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09화>
109. 보류 (2)
그날 밤, 권한울은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산체스 감누에 대한 일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그 근육쟁이들이 미스트리 도시에 있다고요?”
가장 먼저 메이홍이 반응했다.
“대체 뭐 먹을 게 있다고 기어들어왔는지 모르겠네요.”
“작은 할아버님께서 예상하시기로는 우승 상품을 노리는 게 아니냐고 하시더군요.”
권명우와 주하연은 도시의 상층부에 물어볼 게 있다며 자리를 비웠다.
때문에 권한울이 권명우의 말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상품인데. 그렇게까지 얻으려고 하는 거래요?”
“그, 그러게…… 미스트리 도시는 범죄자들은 출입금지인데…… 억지로 들어와서 얻어야 할 정도야……?”
“혹시 따로 찾아보셨습니까?”
가엘 가르시안의 말에 권한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경기장에서 따로 얻어온 카탈로그를 내밀었다.
“이게 지하경기장의 우승상품이에요.”
모두의 시선이 카탈로그로 향했다. 이윽고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하경기장의 우승상품이란 작은 그릇이었다.
밥그릇은커녕 간장을 찍어먹을 때 써야할 만큼 작은 그릇.
“……이게 우승상품이라고요?”
“이걸 산체스 가문이 얻고 싶어한다구?”
“제 안목으로는 그 정도로 대단한 것 같지 않습니다만.”
그릇 자체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었다.
카탈로그에 적힌 설명을 보면 던전에서도 좀처럼 얻을 수 없는 귀한 보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릇의 표면에는 깨알처럼 작고 섬세한 그림이 빼곡히 그려져 있다.
아마도 귀한 신분의 사람이 썼을 물건이다.
예술적인 가치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수집가들이 보면 눈이 뒤집힐 정도로.
문제는 헌터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체 산체스 가문이 이것에 왜 집착하는지 모를 정도로.
“흑천제일권께서 착각하신 게 아닐까요? 사실 산체스 가문은 다른 목적이 있다거나 그런 거 같은데요.”
당돌하게도 메이홍은 권명우의 판단을 의심했다. 권한울은 쓴웃음을 지르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다른 꿍꿍이가 있다면 굳이 지하경기장에 참가할 리가 없죠. 게다가 두 명이나 연속으로 참가시켰잖아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메이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할아버님께서는 뭐라고 하셨어?”
권후돈이 손을 들며 물었다. 권한울은 카탈로그를 덥으며 답했다.
“신경 쓰지 말고 각자 맡은 일에 집중하라셨어.”
“하지만 산체스 가문에서 무슨 짓이라도 저지르면 큰일이잖아…….”
“아무리 산체스 가문이라도 이 도시에서 난동을 피울 수는 없다고 하셨어.”
권한울은 어깨를 으쓱했다.
“게다가 난리를 피운다 해도 우리한테는 작은 할아버님이 계시잖아.”
그 말을 듣자 권명우은 입을 쩍벌렷다.
그랬다. 이곳에는 다름 아닌 흑천제일권 권명우가 있엇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일지도 몰랐다.
“그럼 이쯤하고 다들 푹 쉬자. 내일 또 경기가 남아 있잖아?”
아직 우승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겪어야 할 경기가 많았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보상은 얻고 가야지.”
이틀 뒤, 모든 경기장에서 우승자가 결정되었다.
* * *
“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군!”
모든 우승자가 결정된 그 날, 숙소에서는 권명우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우승하다니! 다들 수고했다!”
단순한 우승이 아니었다.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이 다들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말했을 정도로 평온했던 승리였다.
네 명 전원, 첫날에 싸웠던 상대 외에는 고전한 적이 없었다.
“손님이 왔습니다.”
문이 열리며 주하연이 안으로 들어왔다. 혼자가 아니라 네 명의 사람들과 함께엿다.
“운영진 측에서 보내온 우승 상품입니다. 대단했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대단하기는 무슨. 당연한 결과였는데. 으하하핫!”
권명우는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이내 네 명을 돌아보며 말해싿.
“뭐하냐. 다들 상품을 살펴보지 않고.”
네 명은 각자 이름이 적힌 상자를 열었다.
“와아아…….”
권후돈이 받은 상품은 목걸이었다. 단순한 목걸이는 아니었다.
불사조의 심장을 가공해서 만든 것으로 주인에게 가해지는 피해를 모두 흡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단점이라면 흡수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다는 것. 그리고 한계에 도달하면 오랫동안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단한 보호장비임은 틀림없었다.
