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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145화 (145/221)

<혈통이 깡패임 145화>

145. 새로운 혈통 (3)

알리아 다피와 만난 직후, 권한울은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 고민했다.

‘마력을 보면 보통 인물은 아니다.’

바벨 가문 내에서도 굉장히 지위가 높은 사람이 틀림없었다. 흑천으로 치면 최소 권찬성 이상이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지.’

모든 마력통로가 메말라 있다. 저 상태로는 마력을 운용할 수 없다.

확신하기는 힘들지만 아마 지금 알리아 다비는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상황일 것이다.

‘어째서 저 상태가 되도록 치료를 받지 않은 거지?’

바벨 가문은 흑천 일가와 비견될 정도로 대단한 가문이다.

그런 곳에서 돈이 부족해서 치료를 못 받았을 리는 없다.

‘치료를 할 수 없는 건가?’

들은 적이 있다. 헌터들이 앓고 있는 질병 중에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이 존재한다고.

여기서 어떤 수단이란 현대 의학뿐만 아니라 던전 내부의 유물들까지 포함한다.

‘사실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흑천 일가와 바벨 가문은 적대적이지는 않지만 우호적이지도 않다.

흑천 입장에서는 바벨 가문의 실력자가 저절로 사라진 셈이니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권한울이 알리아 다비를 신경 쓰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천재혈이 보여 준 그건 대체 뭐였을까.’

알리아 다비의 손을 잡았을 때, 천재혈은 그녀의 몸 구조를 전부 보여 줬다.

지금까지 천재혈을 사용해 오면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어쩌면 천재혈이 성장을 하면서 새로 생긴 능력일지도 몰랐다.

‘천재혈을 사용하면 조율뿐만 아니라 치료도 가능하다고 하던데.’

천재혈을 통해 신체의 문제점을 파악함으로서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는 소리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이 능력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데…….’

사람의 앞일은 아무도 모른다.

언젠가 권한울도 알리아 다비처럼 불치병을 앓게 될지 모른다. 혹은 팀원들이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천재혈의 치료법을 미리 익혀 두면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큰 도움이 되리라.

‘문제는 어떻게 배우냐는 거지.’

천재혈의 치료법은 라사드 가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기술이다.

그런 것을 외인인 권한울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때였다.

“대장님, 저거 보이세요?”

메이홍이 권한울의 옷자락을 끌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한 소년이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샤힌 라사드.

천재혈을 보유하고 있는 라사드 가문의 혈족이었다.

“사람들의 몸을 봐주고 있나 봐요. 우리도 한번 봐 달라고 할까요?”

라사드 혈족에게 조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메이홍이 흥미를 가지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권한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권한울은 진(眞) 천재혈을 가지고 있기에 따로 조율을 받지 않아도 신체가 최상의 상태를 유지했다.

이는 라사드 가문의 특급조율사라는 압둘 라사드가 인정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으악!”

샤힌 라사드가 어떤 헌터의 목을 확 꺾었다. 우드득 소리가 났다.

누가 봐도 깜짝 놀랄 만큼 무식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헌터는 오히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 두통이 싹 사라지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머리로 올라가는 혈류와 마력의 흐름을 개선했어요.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으실 거예요.”

헌터는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다른 헌터가 자리에 앉았다.

“오호.”

마침 권한울이 배우고 싶어하는 기술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권한울은 메이홍과 함께 샤힌 라사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권한울은 한 발 뒤로 물러선 채 샤힌 라사드가 치료를 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단순히 마력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물리력도 동시에 사용하는군.’

뼈를 건드림으로서 근육을 바로잡는다. 그와 동시에 마력을 주입함으로서 내부 문제를 개선한다.

완전히 생소한 기술을 설명도 없이 눈으로 지켜볼 뿐이었지만 권한울은 곧바로 원리를 깨달았다.

천재혈뿐만이 아니라 수라혈을 보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당히 흥미롭군.’

권한울은 샤힌 라사드를 계속 관찰했다. 천재혈로 신체의 구조만 파악할 수 있으면 그리 어려운 묘기는 아니었다.

다만 딱 하나, 눈으로 봐서는 알 수 없는 게 있었다.

‘마력을 어떻게 침투시키는 거지?’

타격 시 마력을 방출해서 상대방의 내장을 뒤집어놓는 것은 권한울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샤힌 라사드가 하는 것처럼 상대방의 마력 흐름만을 건드리는 것은 자신이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권한울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천재혈을 활성화시켰다.

