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95화>
95화 전쟁 (3)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그곳에 검은 점 하나가 찍혀 있었다.
새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기가 컸다. 무엇보다 새와 달리 날갯짓을 하지 않고도 공중에 가만히 떠 있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바라보면 금방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
검은 정장을 차려 입은 남성이 하늘을 밟고 선 채,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 비서 님! 산토루 패밀리 쪽은 끝났습니다!
“수고 했다. 마토스 패밀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이쪽도 거의 다 마무리되어가고 있어요~.
“좀 더 서둘러라. 아직 남아 있는 패밀리들이 많다.”
남자, 김 비서는 끊임없이 대화를 하며 명령을 내렸다.
전자기기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가 지니고 있는 스킬만으로 충분했다.
<카라마의 전령>
최대 열 명의 사람들과 의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스킬이다.
열 명이라는 숫자는 작지만 범위가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넓다.
게다가 전자기기와 달리 전파가 닿지 않는 곳에서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김 비서는 한 가지 스킬을 더 사용하고 있었다.
<천리안(千里眼)>
이 세상 어디든 내다볼 수 있다는 스킬.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남미 전역을 살피는 것쯤은 쉽게 해낼 수 있다.
김 비서는 하늘 위에 서서 권미의 팀인 흑예대에 지휘하고 있었다.
“동쪽으로 잔존 병력이 도망치고 있다. 쫓아가서 모두 괴멸시켜라.”
사실 지휘라고 할 것도 없었다. 흑예대와 카르텔의 전력 차이는 압도적이다 못해 절대적이다.
김 비서가 할 일은 그저 흑예대가 더욱 많은 것들을 부술 수 있게 돕는 것뿐이었다.
-아, 그렇지! 김 비서님!
그때,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 패드로 패밀리를 괴멸시킨 김하은의 목소리였다.
-권한울이 호세 딜 파블로를 혼자 맡겠다고 했다면서요? 정말인가요?
-나도 그게 궁금해. 너무 위험한 일이 아니야?
-그러니까요. 그냥 저희들한테 맡겨주시지. 권미 님은 왜 권한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대요?
팀원들의 목소리가 막 들려왔다.
카라마의 전령은 스킬의 소유자가 송신탑 역할을 하면 사람들끼리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가능했다.
-권미 님이 조심하라고 주의를 내린 놈은 호세 딜 파블로가 유일하잖아요.
-그 정도란 말이야? 믿기지가 않는데.
-저도 그래요. 정말 그렇게 강한가요?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김 비서가 입을 열었다.
“권미 님과께서 호세 딜 파블로와 흑예대가 충돌했을 때를 예상하신 결과가 있다. 들어보겠는가?”
-넵, 들어볼래요.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저도 궁금하네요.
김 비서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명이면 필패. 두 명이면 우세, 세 명이면 필승.”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던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 * *
“혼자 온 거냐?”
호세 딜 파블로가 권한울에게 물었다. 권한울은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보면 모릅니까.”
“돌아버린 건가?”
권한울을 도발하기 위해서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호세 딜 파블로는 순수하게 놀라워하고 있었다.
“너 혼자서 나를 상대하겠다고?”
“왜요. 뭐 문제 있습니까?”
“많지. 아주 많아.”
으득.
호세 딜 파블로가 이를 갈았다. 굉장히 불쾌해 보였다.
“흑천의 혈족은 원래 이렇게 무례한 모양이지? 아니면 흑천이라는 위명 때문에 두 눈이 멀어버린 건가?”
들끓는 분노에 살기가 호응한다.
금방이라도 목숨을 잃을 것 같은 묵직한 불길함이 온몸의 피부를 타고 올라왔다.
“안 그래도 처음 봤을 때부터 네 놈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호세 딜 파블로가 돌기검을 들어올렸다. 오러가 돌기검을 휘감았다.
그 오러를 옆으로 휘둘렀다. 오러가 참격이 되어 방출됐다.
그 순간, 바다가 반으로 갈라졌다가 위로 치솟았다.
실로 섬뜩한 위력이었다.
