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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139화 (139/221)

<혈통이 깡패임 139화>

139. 군주 (2)

권한울은 머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손이 떨어지자 권찬성의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

“아우…….”

살짝 벌어져 있는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의 권찬성이라면 절대로 내지 않을 소리였다.

“으우아…….”

두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고 얼굴의 모든 근육은 힘없이 풀려 있다.

지금 이 자리에 흑천 일가를 대표하는 헌터 권찬성은 없다.

인간 권찬성만이 남아 있을 뿐.

<‘환수혈(幻獸血)’의 권능을 해제됩니다.> <반(半) 화신체가 해제됩니다.>

권한울의 등 뒤에 떠올라 있던 날개가 사라졌다. 붉게 물들어 있던 두 눈동자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권한울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죽을 거 같네…….”

반(半) 화신체를 사용한 반동이 찾아왔다. 모든 마력이 소진되고, 혈통들도 봉인되었다. 당분간 권한울은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몸이 되었다.

바닥에 앉은 채로 쉬고 있는데.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옮기자 권지석이 보였다.

“……형님께서 지셨구나.”

권지석은 권찬성에게 다가갔다. 권찬성을 향해 말했다.

“형님.”

“……으우?”

권찬성이 천천히 권지석을 돌아봤다. 그 행동에 권지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정신을 파괴했어요.”

그런 권지석을 향해 권한울이 말했다.

“두 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할 겁니다.”

반(半) 화신체의 힘을 모조리 집중했다. 권찬성의 정신에 균열을 일으켜, 찢어 버리고, 흔적도 남지 않도록 파괴했다.

“……왜 형님을 죽이지 않은 거지?”

질책하는 것이 아니었다. 순수한 질문일 뿐이었다.

“죽음보다 더한 벌을 내리고 싶었거든요.”

권한울도 사람인지라 그동안 쌓인 게 꽤 많았다.

“그리고 그쪽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잖아요. 가족인데.”

가족의 입장에서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쪽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요.”

권한울 딴에는 나름 생각해서 한 행동이지만 권지석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다.

사람의 정신을 파괴한 행위는 관점에 따라서는 살해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니까.

“……형님께서는 널 죽이려 하셨다. 그러니 역으로 무슨 일을 당해도 할 말은 없지.”

사실 권지석과 권찬성은 썩 우애가 좋은 형제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보다는 경쟁자에 가까웠다.

권찬성에 비하면 권지석은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다. 자신과 다르게 승승장구하는 형을 보며 권지석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품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야…… 형님께서 살아계시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마음이 놓인 걸 보니까.”

그럼에도 둘은 형제였다. 그 사실을 권지석은 지금 새삼 깨달았다.

“고맙다.”

권지석이 짧게 말했다.

그때였다.

블라가 가문의 혈족들이 권한울의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선두에는 카탈리나 블라가와 원로들이 서 있었다.

“리틀드래곤.”

카탈리나 블라가가 권한울을 향해 말했다.

권한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은 권속혈의 힘을 사용할 수 없다. 만약 카탈리나 블라가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당신이 어떻게 권속혈을…… 그것도 시조님의 힘을 사용하고 있는지는 나중에 물어보도록 하겠어요.”

“나중이라고요?”

“지금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손을 가슴에 붙인 채 고개를 숙였다.

다른 혈족들도 무릎을 꿇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권한울보다 머리를 높게 들고 있는 블라가 가문의 혈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권한울 님.”

카탈리나 블라가의 말투가 변했다. 장난스럽지만 오만함이 느껴지던 어조는 어디에도 없다.

“새로운 진혈께 저희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블라가 가문 전체가 권한울에게 복종했다.

* * *

권찬성이 패배한 것으로 모든 전투가 끝났다.

대부분의 흑기대원들은 권찬성이 진 것을 보고 자진해서 항복했다. 저항하는 이들은 카탈리나 블라가와 원로들이 제압했다.

이로서 짧은 평화가 찾아왔다.

“변명거리가 걱정이네.”

병상에 누운 채로 권한울이 중얼거렸다. 그 소리에 옆에 앉아 있던 카탈리나 블라가가 반응했다.