“위험한 장난감이네.”
메이홍이 얻은 것은 은닉이 가능한 단검이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간단한 손동작을 취하면 손에 쥐어지는 기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 나중에 먹어야겟습니다.”
가엘 가르시안이 얻은 우승상품은 비약이었다. 무려 한 가지 능력치를 S급에 도달하게 해주는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세 명 중에서 능력치가 가장 낮은 것은 가엘 가르시안이었기에 딱 맞는 상품이었다.
마지막으로 권한울은…….
“이거 진짜 뭐하는 물건이지?”
간장종지만 한 그릇을 이리저리 살피며 의뭉스러워했다.
혹시 몰라서 슬쩍 마력을 주입해 봤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어떤 물건인지 알겠느냐?”
권명우의 물음에 권한울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알 수가 없었다.
“하연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는 탐지 마법을 익히지 않았습니다.”
“아참, 그랬지.”
권명우은 잠시 그릇을 받은 뒤,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다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혹시 모르니 한번 부셔 볼…… 농담이니 다들 그렇게 노려보지 말 거라.”
너무 어처구니없는 말에 다들 제정신이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이건 나중에 고민하기로 하고…… 이렇게 기쁜 날을 그냥 보낼 수는 없지. 내일은 축하 파티라도 하자꾸나!”
권명우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아니, 파티로는 부족하지! 내가 이 도시의 향락을 모두 맛보게 해주마!”
그 말에 모두의 얼굴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미스트리는 오로지 유흥만을 위해 지어진 도시다.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쾌락은 무한했다.
“어…… 근데 돈이 많이 들지 않나요?”
권후돈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권명우는 가슴을 탕탕 때리며 말했다.
“으하핫! 신경 쓰지 말거라. 요번에 제법 큰 돈을 벌었거든.”
큰 돈이라는 말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유일하게 주하연만이 크게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럼 일단 혀부터 만족시키고…….”
음악소리가 울렸다. 권명우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지?”
통화는 금방 끝나지 않았다. 길어질수록 권명우의 얼굴이 굳어 갔다.
“……얘들아 미안하구나. 계획은 취소다.”
전화를 내려놓으며 권명우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당장 가문으로 돌아가야겠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권명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명명전이 중지됐다.”
단지 그것뿐이었다면 권명우가 급하게 복귀를 선언했을 리가 없다.
“베인 호프가 살해당했다.”
베인 호프(Vain hope).
한때 권찬성의 오른팔이었으며 흑천의 유럽 지부를 물려받을 후계자였던 남자.
베인 호프는 이름이 아니라 호칭이다. 이 업계에서 이름이 아니라 호칭으로 불린다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실력자라는 뜻이다.
권한울이 미스트리 도시를 찾아온 이유도 명명전에서 그와 싸울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누구한테 죽은 겁니까?”
권명우가 직접 권한울을 수련시켜줬을 정도로 그 남자는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정도 되는 존재가 대체 누구한테 죽었다는 것인가.
“혈살검 메이샤오가 이끄는 메이 가문의 검수들에게 죽었는구나.”
그 말에 모두의 숨소리가 잠시 멈췄다.
잠시 후, 모두의 시선이 메이홍에게 모여들었다.
혈살검 메이샤오의 이름을 들은 메이홍의 얼굴은.
“……드디어 나타났네요?”
티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그래, 수고해 줘서 고맙군.”
벽과 바닥, 심지어 천까지 온통 황금색으로 치장이 된 방.
마크 골드픽시는 통화를 종료했다.
“어떻게 됐나요?”
마크 골드픽시가 스마트폰을 내려놓자마자 근처에 있던 마리아 산체스가 물었다.
“아무리 조사를 해 봐도 ‘흑조(黑鳥)’에 대해서 알아낼 수 없다고 하더군.”
흑조(黑鳥).
마리아 산체스와 지하경기장에서 싸웠던 권한울을 미스트리 도시에 데리고 온 남자.
오래 전부터 미스트리 도시에 출입을 했으며 그가 추천한 참가자들은 모두 예외없이 지하경기장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
“다시 조사해 보세요. 작은 단서라도 좋아요.”
“이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미스트리 도시는 회원들의 정보를 절대…….”
“제 부탁을 안 들어주시면 아주 곤란한 일이 생길 텐데요.”
마리아 산체스가 손가락 끝으로 대리석 탁자를 긁었다.
까드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탁자가 깊이 파였다.
마리아 산체스가 괜히 마크 골드픽시와 함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의 목숨을 인질로 협박하기 위함이었다.
