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02화>
102. 미스트리 (1)
일이 결정되자 권명우는 곧바로 심문관들에게 연락을 넣었다.
권명우의 전화 한 번에 심문관들은 곧바로 가엘 가르시안을 데려왔다.
그 뒤, 권한울과 나머지 세 명은 여행채비를 갖추고 권명우의 전용기에 탑승했다.
“으하하핫! 자네가 세 번째로 들어온 그 놈이로군!”
비행기 안에서 권명우는 가엘 가르시안에게 큰 관심을 가졌다.
아무래도 보기 드문 환수혈의 소유자라는 점이 권명우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 같았다.
“이거, 딱 봐도 보통 놈이 아닌데? 앞으로 한울이 저 놈을 잘 부탁하겠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엘 가르시안이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권명우 같은 거물을 눈앞에 두고도 가엘 가르시안은 태도는 평소와 똑같았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가엘 가르시안도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권한울이 저 둘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옆에 앉아 있던 권후돈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 내가 권명우 할아버님의 지도를 받게 되다니.”
권후돈은 감격에 젖어 눈물을 찔끔 흘렸다.
“하, 한울아. 작은 할아버님께서는 대체 어떤 수련법을 알려 주실까?”
“글쎄.”
“내가 머, 멍청해서 이 기회를 날려버리면 어, 어떻게 하지? 하, 할아버님께서 재, 재능이 없다고 시, 실망하시고 그냥 돌려보내시면…….”
걱정도 팔자였다.
권후돈은 권명우가 감탄을 했을 정도로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최소한 권후돈이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어떤 수련일지 궁금하기는 하네.”
사실 권한울도 기대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권명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이미 메이 가문 때 확인했다.
메이 가주와 매중제일검의 협공에도 밀리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승리를 했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였다.
“하연 씨는 뭐 아시는 거 없나요?”
권한울이 주하연을 향해 물었다.
주하연은 안경을 쓴 채 책을 읽고 있었다. 안경 때문인지 날카롭던 눈매가 조금 부드럽게 보였다.
“음…… 짐작이 가는 게 있기는 합니다.”
“그래요?”
권한울이 반색을 했다. 권후돈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아닐 겁니다. 지금와서 그런 무식한 방법을 쓸 리가 없으니까요.”
“뭔데 그러세요?”
“아닙니다.”
주하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다시 독서에 집중했다.
권한울과 권후돈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하연을 바라봤다.
“한울아.”
“왜?”
“저기…… 메이홍은 괜찮을까?”
권후돈이 조심스럽게 메이홍을 가리켰다.
메이홍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창가를 내다보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주하연에게 달라붙거나 권후돈을 놀려먹었을 텐데.
너무나도 낯선 모습이었다.
“위, 위로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
“지금은 가만히 놔두는 게 좋을 거야.”
권한울은 권후돈을 말리며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잖아.”
* * *
권명우의 전용기가 도착한 곳은 호주의 최남단에 있는 항구였다.
항구에는 대형 요트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여행길에 권명우 님을 모시게 된 선장 폴 나딘이라고 합니다.”
요트의 입구에 서 있던 사람들이 권명우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폴 나딘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모두 요트를 움직이는 핵심 인력들이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요트에 올라타기 전, 권한울은 권명우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작은 할아버님?”
“왜 그러느냐?”
“수련하러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맞다.”
“근데 왜 이런 배에 올라타는 겁니까?”
그 물음에 권명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가보면 안다.”
권한울은 반신반의하며 요트에 탑승했다.
말이 요트지 크기가 여객선 못지않게 컸다.
야외에는 거대한 수영장이 있었으며 내부에는 영화관과 병원시설도 갖춰져 있었다.
덕분에 항해길이 심심하지는 않았지만 권한울의 의문은 더욱 커졌다.
이래서야 수련이 아니라 꼭 휴가를 온 것 같지 않은가?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저기 보이는구나.”
권명우가 손가락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쪽을 쳐다본 순간, 권한울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다 위에 던전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
게이트의 크기는 무척 컸다. 지금 타고 있는 대형 요트 세 척이 나란히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게이트 주변에는 전함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대충 어디선가 주워온 물건이 아니라 제대로 된 장비가 부착되어 있는 진짜 전함이었다.
“대체 뭐하는 곳이지?”
일전에 만났던 카르텔에서도 군대를 운용하기는 했지만 그 수준을 높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거래가 된 병기들이 아니라 밀수입을 통해서 얻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대형 요트가 천천히 게이트를 통과했다.
이윽고 권한울의 눈앞에 거대한 도시가 나타났다.
“세상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콜로세움이라 불리는 원형 경기장이었다.
거대한 그것이 하나도 아니고 세 개나 세워져 있었다.
그 주위로 빌딩과 각종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어때, 제법 신기하지 않느냐?”
권명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권한울은 고개만 끄덕였다.
“미스트리에 온 것을 환영한다.”
* * *
던전이 열린 이후, 인류는 큰 위기를 맞이했다.
던전을 통해 몰려드는 강대한 몬스터들에게 대항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류의 위기는 상태창을 각성한 헌터들의 등장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위기는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왔다.
평화가 길어질수록 인류의 문명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본래 인간이란 생존이 보장되면 즐길 거리에 관심이 생기는 법.
게다가 당시 지구에는 던전을 통해 유입이 된 온갖 마법 같은 물건들로 가득했다.
그리하여 돈푼 꽤나 있는 갑부들은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시를 건설했다.
“그게 이 도시, 미스트리가 생겨난 배경이지.”
도시를 걸으며 권명우가 설명을 했다.
