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83화>
83화 위험한 거래인 (3)
호세 딜 파블로.
멕시코 지역을 지배하는 파블로 패밀리의 최강.
남미 카르텔 연합을 떠받치는 기둥.
남미의 왕자.
보고서에서 그를 지칭하는 호칭은 무수히 많았다.
“호세! 손님에게 그 무슨 망발이냐!”
“허, 외숙부야 말로 어디서 고상한 척입니까. 손님이 오면 일단 부모 안부부터 묻는 게 우리 파블로 패밀리의 법도가 아니었습니까?”
또한 호칭 이외에도 호세 딜 파블로의 위험성에 대해 끝없이 경고했다.
그럴 만도 했다. 남미 지역에만 머물러 있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가 저지른 일들은 실로 충격적이었으니까.
“외숙부! 당장 흑천을 쫓아내시고 이번 일을 없던 걸로 하십시오!”
“닥쳐라! 이미 끝난 이야기다!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라!”
보고서를 읽는 내내, 권한울은 이 남자에 대해 호기심을 느꼈다. 보고서에서 경고한 만큼 대단한 실력자일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실제로 보게 된 호세 딜 파블로는.
“외숙부! 갓파더의 분노가 두렵지 않으십니까!”
“갓파더? 이 멍청한 놈! 갓파더는 연합의 관리자일 뿐이야! 수장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외숙부뿐입니다!”
보고서의 적혀 있던 내용 그 이상이었다.
괴물? 그런 말로는 부족했다. 마주보고 있는 것만으로
보자마자 느껴졌다. 이 남자가 얼마나 터무니없이 강력한지.
<‘흑룡혈(黑龍血)’이 깨어납니다.> 어지간히 격렬한 전투가 아니면 반응조차 하지 않는 흑룡혈이 호세 딜 파블로와 마주치자마자 깨어날 정도였다.
<동화율 31% -> 33%> 심지어 동화율까지 상승하고 있었다.
현 상태로는 저 남자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만큼 호세 딜 파블로를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봐, 너!”
호세 딜 파블로가 권한울을 향해 소리쳤다.
“흑천 그룹에서 왜 이 시골에 있는 던전을 탐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자코 꺼지는 게 좋을 거다!”
“권한울.”
“뭐?”
“권한울이라고 합니다. 제 이름을 모르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렸습니다.”
“권한울? 페르드랑스를 죽인 그 권한울?”
호세 딜 파블로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세계랭커 후보에 오르지도 못한 놈이 판데모니엄의 악인을 죽였다지?”
호세 딜 파블로가 권한울 쪽으로 걸어왔다. 둘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좁아졌다.
“판데모니엄이니 세계랭커니, 그딴 놈들은 나도 몇 번 죽여본 적이 있지. 이름만 거창하고 별 볼일 없는 놈들이긴 하지만 너 같은 놈이 어쩔 수는 없었을 텐데?”
호세 딜 파블로의 걸음이 멈췄다.
“어디 한 번 시험해볼까?”
그 순간, 호세 딜 파블로의 살기가 강해졌다.
<진(眞) 흑룡혈 동화율 33% -> 35%> <진(眞) 수라혈 동화율 25% -> 27%> <진(眞) 초인혈 동화율 15% -> 17%> 혈통의 동화율도 덩달아 상승했다.
“호세! 그만하지 못할까! 저 사람은 흑천에서 왔다!”
“외숙부, 알고 있는 사실을 또 말할 거 없습니다. 오래 전 일이라 잊으신 모양인데.”
호세 딜 파블로이 눈동자가 게슴츠레해졌다.
“내가 세계랭커랑 판데모니엄의 개새끼들을 죽였을 때, 그놈들이 속해 있던 길드랑 조직에서 복수한다고 길길이 날뛴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 잊으신 모양입니다.”
리카르도 파블로의 경고조차 호세 딜 파블로를 제지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호세 딜 파블로의 목덜미에 칼날이 들어왔다. 어느새 다가온 메이홍이 칼을 겨눈 것이다.
“넌 또 뭐야.”
“그건 아실 거 없고. 우리 대장님한테 손대면 바로 그어버릴 거예요.”
“이딴 뭉툭한 검으로 날 막으시겠다?”
“제 검만으로는 부족하겠죠.”
메이홍이 슬쩍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호세 딜 파블로도 그쪽을 쳐다봤다.
권후돈이 팔과 다리에 흑린갑을 두른 채 언제든지 튀어나갈 수 있도록 자세를 잡고 있었다.
“하.”
호세 딜 파블로가 가소롭다는 듯이 조소를 터트렸다.