“……젠장!”
평소에는 이 정도 협박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오늘의 마크 골드픽시는 조금 달랐다.
“난 자네의 부탁대로 권한울이 묵고 있는 숙소와 그 주변에 감시자까지 붙였어! 이미 미스트리의 상층부에서는 내 행동을 감지했을 거야! 나중에 내가 어떤 추궁을 당할지 자네는 상상도 못하겠지!”
마리아 산체스가 마크 골드픽시에게 부탁한 일 중에는 권한울에 대한 감시도 있었다.
숙소의 방범이 워낙 철저해서 감시를 한다고 많은 것을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이제 충분하지 않나! 이제 그만 날 놓아 주게!”
“그건 안 돼요.”
마리아 산체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사정이 있든 그건 마크 골드픽시가 해결할 문제다. 마리아 산체스는 이대로 마크 골드픽시를 놔줄 생각이 없었다.
그만큼 이번 일은 산체스 가문에게 중요했다. 시조가 사용했던 보물이 걸려 있었으니 말이다.
“잔말 말고 어떻게든 흑조에 대한 것을 알아오세요. 그때 당신을 풀어드릴 테니까요.”
“젠장! 대체 왜 그렇게 그 남자에게 집착하는 건가! 자네들은 산체스 가문이잖나!”
판데모니엄의 소속된 악인들은 맛이 간 놈들이 대다수다.
그리고 산체스 가문은 그런 놈들 중에서도 특출나기로 유명했다.
성격이 더러운데. 실력까지 좋다. 산체스 가문이 저지른 대형 범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번에는 최대한 변수를 줄이고 싶어서요.”
“변수라고?”
“그냥 그렇게만 알고 계세요.”
마리아 산체스가 흑조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감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쉬울 줄 알았던 임무에서 다짜고짜 흑천의 혈족을 만났다. 게다가 아무리 권능을 제한했다지만 그놈에게 자신까지 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났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흐, 흑천의 혈족들이 떠날 때까지 흑조에 대해서 알아내지 못하면 날 죽일 생각인가?”
“죽이다뇨. 그럴 생각은 없어요. 다만, 좀 실망해서 손이 나갈지도 모르죠.”
손이 나간다는 말에 마크 골드픽시의 몸이 덜덜 떨렸다.
초인혈에 의해 만들어진 신체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하다.
마크 골드픽시 같은 일반인은 손끝이 스치기만 해도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어떻게든 알아내세요.”
그때였다.
마크 골드픽시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마리아 산체스는 눈짓으로 어서 받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무슨 일이지?”
-아, 가주님. 감시대상들 말입니다만.
“무슨 일 있나?”
-저택의 고용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알겠네. 계속 감시를 해 주게.”
마크 골드픽시는 전화를 끊었다. 그런 뒤, 불안한 얼굴로 마리아 산체스를 바라봤다.
“우승상품을 받았으니 슬슬 떠날 채비를 할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떠날 줄은 몰랐네요.”
마리아 산체스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녀 역시 스마트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마르코스 내 말 들려?”
-예, 누님. 말씀하십시오.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서 그분께 내 말을 전해 줘.”
-뭐라고 말씀드리면 될까요?
“내일 검은 지렁이를 잡아야 하는데. 재수 없으면 구렁이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고.”
-알겠습니다.
그분이라면 어떤 변수가 생겨도 능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분이 온다고 하셨을 때, 마리아 산체스는 부정적이었다. 가문이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다행이었다.
-누님.
별안간 마르코스 산체스가 말했다. 산체스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러는데?”
-부탁이 있습니다. 권한울은 제가 죽이게 해 주십시오.
그 말에 마리아 산체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너도, 나도 걔한테 졌는데. 자신 있어?”
-누님! 그건 저랑 누님이 권능을 억제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제대로 붙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겁니다!
마르코스 산체스가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권한울과 싸울 당시, 마르코스 산체스는 자신의 진짜 실력을 반도 사용하지 않았다. 마리아 산체스도 마찬가지였고.
“음…….”
마리아 산체스는 잠시 고민했다.
권한울에게 원한이 있는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마리아 산체스는 그날 따로 상대해야할 사람이 있었다.
주하연.
흑천의 가주 권선우의 심복이자 마리아 산체스와 몇 번이고 충돌한 적이 있는 여자.
“그래, 네 마음대로 해. 대신 확실하게 죽여놔야 해. 알겠지?”
잔인함이 느껴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마르코스 산체스가 대답했다.
-맡겨만 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