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31화>
131. 격차 (1)
흑천이라는 이름에 두 혈족의 몸은 바짝 굳었다.
도망을 치든 싸우든 선택을 해야 했으나 두려움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뭐야 왜 가만히 있어?”
권지석은 두 혈족을 쳐다보며 물었다. 하지만 두 혈족은 감히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흥.”
권지석은 짧게 혀를 찼다. 손을 휘적거리며 말했다.
“꺼져.”
그 말에 두 혈족은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싸울 마음도 없는 놈들을 죽여서 뭐 해? 빨리 꺼지기나 해.”
두 혈족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동시에 등을 돌려 정착되어 있던 보트로 도망쳤다.
하지만 둘은 배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없었다.
누군가가 둘의 앞을 가로 막았기 때문에다.
하늘에서 떨어진 남성은 양손을 뻗어 두 사람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어?”
두 사람의 머리가 그대로 뜯겨 나갔다.
반응할 틈도, 고통스러워할 시간도 없이 두 목숨이 사라졌다.
남성은 머리통 두 개를 멀리 내던졌다. 그런 뒤, 권지석을 돌아봤다.
“내가 말했을 텐데. 적한테 동정을 베풀지 말라고.”
남성의 핀잔에 권지석의 얼굴이 굳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죽일 필요는…….”
“멍청한 놈.”
남성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아버지께서 다시 널 받아들일 때 뭐라고 말씀하셨지? 지금부터 손에 피를 묻힐 각오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들고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딴 한심한 말을 하는 거냐.”
권지석은 고개를 푹 떨궜다. 이윽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잘못했습니다.”
“사과 따위는 필요 없다.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 그게 네가 아버지께 받은 은혜를 갚을 길이다.”
현재 권지석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 상태였다.
모든 능력치는 S급에 각종 스킬과 유물들로 무장했다. 그 덕분에 방금 전처럼 다이아 등급의 몬스터를 일격에 처리할 수 있었다.
전부 아버지인 권혁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반드시 명심해라.”
남성, 권찬성이 권지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분명 사람의 손이건만 권지석은 쇳덩어리처럼 차갑다고 느꼈다.
그때였다.
저 멀리, 블라가 가문이 있는 방향에서 미끈한 날개를 가진 거대한 새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윙커터? 다이아 등급의 몬스터잖아?”
권찬성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일렀다.
하늘뿐만이 아니라 바다에서도 큰 덩치를 가진 어인들이 자맥질을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킹머메이드. 역시 다이아 등급의 몬스터였다.
“이게 블라가 가문의 힘이로군. 제법이야.”
블라가 가문의 권능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봤으나 놀라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이아 등급의 몬스터는 본래 국가 급의 위기로 분류될 만큼 위험한 놈들이다.
그런 몬스터를 한두 마리도 아니고 무리 째로 지배하고 있다니.
“아아, 들리나?”
권찬성은 귀에 착용하고 있던 무선 이어폰을 작동시켰다. 이어폰을 통해서 수십 명이 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립니다. 몬스터들을 섬멸할까요?
“저런 놈들한테 시간을 뺏길 수는 없지. 모두 기다려라.”
권찬성이 손날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어깨에서 시작된 용투기가 팔뚝과 손날을 휘감았다.
흑룡십이승무 상승형(黑龍十二承武 上乘形)
멸격식 절계(滅格式 絶界)
높이 쳐든 손날을 힘껏 내리친다. 그와 동시에 하늘과 바다가 좌우로 갈라진다.
수직으로 내려그은 손을 다시 수평으로 휘두른다. 이번에는 하늘과 바다 사이에 검은 선이 그어진다.
검은 십자가가 하늘과 땅을 네 개로 나누었다. 이윽고 검은 십자가가 사라졌을 때, 몬스터들은 단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지워졌다.
“간단하군.”
권찬성은 손을 탁탁 털었다. 권지석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형이 엄청난 실력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수백 마리가 넘는 몬스터들을 단숨에 몰살시킬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장애물은 치웠다. 다들 돌진하라.”
부대원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권지석도 그들을 따라서 움직이려 했다.
“지석아.”
그때, 권찬성이 그를 불러 세웠다.
“아버지와 했던 약속을 명심해라.”
이곳에 올 때, 권지석은 권혁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그건 권찬성의 계획을 최선을 다해서 도울 것.
아버지에게 받은 지원은 전부 그 약속의 대가였다.
“……알겠습니다.”
권지석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권한울을 찾으면 먼저 형님한테 알리겠습니다.”
* * *
“……흑천이 도착했다고요?”
