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90화 (90/221)

<혈통이 깡패임 90화>

90화 불씨 (2)

이걸 어떻게 한담.

주하연이 던전에 들어간 지 1시간째.

권한울은 곤란한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한심하게 기절이나 하고 있었다니…….”

“하, 한울아 미안해.”

메이홍과 권후돈, 이 두 사람 때문이었다.

정신을 차린 둘은 권한울에게 상황설명을 듣더니 극심한 자괴감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깟 벌레 한 마리 못 베다니…….”

“내가 좀만 더 튼튼했어도…….”

베헤모스를 어쩌지 못하고 기절한 것이 엄청나게 큰 충격인 듯 했다.

“베헤모스한테 살아남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지. 둘 다 상심할 거 없어.”

권한울은 둘을 위로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은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그러고 보니.”

문득 생각났다는 듯 메이홍이 권한울에게 물었다.

“대장님이 올 때까지 GG가 저희를 지켜줬다면서요. 근데 GG는 어디 갔나요?”

“일이 끝나자마자 먼저 떠났어요.”

“떠났다고요? 어디로요?”

권한울은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감사하다고 말도 못했네요.”

“그러게…… 자기도 위험했을 텐데 우리를 위해서…….”

GG가 신경 쓰이는 것은 권한울도 마찬가지였다.

GG의 계획은 파블로 패밀리가 납치한 가문의 혈족을 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파블로 패밀리는 남미의 한 지역을 지배하는 카르텔이다.

GG 혼자서는 벅찬 상대였다.

“아, 그런데 한울아. 악마는 어땠어? 강했어?”

권후돈의 물음에 메이홍도 관심을 가졌다.

둘 다 생전 처음 만나본 상급 악마다. 어쩌면 앞으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강했지.”

권한울은 고민 없이 말했다.

자신을 마몬이라 소개했던 상급 악마는 정말로 강했다.

“약화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나도 어쩌지 못했을 거야.”

“그, 그 정도였단 말이야?”

“그래도 대장님이 이겼잖아요. 그럼 됐죠 뭐.”

메이홍의 말에 권한울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기기는 이겼으나 만족스럽지 못한 전투였기 때문이다.

‘마몬에게는 내 현룡승천공이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권한울은 자신의 강함을 두 가지 경우로 나눠서 판단했다.

흑룡혈만 사용할 때의 자신과 모든 혈통을 동원했을 때의 자신.

그 이유는 두 경우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모든 혈통과 권능을 사용할 때의 권한울은 강적들도 쉽게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혈통의 존재를 숨기고 있는 이상, 아무 때나 사용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도핑이나 다름없는 상태라 평균적인 실력으로 여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권한울은 흑룡혈만 사용할 때를 순수한 실력으로 생각했다.

‘흑룡혈은 내가 보유한 혈통 중에서 가장 강력한 혈통이자 내 근간이 되는 능력이다.’

권한울의 전투법, 그리고 주로 사용하는 권능에 이르기까지.

모든 바탕에는 흑룡혈이 존재했다.

‘그게 통하지 않았다는 것은…… 내 실력이 마몬에게 한참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지.’

현룡승천공을 사용해도 마몬은 멀쩡히 다시 일어났다.

지금까지 수많은 강적들과 싸워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현룡승천공의 수준을 더욱 높여야한다.’

현룡승천공에게는 아직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 형인 상승형이 남아 있었다. 최근에 손에 얻은 절기도 제대로 사용해 보지 못했다.

‘아직 습득하지 못한 흑룡혈의 권능도 많다.’

현룡승천공의 진가는 흑룡혈의 권능과 조합할 때 탄생한다.

원래 10의 위력이 나올 기술도 흑룡혈과 결합하면 그 몇 배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동화율이 40%에 도달하면 환수혈의 권능을 쓸 수 있었지.’

GG가 말하기를 환수혈은 다른 생물의 능력을 흉내 내는 권능이라고 했다.

그럼 흑룡의 능력을 불러온다면 대체 어느 정도의 힘을 얻게 될 것인가.

“그 남자랑 비교하면 어땠어?”

갑작스럽게 들려온 권후돈의 물음에 상념이 깨졌다.

“그 남자라니?”

“호세 딜 파블로 말이야.”

권한울은 고민에 빠졌다. 둘 중에 누가 더 강할지 가늠했다.

“……더 강하겠지.”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누가? 역시 상급 악마가 더 강하겠지?”

“아니.”

권한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호세 딜 파블로가 월등하게 더 강할 거야.”

