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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89화 (89/221)

<혈통이 깡패임 89화>

89화 불씨 (1)

“개소리 집어치워.”

곧바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권미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어이쿠, 진정해. 내가 이상한 소리를 한 것도 아니잖아.

“권한울을 죽이겠다고 말했으면서 뭐가 어째?”

-죽이다니? 그런 험악한 말은 쓰지 마. 나는 그냥 여행을 보내주겠다고 말했을 뿐이지.

권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뻔뻔하게 나오다니. 듣고 있는 것만으로 화가 났다.

-그보다 놀랄 일이야. 그렇게 천이를 싫어하던 네가 그 자식을 위해서 화를 내다니.

“시끄러워.”

-약간 슬프기도 하구나.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면서 표독스럽게 굴던 네가 이렇게 변할 줄이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까칠하기는. 오랜만에 남매끼리 오붓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이딴 게 대화라고?

권미는 분노를 삭였다. 여기서 화를 냈다가는 또 권혁에게 말려들게 된다.

-그럼 나랑 함께할 의사가 없는 걸로 알고 있으마. 아, 혹시 생각이 바뀌면…….

뚝.

권미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통화를 끊었다.

“재수 없는 놈.”

짜증을 내던 것도 잠시, 권미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권혁은 결코 의미 없는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권미의 고민이 깊어졌다.

* *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던전으로 들어가기 전, 주하연이 말했다.

“오래 걸릴 테니 먼저 돌아가서 쉬셔도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해요.”

“권한울 님은 몰라도 두 분은 편한 곳에 계셔야 할 테니까요.”

주하연은 메이홍과 권후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투에서 입은 피로가 심했는지. 두 사람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제가 다녀올 동안 저 두 분을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문득 권한울이 주하연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던전을 지구에 고정시킨다는 건가요?”

원래 던전은 코어를 부수거나 보스를 죽이면 소멸된다.

하지만 일부 가문들은 던전을 고정시켜서 유용하게 활용하고는 했다.

지금부터 주하연이 하려는 행위도 그것이었다.

“던전 코어를 조작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하나요?”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기물입니다.”

주하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던전을 고정시키는 방법은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

대형 가문이나 길드가 번창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이 기술 덕분이기 때문이다.

“저도 흑천 사람이잖아요.”

“비밀은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수 록 빠르게 퍼지는 법입니다.”

맞는 말인지라 권한울은 더 이상 조르지 못했다.

“그럼 이제 정말 가보겠습니다.”

주하연이 게이트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저 멀리서 소규모 부대가 달려오고 게 보였다.

권한울과 주하연은 의아한 얼굴로 부대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죠?”

“글쎄요…….”

부대는 중형차 한 대를 호위하고 있었다. 권한울은 의아한 얼굴로 자동차를 바라봤다.

자동차는 두 사람 앞에 멈췄다. 이윽고 자동차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걸어 나왔다.

지저분한 레게 머리와 반대로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

“뭐야, 왜 나와 있어?”

호세 딜 파블로였다.

“던전에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어려워서 도중에 나왔나 보지?”

그게 아니었지만 권한울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마침 잘됐군.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다.”

“무슨 일이죠?”

“너랑 같이 던전에 들어간 길잡이 어디에 있지?”

살기어린 목소리에 권한울은 직감했다.

GG의 행적이 들통이 난 게 분명했다.

“그건 왜 묻는 겁니까?”

권한울이 되물었다. 호세 딜 파블로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간부가 살해당한 현장 근처에서 그놈을 봤다는 증언이 나왔다.”

권한울은 속으로 혀를 찼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더니 결국 들키고 만 것이다.

“말해. 그 놈은 어디에 있지?”

“저도 모릅니다. 볼일이 있다면서 갑자기 사라졌거든요.”

“그게 정말이냐?”

“정말입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GG가 어디로 가는지 권한울에게 말한 적은 없으니까.

GG의 목적이라던지. 정체라던지. 알고 있는 것은 많았지만 말해 줄 생각은 없었다.

