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113화 (113/221)

<혈통이 깡패임 113화>

113. 산체스 가문 (3)

거인들이 모든 것을 부수고 있었다.

마치 구름을 뭉쳐 만든 것 같이 생긴 거인들은 주먹을 휘두르며 건물이고 땅이고 모든 것을 박살냈다.

얼핏 보기에는 불규칙적이고 무차별적인 파괴를 일삼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명확한 목표물이 존재했다.

“으하하핫!”

거인의 주먹이 내리꽂히는 자리.

그곳에서 한 동양인이 큰소리로 웃었다.

“산체스 가문의 거인화는 언제 봐도 장관이구나!”

거인이 주먹을 내려치면 지반이 들썩였다. 공기가 짓눌렸다.

그런 무지막지한 공격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동양인은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아쉽구나! 이렇게 느릿느릿한 주먹질로 이 권명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더냐!”

동양인의 말과 달리 거인의 주먹은 결코 느리지 않았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주먹을 들어 올린다 싶은 순간, 이미 땅에 내리꽂힌 뒤였다.

하지만 남자는 그 이상으로 빨랐다. 주먹이 꽂히는 것보다 남자가 피하는 것이 먼저였다.

“구경도 실컷 했으니 이제 이 몸의 권을 보여 주마!”

권명우가 용투기를 일으켰다. 검은 오러가 그의 몸을 둘러쌌다.

땅을 박차서 하늘로 뛰어올랐다. 검은 오러가 잔상이 되어서 남았다.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과 같았다.

권명우는 순식간에 거인의 눈높이까지 뛰어올랐다. 그런 뒤, 거인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흑룡십이승무 상승형(黑龍十二昇武 上乘形)

기격식 승룡권(氣擊式 昇龍拳)

엄청난 양의 용투기가 정반으로 방출되었다.

방출된 용마기는 용의 머리가 되어 거인의 몸통을 꿰뚫었다.

거인을 관통하고도 승룔권은 소멸되지 않았다. 그 뒤에 있는 거인까지 덮쳤다.

순식간에 두 명의 거인이 몸통이 뚫린 채 소멸되었다. 거인이 사라진 자리에는 두 시체만이 남아 있었다.

“으하하핫! 즐겁구나!”

권명우가 크게 기꺼워했다.

그 모습을 보며 칸 산체스는 이를 갈았다.

‘정신 나간 늙은이 같으니.’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지금 권명우와 싸우고 있는 이들이 누구던가.

산체스 최강의 헌터와 최고의 부대원들이다.

산체스 가문에서 최강, 최고들만 모여 있거늘 권명우 한 사람에게 밀리고 있었다.

‘대체 저 인간은 뭐냐! 뭐냔 말이다!’

초인혈의 상위 권능인 거인화는 단순히 덩치만 커지는 기술이 아니다.

인간의 몸에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과 상상을 초월하는 방어력을 얻게 해 주는 권능이다.

거인화를 사용할 때의 산체스 혈족은 걸어 다니는 요새이자 폭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 남자, 권명우는 거인화 상태의 산체스 혈족을 몇 명이고 상대하는 것도 모자라서 일격에 격살시키고 있었다.

‘이 정도로 격차가 크다고? 말도 안 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권명우가 흑천제일권이라 불리며 세계에서 손꼽히는 헌터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최강이라 불리는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실력 차이는 대체 뭐란 말인가.

“으하하핫!”

칸 산체스가 욕지거리를 내뱉은 그 순간, 또 다른 거인이 소멸했다.

-거인화를 해제해라! 이대로는 과녁을 키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칸 산체스가 다른 거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에 남아 있던 덴트 데 리오의 부대원들은 모조리 거인화를 해제했다.

“때리는 맛이 좋았거늘. 아쉽구나.”

권명우가 적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유로운 그와 달리 산체스 혈족들은 연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거인화를 사용하는데도 막대한 체력을 소모하는데다 그 상태로 권명우와 싸우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지친 와중에도 산체스 혈족들은 긴장감으로 바짝 굳어 있었다. 언제 권명우가 달려들지 몰랐기 때문이다.

“흠.”

그러나 권명우는 바로 싸우지 않았다. 그 대신,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다들 잘해주고 있구먼.”

칸 산체스를 비롯한 다른 부대원들은 권명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바로 깨닫지 못했다.

