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17화>
117. 이름 (1)
전투가 끝나고도 권한울을 비롯한 일행들을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최대한 빨리 흑천 일가로 귀환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명우의 전용기가 부서진 상황.
다행히 고민은 금방 해결됐다. 미스트리 도시에서 비행기를 제공해 준 것이다.
“미스트리 도시에서 이런 비행기를 내주다니. 똥줄이 타기는 했나 보구나.”
비행기 안에서 권명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권한울이 대꾸했다.
“뭐, 그럴 수밖에 없죠. 자기들 때문에 이 사단이 났잖아요.”
“그건 그렇지.”
비행기를 내주면서 미스트리 도시의 주요 간부들이 모두 나와서 사죄를 했다.
마크 골드픽시가 산체스 가문과 결탁을 하는 바람에 습격을 받은 것이라고 고백하며 말이다.
“그 멍청한 놈. 그깟 명성에 눈이 멀어서 산체스 가문과 손을 잡다니.”
“그러게 말이에요.”
권명우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권한울도 그 말에 동의했다.
실제로 산체스 가문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마크 골드픽시를 인질로 삼아서 온갖 폭거를 저지르지 않았던가.
“마음 같아서는 미스트리 도시를 뒤엎어버리고 싶지만…….”
권명우가 관자를 긁적이며 말했다.
“놈들이 저렇게 숙이고 나오는데다 보상까지 약속했으니.”
권명우가 순순히 넘어가는 것으로 보아 미스트리 도시가 내놓은 보상이 보통 대단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이번에는 다들 잘해 줬다.”
권명우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산체스 가문 놈들이 덤벼들 때는 가소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솔직히 너희들이 걱정이었단다.”
권명우가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이번 습격은 위험했다.
산체스 가문이 보낸 헌터들 모두 실력과 악명이 대단한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버티기만 해도 잘한 건데. 설마 모두 승리할 줄은 몰랐다.”
권명우의 얼굴에 뿌듯함이 드러났다.
“모두 살려서 돌려보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 말에 이번에는 다른 일행들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특히 가엘 가르시안. 너는 적이 죽은 걸 제대로 확인했어야 하지.”
“면목 없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권명우는 이 일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뭐 나도 놈들을 살려줬으니 할 말은 없다만.”
권명우부터가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문득 권명우의 시선이 권한울에게 향했다. 그 순간, 권명우의 입 꼬리가 꿈틀거렸다.
“그리고 요놈! 요요 건방진 놈!”
대뜸 권명우가 양팔로 권한울을 껴안았다.
“마리아 산체스를 후퇴할 때까지 버텨? 이 정신 나간 놈! 정말 대단하구나!”
권명우가 이렇게 기뻐할 정도로 마리아 산체스는 대단한 인물이엇다.
이긴 것도 아니고 후퇴할 때가지 버텼다는 것만으로 권명우가 크게 기뻐할 정도로 말이다.
“작은 할아버님. 숨 막힙니다.”
“좀만 참아라, 이놈아!”
권한울의 항의에도 권명우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기뻐하고 있었다.
“흑천 일가의 역사상 너 같은 놈은 한 명도 없었다! 요놈! 아무리 진혈이라지만 마리아 산체스를 상대로 버티다니!”
사실 권한울은 마리아 산체스를 상대로 버틴 정도가 아니라 패배시켰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권한울이 마리아 산체스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초인혈 덕분이다.
그렇기에 버텼다고 말하는 쪽이 더 자연스러웠다.
“드세요.”
그때, 두 사람의 앞에 주하연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권한울은 주하연을 향해 감사를 표했다.
“아, 하연 씨 감사해요.”
그런데 주하연의 반응이 이상했다. 권한울의 인사를 듣기도 전에 몸을 돌려서 사라진 것이다.
묘하게 쌀쌀 맞은 반응에 권한울은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마리아 산체스한테 져서 그러나?’
권한울은 이내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그가 알고 있는 주하연은 절대 그런 일로 삐질 인간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약속하셨던 대로 메이샤오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그때, 메이홍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그렇지. 가는 길에 말해준다고 했었지.”
어젯밤, 귀환을 결정했을 때, 권명우는 사안이 급하니 자세한 내용은 가는 길에 주겠다고 했다.
전용기에 탑승하자마자 산체스 가문의 습격을 받아서 이야기가 미뤄졌다.
“어제 말한 대로 메이샤오의 손에 베인 호프를 비롯한 흑천의 혈족들이 다수 살해당했다.”
메이샤오의 이름이 거론되자 메이홍의 눈동자에 살기가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베인 호프가 이끄는 무명 부대 하나와 흑기대(黑旗隊)라 부르는 유명 부대 두 개가 모두 몰살당했지.”
“유명 부대도 몰살당했단 말입니까?”
권한울은 놀란 얼굴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무명대와 달리 유명대는 흑천의 진짜 전력이라 평가받을 만큼 막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
유명대마저 몰살을 당하다니. 보통일이 아니었다.
“사실상 유명대 두 개가 몰살당했다고 봐야지. 베인 호프는 애초에 무명대에 있을 실력이 아니었거든. 그 휘하에 있는 수하들도 마찬가지였고.”
권명우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 그런데 어, 어떻게 습격을 당한 건가요?”
권후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권명우는 곧바로 답했다.
“두 부대가 협력하여 던전 하나를 클리어하고 나오는 순간, 습격을 당했다고 하더구나.”
“그, 그럴 수가…… 더, 던전 공략 직후에 습격을 당했다는 건…….”
“내통자가 있다는 뜻이겠지.”