“이봐, 흑천의 지렁이.”

호세 딜 파블로가 가까이 다가와서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난 지금 기분이 무척 안 좋아. 왜냐면 그놈한테 뒤진 애들은 모두 내 부하들이거든. 만약 알면서도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라면…….”

호세 딜 파블로의 전신에서 살기가 일어났다.

조용했지만 엄청나게 짙고, 섬뜩했다. 마치 독액이 피부에 달라붙은 것처럼 온몸이 시큰했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권한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호세 딜 파블로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사내새끼가 겁먹기는. 그렇다고 내가 정말 너를 어떻게 하겠…….”

“생각해 보니 좀 웃기네요.”

대뜸 권한울이 말했다.

“웃기다고?”

“그쪽에서 붙여준 길잡이에 대한 걸 왜 나한테 묻는 겁니까?”

호세 딜 파블로가 미간을 좁혔다.

“그 놈은 우리 패밀리 소속이 아니야. 어디에나 있는 프리헌터지. 그리고 너는 그놈이랑 같이 있었잖아.”

“어쨌든 고용주는 파블로 패밀리죠. 저보다 그쪽이랑 일한 시간이 훨씬 많을 텐데 왜 나한테 따지냐는 겁니다.”

권한울은 손가락을 세워서 호세 딜 파블로의 머리를 밀어냈다.

“그쪽이 관리를 잘못해놓고 나한테 지랄하지 마시죠.”

“……지랄?”

“그래, 이게 지랄이 아니면 뭐겠어. 아니면 생각 없이 막 내지른 건가?”

권한울의 폭언에 호세 딜 파블로의 얼굴이 굳었다.

“……흑천의 이름만 믿고 나대지 마라. 여기는 한국이 아니야. 그딴 식으로 굴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뒤지는 수가 있어.”

“뭘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권한울이 호세 딜 파블로의 몸을 손가락으로 쿡쿡 밀어냈다.

“흑천의 이름만 믿고 나대지 말라고? 네 놈이 소속되어 있는 파블로 패밀리…… 아니지, 남미 카르텔 전체가 다 합쳐도 흑천의 명성에 한참 못 미쳐.”

권한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주제 파악했으면 이만 꺼져.”

침묵이 내려앉았다. 호세 딜 파블로는 한참 뒤에야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핫!”

웃음은 길게 이어졌다.

갑자기 호세 딜 파블로의 몸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공기가 밀려나오며 폭발적인 기류를 형성했다.

별안간 웃음소리가 뚝 끊어졌다. 호세 딜 파블로의 눈에서 살기가 뻗어 나왔다.

“이 새끼가!”

호세 딜 파블로가 권한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것만으로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권한울은 아무 대비도 하지 않았다. 든든한 아군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

주하연이 호세 딜 파블로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호세 딜 파블로. 당신의 숙부인 리카르도 파블로를 생각해서 이번 한 번만 참겠습니다. 이만 물러나십시오.”

“못 물러나겠다면?”

주하연이 마력을 일으켰다. 그 순간, 호세 딜 파블로의 마력과 기세가 순식간에 밀려나갔다.

순식간에 공간을 장악한 뒤, 주하연이 호세 딜 파블로에게 말했다.

“이 팔부터 뽑아드릴까요?”

두 사람은 서로를 한참 동안 노려봤다. 이내, 호세 딜 파블로가 손을 거둬들였다.

“……손님한테 이러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그리 말한 뒤, 호세 딜 파블로는 다시 자동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같이 온 부대와 함께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 * *

“수고했어요.”

호세 딜 파블로가 좌석에 앉자 옆자리에 있던 여성이 말했다.

“흑천의 마녀를 직접 겪어보니 어떠셨나요?”

“제법이던데.”

호세 딜 파블로가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이길 자신은 있으세요?”

여성, 에슐리의 물음에 호세 딜 파블로는 고민에 잠겼다.

“자신 없으신가요?”

호세 딜 파블로는 인상을 썼다. 자존심이 상했다는 뜻이었다.