블라가 가문의 심부에 있는 처소.
카탈리나 블라가는 전령이 가져온 소식을 듣자마자 의문을 떠올렸다.
“이상하네요. 이렇게 빨리 찾아낼 수 있을 리가 없는데.”
흑천의 정보력은 뛰어나다. 하지만 블라가 가문의 정보조작능력과 은폐력은 그보다 더 뛰어나다.
앞으로 일주일은 더 있어야 흑천이 가문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을 줄 알았건만.
“흑천을 너무 얕잡아 봤나 보네요. 흑천의 전력은 어떻죠? 전황은요?”
“아직 전력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해안에서 1차 방어선이 흑천을 막고 있는 중입니다!”
다이아 등급의 몬스터가 수백 마리.
그 정도로 흑천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은 끌 수 있으리라.
카탈리나 블라가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고민에 빠졌다.
“메뉴얼대로 비전투인원은 모두 대피시키세요. 나머지 혈족과 권속들은 모두 전선에…….”
그때였다. 전령 한 명이 문을 들이박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얼마나 다급하게 달려왔는지 온몸이 흙투성이에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다.
“크, 큰일 났습니다!”
전령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흐, 흑천이 본가에 도착했습니다!”
카탈리나 블라가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 그리고! 그리고……!”
산소가 부족한지 전령은 손으로 목을 긁어내렸다. 하지만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흑천의 지휘관이 누군지 확인됐습니다!”
“……그게 누구죠?”
“권찬성 입니다!”
카탈리나 블라가의 눈동자가 커졌다. 말을 잇질 못하는 그녀를 대신해서 전령이 소리쳤다.
“흑천의 최강 중 한 명이 왔단 말입니다!”
정지해 있던 머리가 다시 회전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든 의문은 어째서 권찬성이냐는 것이었다.
메이 가문의 잔당을 쫓는 일 때문에 권명우가 자리를 비우기는 했지만 흑천에는 뛰어난 헌터들이 많다.
그런데 왜 하필 권찬성이란 말인가?
“……설마?”
권한울의 얼굴과 불길한 예감이 동시에 떠올랐다. 카탈리나 블라가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K.”
-하명하십시오.
“모든 카발리에르 움브라에게 전하세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흑천을 막으라고요.”
* * *
“끄아악!”
“으아아악!”
블라가 가문의 영지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갑자기 들이닥친 흑천의 헌터들이 건물을 파괴하고, 혈족들을 학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 살려 줘!”
“으아아악!”
흑천의 헌터들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였다. 쉴새없이 피가 터져 나왔다.
블라가 가문이라고 해서 저항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막아! 막으라고!”
“죽이란 말이야!”
블라가 가문을 지키는 권속들과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블라가 가문의 전력은 수백이 넘었으나 흑천의 전력은 스무 명 남짓이었다.
하지만.
“끄아아악!”
막는 것은 고사하고 학살 속도를 멈추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악마들이야.”
팔이 잘려나간 블라가 혈족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악마들이…… 브, 블라가 가문을 며, 멸문하러 왔어…….”
말이 끝나자마자 혈족의 머리를 터졌다.
* * *
‘대체 그 새끼는 어디에 있는 거야.’
격렬한 전투 속에서도 권지석은 주변을 살피는데 여념이 없었다.
‘형님보다 먼저 권한울을 찾아야 하는데.’
권지석이 찾는 대상은 권한울이었다. 공을 세우기 위함이 아니었다. 알려야 할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 자식!”
그때, 건물 뒤에서 블라가 가문의 혈족 한 명이 튀어나왔다. 권지석을 향해 손을 뻗고 권능을 발현했다.
“환상에 파묻혀서 죽어라!”
하지만 권지석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혈족의 복부에 주먹을 받아 넣었다. 혈족은 속에 있던 음식물을 토해내며 쓰러졌다.
“바빠 죽겠는데.”
권지석은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때, 혈족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걔…… 걔들만 오면…… 너희들 따위는 전부 죽을 거다! 이 악마 같은 자식들아!”
권지석의 걸음이 멈췄다. 패배자의 넋두리라고 치부하기에는 묘하게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
“그래! 걔들…… 카발리에르 움브라만 오면……!”
혈족이 소리를 쳤을 때였다. 등 뒤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졋다.
권지석은 황급히 몸을 돌렸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누군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넌 또 뭐야.”
남성은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K.”
권지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남자가 다시 말했다.
“카발리에르 움브라다.”
* * *
권지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흑천에 있을 때, 가끔 들어봤다. 블라가 가문에 있는 어떤 집단에 대해서.