“네놈이 그렇게 오만하게 굴 자격이 되는지. 직접 확인해 주마!”
* * *
팀원들이 당황해서 묻기 시작했다.
-장난치시는 거죠?
-겨우 이딴 곳에 있는 놈이 그렇게 강하다고?
-솔직히 거짓말 같은데…… 권미 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니 안 믿을 수도 없고…….
흑예대 한 명이 호세 딜 파블로와 싸우면 반드시 진다.
거기까지는 어찌어찌 납득한다 해도 두 명이 필승이 아니라 우세한 정도에 불과하다니?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호세 딜 파블로의 모든 능력치는 이미 S급에 도달했다.”
하나만 있어도 초월적인 힘을 얻는다는 S급을 모두 갖추었다.
게다가 능력치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스킬과 특성들도 습득이 끝났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았다.
“호세 딜 파블로가 소유하고 있는 스킬도 굉장히 위험하지.”
<팔방의 손>
스킬 자체는 간단하다. 사물을 밀고 당긴다. 문제는 어느 방향으로든 적용할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활용방안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공격은 물론 방어, 이동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호세 딜 파블로는 그 스킬을 사용해서 백만 톤의 바닷물을 허공으로 끌어올린 적이 있다더군.”
그 정도 힘을 생물을 짓누르는데 쓰거나 날려버리는데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어지간한 내구력으로는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능력치가 높고 스킬이 좋다고 해서 강하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그렇지. 그걸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무척 중요하지.
-훈련 프로그램도 중요해요. 그래야 자신의 능력을 극한까지 발전시킬 수 있죠.
팀원들이 각자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김 비서는 담담하게 말했다.
“다들 잊은 모양이군. 호세 딜 파블로가 이전에 누굴 죽였는지.”
두 명의 세계랭커와 한 명이 판데모니엄 악인을 죽였다.
“라울 피닉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피닉스 길드의 후계자로 20대 중반에 이미 세계랭커가 된 천재였지. 하지만 휴가 겸 남미에 놀러왔다가 호세 딜 파블로와 시비가 붙고 머리가 터져 죽었다.”
피닉스 길드는 노발대발했지만 카르텔과 맞서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반 리히테아워. 유럽의 오랜 귀족 가문의 차남으로 이제 곧 트리플넘버로 승격을 앞두고 있던 세계랭커였다. 하지만 남미에 던전을 매입하러 왔다가 파토고 났고, 그 분노로 호세 딜 파블로에게 결투를 신청했다가 온몸이 으스러져서 죽었지.”
리히테아워 가문은 당연히 분노했다. 가문 자체의 힘이 약하기에 다른 집단에 복수를 의뢰하려 했지만 어디에서도 받지 않았다.
“그렘린. 판데모니엄에 소속된 악인으로 하룻밤 사이에 도시의 젊은 남자를 모두 죽이고 사라진 죄목으로 지명수배가 되었다. 남미에서도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려다 호세 딜 파블로의 맨손에 맞아죽었다.”
그렘린의 경우에는 아무 연고도 없었기에 별 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호세 딜 파블로는 이미 세계랭커…… 그 중에서도 트리플넘버에 필적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추정된다.”
팀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차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넓다.
가끔 이렇게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헌터가 태어나기도 했다.
넓게 보면 흑예대에 속한 헌터들도 모두 그런 경우가 아니던가.
-그런 놈을…… 권한울이 혼자 맡겠다고 말했다고?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
여러 가지 말이 오고 갔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흑천의 마녀가 비호하고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흑천의 마녀는 현재 다른 곳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왜요?
“권한울 님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 호세 딜 파블로는 혼자 맡을 테니 주하연 보고 우리 흑예대를 도우라고 했다더군.”
그 말에 흑예대 전원은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 주하연이 남자의 말을 순순히 들었다는 점에서 놀랐다.
그리고 권한울이 정말로 호세 딜 파블로를 맡을 생각이라는 점에서 놀랐다.
-그……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혹시 권한울 그 사람…… 자살희망자는 아니죠?
-믿는 구석이 있는 거 아니야?
