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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129화 (129/221)

<혈통이 깡패임 129화>

129. 보이지 않는 틈새 (3)

권한울을 처음 봤을 때, 시몽 블라가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이게 소문으로만 듣던 그 권한울이로군.’

권한울에 대한 일화는 많이 들었다. 그가 어떤 활약을 했는지.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두 들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천공투기장에 참가한다는 것은 이제 겨우 세 개의 능력치만 S급을 달성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강자들의 세계에서 본다면 아직 새싹이 돋아난 수준에 불과했다.

겨우 그런 능력치로 그 많은 활약을 했다니.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이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그러나 직접 보고 깨달았다.

권한울이라는 남자가 얼마나 대단한 실력자인지. 내면에 어떤 폭발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지.

사실 시몽 블라가는 무력이 굉장히 뛰어난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남들의 몇 배가 넘는 세월을 살아왔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무수한 강자를 만나고, 겪어 왔다.

그렇기에 권한울의 진짜 실력을 꿰뚫어볼 수 있었다.

권한울은 진정한 세계 랭커라 불리는 트리플 넘버링의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진혈이란 원래 이렇게 대단한 것인가?’

시몽 블라가는 자신의 내면에 떠오른 의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진혈이란 전설과도 같다. 진혈들이 쌓아올린 위업은 찬란하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다.

그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진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강해질 수 있는 것인가?’

진혈은 본적이 없기에 속단할 수 없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도 권한울의 실력은 과할 정도로 대단했다.

‘카탈리나 님께서 집착하실 만하군.’

진혈이라는 희귀성과 젊은 나이에 이 정도의 성취를 이뤘다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카탈리나 블라가가 흑천과 맞서면서까지 소유하고 싶어할 만했다.

지금 당장 시몽 블라가만 하더라도 권한울을 가지고 싶다는 탐욕을 느낄 정도였으니까.

‘내가 얻을 방법은 정말 없는 건가?’

시몽 블라가는 탐욕을 느꼈다. 어떤 식으로든 좋다. 카탈리나 블라가와 흑천의 분쟁을 이용해서 권한울을 자신의 손에…….

“이봐요.”

권한울의 한 마디가 시몽 블라가의 상념을 끊어놓았다.

정신을 차린 시몽 블라가는 섬뜩함을 느꼈다.

내가 방금 전에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카탈리나 블라가를 그렇게 쉽게 배신하려고 했다고?

“한 대만 때리면 내가 이기는 거라고 했죠?”

“정확히는 본인의 몸에 스치기만 해도 자네가 이기는 것이라 했지.”

“생각해 보니 내기에 뭘 걸지를 정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권한울은 방금 전 얻어맞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어차피 날 굴복시키기 위해서 왔다면서요? 그럼 자질구레하게 굴지 맙시다.”

권한울이 확실하게 말했다.

“이 내기에서 패배한 사람이 승리한 사람에게 순응하는 겁니다.”

시몽 블라가의 눈동자가 게슴츠레해졌다.

원래 계획은 권한울의 자존심과 자의식을 꺾음으로서 조금씩 정신력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이렇게 나오는데 굳이 먼 길을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좋네.”

시몽 블라가는 아공간을 열어서 낡은 두루마리를 꺼냈다.

두루마리를 펼치자 정체모를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는 게 보였다.

“영혼의 계약서라는 유물일세. 간단히 말하자면 서로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키게 하는 유물이지.”

강력한 유물이지만 그만큼 사용조건이 까다로워서 꺼내지 않았다.

상호동의는 물론이고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강압이 가해졌다면 유물은 효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시몽 블라가는 엄지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양피지에 피로 지장을 찍었다.

“받게나.”

권한울은 시몽 블라가가 던전 두루마리를 잡았다.

계약서를 펼치자 괴문자가 한글로 변하기 시작했다.

시몽 블라가가 방금 전에 말한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권한울도 똑같이 방식으로 지장을 찍었다. 지장을 찍자마자 두루마리는 불타오르며 사라졌다.

“이제 무를 수 없다네.”

“잔말 말고 시작하죠.”

권한울이 주먹을 쥐었다. 그 모습을 보며 시몽 블라가는 비웃음을 지었다.

‘뭔지는 몰라도 묘안을 찾은 모양인데…….’

권한울은 지금까지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살아남았다.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찾아낸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신 있게 나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권한울이 상대하는 남자는 시몽 블라가다. 몇백 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왔으며 온갖 인간들을 상대해 왔다.

무슨 짓을 하든 통하지 않는다.

‘이것으로 권한울은 나의 것이다.’

시몽 블라가의 마음속에서 탐욕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로서 최초로 권한울을 지배하는 사람은 시몽 블라가가 되었다.

이를 잘 이용하면 카탈리나 블라가를 속이고 자신이 권한울을 손에 넣을 수도 있었다.

그때, 권한울의 몸에서 검은 오러가 피어올랐다. 검은 오러는 순식간에 방안을 가득 채었다.

“오호…….”

이렇게 막대한 양의 용투기를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굉장한 장관이었다.

감탄을 마치기도 전에 권한울이 움직였다. 허공을 미끄러지듯 날아왔다.

천공비로(天空飛路)

제 1차로 독주(獨走)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휘몰아쳤다. 엄청난 기세에 시몽 블라가의 몸마저 흔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시몽 블라가는 조금도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어차피 권한울이 상대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시몽 블라가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권속혈의 권능이 권한울을 휘감았다.

