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37화>
137. 창과 창 (4)
그 순간, 용투기가 방출되었다. 마치 파도가 몰려오는 듯이 엄청난 양이었다.
용투기가 권강을 막아섰다.
빛과 검은 파도.
둘은 한참을 시름하다가 동시에 사라졌다.
“헉…… 허억…….”
권찬성은 주먹을 뻗은 자세 그대로 숨을 헐떡였다.
권강을 막아 내기는 했으나 멀쩡하지는 않았다. 뻗고 있는 주먹은 피부가 완전히 벗겨져서 피투성이였다. 갑자기 많은 마력을 소모한 탓에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였다.
-역시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군.
그 모습을 바라보며 권한울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기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절대적인 힘이다. 하지만 권한울이 만들어낸 권강은 완벽하지 않다. 아수라왕의 권능으로 구현해 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완전하다 해도 권강은 권강이다.
“쿨럭.”
권찬성은 피를 토해 냈다. 카탈리나 블라가에게 입은 상처 때문이 아니었다. 권한울의 권강을 막아 내느라 내상을 입은 것이다.
“이해할 수가 없어…… 어떻게 권강을…… 그것도 이 정도 급의…….”
권찬성은 연신 피를 토해 냈다. 믿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권강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역사적으로도 손꼽을 만큼 적다.
그걸 권한울이 구현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동생이 두르고 있는 기운들은 뭐지? 흑룡혈의 힘이 아니야. 그건…….”
권찬성은 잠시 말을 멈췄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말했다.
“수라혈…… 아니야, 초인혈…… 그것도 아니고…….”
권찬성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쓸데없는 질문이로군.”
언제부터였을까. 권찬성의 숨소리가 안정되어 있었다. 더 이상 피를 토하지도 않았다.
그 짧은 시간동안 회복을 한 것이다. 권한울처럼 건강혈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면서.
“지금은 어떻게 해야 동생을 죽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겠지.”
권찬성이 용투기를 끌어올렸다. 처음 싸울 때와 똑같이 강대한 기운이 사방으로 퍼졌다.
권한울은 미미하게 감탄했다. 권강을 막아내고 버틴 것도 모자라서 기운마저 쇠하지 않았다니.
-과연, 쉽지 않군.
권한울도 용마기를 일으켰다. 검은 오러가 들불처럼 사방으로 번졌다.
둘은 서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질 수 록 두 사람의 기운이 서로 충돌하며 거친 소리를 냈다.
어느새 코가 맞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권찬성은 힐끔 권한울의 주먹을 쳐다봤다.
“권강은 쓰지 않을 생각인가?”
-남발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서.
“나한테는 다행이군.”
별안간 권찬성이 주먹으로 복부를 올려쳤다. 권한울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처음과 달리 날아가지 않았다. 두 발로 선 채로 버텨 냈다. 몸을 둘러싼 금강기가 공격을 막아 낸 것이다.
“……동생, 갑자기 단단해진 것 같은데?”
권찬성이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권한울은 대답하는 대신에 주먹을 들어올렸다.
뒤로 뺀 주먹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권찬성의 안면에 정통으로 틀어박혔다.
권찬성의 머리가 튀로 튕겨져 나갔다. 권찬성은 곧바로 머리를 원래 자리로 되돌렸다.
“설마 날 휘청거리게 만들 줄이야!”
권찬성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권한울도 똑같이 응수했다.
두 사람은 쉴 새 없이 부딪혔다. 두 주먹이 허공에서 얽혔다. 서로의 급소를 몇 번이고 강타했다.
공격이 이어질 때마다 굉음이 들려왔다. 보는 사람이 질릴 정도로 무서운 난타전이었다.
“하핫!”
권찬성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흑천의 본능이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싸울 맛이 나는 전투는 오랜만이야!”
그때였다.
권한울의 주먹에 모여든 용마기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주먹을 내지르자 권강이 번쩍였다.
“동생! 위험한 짓을 벌이는군.”
권찬성의 두 눈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명명안을 사용한 것이다.
권찬성은 허리를 틀어 권강을 피했다. 동시에 주먹을 움켜잡으며 몸을 돌렸다.