“그거야 붙어봐야 아는 거지.”

“흑천의 마녀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에요. 흑천의 회장과 함께 행동한 실력자에요.”

호세 딜 파블로는 더더욱 인상을 썼다.

“그보다 왜 시비를 걸라고 한 거야? 흑천은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호세 딜 파블로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GG 때문이다.

하지만 권한울과 주하연을 도발한 것은 에슐리의 부탁 때문이었다.

주하연의 힘을 가늠해달라면서.

“그랬죠. 근데 상황이 좀 달라져서요.”

“달라졌다고?”

“파케타 패밀리가 갓파더께 충성을 맹세했어요.”

그 말에 호세 딜 파블로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 말은…… 갓파더께서 남미의 모든 패밀리를 복종시켰다는 뜻이군.”

남미의 카르텔이 하나가 된 것은 초대 마약왕 이후로 처음이었다.

호세 딜 파블로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시대를 살아가게 되다니.

“모두는 아니죠.”

그때, 에슐리가 찬물을 끼얹었다.

“파블로 패밀리가 남아 있잖아요.”

호세 딜 파블로는 벌레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랬다. 다른 패밀리들이 모두 갓파더에게 복종하는 동안 그의 삼촌인 리카르도 파블로만은 갓파더에게 충성하지 않았다.

“내가 갓파더의 편이니 그것도 시간문제지.”

“그건 그렇지만…… 굳이 기다릴 필요가 있나요?”]

“무슨 소리지?”

에슐리가 은근슬쩍 호세 딜 파블로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갓파더와 모든 패밀리들이 당신의 편이에요. 그런데 눈치를 볼 필요가 있나요? 힘으로 밀어붙이면 되는데.”

호세 딜 파블로의 얼굴이 굳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혈육을 쳐내는 것은…….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네?”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갓파더께서는 이미 준비가 끝나셨어요. 내일이라도 당장 가능하답니다.”

호세 딜 파블로는 에슐리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이미 리카르도 파블로의 측근이 누구인지. 언제 회담을 가지는지. 그런 생각들로 가득찼기 때문이다.

“그래서 흑천은 왜 건드리라고 한 거야?”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기술을 훔치기 위해서예요.”

“기술이라니?”

“흑천 그룹 같은 거대한 기업체가 어떻게 세력을 불렸는지 아세요?”

“강해서?”

에슐리는 고개를 저었다.

“던전 덕분이에요.”

“남미에도 던전은 생성되잖아요.”

“더 정확히 말하면 던전을 개조해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에슐리가 자동차 뒷유리를 쳐다봤다.

이미 한참 멀어졌으나 저곳에는 흑천 일가에서 가져가기로 한 S급 던전이 있었다.

“저들이 그 기술을 알고 있어요. 갓파더께서는 그걸 원하세요.”

“갓파더께서?”

“예, 그분은 마약상으로 생을 마감하실 생각이 없으세요. 우리의 세력을 더욱 크게, 전 세계로 확장시키고 싶어하세요.”

세력을 더 크게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던전을 사역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하연의 힘을 가늠하라고 시킨 것이다.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흑천을…… 건드리겠다고?”

호세 딜 파블로의 얼굴에 망설임이 떠올랐다. 호전적인 그라고 해도 흑천을 함부로 건드리기는 겁이 났다.

“우리에게는 갓파더께서 계시잖아요.”

하지만 그 망설임은 에슐리의 한 마디에 싹 사라졌다.

“생각해 보세요. 호세 님이 세계랭커를 죽였을 때, 어떤 일이 생겼죠?”

세계랭커가 속해 있던 길드에서 선전포고를 했다.

세계적인 길드였으니 제법 규모도 크고, 헌터들의 숫자도 많았으나.

“하지만 어떻게 됐죠?”

갓파더가 나서자 그런 말이 쏙 들어갔다.

차마 남미 카르텔 전부와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갓파더를 믿으세요. 그분께서는 모두 계획을 세워놓으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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