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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125화 (125/221)

<혈통이 깡패임 125화>

125. 지배 (1)

“으어어어…….”

어두운 방 안.

여러 명의 사람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모두 복부를 움켜잡은 채 신음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끄, 끄으아아악!”

그때,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방의 한 가운데에 누군가 얼굴을 붙잡힌 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날 죽이겠다더니. 전부 별 볼 일 없는 놈들이었네.”

권한울이 시시하다는 듯이 말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비명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만! 제발 그만!”

“그럼 나한테 복종하시던지.”

권한울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서 고문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생각보다 이 남자의 심지가 강해서 권속혈로 지배할 수 없기에 고통을 가할 뿐이었다.

“끄아아악!”

비명소리가 극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권속이 권속혈에 굴복했습니다.> <권속혈의 영향력이 강화됩니다.> <권속혈의 동화율 42% -> 46%> <구현화의 특수 조건이 일부 만족됩니다.> 그제야 권한울은 남자의 머리를 놓았다. 남자의 몸에서 힘이 탁 풀렸다.

“일어나라.”

권한울의 말에 남자뿐만 아니라 다른 권속들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방금 전까지 카탈리나 블라가에 대한 애욕으로 가득했던 얼굴이 지금은 권한울을 갈구하고 있었다.

“내 능력이지만 소름끼치네.”

사람의 감정을 이렇게 쉽게 바꿀 수 있다니. 실로 섬뜩한 능력이었다.

“너희들의 주인으로서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다.”

그 말에 권속들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권한울의 살해 계획에 동참했을 정도니 이들은 모두 카탈리나 블라가의 권속들 중에서도 상당한 위치에 있을 것이다.

이들을 지배했으니 그만큼 권한울이 할 수 있는 일들도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이들을 데리고 무엇을 할지는 나중에 고민할 일이었다.

지금은 시킬 일이 따로 있었다.

“일단 이 방부터 청소해라.”

권한울이 전투 때문에 엉망이 된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권속들은 재빨리 행동을 시작했다.

“방은 얘들한테 맡겨 놓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거대한 기운이 하나 남아 있었다.

“마저 정리하러 가 봐야겠군.”

권한울은 창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 나갔다.

바닥에 착지하자 거대한 기운의 정체가 보였다.

“아, 실패했구나.”

레빗.

그녀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냥 조용히 죽어 주지. 그럼 피차 편했을 텐데.”

레빗이 발끝으로 땅을 탁탁 찍었다. 그럴 때마다 조금씩 땅이 깊게 파이기 시작했다.

“이해가 잘 안되는군. 날 죽이면 카탈리나 블라가가 가만히 놔두지 않을 텐데.”

“네가 여기 처음 와서 잘 모르는구나. 권속끼리 서로 죽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 카탈리나 님의 밑에 있는 권속들은 더 그렇지.”

레빗은 발을 한시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탁탁, 거슬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리고 카탈리나 블라가 님도 그걸 딱히 막지 않으셔. 어찌 보면 정기적인 행사라고 할 수 있지. 기존의 권속들은 카탈리나 님에 대한 사랑을 다시 증명하고, 새로운 권속은 카탈리나 님을 사랑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는 행사 말이야.”

권한울은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정신 나간 행사가 있는 건 둘째 치고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나는 진혈이다. 제법 희귀한 수집품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도 카탈리나 블라가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래, 네 말대로 카탈리나 님이 가만히 계시지 않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레빗의 발소리가 멈췄다. 더 이상 발끝으로 땅을 파지 않았다.

“카탈리나 블라가 님이 이 일로 분노하셔도 상관없어. 우리를 모두 증오해도 상관없어. 설사 자살을 명하셔도 상관없어.”

레빗의 목소리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대신 기이한 광기가 엿보였다.

“카탈리나 블라가 님의 총애를 빼앗기는 것보다 나으니까.”

그러니 권한울을 죽이고 자신들도 죽겠다.

미친 놈들이 따로 없었다.