권한울의 팔을 어깨에 걸쳤다. 그대로 권한울의 땅으로 업어 치려고 했다.
그때, 그림자가 권찬성을 스치며 지나갔다. 권한울이 팔이 붙잡힌 채로 허공으로 뛰어오른 것이다.
“뭐?”
분명 뒤에 있어야 할 권한울이 눈앞에 있었다.
그제야 권찬성은 보게 되었다. 권한울의 안광 역시 보라색이라는 것을.
천리용안(天理龍眼)
진(眞) 흑룡혈의 보유자만이 습득할 수 있는 권능.
그 능력은 명명안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덕분에 권찬성의 술수를 모조리 꿰뚫어봤다.
권한울은 붙잡혀 있던 팔을 역으로 잡아당겼다. 권찬성의 몸이 휙 딸려왔다.
그 가슴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신체 내부에서 용마기를 발화시켯다.
묵염(墨炎)
권한울의 손끝이 폭발한다. 비명소리와 함께 권찬성의 몸이 날아갔다.
“끄아아악!”
묵염의 파괴력으로 권찬성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는 없었다.
하지만 권찬성의 몸을 보호하고 있던 마력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권한울!”
권찬성은 분노를 토해내며 땅을 박찼다. 권한울을 죽일 생각으로만 머릿속이 가득 찼다.
그러나 다음 순간, 권찬성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권한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 때문이다.
주변의 모든 마력이 권한울에게 모여들고 있었다.
모여든 마력은 용마기로 전환되었다. 전환된 용마기는 양손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며 맞물린다. 그 흐름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힘에 권찬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그건…….”
권찬성의 머릿속에 어떤 영상이 떠올랐다. 권찬성이 브라질에서 호세 딜 파블로와 싸울 때, 마지막에 사용했던 그 기술.
권한울은 두 주먹에 담긴 힘을 한꺼번에 해방시켰다. 방출된 용마기가 어떤 형상을 이루었다.
현룡승천공 종극(玄龍昇天功 終極)
절기 담천조룡(絕技 談天雕龍)
검은 용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권찬성을 향해 낙하했다.
* * *
-후우…….
권한울은 숨을 헐떡였다. 그만큼 마력소모가 심했다.
하지만 결과는 확실했다. 흑룡이 떨어진 자리에는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환수혈(幻獸血)’의 권능을 해제됩니다.> <반(半) 화신체가 해제됩니다.>
반 화신체가 풀리며 권한울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죽겠네.”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반 화신체를 사용한 반동은 굉장히 컸다.
마력이 한톨도 남아 있지 않은데다 모든 혈통이 봉인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되겠지만 그 전까지 권한울은 꼼짝없이 일반인이었다.
“야, 인마!”
권한울이 자리에 앉아서 쉬고 있자니 권지석이 달려왔다.
기껏 달려와 놓고 권지석은 말을 잇질 못했다.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가득한 얼굴로 권한울을 쳐다볼 뿐이었다.
“너 진짜…… 아니 정말…….”
권지석은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권한울이 역으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사과를 해야겠네요.”
“뭔 사과?”
“눈앞에서 형님을 죽였잖아요.”
권지석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형님은 널 죽이려고 했어. 역으로 당한다고 해도 할 말은 없지.”
원망은 하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과연 흑천다운 대답이었다.
“돌아가자.”
권지석이 손을 뻗었다. 권한울은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리틀드래곤!”
별안간 누군가 권한울을 끌어 앉혔다. 갑작스러웠으나 누군지는 곧바로 눈치챘다.
“……카탈리나 블라가.”
“맞아요. 저에요!”
“알겠으니 이것 좀 놓으십쇼.”
반(半) 화신체의 반동으로 모든 힘을 잃은 권한울은 카탈리나 블라가를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카탈리나 블라가는 의외로 순순히 권한울을 품에서 떼었다.
“절 구해 주시다니! 역시 당신도 저한테 마음이 있었던 거죠?”
“뭔 개소리를…….”
“쉿.”
카탈리나 블라가가 검지를 세웠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어요.”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이만 놓으…….”
그때였다.
