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38화>
138. 군주 (1)
그 광경을 바로보고 있던 모두가 놀랐다.
블라가의 혈족들도, 권속들도, 심지어 흑기대원들까지.
권찬성이 누구던가.
흑천 일가의 직계이자 차차기 후계자로 점지어지는 인물이다.
출신만 대단한 게 아니다. 권찬성이 가지고 있는 천재성과 실력은 역대 흑천의 순혈들 중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뛰어나다.
이미 권찬성의 이름은 전 세계에 퍼져 있으며 모르는 이가 없다. 명실상부한 절대자 중 한 명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런 권찬성이.
다름 아닌 그 권찬성이.
땅에 머리를 박고 있다.
“이런…… 개같은…… 일이…….”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다름 아닌 권찬성이 낸 소리였다.
지금 권찬성은 이가 갈릴 정도로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엎드려 있던 몸을 세우려고 했다.
이십 년을 넘게 다뤄 온 몸이다. 심혈을 기울여서 단련시켜 온 육신은 단 한 번도 그의 기대를 배신한 적이 없다.
그랬던 육신이 지금은 다른 사람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동생, 하나만 물어도 되겠나.”
결국 권찬성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대신 권한울에게 물었다.
“이건…… 권속혈의 권능인가?”
-그렇다.
권한울은 순순히 대답했다. 일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숨겨서 무엇을 하겠는가.
“역시…… 동생은 흑룡혈 이외에 다른 혈통들을 보유하고 있었군.”
본래 혈통이란 하나만 보유할 수 있다. 두 개 이상 보유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있기는 하지만 오래 살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
그럼에도 권찬성은 권한울의 말을 쉽게 받아들였다. 이미 의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아까 전에 동생이 갑자기 강해졌다 싶었어.”
역림선풍에 직격 당했을 때, 권한울은 모든 체력과 마력을 소모하고 패배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별안간 신체를 회복하더니 그것도 모자라서 자신과 대등하게 권합을 주고받기까지 했다.
그때, 권찬성은 흑룡혈이 아닌 다른 혈통의 권능을 느꼈다.
“하지만 동생……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
권찬성의 목소리에 조금씩 분노가 담기기 시작했다.
“어째서…… 내가 권속혈 따위에 굴복하고 있는 거지?”
권한울이 여러 개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그것과 이 일은 별개다.
권속혈의 권능은 강력하지만 사용하기 굉장히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일반인에게는 쉽게 통하지만 헌터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
하물며 권찬성은 헌터들 중에서도 최상급, 격이 다른 존재다.
그런 권찬성에게 권속혈을, 그것도 ‘지배’에 이어서 두 번째로 어렵다는 ‘명령’을 내리고 있다고?
“당장 말해! 내가 묻고 있지 않나!”
결국 권찬성은 굴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분노를 토해 냈다.
-시끄럽군.
그러나 권한울이 새롭게 내린 ‘명령’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해할 수 없지. 원래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권한울은 순순히 그 사실을 인정했다. 권속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권속혈로 환상을 보여 주거나 오감을 속이는 일이라면 몰라도 권찬성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권한울이 보유하고 있는 진(眞) 권속혈로도 말이다.
-하지만 결코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권찬성이 멀쩡했을 때 이야기다.
-권찬성, 역으로 묻겠다. 지칠 대로 지쳐 버린 그 몸으로 권속혈의 권능을 무시할 수 있을 줄 알았나?
권찬성이 싸운 사람은 둘.
블라가 가문의 실질적인 지배자이자 또 다른 절대자인 카탈리나 블라가와 진혈들로 무장한 권한울이다.
비록 두 사람 모두 권찬성에게 패배하기는 했지만 그의 체력과 마력을 크게 소진시키고 숱한 상처를 입혔다.
-오만하군. 지독하리만큼 오만해.
권한울은 쯧쯧 혀를 찼다. 경멸스럽다는 듯이.
-무엇보다 지금 내가 지금 어떤 힘을 사용하고 있는지 아는가?
권한울이 보유하고 있는 권속혈은 진혈이다.
그것도 모자라 그 힘의 근원인 뱀파이어 로드의 반 화신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권한울보다 더 강력한 환상술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르면 닥치고 있어라. 건방 떨지 마라.
권한울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등 뒤의 날개가 신기루처럼 따라붙었다.