머릿속에 자신의 신체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권한울은 그 중에서 마력의 통로 몇 개를 일부로 헝클어트렸다.

“쿨럭.”

그 반동으로 피가 터져 나왔다. 옆에 서 있던 메이홍이 깜짝 놀랐다.

“대장님?”

“아, 별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바로 치료를 받으면 되죠.”

권한울은 샤힌 라사드를 쳐다보며 말했다. 메이홍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일부러 내상을 입으신 건…….”

권한울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샤힌 라사드의 앞에 앉았다.

“나도 한번 받아 볼 수 있습니까?”

“네…….”

샤힌 라사드는 엉뚱한 곳을 쳐다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으아악!”

그러다 권한울을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궈, 권한울…… 님!”

권한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샤힌 라사드를 쳐다봤다.

“혹시 제가 실례가 된 겁니까?”

“아, 아닙!”

혀를 깨물었는지. 샤힌 라사드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니에요. 어디가 아파서 오셨는데요?”

“아픈 건 아니고 제 마력의 흐름을 한번 조율 받아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샤힌 라사드는 권한울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

곧이어 눈동자가 커졌다.

“아프지 않으시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마력의 흐름이 이렇게 엉망이 되어 있는데!”

샤힌 라사드는 권한울의 몸 상태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가만히 앉아 계세요. 조금 아프실 수 있어요.”

샤힌 라사드는 권한울의 가슴에 두 손을 얹었다.

“합!”

그리고 있는 힘껏 두 손바닥으로 권한울의 가슴을 강타했다.

충격과 함께 마력이 신체로 들어왔다. 샤힌 라사드의 마력은 권한울의 뒤엉킨 마력통로를 전부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대단하군.’

권한울조차 놀랄 정도로 섬세한 솜씨였다. 하지만 따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결 몸이 낫군요. 감사합니다.”

“뭘요.”

권한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방금 전, 샤힌 라사드가 보여 준 마력흐름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자, 이제 다음 분 오세요.”

권한울이 일어나자 말자 다른 사람이 앉았다. 행색이 초라한 헌터였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조율을 좀 받고 싶습니다. 요 근래 들어서 갑자기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가슴 속이 따끔거려서…….”

샤힌 라사드는 그 사람의 손목을 붙잡고 진찰을 시작했다.

“음?”

그런데 뭔가 잘못 됐는지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이건 제가 치료할 수가 없어요…….”

“천재혈로도 안 되는 게 있는 겁니까?”

헌터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앉는 족족 사람들을 치료하던 샤힌 라사드다. 자신 차례가 되어서 치료할 수 없다고 하니 당황할 수밖에.

“스킬을 사용하실 때마다 가슴에 통증을 느껴지는 이유는 심장 내부의 흐름에 문제가 생긴 거예요.”

“심장이라고요?”

“이대로 내버려 두면 언젠가 심장의 기능이 망가지게 될 거예요.”

헌터가 아무리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다.

심장 같이 중요한 장기가 망가지면 끝이었다.

“심장은 굉장히 섬세한 부분이라 제 실력으로는 함부로 손댈 수가 없어요. 최소한 일급조율사라도 불러야 해요.”

헌터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라사드 가문의 일급조율사에게 조율을 받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예약을 잡는 것도 힘들다. 일급조율사쯤 되면 대가문의 일만 맡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헌터는 시무룩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봐요.”

그 헌터를 권한울이 붙잡았다.

* * *

헌터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권한울은 이제 막 정리가 끝났을 참이었다.

샤힌 라사드가 마력을 어떻게 운용했는지. 이것으로 사람을 어떻게 칠했는지. 어떤 식으로 응용할 수 있는지.

굉장히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왜 그러십…… 궈, 권한울?”

얼마나 흥미로웠던지 권한울은 지금 당장 자신이 배운 지식을 사용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무턱대고 남자를 붙잡았다.

“제, 제가 뭔가 실례되는 일이라도…….”

“그게 아니라. 괜찮으면 나한테 맡겨볼 생각 없나 싶어서요.”

“마, 맡기다뇨?”

권한울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흑천 일가에도 따로 치료법이 있습니다. 그걸 이용하면 심장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헌터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샤힌 라사드도 마찬가지였다.

