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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115화 (115/221)

<혈통이 깡패임 115화>

115. 산체스 가문 (5)

마리아 산체스는 곧바로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권한울은 흑천의 혈족이다. 흑룡혈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가문의 비전까지 익혔다.

그런 남자가 초인혈의 권능을, 그것도 진혈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자신의 착각이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권한울의 몸에서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전신의 근육이 꿈틀거리더니 순식간에 팽창한 것이다.

“……강증력(强增力)?”

초인혈의 초기 권능 중 하나.

일시적으로 근육량을 상승시켜서 신체능력을 향상시킨다. 수준이 높아지면 골격까지 성장시킬 수 있는 권능이다.

마리아 산체스는 자신의 눈을 비볐다.

하지만 권한울에게 일어난 변화는 틀림없이 강증력을 사용했을 때의 현상이었다.

그때, 팽창했던 권한울의 근육이 순식간에 축소되었다. 그와 동시에 피부가 회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건…….”

낯설다.

하지만 이 역시 알고 있다.

가문의 문헌에 다르면 진(眞) 초인혈의 권능은 하위 혈통들과 완전히 달랐다고 한다.

호신기가 아니라 금강기를 사용했던 것처럼 진(眞) 초인혈은 증강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거익신력(巨益信力)

본래 강증력은 근육량을 증가시키거나 골격을 성장시켜서 사용자의 신체를 강화시키는 권능.

하지만 거익신력은 다르다. 거익신력은 사용자의 신체 자체를 바꿔 버린다.

초인혈의 기원이 되는 태초의 거인 반고의 것으로 말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마리아 산체스의 살기가 강해졌다.

“그렇다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달라지는 건 아니야.”

마리아 산체스의 등 뒤로 하얀 거인이 나타났다.

거인의 몸이 흩어지더니 마리아 산체스의 몸을 휘감았다.

거인화의 또 다른 활용법 중 하나로 거인의 파괴력을 한 점에 집중시키는 비기였다.

“박살 내 줄게.”

마리아 산체스의 주먹이 허공을 꿰뚫으며 날아들었다.

특수강화제에 의한 극한의 도핑.

거인화의 집중으로 인한 파괴력의 상승.

주먹이 권한울에게 도달하고 나서야 소리가 들려왔다.

“하압!”

마리아 산체스의 손과 발이 쉴 새 없이 권한울을 난타했다.

너무 빨라서 마리아 산체스의 몸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때려도 소용없었다. 권한울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금강기를 뚫을 수 없었다.

마리아 산체스의 모든 공격은 금강기에 막혔다.

아니, 오히려 마이라 산체스 본인의 주먹에 충격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금강기를 때릴 때마다 마리아 산체스의 호신기가 흩어졌다.

맨주먹으로 금강기를 뚫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결과 마리아 산체스의 주먹이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으득.

마리아 산체스는 이를 갈았다. 최후의 일격에 모든 힘을 담았다.

그러나 그 주먹을 뻗는 순간, 권한울에게 붙잡혔다.

“이거 놓지 못해!”

그때, 권한울의 귓볼까지 완전히 회색으로 물들었다. ‘거익신력(巨益信力)’에 의한 변이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변이가 끝나자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권능 ‘거익신력(巨益信力)’를 발현했습니다! 신체가 ‘반고’에 가까워집니다!> <변이된 신체가 SS급 근력에 적응합니다!> 권한울에게만 보이고 마리아 산체스는 볼 수 없는 메시지였다.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권한울의 기운이 마리아 산체스를 압도했다.

압도한 정도가 아니었다. 마리아 산체스의 기운은 권한울의 것에 밀려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 일대는 완전히 권한울에게 지배되었다.

권한울은 마리아 산체스의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꺅!”

엄청난 통증에 마리아 산체스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권한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별안간 권한울이 입을 열었다.

“정말 강했어. 아마 이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으면 나도 꽤나 고생했을 거야.”

마리아 산체스는 초인혈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판데모니엄의 의원이었다.

경력만 봐도 권한울보다 한참 앞서 있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다.

전에 권한울이 싸웠던 호세 딜 파블로조차 상대가 안 되는 실력자가 마리아 산체스였다.

“근데 일이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지.”

권한울은 마리아 산체스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마리아 산체스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조금 이따 다시 보자.”

손에 힘을 주었다. SS급 근력을 온전히 발휘하여 마리아 산체스의 머리를 아래로 내려찍었다.

마리아 산체스의 머리가 땅에 처박혔다.

지반이 완전히 으스러졌다.

* * *

권한울은 마리아 산체스의 머리에서 손을 떨어트렸다.

힘껏 누르기는 했지만 급소를 강타한 것이 아닌지라 마리아 산체스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러게 좀 순순히 지배당해 주면 얼마나 좋아.”

<하위 초인혈을 완전히 패배시켰습니다!> <진(眞) 초인혈이 크게 만족스러워 합니다!> <초인혈의 동화율이 상승합니다!> <34% -> 40%>

<‘환수혈(幻獸血)’의 구현화 조건을 만족하셨습니다!> <앞으로 ‘반고’의 반(半) 화신체를 구현하실 수 있습니다!> 보상은 제법 짭짤했다.

비록 새로운 권능을 얻지는 못했지만 반고의 반(半) 화신체를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완전히 마무리를 지어야지.”

권한울은 반지를 낀 손으로 마리아 산체스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권속혈의 권능을 사용했다.

<‘권속혈(眷屬血)’이 대상을 지배합니다.> <경악스러울 정도로 강력한 대상을 지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권속혈(眷屬血)’의 동화율이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27% -> 40%>

<동화율이 40%에 도달했습니다.> <권능 ‘환상향(幻相鄕)’을 습득합니다.> 과연 마리아 산체스는 엄청난 실력자였다.