“아직 제대로 통성명을 한 적이 없었지? 나는 카발리에로 움브라 소속의 기사 레빗이라고 해.”

권한울의 얼굴에 흥미가 떠올랐다.

카발리에로 움브라.

카탈리나 블라가의 최정예 권속들만 모여 있는 기사단.

“그렇게 강해 보이지는 않는데.”

“트로이 아저씨랑 비교해서 하는 말이지? 그 아저씨야 오랫동안 기사단 소속이었고 나는 요번에 막 들어왔거든.”

카발리에르 움브라라고 모두 트로이처럼 경지에 발을 들인 강자는 아닌 모양이었다.

“너 지금 나랑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지?”

레빗의 얼굴에 사나운 미소가 떠올랐다. 새하얀 이가 섬뜩하게 빛났다.

권한울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래.”

레빗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 착각을 뒤집어 줘야겠네.”

파놓은 땅에 발을 끼워 넣었다. 두 다리를 굽혔다.

그 순간, 두 다리의 근육이 팽창했다. 옷이 찢어지며 거대해진 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다리가 땅을 박찼다. 레빗의 몸이 총알처럼 날아왔다.

엄청난 속도였다.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현룡승천공 기본형(玄龍昇天功 基本形)

호격식 조각(護擊式 爪角)

권한울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팔꿈치로 머리 위를 막아 냈다.

위에서 아래로.

엄청난 충격이 권한울의 몸을 강타했다. 발을 딛고 있던 땅이 폭삭 주저앉을 정도였다.

레빗은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리고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막았네?”

의외라는 듯 레빗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권한울은 공격을 막아냈던 팔을 털었다.

“기프트의 소유자였군.”

권한울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수라혈과 천재혈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였다.

게다가 정면으로 올 줄 알았던 공격이 머리 위에서 들이닥쳤다.

권한울이 파악하지 못한 변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맞아.”

레빗이 땅에서 콩콩 뛰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땅바닥이 물결처럼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떤 곳이든 탄성을 가지게 되지. 나한테 세상은 거대한 트렘펄린이나 마찬가지지.”

그제야 방금 전 공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윤곽이 그려졌다.

기프트를 이용해서 돌진력을 강화하고 권한울에게 도달하기 직전, 한 번 더 기프트를 사용해서 몸을 허공에 띄운 것이다.

기프트는 천재성 그 이상이라더니 저런 일도 가능할 줄은 몰랐다.

“폼으로 카발리에르 움브라가 된 게 아니었군.”

“폼? 이 능력이 그렇게 보였다니. 섭섭하네.”

레빗이 살짝 뛰었다. 그녀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떨어지지 않았다.

두 발이 허공에서 콩콩 뛰고 있었다.

“내 기프트는 땅이 아니라 허공에도 적용이 되거든.”

골치 아프군.

권한울은 레빗을 보며 생각했다.

방금 전에 보여 줬던 전투 방식을 생각하면 레빗은 각력을 집중적으로 훈련한 헌터였다.

거기에 허공을 박찰 수 있는 기프트라니. 얼마나 변칙적인 공격을 해 올지 몰랐다.

“호잇.”

레빗이 허공을 박찼다. 권한울이 서 있는 곳까지 날아왔다.

연달이 허공을 박찼다. 발을 구를 때마다 레빗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 * *

허공을 마구 뛰어다니며 레빗은 권한울의 빈틈을 엿봤다.

마음 같아서는 속도로 찍어 누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경험이 말해줬다.

첫 번째 공격을 막아 낸 것을 보면 이 남자는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마리아 산체스를 상대로 버텼다더니 거짓말이 아니었나보네.’

다른 권속들처럼 그녀 역시 권한울의 소문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리아 산체스가 어떤 존재던가. 산체스 가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혈족이자 최연소 판데모니엄 의원이 된 여인이다.

레빗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녀를 이길 자산이 없었다. 아니, 이길 자신은 고사하고 살아남을 자신조차 없었다.

‘내 움직임을 보려고? 안 될 걸.’

