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99화 (99/221)

<혈통이 깡패임 99화>

99. 종결 (2)

전쟁이 끝이 났지만 권한울은 바로 남미를 떠날 수 없었다.

흑천에서 사람이 보낼 때까지 대기를 해야만 했다.

연락을 받은 흑천 그룹에서는 곧바로 담당자들을 파견했다.

우선 잔여 세력들을 모두 정리했으며 그 과정에서 카르텔의 재산을 모두 몰수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거 같은데요.”

“한두 번 해 본 게 아니니까요.”

주하연의 대답에 권한울은 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흑천 그룹이 전리품만 취한 것은 아니었다.

카르텔을 대신해서 남미 지역의 치안을 유지했다. 동시에 무주공산이 된 남미 지역을 관리할 사람을 찾았다.

그 관리자로 뽑힌 사람이 바로 리카르도 파블로였다.

GG, 가엘 가르시안에게 납치를 당한 리카르도 파블로는 황야의 어느 오두막에 버려져 있었다.

남미 카르텔 중에서는 유일하게 반(反) 갓파더 파였던 데다가 이미 패밀리 하나를 관리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관리인을 맡기기에 제격이었다.

“왜 직접 지배하지 않는 거죠?”

“흑천은 ‘그룹’이지 ‘왕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에서 가장 이상한 대답이었다.

“남미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카르텔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국가가 존재하죠. 국가의 영토를 침범하는 일은 너무 위험합니다.”

못할 것은 없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리카르도 파블로를 앞세워서 이득을 취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리카르도 파블로는 졸지에 계 탔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권한울의 말에 주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인수인계가 끝나고 귀환 날짜가 결정됐다.

남미를 떠나기 전날.

권한울은 호텔 식당을 빌려서 팀원들과 기념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악마로 변해서 호세 딜 파블로랑 싸웠다구요?”

술과 음식을 즐기며 메이홍이 가엘 가르시안에게 물었다.

“예, 환수혈은 다른 생물의 능력을 모방할 수 있거든요.”

“그럼 제 검술도 모방할 수 있나요?”

“개개인의 능력은 불가능합니다. 어디까지나 생물의 능력을 흉내 내는지라…….”

그 말에 이번에는 권후돈이 신가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와 진짜 엄청난 능력이네. 그럼 강력한 몬스터로 변신하면 다 이길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랬으면 제가 호세 딜 파블로에게 질 일이 없었겠죠.”

가엘 가르시안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순(純) 환수혈이라 해도 모든 생물을 모방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모방한다고 해도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죠. 동화율을 최대한 상승시켜도 50%가 한계입니다.”

“그렇구나…….”

만능이지만 무적은 아니다.

다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지만 한계가 명확한 혈통.

그게 환수혈이었다.

“그래도 호세 딜 파블로와 싸울 때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조금만 더 환수혈의 동화율을 상승시켜서 이중변이 권능을 얻었더라면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을 겁니다.”

“이중동화라구요?”

흥미가 느껴졌는지. 메이홍이 물었다.

“환수혈의 마지막 권능입니다. 두 가지 생물의 능력을 동시에 모방하는 것이죠.”

“오 그러면 생물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거나 단점을 보완할 수 있겠네요.”

권한울은 굳이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모든 혈통이 잠든 이후로 항상 배가 고팠다. 일단 배부터 채우고 볼 생각이었다.

냄비 뚜껑만큼 커다란 스테이크를 거의 다 먹어치울 때쯤이었다.

<‘환수혈(幻獸血)’이 권능을 회복합니다.> 환수혈이 힘을 되찾았다.

이를 시작으로 다른 혈통들도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근데 꼭 두 종류만 가능한가요? 세 종류는 안 되나요?”

“순혈이라 할지라도 그건 불가능합니다. 오직 두 가지밖에는 안 됩니다.”

권한울은 웨이터를 불러서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였다.

그때, 또 다른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반 화신체를 사용하셨습니다.>

<흑룡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집니다.> <동화율 40% -> 43%> 반 화신체 덕분에 잠시나마 진짜 용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동화율이 상승한 듯싶었다.