“자네들도 느껴지나? 저 멀리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가 어떤 양상으로 변했는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저 멀리서 느껴지는 투기들에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산체스 혈족의 투기가 눈에 띄게 약해져 있었다. 반대로 흑천 혈족의 투기가 강해졌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산체스 가문이 밀리고 있따.

칸 산체스와 부대원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후돈이 그 녀석은 재능도 있고, 감각도 좋은데. 겁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 전투를 계속 피하기만 하니 경험이 쌓일 턱이 있나. 게다가 툭하면 흑린갑에 숨어드니 사투를 벌일 기회가 적어질 수밖에 없지.”

그러거나 말거나 권명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입을 움직였다.

“이 세상에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얻을 수 있는 경지가 있는데 말이야. 그래서 억지로 단체전에 밀어 넣었는데. 내 기대만큼 성장해 줬군.”

권명우의 수다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메이홍 그 아이도 이번 일로 어깨에 힘을 좀 뺀 모양이야. 자네들도 들어봤겠군. 메이 가문을 배신자 말이야.”

권명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전율했다네. 그 정도로 빛나는 재능은 오랜만에 봤거든. 아마 적으로 만났으면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죽였을 게야.”

이런 괴물 같은 인간이 괴물이라고 평가하는 존재라니.

평소라면 혹했을 이야기였지만 칸 산체스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바닥난 체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그래도 지금은 권한울이 그놈의 팀원이니 도와줘야지 어쩌겠나. 그 아이의 문제점은 어깨에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갔다는 거였어.”

권명우는 자신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이해는 가. 워낙 많은 굴레를 짊어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복수에 얽매여서야 성장할 수 없지. 그래서 화풀이라도 하라는 뜻에서 지하경기장에 보냈지.”

칸 산체스는 슬슬 자신의 숨이 안정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가엘 가르시안…… 그 친구는 뭐 딱히 할 말이 없군. 워낙 혼자서 잘하는 친구라. 능력치가 부족한 게 흠이라서 우승상품으로 강해지라는 뜻에서 참가시켰지.”

칸 산체스는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부대원들도 똑같이 기력을 되찾은 사태였다.

“한울이 그놈은 운도 좋아. 어디서 저런 것들만 쏙쏙 뽑아왔지?”

말을 하다 말고 권명우가 시선을 돌렸다. 칸 산체스와 덴트 데 리오 부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다들 숨 좀 돌렸나?”

칸 산체스의 이마에 혈관이 돋아났다.

설마 지금까지 주절주절 떠든 이유가 자신들 때문이었단 말인가.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었다.

“이제 다시 시작하지.”

권명우가 용투기를 일으켰다. 그 강대한 기운을 바라보며 칸 산체스가 소리쳤다.

“모두 쳐라!”

* * *

“말도 안 돼.”

마리아 산체스는 애써 부정을 했다.

그녀가 데려온 혈족들은 산체스 가문 내에서도 최고의 실력자들이다.

몇 명은 이미 판데모니엄에 소속되어 있으며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 악명이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런 혈족들이 아는 사람조차 몇 없는 이런 애송이들한테 패배한다고?

“뭘 놀라시고 그러십니까. 당신도 한때 그랬잖습니까.”

마리아 산체스는 젊은 나이에 판데모니엄의 의원이 되었다.

그 비결은 다른 게 아니었다. 그녀가 천재였기 때문이다.

능력치의 격차, 경험의 격차, 나이의 격차 따위는 압도해 버릴 정도의 천재.

그게 마리아 산체스였다.

“……설마 저 녀석들이 나랑 비슷한 급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비슷한 급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그리 말한 뒤, 주하연이 마력을 일으켰다.

그 순간, 주하연의 등 뒤로 검은색 장벽이 나타났다.

진짜 벽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강대한 마력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뿐.

“우리의 싸움도 길게 끌 필요 없죠.”

그 강대한 마력이 술식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그 일그러짐 때문에 어떤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창.

공간을 비틀어 구성한 창이 주하연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자넬라 이비질리.”

마리아 산체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흑천의 마녀라 불리는 주하연이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서 구현한 비장의 마법.

저 창에 닿으면 존재를 불문하고 소멸해버린다.

회장 권선우와 함께 활동할 당시, 주하연은 저 마법으로 S급 몬스터를 일격에 사살한 적이 있다.