“갑자기 웬 변명거리세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말씀해 보세요. 제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끈덕지게 졸랐다.

대화거리가 생겼다고 기뻐하는 모습이 마치 꼬리를 치는 애완견을 보는 듯했다.

“권찬성과 흑기대가 왜 저런 꼴이 되었는지 어떻게 해명해야할지 감이 안 잡혀서요.”

당연한 말이지만 외부에 드러난 권한울의 실력으로는 권찬성을 쓰러트릴 수 없다.

이를 설명하려면 권한울이 보유하고 있는 혈통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권한울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블라가 가문을 존속시킬 방법도 생각해야죠.”

카탈리나 블라가가 권한울을 멋대로 납치한 일을 생각하면 그냥 멸문하게 내버려 둬도 시원찮다.

하지만 지금 블라가 가문은 권한울에게 완벽하게 복종하고 있다. 자신의 세력이 되었으니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저희 가문이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깎고 있던 사과를 내밀었다. 열심히 깎기는 했으나 솜씨가 시원찮아서 사과 조각들이 울퉁불퉁했다.

“블라가 가문은 이대로 숨을 생각이거든요.”

권한울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쳐다봤다.

“숨는다고요?”

“흑천 일가에 찍혔는데. 계속 여기 남아 있을 수는 없죠. 잠시 숨었다가 적당한 장소에 다시 터를 잡을 거예요.”

“그래도 가문 전체를 옮긴다는 건…….”

“생각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가문의 중요한 물건들은 전부 아공간에 보관하면 되고, 비상시를 대비해서 미리 봐둔 장소도 있으니까요.”

카탈리나 블라가는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이전에도 여러 번 그런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주인님께서는 비밀을 어떻게 감출지 그것만 고민하세요. 그래야 이 일을 빌미로 권혁 부회장을 실각시키죠.”

아무리 흑천 일가가 혈족 간의 경쟁에 관대하다지만 권혁과 권찬성의 행동은 도를 넘는 일이다.

“권찬성이 보통 거물이 아니라 골치가 아프네요. 어떻게 말해야할지…….”

“그럼 제가 의견을 내도될까요?”

카탈리나 블라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권한울은 한 번 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일단 제가 권한울 님을 납치하고 지배하려고 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거죠.”

“사실이잖아요.”

권한울이 지적했으나 카탈리나 블라가는 못들은 척했다.

“권찬성은 이번 일을 이용해서 흑기대를 이끌고 와서 권한울 님을 죽이려고 했지만 역으로 저와 원로들에게 패배한 거예요.”

“그 시나리오대로면 저는 계속 블라가 가문에 붙잡혀 있어야 하는데요.”

“좀만 더 들어보세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저와 원로들도 기절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거죠. 그 바람에 하위 혈족들이 큰 혼란에 빠졌고…….”

권한울은 카탈리나 블라가의 말에 서서히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권지석 님이 현장을 지위해서 흑기대들에게 권한울 님을 데리고 도망치라는 명령을 내린 거예요.”

권지석은 흑천의 직계 혈족이자 권찬성의 동생이다. 권위를 내세우면 흑기대원들도 별 수 없으리라.

“흑기대원들도 절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던데요.”

“권찬성이 바보가 된 게 너무 충격적이라 다들 깜빡 잊은 거죠. 그 틈에 권지석 님이 권한울 님을 구하라는 명령을 내린 거구요.”

“권지석은 그렇다 쳐도…… 흑기대원들이 순순히 저렇게 말할 리가 없잖아요.”

“무슨 걱정이세요. 여기는 블라가 가문인데.”

카탈리나 블라가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물론 흑기대원 정도 되는 헌터들을 지배하는 건 불가능해요. 하지만 저와 원로들이 나선다면 기억을 왜곡하는 것쯤은 가능해요.”

게다가 권찬성의 패배로 인해 흑기대원들은 모두 기세가 꺾여 있다. 권속혈을 사용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제법 그럴싸한 생각이었으나 걸리는 점이 하나 있었다.

“권지석이 협력해 줄지 모르겠네요.”

“그 사람도 권속혈을 이용해서…….”

“그건 도리가 아니죠.”

