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36화>
136. 창과 창 (3)
검은 폭풍이 권한울을 휘감는다.
지면에 있던 모든 것을 날려 버린다. 하늘에 닿아서 구름을 찢는다.
카탈리나 블라가는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 손가락을 땅에 박아 넣어야 했다.
이윽고 폭풍이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바람이 흩어지며 권한울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마에 솟아난 두 개의 뿔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전신은 검은 불길과도 같은 마력에 휩싸여 있었다. 그 사이로 보라색 안광이 번쩍였다.
“……리틀드래곤?”
카탈리나 블라가는 자신도 모르게 권한울을 불렀다.
그러나 권한울은 그녀의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권찬성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게 동생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진혈의 권능이로군.”
권찬성은 아주 천천히 권한울의 전신을 살펴봤다.
“영상으로만 봤을 때는 몹시 궁금했지. 과연 저 권능은 얼마나 강할까.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권찬성은 잠시 말을 멈췄다.
“이건 기대 이상이군.”
그리고 입 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대단해. 아직 경지에 오르지 못한 자가 이만한 기운을 가질 수 있다니. 정말 무서운 권능이야.”
권찬성의 얼굴에 희열이 떠올랐다. 흑천의 혈족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호승심이 불현듯 고개를 처든 것이다.
“동생, 한수 양보해 주지.”
권한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가볍게 땅을 박찼을 뿐인데 순식간에 권찬성의 코앞에 도달했다. 동시에 주먹을 내질렀다.
권찬성은 팔뚝을 교차해 주먹을 막아 냈다. 그 순간, 오러가 터지며 권찬성을 집어삼켰다.
“묵직하구나!”
권찬성이 환희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놀랍게도 생체기 하나 없이 멀쩡했다.
이번에는 권찬성의 주먹이 권한울의 복부를 강타했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지며 주변의 사물들을 뒤흔들었다. 권한울의 몸이 뒤로 밀려 나갔다.
하지만 충격은 크지 않았는지. 권한울은 곧바로 땅을 박찼다. 하늘 높이 뛰어오른 뒤, 한쪽 발을 높이 쳐올렸다.
“오오?”
위에서 아래로 발꿈치가 일직선으로 내리꽂힌다.
권찬성은 팔뚝을 쳐들어 막아냈다. 미처 받아 내지 못한 충격이 다리를 타고 지면으로 퍼졌다. 권찬성을 중심으로 지면이 가라앉았다.
“힘과 속도는 제법이군. 그럼 이제 기술은 어떨지 볼까?”
권찬성은 팔뚝에 힘을 줘서 권한울의 다리를 밀어냈다. 권한울은 허공에서 몸을 한 바퀴 돌리며 땅에 착지했다.
권찬성은 주먹을 쥐고 용투기를 끌어 모았다. 권한울도 재빨리 용마기를 일으켰다.
“하압!”
기합소리와 함께 권찬성이 주먹을 내질렀다. 엄청난 양의 용투기가 방출되었다.
흑룡십이승무 상승형(黑龍十二昇武 上乘形)
기격식 승룡권(氣擊式 昇龍拳)
권한울 역시 주먹을 뻗었다. 용마기가 폭발했다.
현룡승천공 상승형(玄龍昇天功 上乘形)
기격식 승룡권(氣擊式 昇龍拳)
두 마리의 흑룡이 나타났다. 서로를 물어뜯기 위해서 아가리를 벌렸다. 그리고 입이 다물어지는 순간, 권한울의 흑룡이 소멸해 버렸다.
흑룡이 소멸하며 용마기가 폭발했다. 그 여파로 권찬성의 흑룡도 사라졌다. 충돌지점은 폭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새까맣게 그을렸다.
“쿨럭.”
별안간 기침 소리가 들렸다. 권찬성은 입에서 피를 뱉어냈다.
“아, 동생. 오해하지 마. 이건 동생 때문에 입은 상처가 아니니까.”
-알고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권찬성의 눈동자가 커졌다.
“동생, 말을 할 수 있었어? 그보다 알고 있었다고?”
-그쪽은 지금 카탈리나 블라가한테 입은 내상 때문에 정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권한울이 괜히 덤벼든 것이 아니었다.