<아수라왕이 편애에 불쾌감을 느낍니다.> <초인혈이 기회를 얻지 못해 큰 불만을 표출합니다.> 또 다른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편애랑 기회라니.’

권한울은 쓴웃음을 지었다. 혈통들이 이따금씩 살아 있는 생물처럼 행동할 때가 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또 처음 봤다.

<‘아수라왕(阿修羅王)’이 ‘환수혈(幻獸血)’과 결합합니다.> <‘초인혈(超人血)’이 ‘환수혈(幻獸血)’과 결합합니다.> 그때, 전혀 의외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구현화 항목에 ‘아수라왕(阿修羅王)’이 추가됩니다.> <구현화 항목에 ‘반고(盤古)’가 추가됩니다.> 권한울은 놀라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또 추가가 됐다고?’

권한울이 변할 수 있는 것은 용뿐만이 아닌 듯 했다.

아쉽게도 지금 당장 시험해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동화율이 40%를 넘을 시, 반(半) 화신체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두 혈통의 동화율은 40%가 되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당분간 혈통의 동화율을 상승시키는데 집중해야겠는데.’

굳이 구현화 때문이 아니더라도 권속혈 같은 경우에는 동화율이 아직 턱없이 낮았다.

그때, 권한울의 귓가에 가엘 가르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모든 환수혈이 두 개의 생물만 모방할 수 있는 간 아닙니다.”

“그럼요?”

“가르시안 가문의 시조께서는 두 가지가 아니라 여러 종류의 생물을 동시에 모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가엘 가르시안의 설명에 메이홍이 김이 샜다는 듯이 말했다.

“에이, 가문의 시조시면 진혈이잖아요. 그럼 불가능한 거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그냥 그런 사례가 있어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그 말을 들은 뒤, 권한울은 구현화창을 다시 쳐다봤다.

환수혈의 권능 덕분에 권한울은 다른 혈통의 근원을 이끌어내서 반(半) 화신체로 변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진(眞) 환수혈은 여러 생물의 능력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다.

그 말인 즉…….

“화신체도 여러 체를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거 아니야……?”

* * *

좁은 방.

두 남성이 철제의자에 묶여 있었다.

“끄…… 으윽…….”

“꺼어어어……,”

두 사람 모두 멀쩡한 모습이 아니었다.

고문이라도 받았는지.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만약 이 둘의 이름을 듣게 된다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갓파더와 호세 딜 파블로.

남미 카르텔 연합을 좌지우지하던 이들이었으니까.

“둘 다 정말 모르는 것 같습니다.”

흑예대원이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갓파더와 호세 딜 파블로를 저런 몰골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모른다고? 정말이야?”

권미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흑예대원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합니다. 이 두 사람은 권혁 부회장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권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대원의 말이 의심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런 분야에서는 전문가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믿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나한테 왜 전화로 그런 제안을 한 거지?”

얼마 전, 권혁은 권미에게 전화를 걸어서 권하울을 처리할 계획이 있다면서 동참여부를 물었다.

당시 권미는 권혁이 말한 방법이 분명 남미 카르텔을 말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큰 착각에 불과했다.

“……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야.”

권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 *

권혁은 손으로 귀를 매만졌다. 그 모습에 한 여인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갑자기 귀가 간지러워서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남이 내 욕을 하면 귀가 간지럽다는 속설이 있거든요.”

“그게 재미있는 속설이네요.”

말과 달리 여인은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권혁은 딱히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여인은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 서 있을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 왜 찾아오신 건가요? 권혁 부회장님.”

“지나가던 길에 들렸습니다. 블라가 가문의 원로쯤 되시는 분이니. 이렇게 종종 찾아뵙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 말에 여인, 카탈리나 블라가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가식은 집어치우고 진짜 용건이나 말하세요.”

“제 방문이 그다지 달갑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방문이 달갑지 않다기 보다는…… 당신이라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저런 말을 내뱉으면서도 카탈리나 블라가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너무하시는군요.”

