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03화>
103. 미스트리 (2)
마크 골드픽시와 거래가 끝났다.
마리아 산체스는 혈족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마리아 님.”
미스트리 도시의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다. 혈족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외부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말해 준 것 같습니다.”
“응? 아아, 우승 상품 중에 시조님의 보물이 있다고 말한 거?”
마리아 산체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마크 골드픽시는 멍청하지만 자기 목숨이 아까운 줄 아는 사람이니까. 그 물건을 건드렸다가는 우리가 자기를 죽일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거야.”
산체스 가문.
초인혈을 보유하고 있는 그들의 악명을 모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마크 골드픽시가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놓고, 재력이 많다 해도 산체스 가문을 상대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경기에 집중해. 모든 경기장에서 우승해야 하는 거 알지?”
“어차피 지하경기장에서만 이기면 되는 거 아닙니까? 시조님의 보물도 거기에 있잖습니까.”
“기왕 온 거 모든 상품을 다 가져가면 좋지. 게다가 마크 골드픽시와의 거래 내용은 모든 콜로세움에서 이기는 거였잖아?”
마리아 산체스의 말에 모든 혈족들이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내기나 할까? 누가 가장 빨리 우승할지?”
“그보다는 많이 죽인 사람이 이기는 걸로 하자.”
“멍청아. 그러면 단체전에 참가하는 놈이 유리하잖아.”
산체스 가문의 혈족들은 조금도 긴장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우승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이제 거기서 뭘 더 추가하느냐가 문제였다.
“저…… 마리아 님?”
그때, 혈족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체구가 무척 작은 소녀였다.
“혹시…… 만에 하나라도…… 진짜 만약의 경우에 모든 콜로세움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이 병신이 무슨 개소리야!”
“이게 미쳤나.”
욕설이 쏟아졌다. 소녀는 양팔로 머리를 감쌌다.
“죄, 죄송해요. 죄송해요!”
“그만.”
마리아 산체스가 입을 열고 나서야 욕설은 멈췄다. 마리아 산체스는 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라리사. 죽고 싶어?”
얼굴은 웃고 있는데. 목소리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라리사라고 불린 소녀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왜 재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혓바닥 뜯어 줄까?”
라리사 산체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개같은 질문이지만 그래도 대답해 줄게. 만약 경기에서 우승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마리아 산체스가 라리사에게 시선을 떼며 말했다.
“우리 산체스 가문은 절대로 그 물건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가져올 거야.”
* * *
권명우는 우선 숙소로 일행을 데려왔다.
놀랍게도 권명우가 빌린 숙소는 호텔 따위가 아니었다. 미스트리 시티 외곽에 지어진 저택을 통째로 빌려 놓았던 것이다.
대형 풀장부터 정원까지 모든 게 갖춰져 있었다. 흑천 일가에 있는 권한울의 저택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에잉, 아무리 급하게 왔다지만 이딴 곳을 숙소로 내주다니.”
하지만 이런 저택조차 권명우의 눈에는 차지 않는 듯 했다.
저택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불평을 쏟아냈다. 그러고 나서야 다시 권한울과 일행을 거실에 불러 모았다.
“그래서 아까 말한 경기 말이다만.”
권명우는 거대한 소파에 앉은 채로 말했다.
“살인 경기라고 했지만 꼭 한쪽이 죽을 필요는 없단다. 패배를 선언하면 그 즉시 경기는 종료가 된다.”
그 말에 권후돈이 손을 들고 물었다.
“퍠, 패배를 외치지 못하면요?”
“죽는 거지.”
권명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권후돈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뭘 겁먹고 그러냐. 이기면 되는 게 아니냐. 얼마나 좋냐. 경험도 쌓을 수 있지. 우승 상품도 얻을 수 있지.”
권명우는 웃으며 말했다.
“이 도시가 돈이 많아서 우승상품이 제법 비싸단 말이지. 아, 맞다. 다들 이걸 써라.”
권명우가 아공간을 열더니 가면들을 무더기로 꺼내놓았다.
“너희들은 정체를 숨기고 경기에 참가해야 한다. 이 가면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게다.”
“정체를 숨겨야 한다고요?”