동화율이 단숨에 13%나 상승하다니. 이런 사례는 본적이 없었다. 덕분에 권능을 하나 더 습득했다.

그런데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동화율이 40%를 넘겼습니다.> <‘권속혈(眷屬血)’이 ‘환수혈(幻獸血)’과 결합합니다.> <구현화 항목에 ‘뱀파이어 로드(Vampire Lord)’가 추가됩니다.> <특수한 조건을 만족했을 시, ‘뱀파이어 로드’의 반(半) 화신체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뱀파이어 로드라?”

그러고보니 권속혈의 기원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특수한 조건이라면 뭘 말하는 거지?”

원래 반(半) 화신체로 변하기 위해서는 동화율을 40%를 넘기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권속혈의 경우에는 40%를 넘겨서야 구현화 항목에 추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조건이 더 필요했다.

“하여간 이것도 특이한 혈통이야.”

초인혈이 같은 혈통을 죽일 수 없는 것처럼 혈통마다 가지고 있는 특성이 달랐다.

권한울이 권속혈의 조건을 확인하려고 할 때였다.

“으, 으음…….”

마리아 산체스가 정신을 차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하던 마리아 산체스는 권한울을 발견했다.

그 순간, 얼굴에 살기가 떠올랐다.

“권한울!”

“꿇어.”

그 한 마디에 마리아 산체스는 곧바로 바닥에 엎드렸다. 마리아 산체스의 얼굴에 짙은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쪽은 지금 내 명령을 어길 수 없으니까. 허튼 생각하지 마. 괜히 힘만 빠질 테니까.”

권한울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인근 사물이 모두 날아가는 바람에 의자 대용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알아들었으면 고개를 들어도 좋아.”

그 말에 마리아 산체스는 곧 바로 허리를 세웠다. 권한울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지배했지. 자세한 건 묻지 마.”

“당장 풀지 못해!”

“머리 박아.”

마리아 산체스는 다시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모든 권능이 해제된 뒤라서 가녀린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나 권한울은 거침없이 명령했다.

“어째 영 반항스럽네. 이 정도 되는 강자를 지배하면 원래 이렇게 되나.”

하지만 권한울의 명령에 조금도 저항을 못하는 것을 보아 큰 문제는 없었다.

권한울은 명령을 해제 했다. 마리아 산체스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날 지배해서…… 무슨 짓을 할 생각이야.”

“그건 아직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어차피 못 죽여서 지배를 해놓은 거라.”

“어차피 못 죽여……? 너 설마 정말로…….”

마리아 산체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흑천의 혈족이 어떻게 초인혈을……? 대체 흑천 일가는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 이 악마 같은 놈들!”

“비슷한 말을 예전에도 들어봤는데. 흑천 일가 이미지가 안 좋기는 하네.”

권한울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내가 초인혈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흑천 일가랑은 아무 상관도 없어.”

“그럼 어떻게 혈통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거지?”

“그건 나도 잘 모르니까 묻지 말도록 해.”

마리아 산체스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질문을 던지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으나 묻지 말라는 권한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 나도 물어볼 게 있는데.”

권한울은 아공간을 열어서 작은 찻잔 하나를 꺼냈다.

그 찻잔을 본 마리아 산체스의 눈동자가 커졌다.

“마르코스 산체스한테 들었는데. 이게 산체스 가문의 시조가 남긴 보물이라면서?”

마리아 산체스는 입을 다물었다. 대답을 하지 않기 위해서 꾹 참았다.

하지만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맞아. 시조께서 남긴 물건이야.”

“이걸 어떻게 사용하는지. 마르코스 산체스는 모르던데. 그쪽은 알고 있나?”

그것만큼은 말할 수 없다.

마리아 산체스는 자신을 필사적으로 억눌렀으나 소용없었다.

그녀의 의사랑 상관없이 입은 모든 것을 술술 말하고 있었으니까.

“깨트리면 돼. 그럼 시조께서 남기신 안배를 흡수할 수 있어.”

“그럴 거면 뭐 하러 찻잔의 모습으로 만든 거지?”

권한울은 다소 어이없다는 얼굴로 찻잔을 살펴봤다.

“초인혈을 가진 사람만이 차산을 부술 수 있어. 호신기에 반응해서 깨지는 거라서.”

“안배의 내용물은?”

“몰라.”

마리아 산체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지는 남아 있지 않아.”

“그래?”

권한울은 찻잔을 손에 움켜쥐었다. 그대로 깨트리려 하다가 멈췄다.

“이건 나중에 천천히 깨부숴보기로 하고…….”

권한울은 마리아 산체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널 어떻게 처분하는 게 좋을까.”

그 말에 마리아 산체스는 몸을 살짝 떨었다.

상위 초인혈은 하위 초인혈을 죽일 수 없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직접 죽이는 게 불가능할 뿐이다. 하고자 한다면 방법이야 무궁무진했다.

다른 사람에게 시킬 수도 있고, 독약을 먹여도 된다.

“이대로 그냥 흑천 일가로 포로로 데려가도 좋겠지만…… 뭔가 좀 아쉽단 말이지.”

권한울은 턱을 매만지며 한참 동안 고민했다.

그러다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쪽은 산체스 가문에서 제법 높은 위치에 있지?”

“그래.”

“얼마 만큼 높은데?”

“모두가 기대할 정도로.”

마리아 산체스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권한울의 물음을 거부할 수 없으니…….

“그럼 산체스 가문의 가주도 노려볼 수 있나?”

그 말에 마리아 산체스의 눈동자가 빠질 듯이 커졌다.

“왜, 왜 그런 질문을…….”

“있는지 없는지 그것부터 대답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것만큼은 대답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으나.

“……있어.”

그녀의 입은 결국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권한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마리아 산체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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