그 말에 권후돈의 얼굴이 굳었다. 반면 권명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뭘 놀라고 그러느냐. 원래 덩치가 큰 동물에는 기생충이 많이 꼬이는 법이란다. 배신자는 이전에도 꽤 많았단다.”
다만.
권명우가 진지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번처럼 위협적인 적과 결탁한 사례는 처음이지.”
권명우는 팔짱을 꼈다.
“아마 지금쯤 흑천 일가에서는 이 일을 놓고 회의를 하는 중일 게다. 원래 나도 참가했어야 했는데. 산체스 가문 놈들 때문에…….”
쩝.
권명우가 입맛을 다시며 덧붙였다.
“아마 형님께서는 메이 가문의 잔당을 처리하기 위한 추격대를 결성하실 게다.”
추격대라는 말에 메이홍이 반응했다. 권명우가 혀를 차며 덧붙였다.
“꿈 깨라. 그런 위험한 놈을 처리하는데. 널 데려갈 리가 있겠느냐.”
권명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메이홍은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 그런데요…….”
권후돈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되면 명명전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일행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권명우가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뭐…… 미뤄지지 않겠느냐?”
* * *
“잠정적으로 결정이 된 모양이군.”
권선우가 원로들을 향해 말했다.
오늘만큼은 화상 회의가 아니라 모든 원로들이 직접 흑천 일가에 모여들었다.
그만큼 사항이 중대했기 때문이다.
“권명우와 그 휘하의 흑천대를 추격대로 편성. 메이샤오와 그 휘하의 헌터들을 말살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불만사항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 다음 사안으로 넘어가도록 하지.”
그 말에 원로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다음 사안이라니? 그런 게 있었단 말인가?
“권한울 휘하의 부대를 유명부대로 승격시키려고 한다.”
“가주님!”
그 말에 원로 중 한 명이 격하게 반발했다.
금발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지고 있는 남성.
유럽지부를 맡고 있는 다그마 권이었다.
“제 자식이 죽은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래서 하는 말일세.”
권선우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흑기대를 비롯해서 너무 많은 전력들을 잃었네. 빈 자리를 오랫동안 비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야.”
“그 말씀에는 동의를 합니다! 하지만 왜 권한울입니까! 그들은 아직 자격을 증명하지 못했잖습니까!”
다그마 권의 항의도 일리가 있었다.
권한울의 실력은 모두가 인정을 하는 바이지만 그 휘하의 팀원들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그 자격을 심사하기 위해서 명명전을 열기로 하지 않았던가.
“그래, 그랬지. 하지만 이걸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걸세.”
그 말에 권선우가 손짓을 했다.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회의실의 모니터에 화면을 띄웠다.
“오늘 막 인터넷에 업로드 된 있는 영상들일세.”
하루도 지나지 않은 영상들치고는 인기가 굉장히 폭발적이었다. 조회 수가 이미 500만을 넘었으며 댓글 수도 엄청났다.
“영상을 보여 주기 전에 말해 줄 것이 있다네. 다들 오늘 회의에 권명우가 없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원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의 말대로 이런 중요한 회의에 권명우가 보이지 않아서 의아했던 참이다.
“사실 권명우는 지금 권한울. 그리고 그 부대원들과 함께 있다네. 그리고 가문으로 돌아오는 길에 습격을 당했지.”
습격.
그 말에 회의실에 살기가 감돌았다.
안 그래도 메이샤오 때문에 성질이 날카로워져 있던 찰나였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저지른 겁니까!”
“산체스 가문일세.”
“그 무식한 근육쟁이들이……!”
원로들이 분노를 터트렸다. 권선우는 그들을 말렸다.
“일단 이 영상을 보게나.”
원로들은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떠오른 영상은 모두 세 개였다. 각각의 영상에서는 두 헌터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한참 동안 영상을 지켜보던 원로들은 곧 깨달았다.
“권후돈?”
“저건 메이홍이 아닙니까.”
“다른 한 명은 환수혈의 혈족 같은데요.”
사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과 싸우고 있는 상대방이었다.
“저거 설마…… 학살자 라리사 산체스 아닙니까?”
“메이홍이랑 싸우는 사람은 카롤리나 산체스 같은데…….”
“저놈은…… 브루스 산체스잖습니까. 혼자서 세계랭커를 붙잡고 늘어졌다는 그 좀비 같은 놈이요.”
원로들이 곧바로 정체를 알아볼 정도로 세 명은 모두 유명한 인물들이었다.
“세상에…… 저들을 상대로 전투를…….”
“제가 뭘 잘못 본 거 같은데…… 심지어 이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원로들은 모두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영상은 없지만 권명우와 권한울도 산체스 가문의 습격을 받았다네.”
“상대는 누구였습니까?”
“칸 산체스, 그리고 마리아 산체스.”
이름이 거론되자마자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회장님, 설마…… 권한울이 마리아 산체스를 상대한 것은…….”
“맞네. 심지어 마리아 산체스가 후퇴할 때까지 버티기까지 했지.”
원로들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이제 내가 왜 이 안건을 꺼냈는지 알겠는가?”
권선우가 원로들을 향해 말했다.
메이샤오에 의해서 전력이 감소한 현재, 산체스 가문의 핵심 전력을 상대로 버티고, 승리한 이들을 무명대로 남겨놓는 것은 가문의 손해일세.”
몇몇 장로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로 영상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에 나는 권한울 휘하의 부대를 승격시키고자 하네. 그래도 불만이 있다면 지금 말하도록 하게.”
원로들의 얼굴에 깊은 고민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반대하는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유럽지부장 다그마 권조차.
“그럼 다들 내 말을 따르는 것으로 알겠네.”
이 순간, 흑천 일가에 새로운 유명대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