 엄청난 실력자였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권한울이 판단하기로는 아무라 낮게 잡아도 권찬성보다 훨씬 강했다. 어쩌면 권명우 급일지도 몰랐다.

“냉정하게 말해서 알리아 다비를 치료하면 흑천에 좋을 게 없죠.”

권한울은 가문에 대한 충성심이 약했다.

자신의 출신을 모른 채 가문 밖에서 자랐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바벨 가문의, 그것도 굉장한 실력자를 덜컥 치료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그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권한울은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런 권한울을 사샤 바벨이 다시 붙잡았다.

“알리아 다비를…… 그분을 치료해 준다면 어떤 부탁이든 들어드릴게요!”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었다. 권한울은 계속 걸음을 옮겼다.

“제발…… 제발 부탁드려요! 당신이 아니면 그분은 곧 돌아가신단 말이에요!”

권한울의 걸음이 멈췄다.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나 싶었는지. 사샤 바벨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권한울은 그런 이유로 멈춘 게 아니었다.

어디선가 불길한 마력이 느껴졌다. 마치 살갗에 끈적끈적하게 들러붙는 것 같았다.

“……이게 대체 무슨 마력이지?”

익숙하다. 어디선가 경험해본 적이 있다.

권한울이 혼란스러워하던 그때, 갑자기 천공투기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들썩였다. 진동을 견디지 못하고 미로의 벽이 모조리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지진이 거세질수록 불길한 마력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설마?”

그 순간, 천공투기장의 가장자리부터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몰려든 금이 미로의 중앙에서 만났다.

모든 금이 연결된 순간, 땅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지면을 뚫고 검고 붉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머리가 천공투기장의 외곽을 가리는 장막에 닿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러고도 상반신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무언가가 몸통을 끌어안고 있던 팔을 펼쳤다. 여섯 개의 팔을 사방으로 뻗어서 천공투기장을 움켜잡았다.

-%@#$!!%^.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치 소리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기괴했다.

그 무언가의 등에서 날개가 펼쳐졌다. 천공투기장을 뒤덮을 만큼 거대했다. 날개를 펼치자마자 뜨거운 열풍이 휘몰아쳤다.

-!%@!$!!

그 물체가 또 다시 괴성을 내질렀다. 그제야 권한울은 저것의 정체를 떠올랐다.

“……악마.”

한 때, 인류를 멸망까지 몰아넣었던 이세계의 생명체가 다시 눈을 떴다.

* * *

권한울은 침을 꿀꺽 삼켰다.

멕시코에서 만났던 악마는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기에 상대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놈은 달랐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왔다. 온몸의 근육이 긴장이 되었다.

굳이 경험해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이 악마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힘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아아아아아.

악마의 입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악마는 여섯 개의 팔 중에서 두 개를 움직여서 자신의 눈을 가렸다.

권한울은 바짝 긴장한 채 악마를 노려봤다. 악마가 움직이면 즉각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하아아아아!

악마는 숨을 크게 들이 마신 뒤, 내뱉었다.

-눈부셔!

……응?

권한울은 뭘 잘못 들었나 싶은 얼굴로 악마를 쳐다봤다.

-왜 하필 이 시간에 깨어난 거야! 눈이 부시잖아!

그런데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눈부셔어어!

악마의 날개가 녹아내렸다. 기이하게도 액체로 변한 날개는 땅이 아니라 천장에 들러붙었다. 천공투기장을 뒤덮고 있던 투명한 막이 검게 물들었다.

-휴우.

그제야 악마는 안도했다. 나머지 팔을 움직여서 땅 위에 겹겹이 쌓았다. 그 위에 얼굴을 파묻으며 말했다.

-좀만 더 잘 테니까 10분 뒤에 깨워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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