모두를 대표해서 권한울이 물었다. 권명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미스트리의 콜로세움이 경험을 쌓기에는 제격이지만 따지고 보면 졸부 놈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셈이 아니냐. 그런 곳에 흑천의 이름을 내걸 수는 없지.”
흑천이라는 이름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하물며 이런 곳에서 흑천의 이름을 사용하는 건 상상도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가면은 유물은 아니지만 특수한 재료로 만들었다. 아무리 격하게 움직여도 벗겨지지 않고, 단단하기까지 하지.”
권명우는 일행들에게 가면을 하나씩 나눠줬다.
“다음으로 너희들이 참가할 콜로세움을 말해 주마. 우선 후돈이.”
“네, 넵!”
“너는 동관으로 간다. 거기는 단체전이 벌어지는 곳이지.”
“다, 단체전이요?”
“수십 명이 한 장소에서 전투를 벌인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눈먼 칼에 배가 뚫릴 걸.”
권후돈의 얼굴이 굳었다. 이내 다시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반드시 우승하고 올 게요!”
“아, 그리고 흑린갑은 쓰지 마라.”
“……예?”
그 말에 권후돈의 눈동자에 생기가 사라졌다.
“네 놈이 흑린갑을 사용하면 사람들이 네놈의 정체를 곧바로 알아볼 게 아니냐.”
“그, 그건 그렇지만…… 저는 흑린갑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걸요…….”
“그래, 그것 때문에 쓰지 말라고 하는 게다.”
“예?”
“너의 흑린갑은 무척 뛰어나다. 하지만 흑린갑에 의지하느라 전투경험이 부족해.”
권명우의 말대로 권후돈의 전투법은 흑린갑을 몸에 두르고 돌진하는 게 고작이었다.
“난투극을 경험하고 나면 앞으로 전투에 임하는 관점이 달라질 거다. 겸사겸사 너의 그 부스러기 같은 멘탈도 강화시키고.”
부스러기라는 말에 권후돈은 울상을 지었다.
“다음으로 메이홍.”
“네.”
“너는 서관이다. 헌터와 몬스터가 전투를 벌이는 곳이지.”
“저를 그곳에 보내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권후돈의 사례로 봤을 때, 권명우가 아무 생각 없이 메이홍을 서관으로 보낸 것은 아닐 게 분명했다.
그래서 메이홍도 물어본 것이겠지만.
“아니.”
“…….”
메이홍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가서 분풀이나 하고 오라는 뜻에서 보내는 거다.”
“그런 쓸데없는 걸 제가 왜 해야 하나요…….”
“너는 가슴에 맺힌 화가 너무 많아. 언젠가는 그 화가 너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 분노란 적아를 가리지 않는 법이니까.”
“하지만…….”
“메이 가문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했지?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냉철한 이성이다. 가슴은 분노로 타올라도 머리는 차가워야 해.”
메이홍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권명의 말에 설득되고 있는 듯했다.
“가라. 가서 네 안의 분노와 마주해라. 그리고 그걸 제어할 방법을 찾아라. 그게 내게 너에게 내리는 과제이니라.”
다음으로 권명우는 가엘 가르시안을 쳐다봤다.
“그래 가엘 가르시안이라고 했지?”
“말씀하십시오.”
“너는 딱히 부족한 구석이 없구나.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단련이 잘되어 있어.”
놀라운 일이었다.
권한울조차 지적을 당한 상황에서 가엘 가르시안은 그러지 않다는 것이니까.
“그래도 우승하기는 힘들 거다. 네가 참가할 남관은 온갖 함정을 통과해야 하는 위험한 곳이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습니다만…….”
가엘 가르시안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저는 그 명령을 따를 생각이 없습니다.”
그 말에 모두의 눈동자가 커졌다.
모두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있을 때, 가엘 가르시안이 쇄기를 박듯 덧붙였다.
“당신은 제게 명령을 내릴 권한이 없습니다.”
* * *
“하지만 대장님께서 명령하시면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가엘 가르시안이 권한울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 말에 권명우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래, 그 말이 맞다. 너는 내 수하가 아니라 저놈의 수하였지. 으하하핫!”
뭐가 그리 즐거운지 권명우는 배를 붙잡고 웃었다.