“하압!”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권한울이 연신 권격을 날렸다.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용투기가 터지며 폭발한다. 섬뜩할 정도로 대단한 위력이었다.

시몽 블라가는 한걸음 뒤에서 권한울의 전투를 지켜봤다.

“소용없는 짓이야.”

시몽 블라가는 환상 속 자신을 조종했다. 환상 속의 시몽 블라가가 권한울의 복부와 턱을 연달아 걷어찼다.

“컥!”

권한울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환상에 얻어맞았음에도 놀랍게도 권한울의 턱이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강대한 환상은 사람의 인식마저 왜곡시키는 법.

사람의 몸에 상해를 입히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권한울은 다시 환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다시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권한울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짐승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지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법이지.”

시몽 블라가는 응접실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느긋하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때, 어깨에 무언가 얹혀졌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손이 보였다. 위로 올라가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권한울.

그가 의자 뒤에서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허엇?”

시몽 블라가는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환상과 싸우고 있는 권한울이 보였다.

다시 위를 쳐다봤다. 어깨를 붙잡고 있는 권한울이 보였다.

“이, 이게 대체……!”

권한울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환상과 싸우고 있던 권한울이 사라졌다.

시몽 블라가의 눈동자가 빠질 듯이 커졌다.

“화, 환상? 어, 어떻게…… 흐, 흑천의 혈족이…… 그, 그보다 어, 어떻게 날 속일 정도로…….”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요.”

권한울이 시몽 블라가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약속한 대로 내가 이겼습니다.”

시몽 블라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이, 이놈! 본인이 너 같이 새파랗게 어린놈에게 굴복할 성 싶더냐!”

아직 계약이 이행되지 않았다. 그전에 권한울을 처리하면 무효로 돌릴 수 있다.

“본인에게 굴복하라!”

시몽 블라가의 등 뒤로 수십 명의 기사가 나타났다.

환상을 통해서 만들어난 병사였으나 우습게 볼 자들이 아니었다. 시몽 블라가가 지금까지 겪어 봤던 강자들을 모델로 구성한 병사들이었기 때문이다.

“가라!”

병사들이 권한울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계약의 내용이 이행됩니다.>

온몸의 혈액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시몽 블라가에게 엄습했다. 시몽 블라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신음했다.

“끄아아악!”

유물의 강제력이 시몽 블라가의 행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어……!”

“없기는.”

코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한울이 서 있었다.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잖아.”

권한울이 반지를 착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반지를 낀 손으로 시몽 블라가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익숙한 기운이 피부를 비집고 틀어왔다. 시몽 블라가는 경악했다.

권속혈의 지배력이었기 때문이다.

“마, 말도 안…….”

하지만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시몽 블라가의 눈앞에 암전되었다.

* * *

“후우.”

권한울은 시몽 블라가의 머리를 놓았다.

“역시 원로답군.”

색욕의 반지 덕분에 권능이 강화되었음에도 지배하는데 엄청난 정신력을 소모했다. 권한울이 다 지칠 정도였다.

“계약서가 아니었으면 절대로 불가능했겠어.”

당연한 말이었다. 시몽 블라가는 무력이 뛰어나지 않았지만 그만큼 강력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다.

권한울이 위화감을 느낄 틈도 없이 환상을 부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계약서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방금 전처럼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주지 않았더라면 시몽 블라가를 지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강대한 혈족을 지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불가능한 일을 성공시켰습니다!>

<권속혈의 권능이 크게 강화됩니다!> <권속혈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됩니다!> <권속혈의 동화율 50% -> 60%> <구현화의 특수 조건이 일부 만족합니다.> <새로운 권능을 습득합니다.>

내면에 있는 권속혈이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본래 동화율이란 수치가 올라갈 수 록 상승시키기 힘들다. 50%에서 10%나 상승하다니. 시몽 블라가가 거물이라는 게 새삼 실감이 났다.

“으, 으윽.”

그때, 시몽 블라가가 눈을 떴다. 권한울을 발견하고는 바로 엎드렸다.

“이 비천한 종이…… 인사를 드립니다.”

누군가 이 광경을 봤다면 두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수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고 지배하는 블라가 가문의 원로가 스스로 종을 자처하다니.

“카탈리나 블라가가 정확히 무슨 일을 명령했는지 말하세요.”

시몽 블라가는 곧바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고했다.

“흑천이 전쟁을 선포했다고요?”

“그렇습니다.”

권한울은 조금 당황했다. 흑천이 자신을 구하러 올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 전쟁까지 선포했을 줄은 몰랐다.

“날 지배한 뒤, 돌려보내서 전쟁을 막을 생각이었다니…….”

권한울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권속혈의 지배력은 실로 대단하다. 아마도 블라가 가문은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이런 식으로 복잡한 일을 해결했겠지.

“시몽. 나는 이 가문을 탈출하려고 합니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주인님의 소망을 이뤄드리겠습니다.”

시몽 블라가는 부복하며 말했다. 더할 나위 없는 충절이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권한울은 뭔가를 고민하느라 그런 시몽 블라가의 행동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줄이야.’

시몽 블라가의 힘을 빌리면 탈출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뭔가가 조금 아쉬웠다.

“앞으로 다른 원로들이 날 찾아온다 이거죠?”

“그렇습니다.”

권한울은 갈등했다.

이대로 탈출할 것인가. 아니면…….

권한울은 다시 권속혈의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 고민하다가 말했다.

“시몽.”

“하명하십시오.”

“누가 찾아올 건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낱낱이 정리해서 가져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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