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04화>
104. 지하경기장 (1)
이튿날, 일행은 참가하게 된 경기장으로 흩어졌다.
권한울은 미스트리 도시의 직원을 따라서 지하경기장으로 이동했다.
미스트리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답게 지하경기장으로 가는 길은 꽁꽁 감춰져 있었다.
미스트리 도시의 구석진 곳에 있는 숨겨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깊이 내려가야 했던 것이다.
“오…….”
지하경기장에 도착한 권한울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도시 밖에 지어진 콜로세움보다 지하경기장이 두 배 가까이 더 컸다.
대기실로 안내를 받은 권한울은 고민에 빠졌다.
경기장에 참가할 순서를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연승제. 10연승을 하거나 도전자가 없으면 이긴다고 했지.”
지하경기장의 경기 내용은 지극히 단순했다.
토너먼트가 아니라 연승제.
승리한 사람이 계속해서 도전자를 맞이한다. 그리고 10연승을 하거나 도전자가 없으면 승리한다.
단, 이 과정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도 본인이 부담해야한다.
“단순하지만 골치 아프군.”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연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패배할 수 있다.
반대로 실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강자가 약해진 틈을 타서 승리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간을 보다가 결정해야겠지만.”
권한울은 망설임없이 첫 번째 참가를 선택했다.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끝내고 다른 팀원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싶었다.
비록 주하연이 지하경기장의 위험성에 대해서 몇 번이고 경고를 하기는 했지만 권한울은 패배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첫 번째 참가를 결정하셨습니다.>
<10분 뒤,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수는 입장해주십시오.> 대기실의 스피커를 통해 안내말이 들려왔다.
권한울은 권명우에게 받은 가면을 착용한 뒤, 대기실을 나섰다.
긴 복도를 지나서 경기장에 올라섰다.
지하경기장 역시 콜로세움의 형식을 따라 지어졌다.
경기장을 중심으로 관객들의 좌석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비실비실해 보이는 놈이군.”
경기장에 오르자마자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상대방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권한울보다 세 배쯤 덩치가 큰 남자였다.
“그 가면은 또 뭐냐?”
“그쪽도 가면을 쓰고 있잖아요.”
권한울이 남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성의 얼굴에도 가면이 씌워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정이 있어서 쓴 거야.”
“나도 그런데요.”
“이거 진짜 어이없는 놈이네.”
진짜 어이없는 쪽은 권한울이었다.
“됐고 정정당당하게 싸우자는 뜻에서 악수나 하자.”
남성이 손을 내밀었다. 팔뚝이 권한울보다 세 배쯤 두꺼워 보였다.
권한울은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그때였다.
“오해하지 마라.”
남자가 권한울의 손을 움켜잡았다. 엄청난 악력이 권한울의 손을 옮죄였다.
“이딴 짓하지 않아도 널 죽일 수 있는데. 널 쫓아다니기 귀찮아서 붙잡은 거니까.”
그 순간, 남자의 주먹이 권한울의 얼굴을 강타했다.
* * *
“흐하핫.”
권한울이 대기실에 앉아 있을 무렵.
관객석에서 권명우과 주하연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두 사람 역시 권한울과 마찬가지로 가면을 쓰고 있었다.
정체가 들키면 곤란한 것은 권한울과 팀원들만이 아니었다.
권명우 역시 정체가 들통 나면 안 되기에 오래 전부터 가짜 신분을 만들어서 미스트리 도시에서 활동했다.
딱히 권명우만 특이한 게 아니었다. 미스트리 도시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행적을 감추기 위해서 가명을 쓰고 활동했다.
“흐흐흣.”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권명우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그렇게 즐거우십니까?”
보다 못한 주하연이 입을 열었다. 어조가 굉장히 퉁명스러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좋고말고. 이걸로 모처럼 주머니가 두둑해 지겠구나.”
미스트리는 유흥만을 위한 도시다. 유흥에는 도박이 빠질 수 없는 법. 지하경기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방금 전, 권명우는 권한울 우승에 막대한 돈을 걸고 오는 길이었다.
“설마 이러시려고 권한울 님을 여기에 데려오신 겁니까?”
“날 뭘로 보는 게냐. 어디까지나 저놈의 훈련을 위해서야.”
권명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한울이 저놈은 실력이 너무 좋아서 탈이야. 아직 경지에 오르지 못한 놈이 내 주먹에 반응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안 되죠.”
권명우는 전 세계에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다.
“반응속도는 물론이고 동체시력, 심지어 재능도 타고났어. 그러니 남의 공격을 막을 필요가 없지.”