권한울은 딱 잘라서 말했다. 권지석은 형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서 목숨을 걸어서까지 권한울을 구하려 했다.

그런 권지석을 권속혈을 사용해서 멋대로 조종하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카탈리나 블라가의 시나리오를 버리는 것도 아까운 일이었다.

“나가야겠어요.”

권한울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팔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지만 걷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어디로 가시려고요?”

“권지석한테 가려고요.”

방을 나서며 권한울이 말했다.

“잘 설명하면 협력해 줄지도 모르짆아요?”

* * *

“그렇게 해.”

설명을 듣자마자 권지석은 냉큼 말했다.

권한울은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정말요? 된다고요?”

“솔직히 말해서 권속혈 같은 걸로 내 머리를 주물럭거리는 게 기분이 나쁘기는 하지만…….”

권지석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있는 그대로 전해지면 나도 아버지한테 죽거든.”

권혁의 계획을 방해한데다 그 연쇄반응으로 권찬성은 백치가 되어 버렸다.

아무리 자식이라 해도 권혁이 권지석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다.

“그렇다고 아버지 앞에서 거짓말을 할 자신도 없고…… 하지만 권속혈로 기억을 완전히 바꿔 버리면 그럴 걱정을 안 해도 되잖아?”

권한울은 말없이 권지석을 바라봤다. 그 시선이 불쾌했는지 권지석이 발끈해서 말했다.

“왜 그딴 식으로 쳐다보는 거야.”

“이렇게까지 절 도와주는 게 신기해서요.”

“뭐? 신기? 이 새끼가 잘해 줘도 지랄이야.”

권지석이 욕을 내뱉었다. 권한울에게는 이 모습이 가장 익숙했다.

“……나는 형님과 아버지의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 흑천 답지 못하다고 생각하거든.”

권지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내 힘으로 아버지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그럴 만한 힘도, 배짱도 없으니까. 그러니 이런 식으로나마 반항하는 거지. 그리고…….”

뭔가를 말하려다가 권지석은 입을 다물었다. 손을 저으며 말했다.

“뭐, 대충 그런 줄 알아.”

“그렇게 하죠.”

“아, 그리고 기억을 완전히 지우면 나한테 죽는다. 나중에 원래대로 되돌려 줘.”

“그거야 어렵지 않죠.”

권한울은 옆으로 물러났다. 뒤에 서 있던 카탈리나 블라가가 앞으로 나섰다.

“뭐, 뭐야. 벌써 시작하려고?”

“시간을 끌면 소용이 없거든요.”

권혁 정도 되는 사람이 일이 정리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계산하지 못할 리가 없다.

늦게 보고를 올리면 역으로 권혁의 의심만 불러오게 된다.

“그쪽은 지금 당장 아버지한테 전화를 해 줘야겠어요.”

“야야,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서두르는 건…….”

“자세한 건 다 블라가 가문에서 알아서 조율해줄 거예요. 그럼 나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어딜 가려고?”

권한울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천공투기장이요.”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 * *

갑자기 스마트폰이 울렸다.

권혁은 발신자를 확인했다. 권지석, 자신의 아들이었다.

“무슨 일이냐.”

스마트폰 너머로 권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 흐음…….”

권혁은 이따금씩 반응을 보였다. 권지석이 하는 이야기에 비하면 너무 건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 알겠다.”

권혁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잠시 입가를 매만졌다.

“실패했단 말이지.”

실패라는 말로 끝내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권찬성은 카탈리나 블라가와의 전투에서 바보가 되고 말았다. 흑기대원는 큰 피해를 입고 후퇴를 했다.

“권한울, 그 아이랑 엮이기만 하면 손해를 보는 것 같군.”

권혁이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볼일은 끝난 게냐.”

낮게 내리깐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혁은 몸을 돌렸다.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대답했다.

“예, 아버지.”

방의 중앙에 놓인 탁자.

그곳에 흑천의 회장 권선우가 앉아 있었다.

“그럼 이제 변명을 해 보아라.”

“정말 너무하시는군요. 이미 다 알고 왔으면서 변명을 하라뇨.”

“그럼 내가 알고 있는 게 모두 진실이렸다?”

권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권한울을 죽이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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