비록 승리하기는 했으나 권찬성은 카탈리나 블라가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체력적으로도 많이 지쳤으며 내상도 상당했다.
달리 생각하자면 권찬성은 카탈리나 블라가 정도 되는 거물과 싸우고 난 이후에도 권한울을 상대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정말 괴물같은 인간이었다.
“날 이해해 주다니. 이거 고맙군.”
권찬성은 입가의 피를 닦아 내며 대꾸했다.
“만약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다른 흑기대원이었으면 동생을 이기지 못했을 거야.”
권찬성이 용투기를 일으켰다. 용투기가 나선 모양의 띠가 되어 양팔에 휘감겼다.
나선의 띠는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고막이 찢겨나가는 듯이 거친 소리가 사방에 퍼졌다.
“하지만 싸워 보니 알겠군. 동생은 강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
권한울은 뭐라 대꾸할 수 없었다. 권찬성의 팔에 휘감긴 나선에게서 느껴지는 섬뜩함 때문이었다.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이번에는 권찬성이 먼저 움직였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움직임을 놓칠 만큼 빠른 속도였다.
“일단 한 번!”
늑골을 향해 주먹이 날아들었다. 권한울은 팔꿈치로 그 주먹을 내려찍었다.
그 순간, 권한울의 팔꿈치가 튕겨져 나갔다. 팔에 두르고 있는 나선의 띠가 권한울의 팔꿈치를 밀어낸 것이다.
-컥!
권찬성의 주먹이 늑골에 틀어박혔다. 권한울은 비명을 토해내며 뒤로 밀려났다.
“두 번!”
권찬성은 그런 권한울에게 따라붙으며 주먹을 내질렀다. 권한울의 팔을 들어서 주먹을 막아 냈다.
분명 공격을 막아 냈음에도 불구하고 전신에 충격이 퍼진다. 뼈가 아리고 내장이 뒤흔들렸다.
막아서는 안 된다.
권한울은 그 사실을 직감했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현룡승천공 상승형(玄龍昇天功 上乘形)
기격식 용성후(氣擊式 龍聲吼)
한껏 들이마신 공기를 토해 냈다. 증폭된 소리가 정면을 휩쓸었다.
그러나 권찬성은 없었다.
권한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용성후를 준비하는 그 찰나의 순간, 시야에서 사라진다고?
“내가 말했잖나.”
그때,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생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황급히 고개를 위로 올렸다. 그보다 먼저 권찬성이 주먹을 내리꽂았다.
흑룡십이승무 상승형(黑龍十二昇武 上乘形)
멸격식 역림선풍(滅擊式 易林旋風)
팔에 휘감겨 있던 나선의 띠가 해방되었다.
해방된 용투기는 공기와 섞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회색 소용돌이가 권한울을 집어삼켰다.
* * *
시간으로 따지면 10초는 지났을까.
잠깐 동안 일어난 회색 소용돌이는 지면을 갈아 버린 뒤에야 사라졌다.
안 그래도 파괴되고, 망가지고, 그을렸던 땅은 소용돌이에 의해서 완전히 갈아엎어졌다.
그 중심부.
누군가 무릎을 꿇은 채 피를 토해 내고 있었다.
“허, 살아 있었군.”
권찬성은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소용돌이에 휘말리고도 권한울은 살아 있었다. 기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싸울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이마의 두 뿔은 부러져 있다. 몸을 뒤덮고 있던 검은 불길은 모두 날아갔다. 불길이 모두 걷히고 드러난 검은 갑각은 온통 거미줄 같은 금이 가 있었다.
-쿨럭, 쿨럭.
기침을 할 때마다 피가 터져 나왔다. 마치 생명력을 토해내는 것처럼 선홍빛 피였다.
“형체가 남아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목숨까지 붙어 있다니…….”
권찬성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승자임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권한울을 쳐다봤다.
“아버지의 안목이 맞으셨군. 너는 위험한 놈이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빨리 치워 버려야 할 정도로.”
권찬성은 손을 들어 올렸다. 용투기를 손안에 압축시켰다.
“동생, 그럼 잘 가게나.”
권찬성은 압축된 용투기를 집어던지기 위해서 자세를 잡았다. 한쪽 발을 들고 손을 뒤로 뺐다. 그대로 팔을 휘두르려던 찰나였다.
-역시.