뭐 하러 막겠는가.
피하거나 반격을 하면 그만인데.
“그래서 녀석의 호격식의 수준이 낮은 게다. 쓰질 않으니까. 문제는 상승형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호격식의 숙련도를 강제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게지.”
“그래서 이곳을 선택하신 겁니까?”
“맞다. 스킬이 몸에 익기 위해서는 단순히 반복해서는 안 돼. 실전에서 사용해야지.”
그래서 권명우는 지하경기장을 찾아왔다.
이곳이라면 단기간에 많은 실전을 경험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겸사겸사 용돈도 벌고 말이지.”
권명우가 씩 미소를 지었다. 주하연은 그런 권명우를 흘겨봤다.
“이게 누구십니까!”
그때, 누군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수염을 멋드리지게 기른 중년의 남성이었다.
“설마 흑조께서 방문하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흑조. 권명우가 쓰는 가짜 신분의 명칭이었다.
남자가 권명우에게 악수를 청했다. 권명우는 그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마크 골드픽시. 자네도 있었는가? 회사는 어쩌고?”
“휴가를 냈죠. 지하경기장이 열리는데. 회사에서 펜대나 굴리고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두 사람은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번에도 지하경기에 사람을 참가시키신 겁니까?”
“그렇다네.”
“저번에도 흑조 님께서 후원한 참가자가 우승했는데. 아직도 만족을 못하신 겁니까?”
흑조라는 권명우의 가짜 신분은 미스트리 내에서 제법 유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권명우가 참가시킨 헌터가 몇 번이고 지하경기장에서 우승했기 때문이다.
전부 권명우의 팀원들, 즉 흑천대의 사람들이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으하하핫, 그렇군. 이번에는 좀 괜찮은 녀석을 찾아왔는가?”
권명우의 말에 마크 골드픽시의 눈썹이 잠시 꿈틀거렸다.
“……예, 찾아왔죠.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으하하핫! 그래그래, 기대하고 있겠네.”
악수를 마친 뒤, 마크 골드픽시는 자리를 떠났다.
그가 사라진 뒤, 주하연이 권명우에게 물었다.
“마크 골드픽시라면…… 제가 아는 사람이 맞는 건가요?”
“맞네. 미스트리 도시를 건국한 가문 중 하나인 골드픽시 가문의 가주지.”
권명우는 별관심이 없다는 투로 말했다.
“농담 한 마디에도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다니 말이야. 몇 년 동안 골드픽시 가문에서 배출한 지하경기 우승자가 없다보니 저 친구도 많이 화가 났나보군.”
권명우가 혀를 차며 말했다.
“이번에도 지면 더 열받겠구먼.”
그때, 경기장 위로 권한울이 올라왔다.
권명우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말했다.
“그럼 어디 느긋하게 구경이나 해볼까.”
별안간 상대방이 권한울에게 악수를 청했다. 권한울은 의심없이 그 손을 잡았다.
다음 순간, 상대방이 권한울의 얼굴을 후려쳤다.
“……응?”
권명우의 눈동자가 커졌다.
* * *
“재수 없는 놈.”
마크 골드픽시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지하경기장 최상층에 올라갔다.
미스트리 도시의 창립 멤버인 마크 골드픽시는 다른 관중들과 달리 따로 배정된 VVIP실이 있었다.
“어머, 왜 그러세요?”
안으로 들어가자 마리아 산체스가 그를 맞이했다.
“신경 쓰지 말게. 짜증나는 소리를 들어서 말이야.”
마크 골드픽시는 씩씩거리며 냉장고에서 위스키를 꺼냈다. 잔에 따르지도 않고 병째로 들이켰다.
크으, 입가를 닦은 뒤, 마리아 산체스에게 물었다.
“이번 경기에 참가하는 놈…… 믿어도 되겠나?”
“아무리 마크 님이라 해도 저희 산체스 가문의 혈족을 의심하시면 기분이 좀 나쁜데요.”
마리아 산체스의 경고에 마크 골드픽시는 식은땀을 흘렸다.
너무 흥분한 탓에 잊고 있었다. 눈앞의 여자가 전 세계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악인이라는 것을.
“……미안하게 됐네. 다른 경기는 몰라도 지하경기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해서 물어본 걸세.”
“걱정하지 마세요. 실력은 확실하니까요.”
마리아 산체스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마르코스 산체스라고 아실지 모르겠네요.”
“……설마 파괴자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마리아 산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크 골드픽시는 자신도 모르게 딸꾹질을 했다.