“저기요! 지금 무슨 짓을 하시려는 거예요”!

샤힌 라사드는 권한울을 힐난하듯이 말했다.

“심장이 얼마나 섬세한 부위인데요! 아무나 함부로 건드리면 안 돼요!”

“어차피 선택이야 이 사람이 하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권한울은 다시 헌터를 쳐다봤다. 헌터는 침을 꿀꺽 삼킨 뒤 물었다.

“죽지는 않겠지요?”

“당연합니다.”

“부작용이 생기면…….”

“흑천에서 보상을 약속하죠.”

그제야 남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꼭 그렇게 해주셔야 합니다.”

사실 남자도 권한울이 자신의 몸을 치료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권한울이 실수한 뒤, 흑천이 줄 보상을 기대했다.

“일단 여기 앉으시고.”

권한울은 남자를 자리에 앉혔다. 그런 뒤, 천재혈을 사용했다.

머릿속에 남자의 몸 상태가 그려졌다. 심장에 혈토가 마구 엉켜 있는 게 보였다.

‘분명…… 이렇게 했지.’

권한울은 정신을 집중한 뒤, 남자의 등을 후려쳤다. 동시에 마력을 침투시켰다.

“커억!”

남자가 비명을 토해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두 손으로 가슴을 붙잡았다.

“크악! 으아아아악!”

고통으로 가득한 비명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모두들 당황해서 헌터를 쳐다봤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샤힌 라사드가 다급히 남자에게 달려왔다. 그때까지도 남자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괜찮아요. 괜찮으니가 심호흡을…….”

그때였다.

갑자기 남자의 얼굴이 평온해졌다. 언제 비명을 질렀냐는 듯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헌터는 마력을 일으켰다. 파란색 마력이 남자의 몸을 둘러쌌다.

“……세상에.”

남자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더 이상 아프지 않잖아……?”

* * *

귀찮다.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상대하며 사샤 바벨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사샤 양께서는 본잘레스 호수의 아름다움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사샤 바벨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계속 모국의 경치를 칭찬하고만 있었다.

“사샤 양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직접 안내를 해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끈질기게 사샤 바벨과의 대화를 이어 나가려고 했다.

사샤 바벨은 바벨 가문을 대표해서 천공투기장에 참가하게 되었다.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친분을 쌓으려는 것이다.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심각하리만큼 귀찮다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때였다.

“사샤!”

알리아 다비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친구 분께서 오셨군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그녀의 등장에 남자는 하는 수 없이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사샤 바벨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남자를 떠나보냈다.

그런 뒤, 알리아 다비를 향해 물었다.

“무슨 일 있으셨나요?”

“있고말고.”

알리아 바벨은 자리에 앉았다. 사샤 바벨은 긴장한 얼굴로 그녀가 할 말을 기다렸다.

권한울은 이번 천공투기장에서 가장 유력한 우승자로 손꼽힐 만큼 대단한 실력자다.

알리아 바벨.

아니, 바벨의 여가주 달리아 바벨은 권한울을 어떻게 판단했을지 궁금했다.

“권한울 저 아이…… 뭔가 이상하더구나. 내가 병을 앓고 있다는 걸 곧바로 눈치 챘어.”

하지만 알리아 다비의 말을 듣는 순간,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가주님께서 아프시다는 걸 알고 있다고요?”

현재 알리아 다비는 불치병 때문에 모든 힘을 잃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일반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천재혈쯤 되어야 알리아 다비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을 권한울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혹시 가주님의 정체도 알아차렸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지만…… 어떻게 내 상태를 알아차린 걸까.”

알리아 다비는 고민에 잠겼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쿨럭.”

갑작스럽게 기침이 터져 나왔다. 알리아 다비의 입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주님!”

사샤 바벨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알리아 다비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가렸다.

이런 일을 이미 여러 번 겪어봤는지 무척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사샤. 진정하렴.”

“빨리 압둘 님을 불러올게요.”

“그만. 알잖니. 그래도 소용없다는 거.”

알리아 다비의 안색이 순식간에 초췌해졌다. 알리아 다비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쉬고 와야겠구나.”

사샤 바벨은 황급히 알리아 다비를 부축했다. 알리아 다비는 차마 이 도움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다.

“매번 미안하구나.”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두 여인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해 파티장을 벗어났다.

* * *

“이쯤이겠군.”