“……그래, 오래 끌 필요는 없지.”

생각 같아서는 조금 더 주하연과의 전투를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혈족들이 위험한 지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아가씨!

머릿속에서 칸 산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사를 전달하는 특수한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칸 아저씨? 마침 잘 연락하셨어요!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어요. 빨리 아저씨가 도와주셔야…….

-아가씨, 죄송하지만 저도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

그 말에 마리아 산체스는 잠시 머릿속 멍해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들을 미스트리 도시에 들여보낸 인물이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흑천제일권입니다!

그 말에 마리아 산체스는 온몸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거짓…… 거짓말이시죠?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설사 권명우라도 아저씨랑 덴트 데 리오 부대라면…….

별안간 대화가 끊어졌다. 잠시 후, 다시 이어졌다.

-헉, 허억!

거친 숨소리와 함께

-아가씨, 더 이상 설명을 드리기 힘듭니다! 아가씨께서는 다른 혈족들은 이제 잊으시기 바랍니다.

-그게 무슨…….

-임무를 우선시하라는 말입니다! 아가씨께서는 반드시 시조님의 물건을 가문으로 가져가셔야 합니다!

칸 산체스의 목소리가 점점 다급해졌다.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권명우, 이 괴물 같은 인간하고 싸워보니 알겠습니다. 이대로 가면 산체스 가문은 결코 흑천 일가를 넘을 수 없을 겁니다!

그 자부심 강한 칸 산체스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든 말이었다.

-시조님의 물건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게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가씨께서는 꼭 살아서 돌아가셔야 합니다!

그녀와 시조의 보물만 있으면 산체스 가문은 흑천 일가를 뛰어넘을 수 있다.

칸 산체스가 그렇게 확신할 만큼 마리아 산체스의 재능은 대단했다.

-반드시 제 말대로…….

말을 끝맺지 못하고 연결이 끊어졌다.

마리아 산체스는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그런 마리아 산체스를 향해 주하연이 말했다.

“……상황이 좀 달라졌어.”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최소한 마무리는 제대로 짓고 싶었는데 안 되겠네.”

별안간 마리아 산체스가 아공간을 열었다. 그곳에 손을 집어넣고 뒤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가 꺼낸 것은 분홍색을 띄는 환단이었다.

“……그게 뭐죠?”

주하연의 표정이 굳을 정도로 환단에서 풍겨오는 냄새는 끔찍했다.

냄새가 고약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기분이 고양되고, 마력이 들떴다.

“설마 강화제입니까?”

헌터들 중에는 부족한 능력치를 보충하기 위해서 약물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딴 거랑 비교하면 좀 화가 나는데.”

마리아 산체스는 주하연의 말을 부정했다.

“비슷하긴 한데 완전히 달라. 이건 산체스 가문의 비전이거든.”

마리아 산체스는 환단을 손안에서 굴렸다. 그럴 수 록 환단의 분홍색이 짙어졌다.

“강화제의 효과는 천차만별이지만 딱 하나 공통점이 있어. 효과가 강하면 부작용도 크다.”

환단은 이제 분홍색이다 못해서 붉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산체스 혈족들은 모두 헌터들보다 몇 배는 강력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지.”

주하연의 눈동자가 커졌다.

마리아 산체스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설마…….”

마리아 산체스가 환단을 깨물었다.

그 직후, 그녀의 몸이 붉게 물들었다. 모든 혈관이 도드라졌다.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이 달아오른 금속처럼 담아두기 힘든 힘을 몸에 품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맙소사.”

초인혈을 보유한 사람은 평범한 헌터를 초월한 신체를 얻게 된다.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얻게 된다.

그런 신체를 극한까지 도핑한다면 대체 어느 정도의 힘을 얻을 것인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섬뜩해졌다.

그때, 마리아 산체스가 자세를 잡았다. 주하연은 재빨리 자넬라 이비질리를 그녀에게 겨누었다.

무형의 창이 마리아 산체스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 창을 향해 마리아 산체스는 주먹을 내질렀다.

마법과 주먹이 격돌한다.

그 순간, 마법이 산산이 깨어져 나갔다.

흩어지는 마력을 해치며 마리아 산체스가 돌진했다.

“그동안 즐거웠어.”

그 말과 함께 마리아 산체스가 주하연의 복부를 걷어찼다.

