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49화>
149. 천공투기장 (1)
천공투기장 당일.
권한울은 거울 앞에서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남들이 봤을 때는 그저 검은색 정장일 뿐이었으나 실제로는 블랙베리 세트라 불리는 방어구였다.
블랙베리를 말끔하게 차려입고, 넥타이까지 맸다. 그러고 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문밖에서는 주하연이 권한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하연은 권한울을 쓱 훑어봤다.
“오늘은 혼자 넥타이를 매셨군요.”
“자주 입다 보니 이제 손에 익더군요.”
권한울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동안 넥타이 때문에 주하연의 손을 빌릴 때마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앞섰기 때문이다.
주하연은 권한울의 가슴팍을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아쉽네요.”
“예?”
뭐가 아쉽다는 것인지 물을 틈도 없이 주하연이 훌쩍 거리를 좁혔다.
두 손을 뻗어 넥타이를 만지작거렸다.
“넥타이의 위치가 조금 삐뚫어졌습니다. 흑천의 혈족이라면 이런 사소한 부분도 놓치면 안 됩니다.”
주하연의 머리카락에서 좋은 향기가 났다. 오랜만에 맡는 향기에 권한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진정하기도 전에 주하연이 다시 훌쩍 물러났다.
“됐습니다. 이제 가시죠.”
주하연이 앞장서서 걸었다. 권한울은 볼을 긁적이다 그녀를 따라갔다.
* * *
“이제 2시가 되면 권한울 님의 눈앞에 메시지가 뜰 겁니다.”
갑판 위로 향하는 동안 주하연이 설명을 시작했다.
“천공투기장이 권한울 님께 보내는 것이죠. 그 소환을 수락하면 천공투기장 내부로 진입하게 됩니다.”
스포츠에서 선수들이 입장할 때처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천공투기장에 참가하는 사람은 100명은 우습게 넘어가니 그 편이 더 깔끔할 것 같았다.
“아마 들어가자마자 1차 경기를 치르게 되실 겁니다.”
“경기 내용은 아직 아무도 모르죠?”
“매번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직접 들어가보셔야 할 수 있을 겁니다.”
천공투기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수차례 경기를 치러야 한다. 모든 경기 내용은 매번 달라진다. 그렇기에 예측하는 게 무의미했다.
갑판 밖으로 나가자 햇빛이 권한울을 맺이했다. 넓은 갑판 위에 팀원들이 서 있었다.
“한울아!”
권한울이 나오자마자 권후돈은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했다. 분명 아침 식사시간에도 봤는데 말이다.
“드디어 이 날이 왔어! 네가…… 네가 천공투기장에 참가하게 되다니.”
감격스러움에 권후돈의 눈동자가 젖어들었다. 옆에 있던 메이홍이 한심하다는 듯이 흘겨봤다.
“후돈 오빠가 참가하는 것도 아닌데. 왜 울어요.”
“그, 그치만…… 이렇게 대단한 자리에 한울이가 참가한다는 건…… 회장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소리잖아? 그걸 어떻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어.”
“으이구, 알겠으니 그만 울어요.”
핀잔을 주면서도 메이홍은 손수건을 꺼내서 건냈다. 권후돈은 손수건을 받고 눈가를 닦아냈다.
“저는 별말 안 할게요.”
메이홍이 권한울을 향해 말했다.
“저번에 보니까 참가자들이라고 해 봤자 별것도 아니던데요. 저 혼자서도 다 이기겠던데. 대장님이면 오죽하겠어요?”
“그럼 메이홍도 같이 참가할래요?”
“됐네요. 대장님이 있으면 1등 못할 거 아니에요. 그럼 뭐 하러 참가해요.”
메이홍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권한울은 짧게 웃었다.
“대장님.”
마지막으로 가엘 가르시안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진혈을 선언하신 이후로 참가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잖습니까.”
며칠 전, 권한울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진혈임을 밝혔다.