* * *

무법지대로 유명한 멕시코지만 모든 지역이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국가의 대도시와 맞먹을 정도로 유흥과 향락이 발달된 지역도 존재한다.

지브라시티.

멕시코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로 유명한 곳.

파블로 패밀리에서 직접 치안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멕시코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 하나였다.

이 도시를 파블로 패밀리에서 지키는 이유는 간단했다.

막대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 소소한 이유도 있었다.

파블로 패밀리의 조직원들 역시 인긴이기에 적절하게 욕망을 풀어줄 장소가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지브라시티는 번성했으며 언제나 빛이 꺼지지 않는 도시가 되었다.

“보스. 도착했습니다.”

그런 지브리시티의 뒷골목.

고급차량이 멈춰 섰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남자가 내려서 뒷문을 열었다.

뒷좌석에서 내린 사람은 제법 나이가 있는 남성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이 남자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최소한 이 멕시코에서는.

“들어가세.”

파블로 패밀리의 보스. 리카르도 파블로는 수하 두 명과 함께 건물의 뒷문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가자 클럽이 나타났다. 한창 영업할 시간임에도 클럽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리카르도 님!”

기다렸다는 듯 젊은 여성이 달려왔다. 이 클럽은 운영하는 마담이었다.

“갑자기 오신다고 하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손님들 모두 내보내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세요?”

“미안하게 됐네. 최근에 좀 힘든 일이 많아서 말이야. 마담이 곤란한 줄 알면서도 찾아왔네.”

마담은 리카르도 파블로를 클럽의 중앙으로 안내했다.

VVIP룸이 아니라 중앙으로 데려온 이유는 리카르도 파블로의 취향 때문이었다.

그는 좁아터진 곳이 아니라 이렇게 넓은 곳에서 술을 마시는 걸 즐겼다.

리카르도 파블로가 자리에 앉았다. 마담은 냉큼 그 옆자리를 차지했다.

“요즘 뭐 곤란한 일은 없는가?”

“리카르도 님이 계시는데. 그런 일이 있을 리가요.”

마담은 술을 따르며 대꾸했다.

“매번 이렇게 찾아오시면 안 힘드세요? 그냥 저를 저택에 부르세요.”

“이 늙은이의 유일한 낙이 자네 얼굴을 보려고 외출하는 건데. 그것마저 막으면 어쩌나.”

“힘드실까봐 그렇죠.”

“저택에만 있으면 갑갑해서 그래. 가끔 이렇게 산책을 나오지 않으면 몸이 굳어.”

리카르도 파블로가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독한 위스키가 식도를 긁으며 내려갔다.

“요즘 불길한 소문이 많이 들려오고 있어요.”

마담은 곧바로 빈 잔에 술을 따랐다.

“모든 카르텔이 갓파더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던데요.”

“모두는 아닐세. 아직 내가 남아 있어.”

리카르도 파블로가 눈살을 찌푸리며 술잔을 들었다.

“갓파더를 인정하지 않을 생각이세요?”

“인정하고 자시고…… 애당초 연합은 카르텔 사이의 분쟁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뿐이네. 갓파더 그 어린놈이 주제넘게 행동하는 거야.”

문제는 그 주제 넘는 행동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약소 카르텔을 하나둘 굴복시키더니 어느새 중요 카르텔마저 갓파더의 밑으로 들어갔다.

“주제넘은 질문이지만…… 리카르도 님께서는 카르텔의 통합을 원하지 않으셨나요?”

과거, 그러니까 지구에 던전이 나타나기도 전.

원래 남미의 카르텔은 한 조직이었다. 마약왕의 이름 아래서 한 몸이 되어 행동했다.

그 시기만큼 남미의 카르텔이 강대하고, 빛났던 시기는 없었다.

“원했네.”

리카르도 파블로는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갓파더…… 그놈은 아니야. 너무 위험해. 주제 넘는 꿈을 꾸고 있어.”

“주제 넘는 꿈이라면…….”

“명성을 원하더군.”

리카르도 파블로는 세 번째 술잔을 비웠다.

“카르텔의 힘을 키워서, 전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망상을 지껄이고 있어. 그런 놈을 어떻게 믿고 따르겠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 국력이라 하면 한 나라의 경제, 정치, 군사, 문화 같은 요소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면 현대에 국력은 그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

얼마나 뛰어난 헌터를 보유하고 있는가.

얼마나 강력한 유물을 소유하고 있는가.

던전만 있으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던전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출현한다.

갓파더의 망상이 여기서 시작이 됐다. 강력한 헌터를 육성해서 카르텔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실로 어리석은 놈이야.”