“어머, 사과드릴까요?”

“괜찮습니다.”

그리 말하며 권혁은 카탈리나 블라가가 내온 홍차를 호록 마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카탈리나 블라가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카탈리나 블라가 앞에서 마음을 놓지 못한다. 무슨 수작을 부려서 자신을 노예로 만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남자, 권혁은 자기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제 아들의 통화를 무시하고 있다면서요?”

문득, 권혁이 말했다.

“이유가 궁금하군요. 권한울을 얻기 위해서는 제 아들의 도움이 꼭 필요할 텐데요.”

“글쎄요.”

카탈리나 블라가는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저번에 도움을 받아보니까 영 신통치 않던데요.”

“저런. 마음에 안 드셨나 보군요. 제가 이 자리에 와서 다행이다 싶습니다.”

권혁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카탈리나 블라가 님. 그럼 이제부터 저와 거래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됐어요.”

카탈리나 블라가는 단칼에 거절했다.

“굳이 그쪽의 도움을 안 받아도 돼요. 충분히 데려갈 자신이 있어요.”

“그러십니까?”

“계속 말하지만 나는 당신이 싫어요. 그런데 거래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 물음에 카탈리나 블라가가 짧게 혀를 찼다.

“흑천 같지 않아서요.”

묘한 대답이었다.

“흑천의 혈족들이 미친 개새끼들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외부인한테만 그런단 말이죠.”

오랫동안 살아왔기에 흑천 일가가 어떤 곳인지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었다.

카탈리나 블라가가 판단하는 흑천이란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당신은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죠. 그게 불길하단 말이죠.”

이단(異端)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권혁은 아예 다른 존재다.

흑천의 혈통을 잇고 있지만 흑천이 아니다.

“처음에는 좀 참아보려고 했는데. 곱씹을 수록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와의 관계를 끊으시려는 겁니까?”

“예, 그리고 아까 말했지만 저 혼자 힘으로 될 거 같거든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과거의 저와 똑같은 착각을 하고 계시는군요. 나 혼자서 권한울을 어찌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 말입니다.”

“재미있는 농담을 하시네요.”

카탈리나 블라가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두 눈은 웃지 않고 있었다.

권혁의 발언에 기분이 상했다는 증거였다.

“이상하게 생각하신 적 없으십니까? 혈족 한 명을 없애는 것쯤이야 제 힘으로도 충분히 가능한데. 왜 자꾸 당신을 찾아오는지.”

카탈리나 블라가가 팔짱을 꼈다. 그러고 보니 매번 의문을 가졌다.

어째서 권혁은 자신과 거래를 하려고 한 것일까.

권한울이 직계 혈족이기는 하지만 권혁의 권력이라면 쉽게 없앨 수 있을 텐데.

“회장님께서 신경을 바짝 쓰고 계시거든요. 저조차 함부로 손대기 힘들 정도로요.”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이 제법 많아요. 근데 다 저한테 소중한 사람들을 빼앗겼죠.”

“권한울, 그 아이는 진혈입니다.”

대뜸 권혁이 말했다.

카탈리나 블라가는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요?”

“권한울은 시조 권현문 이후, 두 번째로 진(眞) 흑룡혈을 보유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딴 거짓말을 누가…….”

카탈리나 블라가는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숙인 채 기억을 더듬었다.

“……이제야 이해가 되네.”

어째서 자신의 유혹이 통하지 않았는지.

어째서 권속혈의 권능이 무용지물이 되었는지.

어째서 루인 아스파담이 패배했는지.

“진혈이라서 그런 거였어.”

카탈리나 블라가가 고개를 들었다.

언제나 단정하던 얼굴에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탐욕이 떠올라 있었다.

“회장님께서 그 아이를 얼마나 애지중지하고 있을지 이제 이해가 되시는 모양이군요.”

권혁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회장님이 계시는 한 저도, 당신도 권한울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둘이 함께하면 다르다.

“카탈리나 블라가. 제 거래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권혁이 은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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