그 발언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고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곳은 천공투기장 때문에 모여든 헌터들이었다.
“지금도 곳곳에 시선이 느껴집니다.”
사방에서 권한울을 감시하기 위해서 수작을 부렸다.
사람을 보내서 감시하기도 하고, 드론을 띄우기도 했다. 먼 거리를 내다볼 수 있는 스킬을 동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응하자면 할 수 있었으나 권한울은 모두 내버려 뒀다.
어차피 청소를 해도 또 몰려들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대장님을 처리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권한울은 가엘 가르시안의 어깨를 두드리며 안심시켰다.
권한울은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천공투기장이 열릴 시간이 되었다.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천공투기장에 참가하시겠습니까?> 권한울은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수락을 누르는 순간, 환한 빛이 권한울을 감쌌다.
<천공투기장으로 이동 중입니다.> <1차 경기 내용을 정하는 중입니다.> <경기장의 내부를 새로 구성하는 중입니다.> 별안간 빛이 사라졌다. 대신 권한울의 눈앞에 커다란 벽이 나타났다.
아파트를 연상시킬 높은 벽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권한울?”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벽뿐만이 아니었다.
다섯 명의 남자가 다 같이 권한울을 응시하고 있었다.
* * *
“진짜 권한울인가?”
“보면 모르겠나? 본인이잖나. 저렇게 생긴 사람이 또 있을 리가 없지.”
“1차전부터 권한울을 만나다니. 재수가 없군.”
다섯 명은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아니지, 운이 좋다고 해야지.”
다섯 명 중에 한 명이 말했다. 네 명은 말을 멈추고 그 사람을 쳐다봤다.
“우리가 동맹을 맺은 이유가 초반부터 나타났잖아.”
“안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 치졸하게 동맹을 맺어야 해서 기분이 나빴는데. 잘됐군.”
“상부에서 내린 명령이니 별 수 있나. 빨리 처리하고, 그 다음에 각자 행동하자고.”
대화소리를 듣고 있자니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권한울은 다섯 명을 향해 물었다.
“혹시나 싶어서 묻는데…… 설마 나 한 명 상대하자고 다섯 명에서 연합을 하겠다는 건 아니겠죠?”
대답 대신 다섯 명은 무기를 손에 쥐었다.
흉흉한 살기가 휘몰아쳤다. 권한울은 혀를 내둘렀다.
“이봐요. 아직 경기 내용이 뭔지도 모르는데…….”
<1차전 : 일인자 결정.>
<자신 이외에 다른 참가자들을 죽이거나 전투불능으로 만드세요!> “……에라이.”
권한울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공투기장은 외부에서도 들여다볼 수 있는데. 여기서 날 죽이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시려고 그럽니까.”
“흑천의 전투광답지 않게 혓바닥이 제법 잘 돌아가는데.”
다섯 명 중에서 검을 들고 있는 남자가 말했다.
“흑천의 보복보다 더 두려운 게 뭔지 알아?”
“뭔데 그럽니까.”
“흑천에 진혈이 탄생하는 거야.”
지금도 흑천은 전 세계에서 상대할 수 있는 곳이 몇 없을 만큼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진혈이 추가된다면 흑천의 힘이 얼마나 강해질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제가 진혈이라는 걸 진짜 믿으십니까?”
만약 권한울이 진혈이 아니라면 이들은 괜히 흑천을 적으로 삼는 셈이 된다.
혼란을 일으키기 위한 질문이었으나 다섯 명의 기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말이 너무 많군. 천하의 흑천께서 설마 겁을 먹으신 건가?”
조롱섞인 말에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권한울은 어깨를 으쓱했다.
“서로 동맹을 맺는 건 좋은데.”
권한울은 짧게 혀를 찼다.
“나한테 달려드는 건 다시 한번 더 고민하는 게 좋을 겁니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 다섯 명이 일제히 스킬을 발동했다.