파괴자 마르코스 산체스.
판데모니엄의 악인으로 러시아의 도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든 전적이 있는 남자였다.
당시 그를 막겠다고 러시아의 헌터들이 모두 모여들었지만 모두 마르코스 산체스의 손에 피떡이 되어 버렸다.
“산체스 가문이라는 걸 들키면 안 되서 스킬이나 권능을 마음대로 못쓰기는 하지만…… 이런 곳에서 질 친구가 아니에요.”
그때, 경기장 위로 마르코스 산체스가 올라왔다.
상대방과 몇 마디를 나누더니 대뜸 악수를 청했다. 그 모습을 본 마리아 산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저 녀석…… 적을 가지고 놀다 죽이는 습관 좀 없애라고 그렇게 말해도 저러네.”
상대방은 멋도 모른 채 그 손을 잡았다. 마르코스 산체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상대방의 머리를 강타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따끔하게 경고를…….”
그 직후, 마르코스 산체스가 하늘 위로 치솟았다.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마리아 산체스는 자신도 모르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어?”
* * *
우드득.
주먹을 날린 순간, 마르코스 산체스는 손목에 격한 통증을 느꼈다.
마르코스 산체스는 멍한 얼굴로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손목이 꺾인 채 부러져 있었다.
“뭔 짓을 하나 지켜봤더니. 아주 야비한 놈이었네.”
시선을 앞으로 옮기자 상대방이 보였다.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힘을 실었는데. 상대방은 멀쩡했다.
마르코스 산체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스킬을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그에게는 S급의 능력치와 초인혈의 권능인 호신기, 괴력이 존재했다.
호신기는 신체를 보호해 주는 권능이고 괴력은 근력과 체력을 증폭시켜 주는 권능이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진 마르코스 산체스의 주먹은 어지간한 폭탄보다 더욱 강력하다.
그런데 그걸 맞고도…… 멀쩡하다?
아니, 멀쩡한 정도가 아니다. 자신의 주먹이 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호신기? 산체스 가문의 혈족이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너……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았냐고?”
그렇게 말하는 권한울의 시선이 허공으로 향했다.
<‘금강기(金剛氣)’가 ‘호신기(護身氣)’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합니다!> 주먹에 얻어맞은 순간, 떠오른 메시지였다.
마르코스 산체스의 주먹이 역으로 박살이 난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금강기는 호신기의 상위호환.
둘이 충돌하면 금강기가 호신기를 이기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박살을 내버린다.
“그것까지는 알 필요 없고.”
권한울이 목을 좌우로 꺾었다. 뚝뚝 소리가 났다.
“이거 은근히 열 받네.”
권한울의 목소리에 분노가 담겼다.
다짜고짜 얻어맞으면 누구나 화를 내겠지만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초인혈(超人血)’이 분노합니다!> 하위 혈족에게 얻어맞았기 때문일까. 권한울의 내면에 있는 초인혈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니, 반응한 정도가 아니었다.
<진(眞) 초인혈 동화율 17% -> 30%> 동화올이 격하게 상승했다.
전신의 피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근육이 꿈틀거렸다.
동시에 가슴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패왕성(霸王星)’과 ‘금강기(金剛氣)’가 더욱 강해집니다!> <근력과 민첩 능력치가 S급으로 격상됩니다!> <새로운 권능이 해금됩니다!>
수많은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단 하나도 권한울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 모든 감각이 집중되었다.
“이, 이 자식…….”
마르코스 산체스는 불길함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권한울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그 순간, 권한울이 역으로 마르코스 산체스의 손을 움켜잡았다.
“이, 이거 놓지 못해!”
마르코스 산체스는 다급하게 소리치며 손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권한울에게 붙잡힌 손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 권한울이 움직였다. 허리를 비트는 것과 동시에 마르코스 산체스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금강기(金剛氣)’가 ‘호신기(護身氣)’를 파괴합니다!> <‘패왕성(霸王星)’이 근력을 증폭시킵니다!> 호신기가 없는 산체스 가문의 혈족은 맨몸이나 다름없다.
거기에 패왕성에 의해서 증폭된 S급 근력이 빛을 발했다.
“커어어억!”
마르코스 산체스의 몸이 위로 솟구쳤다.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게 솟아올랐다.
한참 뒤에야 땅으로 떨어졌다.
일순간 경기장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것도 잠시 권한울이 보여준 무용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별 것도 아닌 새끼가.”
짜증을 내던 권한울은 문득 깨달았다.
“아 맞다. 호격식 연습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