줄곧 피만 토해 내던 권한울이 입을 열었다.
-강하군. 하긴 흑천의 후계자라 불리던 사람이 쉽게 져서는 안 되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권한울은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크게 웃었다.
“죽을 때가 되니 미친 모양건가?”
권찬성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더 미치기 전에 빨리 보내 주도록 하지.”
그리 말하며 권찬성은 온힘을 다해서 용투기를 집어던졌다.
용투기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권한울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그 순간, 권한울이 손바닥을 펼쳤다.
날아오는 용투기를 움켜잡았다. 다섯 손가락이 용투기를 뭉개버렷다. 그 직후, 용투기가 폭발했다.
검은 오러가 일대를 완전히 휘감았다. 그러나 권한울은 멀쩡했다.
“……어떻게 막아 냈지?”
권찬성이 믿기 힘들다는 듯이 말했다.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주제에 어떻게 저 공격을 막아 냈단 말인가.
-흑천의 혈족이 그런 걸 물으면 안 되지.
권한울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흐릿했던 안광이 어느새 다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런 혈통을 타고났는데.
혈통이란 각기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흑룡혈은 그 성질이 과도한 전투 욕구로 드러나곤 했다.
<‘흑룡혈(黑龍血)’이 분노합니다!> <당신에게 승리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흑룡혈이 가장 활발하게 반응할 때가 바로 강적과 싸울 때였다.
아니, 강적과 싸워야만 흑룡혈은 힘을 내주었다.
<‘흑룡혈(黑龍血)’의 동화율이 상승합니다!> <동화율 44% -> 47%>
동화율이 상승하자 흑룡혈의 힘이 강해진다. 이는 곧바로 반 화신체에 영향을 끼쳤다.
<‘흑룡혈(黑龍血)’이 더욱 분노합니다!> <‘흑룡혈(黑龍血)’의 동화율이 상승합니다!> <동화율 47% -> 52%>
<새로운 권능이 개방됩니다!>
동화율이 40%일 때는 권능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50%를 넘기는 순간, 새로운 권능에 눈을 떴다.
“……그래, 흑룡혈이란 그런 혈통이었지.”
권찬성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 역시 느끼고 있었다. 지금 권한울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하지만 그래봤자 동생은 날 이길 수 없어.”
권찬성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흑룡혈의 동화율이 상승하기는 했으나 권찬성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때였다.
권한울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용(龍)의 반(半) 화신체가 성장합니다.> <신체가 반(半) 화신체에 적응합니다!>
성장.
그 순간, 잠들어 있던 혈통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건강혈’이 눈을 뜹니다!>
<극심한 외상과 내상을 감지합니다!> <모든 회복력이 +500% 상승합니다!>
권한울의 육신에 나 있던 실금이 모조리 사라졌다. 부러졌던 뿔이 다시 돋아난다.
육신 뿐만이 아니었다. 바닥이 나 있던 마력이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초인혈’이 깨어납니다!>
<권능 ‘패왕성(霸王星)’이 발휘됩니다. 모든 신체능력이 증폭됩니다!> <권능 ‘금강기(金剛氣)’가 당신의 몸을 보호합니다!>
물방울과도 같은 기운이 권한울을 둘러쌌다. 초인혈의 가장 대표적인 권능인 금강기가 다시 권한울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수라혈(修羅血)’이 정신을 차립니다!> <‘아수라왕(阿修羅王)’이 존재감을 되찾습니다!>
권한울은 손톱을 세웠다. 자신의 이마를 시작으로 선을 내리그었다.
<‘아수라왕(阿修羅王)'이 눈을 뜹니다.> <일시적으로 신체능력이 강화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30%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저항력이 증가됩니다! 모든 저항력의 수치가 100을 달성합니다.> <일시적으로 기술이 증가됩니다! 모든 무기를 전문가 이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선을 따라서 붉은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 흑색과 적색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너…….”
권찬성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거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이냔 말이다!”
권한울은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주먹을 쥘 뿐이었다.
움켜쥔 주먹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권찬성은 멍한 얼굴로 그 빛을 쳐다봤다.
“설마? 말도 안 돼. 너 따위가 어떻게 그걸!”
권한울이 주먹을 내질렀다.
권강(劍罡).
그 찬란한 빛이 권찬성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