흑룡이 내리꽂힌 자리에서 엄청난 마력이 방출되었다.
세 사람은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구덩이를 쳐다봤다. 잠시 후, 구덩이에서 튀어나왔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군.”
권찬성이었다.
* * *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그 물음에 권찬성은 입가를 비틀었다.
“내가 동생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나?”
권찬성은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작은 구슬을 가리켰다.
“그 이유가 이것 때문이지. 이게 뭔지 아나? 흑룡혈의 마지막 권능이다.”
흑룡혈의 권능은 모두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을 꼽으라면 가장 마지막에 습득할 수 있는 이 권능이었다.
“여의주(如意珠)”
용을 상징하는 기물.
흑룡혈의 마지막 권능은 여의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설마 동생에게 여의주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어.”
여의주는 서서히 빛을 잃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건 그렇고…… 더 이상 싸울 여력이 없는 것 같군?”
권찬성의 눈빛에 살기가 떠올랐다. 그 순간, 카탈리나 블라가가 튀어나갔다.
아공간에서 커다란 도끼를 꺼내서 권찬성을 내려찍었다. 그러나 도끼가 내려찍힌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슬리는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찬성은 카탈리나 블라가의 몸을 걷어찼다.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상처를 치료할 수 없을 만큼 지친 주제에 나한테 달려들어?”
권찬성은 경멸어린 어조로 말한 뒤 몸을 돌렸다.
“혀, 형님.”
권찬성은 권지석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다신 손을 휘둘러 권찬성을 날려 버렸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더 이상 권찬성을 막을 사람은 없었다.
“이제 혼자 남았군.”
권찬성의 입가가 비틀렸다. 그런 권찬성을 바라보며 권한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미리 도망치지 그랬나.”
권찬성의 조롱에 권한울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진지하게 날 이길 생각이었나? 동생 따위가? 아직 세계랭커조차 아닌 주제에?”
권찬성의 목소리에는 미미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어떤 맹수든 토끼에게 물리면 똑같은 반응을 보였으리라.
“십 년…… 아니, 삽십 년은 이르다.”
권찬성이 손을 들어올렸다. 주먹을 중심으로 용투기가 휘몰아쳤다.
“뼛조각 하나 남가지 않고 갈아 주지.”
권한울은 한 번 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권한울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흑요석으로 만든 약병을 하나 꺼냈다.
“암리타?”
권찬성은 그 약병을 곧바로 알아봤다.
아무 조건 없이 능력치 하나를 SS급까지 상승시켜 주는 희대의 비약.
권찬성도 이전에 섭취해 본 적이 있었다.
“그걸로 뭘 어쩌겠다는 거냐?”
그렇기에 잘 알고 있었다. 저걸 섭취한다 해도 권한울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물론 SS급 능력치는 대단하다. 단, 하나만 있어도 누구든 상대할 수 있을 만큼.
하지만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뭘 어쩌긴.”
권한울은 암리타를 들이켰다. 약의 기운이 몸 전체로 퍼지는 게 느껴졌다.
“매듭은 지어야 할 거 아니야.”
<‘암리타’를 섭취하셨습니다.>
권한울은 다음에 떠오를 메시지를 기다렸다.
<혹은 신체를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신체를 회복시키겠습니까?>
망설임 없이 두 번째 메시지를 선택했다. 퍼져 있던 암리타의 기운이 모조리 흡수되었다.
외상, 내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상처가 회복되었다. 체력과 마력이 끝까지 차올랐다.
<흑룡혈이 권능을 회복합니다.>
<초인혈이 능력을 되찾습니다.>
<수라혈이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환수혈이 깨어납니다.>
<권속혈이…….>
암리타 덕분에 회복된 것은 상처와 마력뿐만이 아니었다. 반 화신체의 사용으로 봉인되어 있던 권능들까지 다시 힘을 되찾았다.
“암리타 정도 되는 영약을 겨우 그런 용도로 사용하다니…….”
권한울이 모든 힘을 회복했으나 권찬성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한 번 더하면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나? 어리석은 발상이로군.”
전투를 거듭하며 권찬성은 지치고 상처를 입었다.