흑천의 내로라 하는 헌터들조차 경계할 정도로 강력한 괴물들.
그 이름은 분명 카발리에르 움브라였다.
“K!”
블라가의 혈족이 반색을 하며 소리쳤다. K라는 남성은 시선조차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빨리 도망치십시오.”
“아, 알겠어!”
혈족은 허겁지겁 자리를 벗어났다. 그가 떠나자 권지석과 K만 남았다.
“……카발리에르 움브라는 기사단이라고 들었는데. 나머지는 어디 갔지?”
“이미 전장으로 향했다. 지금쯤 너희 흑천을 도륙하고 있을 거다.”
그 말에 권지석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도륙? 권찬성의 팀원들을 도륙?
“지금 날 비웃을 때가 아닐 텐데.”
K가 망토를 벗었다. 그러자 가죽 갑옷을 걸친 몸이 드러났다.
동시에 가려져 있던 K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 순간, 권지석은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K의 기운이 너무 강렬한 탓에 마치 태양을 보는 것처럼 눈이 따가웠다.
아버지의 지원으로 강해지기는 했지만 자신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이 남자와 싸울 수 없다. 싸우는 건 고사하고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때였다.
“격이 맞지 않는 상대로 놀면 무슨 재미입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지석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권찬성이 서 있었다.
* * *
“형님……?”
권지석이 놀라서 말했다. 권찬성은 권지석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가서 네 할 일을 해라.”
권지석은 망설이면서도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자신이 있어봤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찬성.”
K가 나지막이 말했다. 권찬성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대선배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날 알고 있나?”
“예, 저희 아버지와 천공투기장에서 결승전에서 맞붙으셨던 크리스 벤 선배님이 아니십니까.”
줄곧 무뚝뚝했던 K의 얼굴에 변화가 생겼다.
“……권혁의 자식인 네 입에서 내 이름을 듣게 될 줄은 몰랐구나.”
“저도 선배님을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더블넘버링의 자리에 오르신 이후, 던전을 공략하다가 실종되셨다고 들었는데…….”
권찬성의 눈빛이 변했다.
“설마 카탈리나 블라가 따위의 명령을 듣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K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카탈리나 블라가 님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하하핫! 설마 진심으로 카탈리나 블라가를 따르고 있던 겁니까? 아버지께 말씀드리면 꽤 즐거워하시겠군요.”
계속 되는 도발에 K의 얼굴에 살기가 떠올랐다. 권찬성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꼴에 자존심은 남아 있으신 모양이군요.”
“새파랗게 어린놈이 못하는 말이 없군.”
“선배님의 그 한심한 몰골을 보면 누구나 저처럼 말이 많아질 겁니다.”
K의 살기가 폭발했다. 권찬성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살기를 받아 냈다.
“지금 당장 네놈의 입을 꿰매 주마!”
“어이구, 무섭군요. 창년의 살갗이나 주무르던 손으로 제 입을 꿰매시겠다고요?”
결국 K는 참지 못하고 등에 매달고 있던 두 자루의 장검을 빼들었다.
자줏빛 오러가 쌍검을 휘감았다. 빛을 응축시킨 것처럼 눈이 부셨다.
“이노옴!”
K의 몸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권찬성의 어깨를 향해 쌍검을 내리쳤다.
그 순간, 피가 터져 나왔다.
“……쿨럭.”
K는 기침을 터트렸다. 시선을 내리자 권찬성이 내지른 관수가 자신의 가슴에 꽂혀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 어떻게…….”
분명 먼저 칼을 내리친 사람은 자신이었다. 칼이 어깨에 닿을 때까지 권찬성은 움직이질 않았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나서 보니 권찬성의 관수가 자신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멍청한 새끼.”
권찬성이 경멸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창녀한테 홀려서 시간을 허비한 주제에 날 어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권찬성이 K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K는 입과 코에 피를 토해 내며 절명했다.
가슴에서 손을 뽑아냈다. K의 몸이 허물어졌다.
K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권찬성이 짧게 말했다.
“시시하군.”
* * *
권지석은 권찬성이 있던 자리에서 재빨리 도망쳤다.
귀퉁이를 돌 때였다. 별안간 누군가 권지석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큭!”
권지석은 재빨리 상대방의 손을 쳐내며 거리를 벌렸다.
“이번에는 또 어떤 새끼…….”
권지석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네…… 네가 여기 왜 있어?”
“그건 내가 물어볼 말 아닙니까.”
눈앞의 상대.
권한울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