권한울은 발을 들어서 권찬성의 머리를 지긋이 밟았다.
-지금 네놈은 내가 밟아 죽일 수 있는 벌레에 지나지 않는다.
그때였다.
권찬성에게서 막대한 마력이 방출되었다. 권한울이 뒤로 밀려날 정도였다.
권찬성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동안 목이 아팠는지. 손으로 목 주위를 매만졌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권찬성의 주변에는 작은 구슬이 떠돌고 있었다. 담천조룡을 막아 냈던 여의주였다.
“동생, 승기를 잡아서 기쁜 건 이해를 하겠다만…… 너무 여유를 부린 게 아닌가? 내가 이 권능을 쓸 시간을 내주다니.”
여의주.
흑룡혈의 권능임에도 권한울은 여의주가 정확히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저 권능은 흑룡혈의 마지막 권능이다. 흑천의 혈족 중에서 흑룡혈의 동화율을 끝까지 올린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렇기에 흑천 일가 내에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다만 한 번 사용할 때마다 대기시간이 필요하며 적의 공격을 무효화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할 뿐.
“그럼 동생…… 내가 당한 굴욕까지 더해서 되갚아 주지.”
권찬성은 용투기를 휘감고 달려들었다. 마치 맹수가 달려드는 듯 했다.
용투기가 맺혀 있는 손날이 권한울의 심장을 노렸다. 단순한 찌르기임에도 무지막지한 기세였다.
“아, 안 돼……!”
카탈리나 블라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권속혈은 정신에 간섭하는 능력은 대단하지만 육신의 능력은 뒤떨어진다.
하물며 지금 권한울은 권속혈의 능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상황이었다. 저 공격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럴게 생각했을 때였다.
-꿇어.
굉음이 울렸다. 땅이 흔들렸다.
꼿꼿이 서 있는 권한울의 앞.
권찬성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게…… 무슨…….”
권찬성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를 향해 권한울이 말했다.
-내가 경고했을 텐데.
권한울은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건방 떨지 말라고.
휘둘러진 주먹이 권찬성의 얼굴을 강타했다.
* * *
별 거 없다.
주먹이 날아오는 모습을 보며 권찬성은 생각했다.
느리고, 주먹에 담긴 기세도 별 볼 일 없다. 흑룡혈의 권능을 사용했을 때보다 훨씬 약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다. 이 정도의 정신지배능력을 사용하고 있는데. 신체능력마저 뛰어날 리가 있겠는가.
‘얼마든지 때려라.’
권찬성은 이미 경지에 오른 몸이다. 마력이 자동적으로 순환하며 신체를 보호한다. 저 정도 주먹이라면 얼마든지 맞아 줄 수 있다.
그러기에 자신 있었다.
얼굴을 얻어맞기 전까지는.
“커억!”
비명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몸이 튀로 튕겨져 나갔다. 권찬성은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다.
콧잔등이 완전히 주저앉아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얼굴 뼈 전체에 금이 가 있었다. 수도꼭지를 열어 놓은 것처럼 코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어, 어떻게…….”
-당연한 걸 묻고 있군.
권한울은 주먹을 탁탁 털며 말했다.
-주인님이 때리는데. 개가 이빨을 드러내서야 쓰나.
주먹을 휘두르는 그 순간, 권한울은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권찬성의 신체가 모든 방어를 해제하도록 말이다.
“……정말 짜증나는군.”
그때, 여의주가 빛났다. 권찬성을 옭아매고 있던 주박이 사라졌다.
권찬성의 몸이 사라졌다. 곧바로 권한울의 등 뒤에 나타났다.
흑룡십이승무 상승형(黑龍十二承武 上乘形)
멸격식 절계(滅格式 絶界)
권찬성이 손날을 내리쳤다. 검은 궤적이 권한울에게 떨어졌다.
-그만.
그러나 권한울이 입을 열자마자 모든 용투기가 흩어졌다.
권한울은 몸을 돌렸다. 동시에 권찬성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컥!”
이번에도 역시나 권찬성의 몸은 모든 방어를 해제한 체 공격을 받아들였다.
권한울의 정강이가 옆구리를 깊이 파고들었다.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권찬성은 옆구리를 붙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내장이 다쳤는지.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여의주가 있는데 어떻게 권속혈의 권능을 사용하고 있는 거냐!”