그럼에도 권찬성과 권한울의 격차는 컸다. 심지어 권한울도 또 싸운다고 해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좋다. 한 번 더 네놈을 꺾어 주지.”
권찬성이 살기를 일으켰다. 엄청난 기운이 밀려 들어왔다.
“무시무시하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권한울은 주변을 둘러봤다.
방금 전, 전투의 여파 때문에 멀쩡한 건물이 없었다. 전부 파괴되어 있었다.
파괴된 잔해 사이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블라가 가문의 혈족과 권속들이 이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볼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날뛰었으니 주목을 받는 게 당연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권한울은 권속혈의 권능을 발휘했다.
권한울이 발산한 기운이 섬 전체로 퍼졌다. 권한울을 지켜보고 있던 모든 혈족들이 그 기운에 노출되었다.
-이게 뭐지?
-설마 저 사람이 한 짓인가?
블라가 가문의 혈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흑천의 혈족인 권한울이 권속혈의 권능을 쓰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말도 안 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카탈리나 블라가가 역시 경악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녀가 놀란 이유는 조금 달랐다.
“시조님?”
오래 전에 느껴봤던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아, 들리십니까.”
마력에 의해서 증폭된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시선이 모여드는 게 느껴졌다.
“내가 저 새끼 두들겨 패는 모습은 잘 지켜보셨습니까.”
권찬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권한울은 할 말을 계속했다.
“자잘한 설명은 나중에 하겠습니다.”
권찬성이 눈앞에 있는데 설명을 할 시간은 없었다.
“살고 싶으면 나한테 복종하세요.”
그 말과 동시에 권한울은 지배의 권능을 발휘했다.
* * *
권속혈로 누군가를 지배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그건 블라가 혈족이나 권속을 지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성공적으로 지배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요소가 필요했다.
그 요소를 권한울은 권찬성과의 전투로 채웠다.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줬다.
나라만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강대한 혈족이 굴복합니다!>
<권속이 굴복합니다!>
<혈족이 굴복합니다!>
<권속이…….>
다행히 권한울의 의도는 정확히 먹혀 들어갔다.
무수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그 속에서 권한울은 자신이 원하던 메시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권속혈의 권능이 크게 강화됩니다!> <권속혈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됩니다!> <권속혈의 동화율 65% -> 77%> <‘뱀파이어 로드’의 반(半) 화신체를 구현하기 위한 특수 조건을 모두 만족합니다!> <순혈 지배 : 10/10>
<상위 권속 지배 : 20/20>
<일반인 지배 : 30/30>
몸속에 있던 자물쇠 하나가 풀려나오는 듯 했다. 처음 느껴보는 어떤 존재가 기지개를 켰다.
그 힘을 느끼며 권한울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군주(君主).”
권한울의 발밑에서 붉은 마력이 솟아올랐다. 마치 피로 된 분수를 보는 듯 했다.
별안간 분수가 반으로 갈라졌다. 피막이 달린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이건 또 무슨 깜짝쇼인지 모르겠군.”
권찬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확실히 놀라운 광경이기는 하지만…… 그것뿐이군.”
뱀파이어 로드의 반(半) 화신체를 눈앞에 두고도 권찬성은 조금도 겁먹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오히려 흑룡혈의 힘을 썼을 때가 더 강했던 것 같은데?”
지금 권한울에게 느껴지는 기운은 방금 전보다 한참 뒤떨어졌다.
그렇기에 권찬성은 이를 쇼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공작이 깃털을 부풀려서 포식자를 위협하는 깜짝쇼.
“마지막에 와서 부리는 게 허세라니. 한탄스럽군.”
권찬성은 마력을 일으켰다. 용투기가 그의 몸을 둘러쌌다.
“이만 죽여주지.”
그런 권찬성을 향해 권한울은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꿇어.
단 한 마디.
그게 흘러나온 순간, 권찬성이 일으킨 용투기가 모조리 사라졌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두 무릎이 땅에 닿아 있었다.
권찬성은 혼란스러웠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바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접착제라도 발라 놓은 것처럼 무릎이 떨어지지 않았다.
-머리 박아.
별안간 세상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윽고 흙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권찬성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땅에 머리를 대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