* * *
마치 자연재해를 모아놓은 듯한 광경이었다.
불의 파도가 들이닥쳤다. 불길에 닿은 땅과 벽이 완전히 녹아내렸다.
그 위로 지독한 냉기가 내려앉았다. 얼음의 송곳이 높기 치솟아 올랐다.
그 위로 폭풍이 휘몰아쳤다. 폭풍은 얼음송곳과 일대를 완전히 박살 내 버렸다.
온갖 스킬이 집중되었다.
권한울이 서 있던 자리는 완전히 불타고, 파괴되었다, 어느 순간, 스킬이 멈췄다. 폭음과 굉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긴 침묵이 흘렀다.
“……뭐야.”
다섯 명 중 한 명이 멍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체 왜 멀쩡한 거야?”
스킬이 집중되었던 자리.
모든 것이 파괴된 자리.
그곳에 권한울이 홀로 서 있었다.
멀쩡한 정도가 아니었다. 머리카락 한 올 상하지 않았다.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불타는 대지를 밟고 서 있었다.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이들은 모두 최고의 스킬을 익히고, 최고의 장비를 입고, 최고의 지원을 받으며 이 자리까지 왔다.
하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권한울을 상처 입히지 못했다.
“그래서 미리 말했잖나.”
권한울은 허공의 메시지를 쳐다봤다.
<‘드래곤하트’가 가동합니다!> <지금부터 30분 동안 모든 마력이 변환됩니다!> <모든 원소 저항력이 300% 상승합니다!> <스킬 피해가 최대 50%까지 감소합니다!> “잘 생각하고 덤비라고.”
100시간은 애초에 지났다.
드래곤하트로 변환된 권한울의 심장은 지금 이 순간, 맥동하며 막대한 마력을 방출해 내고 있었다.
과연 드래곤하트.
단순히 마력을 두른 것만으로 저딴 스킬을 모두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개소리하고 있네!”
창을 쥐고 있던 헌터가 땅을 박찼다. 눈 깜짝할 사이에 눈앞에 나타나서 창을 내질렀다. 능히 살을 찢고, 뼈를 부수며, 심장을 관통할 만큼 위력적인 일격이었다.
드래곤하트의 마력은 무형의 스킬은 막아 낼 수 있지만 유형의 공격은 막을 수 없다. 창은 권한울의 마력을 헤치며 명치를 꿰뚫으려 했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 검은 비늘이 권한울의 명치를 뒤덮었다.
검은 비늘과 창이 부딪혔다. 그 직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창을 든 사내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헉, 허억!”
사내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가쁜 숨을 내뱉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권능 ‘용린마갑’을 발현합니다.> 검은 비늘이 권한울의 온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용린마갑이 늘어날수록 다섯 명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방어 권능 중에서도 최상위라고 인정받고 있는 흑린갑을 이들이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할 생각인가?”
권한울이 다섯 명을 향해 물었다.
다섯 명은 다시 눈빛을 교환했다. 다시금 살기를 일으켰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기개만큼은 마음에 드는군.”
권한울이 입가를 비튼 순간, 다섯 명이 동시에 움직였다.
사방에서 무기가 날아들었다. 대검, 창, 검 같은 무기가 권한울의 몸을 가격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권한울의 흑린갑을 뚫지 못하고 막혔다.
“미안한 말이지만.”
권한울은 마력을 일으켰다. 그에 반응하여 드래곤하트가 박동하기 시작했다.
심장이, 드래곤하트가 더욱 거세게 가동하기 시작했다.
한 번 박동할 때마다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내뿜기 시작했다.
“너희들을 상대로는 직접 손을 쓸 필요도 없다.”
다섯 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권한울의 몸에 무기를 맞대고 있기에 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지금 권한울이 내뿜고 있는 마력의 양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말이다.
“이런 미친놈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권한울은 모든 마력을 방출했다.
그 순간, 주변을 감싸고 있던 벽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