권한울의 두 눈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권한울의 두 눈이 레빗을 쫓는 것보다 그녀가 움직이는 게 더 빨랐다.

레빗이 허공을 밀어냈다. 권한울의 등 뒤로 이동했다.

‘지금이다!’

레빗은 오러를 일으켜 두 다리를 휘감았다. 온 힘을 다해서 권한울을 향해 돌진했다.

이번에는 직선으로 돌격했다. 이대로 권한울의 허리를 걷어차서 두 동강을 내려했다.

그때, 권한울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빠른데.”

레빗은 권한울의 혼잣말을 무시했다. 그보다는 지금 공격을 성공시키는 게 더 중요했다.

“생각해보니 굳이 쫓아갈 필요가 없잖아?”

그때, 레빗은 보았다. 권한울의 두 눈이 붉게 물드는 광경을.

그 순간,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레빗의 몸은 관성을 잃고 땅에 툭 떨어졌다.

“뭐, 뭐야…….”

레빗은 다리로 땅을 딛고 일어났다.

별안간 땅이 젤리처럼 무너졌다. 다리가 땅을 파고들었다. 몸이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이, 이게 대체…….”

온 세상이 젤리로 변해 있었다. 일어나려고 해도 발을 디딜 수 없었다. 레빗은 젤리의 세상에서 허우적거렸다.

“사, 사람 살려…….”

급기야 젤리가 사방에서 몰려왔다.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였다. 레빗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팔다리를 휘저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붉게 물들었던 세상은 다시 원래 색을 되찾았다. 젤리로 변했던 땅은 다시 단단함을 되찾았다. 레빗은 흙 위에 누워서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레빗은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녀의 앞에 서 있는 권한울만 아니었더라면.

“1분밖에 안 썼는데. 효과 끝내주네.”

권한울이 레빗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레빗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권한울!”

땅에서 뛰어오르며 권한울의 머리를 올려 찼다. 오로지 권한울의 머리를 터트리는 것에만 모든 감각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레빗이 발을 뻗는 것보다 권한울이 주먹을 내려치는 게 더 빨랐다.

용마기에 둘러싸인 주먹이 레빗의 얼굴을 강타했다.

* * *

권한울은 주먹을 탁탁 털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발밑에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레빗이 누워 있었다.

“간단하네.”

방금 전, 권한울이 사용한 것은 권속혈의 권능인 환상향이었다.

환영을 보여주는 권능으로 이번에 처음 사용해 봤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대단했다.

마지막으로 레빗을 지배하기 위해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역으로 레빗이 권한울의 손목을 붙잡았다.

“권…… 한…… 울……!”

증오로 가득한 눈동자가 권한울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만큼은……! 절대……! 카탈리나 님께……!”

“응?”

“내가 왜 이러는지! 너는! 이해 못하겠지! 너는 앞으로 그분의 사랑을 독차지할 테니까!”

레빗의 목소리는 분노와 울음으로 가득했다.

“그분께서 다른 권속만 아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뭐라는 거야.”

권한울은 귀찮다는 듯 레빗의 손목을 휙 쳐냈다.

“이봐, 내가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그깟 관심 난 필요 없어.”

그 말에 레빗의 얼굴이 잠시 멍해졌다.

“뭐, 뭐라고?”

“너희들이나 그 여자한테 목을 메는 거지. 내 입장에서는 그냥 내 일을 방해하는 개 같은 여자거든.”

“카탈리나 님을 욕하지 마!”

권한울의 얼굴에 짜증이 떠올랐다. 하여간 이 놈의 권속들은 제정신인 놈들이 없었다.

“너는 몰라! 그 분께서 얼마나 자비로운…….”

권한울은 손을 뻗어 레빗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알고 싶지도 않아.”

반항하려는 그녀를 향해 권속혈의 권능을 사용했다.

<권속이 권속혈에 굴복했습니다.> <권속혈의 영향력이 강화됩니다.> <권속혈의 동화율 46% -> 50%> <구현화의 특수 조건이 일부 만족됩니다.>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새로운 권능이 개방됩니다!>

“오?”

권한울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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