“뭐하냐 한울아. 빨리 명령하지 않고.”
“어…… 기왕 간 김에 이기고 오세요.”
가엘 가르시안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래, 이제 세 놈은 끝났고…… 너만 남았구나.”
권명우의 시선이 권한울을 향했다.
“넌 지하경기장으로 간다.”
그 말에 옆에 있던 주하연이 깜짝 놀랐다.
“권명우 님!”
“뭘 놀라는 게냐. 지금 저놈의 수준에 맞는 곳은 거기밖에 없지 않느냐.”
“그러다 권한울 님께서 위험해지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저놈이?”
권명우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저 녀석이 지금까지 한 일을 생각하면 맨몸으로 SS급 던전에 던져놔도 살아날 텐데 뭘 걱정하는 게냐.”
“권명우 님!”
“귀 안 먹었다. 소리 지르지 말 거라.”
권명우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매번 느끼지만 하연이 너는 저 녀석을 너무 과보호하려는 경향이 있어. 부모도 아니고, 애인도 아닌 녀석이…….”
“농담은 그만하세요.”
권명우와 주하연의 언쟁이 길어졌다. 참다못한 권한울이 물었다.
“지하경기장이 어떤 곳인데 그러는 겁니까.”
위험하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얼마나, 어떻게, 어떤 식으로 위험 곳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이 도시에서 가장 판이 큰 경기장이라고 할 수 있단다. 미스트리 도시의 회원들끼리 자존심 싸움을 하는 자리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군.”
권명우가 설명했다.
“미스트리 도시의 회원들이 자신이 데려온 참가자들을 내보내는 자리다. 참가자가 우승하면 그 참가자를 후원한 회원의 이름도 유명해지지.”
권한울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그럼 참가자들 수준도 상당히 높겠는데요.”
“상당히 높은 수준이 아닙니다.”
주하연이 덧붙였다.
“미스트리 도시를 운영하는 이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부들입니다. 그들이 데려오는 참가자들도 대단한 강자들뿐이죠.”
주하연이 권한울의 참가를 반대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참가자들만 위험한 게 아닙니다. 회원들도 자신의 참가자를 우승시키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런 곳에 절 참가시키겠다고요?”
권한울이 권명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권명우가 헛기침을 했다.
“네 수준이면 충분하지 않느냐.”
권한울은 잠시 고민했다.
참가를 원하는 권명우와 말리려는 주하연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말했다.
“참가하죠.”
권한울이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주하연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연 씨 걱정하지 마세요. 참가자들이 강해 봤자 얼마나 쎄겠어요.”
“물론 저야 권한울 님을 믿지만…….”
주하연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다.
권한울에게 조언을 하되 참견하지 않는 것이 그녀의 지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래야 사나이지! 잘 생각했다!”
권명우가 권한울의 등을 두들기며 크게 기꺼워했다.
“아, 그리고 방격식만 사용하거라.”
별안간 권명우가 말했다.
“예?”
“흑천의 혈족이라는 걸 숨겨야 하지 않겠느냐. 권능과 스킬은 모두 숨겨야지. 다행히 방격식은 겉으로 보면 티가 안 나니 마음껏 써도 좋다.”
조금 당황했지만 이 정도는 허용범위였다.
어차피 권명우를 따라온 이유도 방격식을 연습해서 상승형에 도달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마력도 쓰지 마라.”
“……예?”
하지만 마지막 조건은 선을 심하게 넘는 행위였다.
“다른 참가자들은 마력이고 스킬이고 다 써댈 텐데요?”
“그래도 너는 쓰면 안 된다.”
권명우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오로지 신체능력만으로 임해야 한다.”
정말 가혹한 조건이었다.
권한울은 권명우가 자신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여기 온 게 맞는지 잠시 의심했다.
“좀 까다로운데…… 한번 해 보죠.”
이번에도 권한울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흑천의 혈족인 권한울에게 마력을 못 쓴다는 페널티는 상상이상으로 컸다. 흑룡혈의 권능은 모두 많은 양의 마력을 소모하니까.
하지만 권한울에게는 흑룡혈만 있는 게 아니었다.
초인혈(超人血)
신체능력에 한해서는 전 세계 최고라 불리는 혈통도 같이 보유하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