권한울은 헌터의 손목을 꺾었다. 우드득 소리가 났다.

소리는 끔찍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헌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손목을 돌렸다.

“이거 대단하군요. 더 이상 아프지 않습니다. 매번 손목에 힘을 줄 때마다 통증이 느껴져서 신경이 쓰였거든요.”

“그대로 계속 내버려 뒀으면 언젠가 관절이 망가졌을 겁니다.”

“저, 정말입니까?”

“농담이에요.”

권한울의 말에 헌터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제 이름은 응우옌이라고 합니다. 언젠가 제 도움이 필요하면 꼭 말씀하십시오. 흑천의 혈족께서 저 같은 헌터의 도움이 필요할리는 없지만 말입니다.”

응우옌은 큰 소리로 웃었다. 권한울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응우옌.

베트남의 헌터로 다이아급 몬스터의 머리를 일격에 으스러트린 괴력을 발휘하는 헌터다.

속해 있는 길드가 대단한 곳이 아니라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세계적인 헌터로 성장할 자질을 갖추고 있다.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었다.

“와…… 대단하세요.”

샤힌 라사드가 감탄을 했다.

“저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던데…….”

샤힌 라사드는 부끄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라사드의 혈족이 치료하지 못한 사람을 흑천의 혈족이 치료할 수 있다.

처음에 샤힌 라사드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곧이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권한울이 사람들을 치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상당히 유연한 사고방식이었다.

“역시 사샤 님의 반려로 인정받은 분답네요…….”

샤힌 라사드가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권한울은 그게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제 더 없는 모양입니다.”

주변에 모여든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전부 구경꾼들이었다.

치료를 받고자 대기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샤힌 라사드 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제, 제가 드릴 말이에요!”

샤힌 라사드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만남을 끝마치려던 찰나였다.

-아, 안 됩니다! 초대받지 못한 분은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이만 물러나 주십시오1

파티장 출입문 밖에서 경호원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꾸 이러시면 저희도 가만히 있지 않을…….

벽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배 전체가 흔들렸다. 바깥이 조용해졌다. 말리는 목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이윽고 파티장의 문이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한 남성과 여성이 들어왔다

“잔챙이 새끼들이 왜 이렇게 귀찮게 굴어.”

남자의 두 손은 피투성이였다. 옷과 얼굴에도 피가 튀어 있었다.

권한울은 남자의 뒤쪽을 쳐다봤다. 경호원 두 명이 머리가 벽에 처박힌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곳은 바벨의 배다. 경호원들은 전부 바벨의 혈족으로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을 이토록 쉽게 제압하다니. 보통 남자가 아니었다.

“장래가 유망한 새싹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구먼. 꼭 잡초처럼 말이야.”

남자는 파티장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오며 말했다.

2미터는 가뿐히 넘길 듯한 장신에 그에 못지않은 근육질의 몸.

파티장에 있는 모두가 이 남자에게 압도 되었다.

“스승님. 말을 너무 함부로 하고 계십니다.”

“으하하핫 내가 그랬나? 하여간 입방정이 문제야.”

남자는 주둥이를 쭉 내밀더니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때렸다.

그런 남자를 여인이 조용히 흘겨봤다.

남자와 달리 여인은 체구가 무척 작았다. 얼핏 보면 중학생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있어서 더욱 그렇게 보였다.

“다들 왜 이렇게 겁먹은 얼굴이야? 명색이 천공투기장 참가자들께서 이러면 되겠어?”

남자는 낄낄 웃었다. 노골적으로 파티장에 있는 사람들을 깔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손님이 왔는데. 왜 주인이 안 나와? 몇 놈 패버리면 튀어나오려나?”

남자가 근처에 있는 헌터를 쳐다봤다. 헌터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이 남자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십니까.”

그 순간, 권한울이 나섰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남자가 무슨 짓을 저지를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오, 제법 기개 있는 놈이 있었군. 역시 흑천이란 말이지. 이름값을 해.”

남자는 권한울을 곧바로 알아봤다. 권한울은 남자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하지만 실망스럽기도 하군. 요즘 흑천에서는 어린 것들한테 천적의 얼굴도 보여 주지 않는 모양이야.”

오만하게도 이 남자는 흑천의 앞에서 천적을 자처하고 있었다.

“내가 누구냐고?”

하지만 이 남자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었다.

“드래곤슬레이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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