“돈 많은 놈들이 자기네들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만든 도시야. 온갖 위법행위들이 태연하게 벌어지지.”
“그래서 여기는 왜 오신 겁니까?”
“아, 좋은 질문이구나.”
권명우가 도시에 세워진 콜로세움들을 가리켰다.
“이 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흥거리가 뭔 줄 아느냐?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살인경기다.”
살인경기라는 말에 권한울은 인상을 썼다.
“말 그대로 살인경기다. 한쪽이 죽어야 끝나지. 콜로세움마다 내용이 조금씩 달라. 한 곳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다른 곳에서는 사람과 몬스터가 싸우지.”
콜로세움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세워져 있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각자 경기장을 하나씩 배정해 주마. 가서 하나씩 제패하고 와라. 그럼 수련은 끝이다.”
그 말에 주하연이 이마를 탁 때리며 한탄했다.
“……역시.”
그제야 권한울은 주하연이 왜 그렇게 걱정했는지 깨달았다.
* * *
권한울이 막 미스트리 도시에 입항했을 무렵.
도시의 빌딩 옥상에서는 비밀스러운 회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반갑군. 내가 마크 골드픽시라네.”
고급스러운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한 여인이 붙잡았다.
“처음 뵈어요. 마리아 산체스라고 합니다.”
두 사람은 손을 놓고 각자 의자에 앉았다. 마크 골드픽시는 술잔을 꺼내며 물었다.
“한 잔 하시겠는가?”
“사양할 게요. 제가 술에 굉장히 약해서요.”
그리 말하며 마리아 산체스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남자의 보호본능을 자극할 정도로 가냘프고 여린 모습이었다.
하지만 마크 골드픽시는 자신의 그런 생각을 곧바로 지워버렸다.
눈앞에 있는 여성은 ‘보호’라는 말과는 거리가 한참 먼 폭력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저희들의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크 님의 협력이 없었다면 저희 산체스 가문은 이곳에 들어오지 못했을 겁니다.”
미스트리 도시는 존재가 감춰져 있는 만큼 보안과 감시가 철저하다.
특히 범죄자와 같이 도시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들의 입국을 엄금하고 있었다.
“서로 돕고 사는 거지. 그대들도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기로 하지 않았는가?”
산체스 가문.
초인혈을 보유하고 있는 가문으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문 전체가 범죄에 몸을 담고 있는 곳이다.
눈앞에 있는 여성, 마리아 산체스도 철성이라는 칭호로 유명한 판데모니엄의 의원이었다.
“계약 내용을 다시 확인하겠네. 나, 마크 골드픽시는 산체스 가문의 혈족들을 미스트리 도시에 밀입국시킨다. 그리고 그대들을 콜로세움에 참가시킨다. 맞지?”
“그리고 저희 산체스 가문은 모든 콜로세움에서 우승하고 후원자인 마크 골드픽시의 이름을 명예의 전당에 올린다. 맞습니까?”
“정확하네.”
마크 골드픽시가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자네들을 만나서 다행이야. 골드픽시는 미스트리 도시를 설립한 초창기 멤버라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우리가 후원한 경기자가 콜로세움에서 우승한 적이 없어서 말이야.”
“저런…… 속이 많이 상하셨겠네요.”
“속이 상한 정도가 아니야. 부끄럽다 못해서 수치스러울 정도라네. 조상님들을 뵐 낯이 없어.”
마크 골드픽시는 혀를 찼다.
“걱정 마세요. 저희 산체스 가문이 골드픽시라는 이름을 꼭 명예의 전당에 올릴 테니까요.”
“자네들만 믿도록 하지. 헌데…… 정말로 우승 상품을 가져가는 걸로 만족하려는 겐가?”
이번 거래에서 마크 골드픽시는 명예를, 산체스 가문은 콜로세움의 우승 상품을 가져가기로 했다.
우승자가 우승 상품을 가져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마크 골드픽시는 당연한 것으로 만족하려 하는 산체스 가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희 산체스 가문으로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가지고 싶은 물건들이라서요.”
“그렇게 가치 있는 물건은 없었던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 거예요. 오직 산체스 가문만이 진가를 알아볼 수 있거든요.”
“뭔데 그러는가?”
마크 골드픽시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마리아 산체스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알면 목숨이 위험해지실 텐데요.”
마크 골드픽시가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확 뺐다. 마리아 산체스가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이에요.”
“……농담이 좀 과하군.”
“사죄의 뜻으로 그 물건이 뭔지 알려드릴게요.”
마리아 산체스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산체스 가문의 시조께서 간직하셨던 보물입니다.”
마크 골드픽시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런 대단한 물건이 들어왔음에도 감정사들이 아무도 몰랐단 말인가?
아무래도 대대적으로 인원을 갈아치워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마크 골드픽시는 술을 따르며 말했다.
“이길 자신은 있는가?”
“저희를 못 믿으시는 건가요?”
“산체스 가문의 명성을 무시하는 바는 아니네만…… 미스트리 도시의 콜로세움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만만히 보고 도전했다가 패배한 유명인이 수두룩하지. 이름을 들으면 아마 자네도 놀랄 걸?”
실력을 의심하는 물음에 마리아 산체스는 묘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럴 때는 역시 직접 보여드리는 편이 빠를 것 같네요.”
마리아 산체스가 손뼉을 쳤다. 그러자 문을 열고 몇몇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을 본 순간, 마크 골드픽시는 숨이 멎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헌터들을 만나봤지만 이런 느낌은 난생처음 받아봤다.
“전원 산체스 가문의 순혈입니다.”
그 말에 마크 골드픽시의 눈동자가 커졌다.
“제가 장담하죠. 그 누가 와도 저희 산체스 가문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