하지만 그건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남미 지역을 벗어나면, 세계로 나가게 되면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괴물들이 넘쳐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 멕시코를 방문 중인 흑천 그룹만 해도 동아시아의 패자요.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집단이 아니던가.

“갓파더도 그렇고 내 조카 놈도 그렇고…… 아직 아무것도 몰라.”

그리 말하며 네 번째 술잔을 들어 올릴 때였다.

갑자기 클럽 문이 열리더니 열댓 명의 사내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뭐하는 놈들이냐.”

“지금 여기 누가 계신 줄 알고!”

리카르도 파블로을 모시고 온 두 경호원이 사내들을 막아섰다.

그때였다.

“누가 계시기는. 그것도 모르고 왔을까봐?”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들이 반으로 쫙 갈라졌다. 그렇게 생긴 길로 누군가 걸어왔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리카르도 파블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놈.”

“숙부. 밀회를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호세 딜 파블로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무슨 생각으로 이딴 짓을 저지른 것이냐.”

“이미 눈치 챘으면서 굳이 내 입으로 들어야 직성이 풀리나? 파블로 패밀리의 보스가 바꾸려고 왔습니다.”

리카르도 파블로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이유가 뭐냐.”

“갓파더께서 파블로 패밀리를 원하시거든. 앞으로 그릴 원대한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카르텔이 하나가 될 필요가 있다면서.”

“원대한 이상? 카르텔을 세계적인 집단으로 만든다는 그 헛소리 말이냐?”

리카르도 파블로의 목소리에 분노가 담겼다.

“갓파더께서는 그 헛소리를 실현시킬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개 같은 말은 집어치워라! 고작 이런 촌구석에서 왕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말이 통하질 않는군. 상대할 필요가 없겠어.”

호세 딜 파블로는 혀를 찼다.

“숙부. 조용히 물러나십쇼. 괜히 숙부랑 피 흘리기 싫습니다. 아무리 나라도 숙부를 죽이면 꿈자리가 불편할 것 같거든.”

“이 놈이……!”

“그리고 갓파더께서는 온전한 파블로 패밀리를 원하십니다.”

굳이 리카르도 파블로가 클럽을 찾아올 때를 노린 것도 그 때문이다.

유일하게 리카르도 파블로가 호위 부대 없이 움직일 때가 지금이다.

다른 때를 노렸다면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시작됐으리라.

“널 키운 건 갓파더가 아니라 나다! 내 돈과 피를 받아먹고 성장한 녀석이 감히 날 배신해?”

“그건 좀 미안하네. 하지만 내 덕분에 파블로 패밀리는 더 번창할 테니. 그걸로 은혜 갚은 셈 칩시다.”

“닥쳐라!”

리카르도 파블로가 호세 딜 파블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뭐하느냐! 당장 저 놈을 내 앞에 무릎 꿇리지 않고!”

숙부의 호통에 호세 딜 파블로는 조소를 머금었다.

“숙부, 설마 저딴 놈들로 날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호세 딜 파블로의 목소리가 서서히 작아졌다.

클럽의 기둥과 천장에서 검은 옷을 입은 괴인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숙부. 이건 또 무슨 선물입니까?”

“조만간 네가 배신할 줄 알고 미리 고용한 사막의 형제들이다.”

이름까지 말해줬음에도 호세 딜 파블로는 전혀 모르는 기색이었다.

이 무식한 놈 같으니.

리카르도 파블로는 한숨을 내쉬며 설명했다.

“……트리플 넘버링의 세계랭커를 암살한 것으로 유명한 중동의 암살자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랭커들.

그 중에서도 특별히 강력한 500명의 헌터들은 넘버를 부여받는다.

사막의 형제들은 가장 낮은 숫자기는 해도 트리플 넘버를 가진 세계랭커를 암살할 정도로 저력이 있는 곳이었다.

“네놈은 네가 날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반대야. 내가 널 함정으로 몰아넣은 거다.”

사막의 형제들이 품에서 무기를 꺼내들었다.

쇠사슬, 비도, 낫 등등.

얼마나 사람을 많이 죽인 것인지 멀리서도 혈향을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널 위해서 최고의 서비스를 부탁했다. 감사히 받아라.”

호세 딜 파블로가 아공간을 열었다. 안에서 두 개의 무기를 꺼냈다.

날 대신 돋아나 뾰족한 돌기가 줄지어 돋아나 있는 대검과 암벽을 등산할 때 사용하는 피켈과 비슷한 소형 곡괭이였다.

“사막의 형제인지 나발인지 모르겠지만.”

두 무기를 양손에 쥐며 호세 딜 파블로가 살기를 일으켰다.

“곧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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