-믿는 구석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격차가 상태에서 통할 리가 없을 텐데…….
팀원들의 걱정에도 김 비서는 단호하게 말했다.
“권미 님의 명령이다. 괜한 참견은 금지다.”
-아니, 대체 왜요?
-이건 개죽음이나 다름없잖아요.
팀원들이 거칠게 항의했다.
-혹시 아들을 위해서 권한울을…….
“그만. 더 이상 허튼 소리를 하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
김 비서의 서슬 퍼런 경고에 분위기가 냉랭하게 변했다.
“……권미 님께서는 권한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언제나 그렇듯이 무모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낼 거라고 하시더군.”
그 말에 모든 흑예대들은 권한울에 대해 들었던 말들을 떠올렸다.
흑천에 두 번째로 나타난 진혈.
그리고 불가능한 일을 몇 번이고 성공시킨 인물.
“권미 님께서는 진혈의 잠재력을 믿고 계신다.”
* * *
“아, 잠깐만.”
별안간 권한울이 두 손바닥을 내보이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호세 딜 파블로는 맥이 딱 끊어지고 말았다.
“뭐냐! 이제 와서 목숨을 구걸할 생각이라면…….”
“그게 아니라. 챙겨야 할 사람이 있어서.”
권한울은 시선을 내렸다. 호세 딜 파블로의 발밑에 엎드려 있는 GG를 발견했다.
“GG, 살아 있기는 합니까?”
피투성이가 된 얼굴 사이로 놀라움에 가득 찬 GG의 눈동자가 보였다. 권한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놀랄 정신머리가 있는 걸 보니 위급한 상태는 아닌 것 같네요.”
호세 딜 파블로가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역시 서로 아는 사이였군.”
“저 사람은 놔주고 싸우지 그래요?”
“누구 마음대로?”
호세 딜 파블로가 GG의 등짝을 밟았다. GG가 신음소리를 흘렸다.
“난 이 빌어먹을 자식을 곱게 놔줄 생각이 없는데?”
“자비가 없으시네. 그러다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또 무슨 개소리냐.”
“조금 이따 나한테 지면 이번에는 댁이 바닥에 엎드려 빌어야 할 텐데. 그때가 되면 부끄러워서 어쩌려고?”
“……네놈이 진짜 돌았구나.”
호세 딜 파블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체 뭘 믿고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네 놈의 살점을 하나하나 잘게 다져서 죽어버릴…….”
그때였다.
호세 딜 파블로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권한울에게서 풍겨오는 느낌이 너무도 위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처음 사용해 보는 거라 감이 잘 안 잡혔는데.”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호세 딜 파블로는 따질 여유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권한울의 기세가 심상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쪽이 내 헛소리에 어울려준 덕분에 시간을 벌었어.”
무슨 짓을 하는 것인가.
권한울에게서 전해지는 위압감과 불길함이 강해졌다가 약해졌다가를 반복했다.
“아하, 이렇게 하는 것이로군.”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권한울이 탄성을 냈다.
억눌려 있던 용암이 분출되는 것처럼 권한울의 마력이 분출되었다.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
호세 딜 파블로는 반사적으로 GG의 목덜미를 움켜잡고 들어올렸다.
“권한울! 당장 멈춰라!”
GG의 목에 칼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멈추지 않으면 이놈의 목을 쳐버리겠다!”
둘이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한울을 멈춰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호세 딜 파블로의 머릿속을 강하게 지배했다.
“지금 당장 멈추라고 했다!”
호세 딜 파블로가 고함을 질렀다.
그때, 권한울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용(龍)”
마력이 권한울을 중심으로 응어리지기 시작했다. 검은 봉오리가 권한울을 감쌌다.
<‘환수혈(幻獸血)’의 권능을 발휘합니다.> <‘흑룡혈(黑龍血)’이 ‘환수혈(幻獸血)’과 반응합니다!> <환수혈(幻獸血)’의 권능이 변형됩니다!> <‘흑룡(黑龍)’의 힘이 이 자리에 현현됩니다!> <반(半) 화신체를 구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