권찬성이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사실 여의주는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권찬성이 내린 명령이 바로바로 풀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문제는 명령이 통하기는 통한다는 것이다. 권한울이 입을 열 때마다 권찬성의 몸은 그 명령을 따랐다.
-격의 차이.
권한울은 귀찮다는 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권찬성의 얼굴이 멍해졌다.
“감히 배신자의 자식 따위가 내 앞에서 격을 논해!”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로군.
“닥쳐!”
권찬성은 분노를 토해 내며 돌진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권한울의 모습이 사라졌다.
“뭣?”
단순히 모습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감각에 잡히지 않았다.
“대체 무슨 수를……!”
그때였다.
무언가 권찬성의 복부를 강타했다.
“커억!”
내장이 뒤흔들렸다. 한 움큼 피가 터져 나왔다. 그제야 권찬성은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고 있는 권한울의 모습을.
-일단 이건 내가 가문에 처음 왔을 때, 시비를 건 몫이다.
권한울의 모습이 다시 사라졌다. 권찬성은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그 순간, 머리가 크게 뒤흔들렸다. 어느새 나타난 권한울이 권찬성의 머리를 걷어찬 것이다.
-그리고 이건 내가 데뷔전을 치른 던전에 개수작을 부른 몫이고.
다시금 권한울의 몸이 사라졌다. 곧이어 무릎을 걷어차이고 넘어졌다.
“……설마?”
그 순간, 권찬성은 깨달았다.
권한울이 빠르게 움직여서 못 찾아내는 게 아니다. 권속혈로 감각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도록.
“이런 개 같은 일이…….”
여의주가 있기에 금방 해제가 되었으나 있으나 소용없었다.
여의주는 명령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 처음 명령이 통한 그 짧은 시간만 있으면 권한울은 얼마든지 권찬성을 공격할 수 있었다.
-요건 카탈리나 블라가랑 짜고 날 죽이려한 몫.
손날이 쇄골을 찍는다.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이건 가문에서 마주칠 때마다 나한테 시비를 건 몫.
-이건 기어코 블라가 가문까지 쫓아와서 날 죽이려고 한 몫.
-이건 네놈이 죽인 내 권속들의 몫.
쉴 새 없이 얻어맞으면서도 권찬성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설마 그것들을 전부 가슴에 담아 두고 있었다니.
하지만 비웃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사방에서 가해지는 공격이 너무 매서웠다.
설상가상으로 권한울 앞에서 권찬성은 맨몸이나 다름없었다.
전신의 뼈가 으스러지고 근육이 파열되었다. 관절이 꺾여서 부러지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나 얻어맞았을까. 별안간 권한울의 공격이 멈췄다.
“쿨럭.”
권찬성은 피를 토해 내며 쓰러졌다. 이미 그의 몸은 걸레짝이나 다름없이 변해 있었다.
“이제…… 다 끝났나?”
권찬성은 가까스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파열되었다.
-아직 남아 있지.
권한울은 손을 뻗어서 권찬성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동생, 설마 날 지배할 생각인가? 헛짓거리하지 말고 죽이기나 해.”
권찬성은 조소를 흘렸다.
권속혈의 권능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지배의 권능이다.
비록 권찬성이 이렇게 처참한 모습이 되기는 했지만 지배의 권능에 굴복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 생각은 없다.
권한울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지배란 타인을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럼 빨리 죽이기나 하시지.”
살려달라고 구걸하지 않는 모습은 과연 권찬성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권한울은 순순히 죽여 줄 생각이 없었다.
-죽이는 걸로 부족하지.
권찬성은 웃음을 터트렸다. 낄낄 거리며 말했다.
“동생, 설마 고문이라도 하려는 건가? 참 치졸한…….”
-지금부터 네놈의 정신을 파괴하겠다.
권찬성의 눈동자가 커졌다.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너는 지금부터 지성을 잃은 채 백치로 살게 될 거다.
권찬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권찬성이, 그 대단하다던 권찬성이.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굴욕적인 일이었다.
“이, 이 개새끼가……!”
권찬성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나마 멀쩡한 왼팔로 권한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잔말하지 말고 죽여! 죽이란 말이다!”
-말했을 텐데.
권한울은 권속혈의 권능을 일으켰다.
-죽이는 걸로는 부족하다고.
막대한 에너지가 권찬성의 머리로 집중되었다.
이윽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