주하연의 몸이 탄환이 되어 사라졌다.

* * *

“용케 살아 있네.”

마리아 산체스는 건물에 처박혀 있는 주하연을 향해 말했다.

수십 채의 건물을 부수고, 지면을 박살내고 나서야 주하연은 멈춰 섰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정신을 잃었기에 주하연은 대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대신, 마리아 산체스는 주하연이 끼고 있는 액세사리를 보고 이유를 깨달았다.

“보호 유물?”

사용자가 입은 데미지를 대신 흡수해 주는 유물들 덕분에 살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장비들로도 충격을 모두 흡수하지 못했는지. 액세사리는 모두 박살 나고, 주하연도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

“일은 급하지만 마무리는 확실하게 해야지.”

마리아 산체스는 발을 들어 주하연의 머리를 짓밟으려 했다.

그때였다.

“누님!”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마르코스?”

마리아 산체스는 반색을 하며 마르코스를 돌아봤다.

“권한울을 처리하고 온…….”

질문을 하다 말고 마리아 산체스는 입을 다물었다.

마르코스 산체스의 뒤에 서 있는 권한울이 보였기 때문이다.

“권한울?”

“안녕하세요.”

권한울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마리아 산체스는 더더욱 어이가 없어졌다.

“넌 또 왜 존댓말……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왜 여기에 있…… 마르코스, 설마 생포해 온 거야?”

그렇다고 보기에는 권한울은 묶여 있지도 않고, 심지어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상한 광경이었다.

“누님! 그게 아닙니다!”

“그럼 뭔데?”

“저는 드디어 깨달았습니다! 제가 모셔야 할 진정한 주인이 누구신지!”

마르코스 산체스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양손을 펼쳐 권한울을 가리켰다.

“이분입니다! 이분이야 말로 제가, 아니 산체스 가문 전체가 충성을 받쳐야 할 분입니다!”

마리아 산체스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마르코스.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야.”

“농담이 아닙니다! 저는 권한울 님을 뵙고 나서야 비로소 개안을 했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마르코스 산체스는 불끈 주먹을 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건 바로 권한울 님을 모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권한울의 대업을 위해서 이 한 몸을 불사르는 것이야 말로 제가 태어난 것입니다!”

마리아 산체스는 눈을 감았다. 손가락으로 미간을 지그시 눌렀다.

두통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물건은?”

“시조님의 보물 말입니까? 그거야 당연히 권한울 님께서 가지고 계시죠. 권한울 님이야 말로 그 물건의 적합한 주인…….”

마리아 산체스에게서 살기가 치솟았다. 순식간에 마르코스 산체스의 코앞에 나타난 뒤, 주먹을 내리쳤다.

그 순간, 권한울이 손을 뻗어 마리아 산체스의 주먹을 붙잡았다.

“혈족끼리 싸우면 안 되죠.”

“저놈부터 손봐 주고 그 다음은 너니까. 이 손 놓고 조용히 꺼져.”

“그건 안 되겠는데요.”

권한울은 단칼에 거부했다.

“보다시피 마르코스 산체스는 저한테 충성을 맹세해서요.”

마리아 산체스의 미간이 구겨졌다.

“너, 얘한테 무슨 짓 했어.”

“여러 가지로 했죠. 걱정 마세요. 건강에 해로운 건 아니니까.”

마리아 산체스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그래, 내가 순서를 착각했네. 마르코스 이 머저리를 손봐줄 게 아니라. 널 먼저 죽여야 했는데.”

마리아 산체스가 반대손을 뻗어 권한울의 목을 움켜잡았다.

초인혈의 권능을 최대한 발휘하고, 도핑까지 한 지금이라면 권한울 따위는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다.

……있을 줄 알았다.

아무리 힘을 줘도 권한울의 목이 꺾이지 않았다. 마치 복에 쇠말뚝을 박아 놓은 것처럼.

“너 어떻게…….”

되묻는 순간, 권한울이 역으로 마리아 산체스의 손을 움켜잡았다.

손의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에 마리아 산체스는 그만 비명을 내질렀다.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권한울이 반대쪽 손을 들어올렸다.

그 손의 네 번째 손가락에는 묘하게 생긴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지금은 이것부터.”

반지가 착용되어 있는 손이 마리아 산체스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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