“이놈들이 미쳤나. 감히 이딴 수준으로 나한테 개기겠다고?”
“저도 있습니다.”
“또 누구야!”
호세 딜 파블로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정면을 쳐다봤다.
권한울의 뒤편에 주하연이 서 있었다.
주하연까지는 얕볼 수 없었는지 호세 딜 파블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이건 또 뭐하는 년이야.”
“절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내가 너 같은 년을 어떻게 알아.”
호세 딜 파블로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권한울은 알 수 있었다. 권속혈이 호세 딜 파블로의 정신상태를 보여줬다.
주하연이 나선 이후부터 호세 딜 파블로는 긴장하고 있었다.
“이거 아주 재미있게 돌아가네.”
하지만 긴장은 잠깐일 뿐이었다. 다시금 살의와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그래, 기다릴 필요 없지. 이 자리에서 매듭지어 보자고.”
“호세, 그만해라.”
“외숙부는 잠깐 닥치고 있으십쇼. 여기는 내가 알아서 잘 처리…….”
그때였다.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호세 딜 파블로는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
“잠깐 전화 좀 받읍시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무슨 일이야? 뭐야? 또 살해당했다고? 이번에는 누구야? 오리헬?”
호세 딜 파블로는 신경질적으로 통화를 끊었다.
“외숙부. 오리헬이 죽었답니다.”
그 말에 리카르도 파블로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무슨 소리냐. 그 놈이 왜 죽어. 딸려 있는 헌터가 몇 명인데.”
“나도 방금 막 들었으니 묻지 마십쇼.”
언제 싸웠냐는 듯이 둘은 이번 일에 대해서 논의하기 시작했다.
“젠장, 바빠 죽겠는데.”
호세 딜 파블로는 살기를 모조리 거두었다. 권한울에게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급한 일이 생겼으니 어쩔 수 없이 간다만…… 던전은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호세 딜 파블로는 문을 쾅 닫고 사라졌다.
“저 멍청한 놈.”
리카르도 파블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미안하게 됐소. 내 사과드리리다.”
“괘념치 마십시오. 파블로 패밀리의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왔습니다.”
권한울의 말에 리카르도 파블로는 얼굴이 어두워졌다.
패밀리의 내분이 외부에도 알려질 정도로 심해졌다는 뜻이니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괜찮다면 던전을 지금 당장 둘러보고 싶습니다만.”
권한울의 말에 리카르도 파블로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내 조카가 저렇게 난리를 피우는 걸 보고도 던전에 들어가려는 건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권한울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들개가 짖었다고 겁에 질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리카르도 파블로의 얼굴이 잠시 멍해졌다.
“아, 그리고 조카 분 간수를 잘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권한울은 리카르도 파블로를 향해 말했다.
“저는 몰라도 다른 흑천의 혈족은 이 일을 참지 않을 테니까요.”
* * *
호세 딜 파블로는 급히 현장으로 달려갔다.
“젠장.”
그리고 현장을 본 순간,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도시의 구석진 골목길.
그곳에 새까맣게 타버린 카르텔 전투원들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도시경비대장 오리헬의 경우에는 한층 더 심했다. 온몸이 짓이긴 채 죽어 있었다.
호세 딜 파블로는 조직원에게 물었다.
“목격자는?”
“어, 없습니다.”
그 순간, 호세 딜 파블로가 조직원의 얼굴을 후려쳤다. 턱이 분리되며 이가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이런 개 같은! 어떤 새끼야! 어떤 새기가 우리 패밀리를 건드리고 다니는 거야!”
이걸로 벌써 다섯 명이다. 그런데 아직도 범인을 특정 짓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서 이런 놈이 튀어 나왔지?”
오리헬은 보통 실력자가 아니다.
파블로 패밀리에서, 아니 남미 카르텔 전체를 뒤져봐도 이만한 실력자는 많지 않다.
괜히 도시경비대장이라는 역할을 맡긴 게 아니다.
그런 오리헬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그만큼 실력 차이가 컸다는 뜻이다.
“주변을 뒤져봐.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놈을 잡을 단서를 찾아내!”
호세 딜 파블로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조직원들이 허둥거리며 흩어졌다.
호세 딜 파블로가 화를 삭이며 골목길을 나왔다. 대로변으로 걸어갈 때였다.
자동차 한 대가 그의 앞에 멈춰 섰다. 뒷문이 열리더니 한 여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거기 멋진 남성분, 타실래요?”
그 말에 호세 딜 파블로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없는 멘트야.”
그리 말하면서도 호세 딜 파블로는 자동차에 올라탔다.
“던전은 어떻게 됐나요?”
여인의 물음에 호세 딜 파블로가 혀를 찼다.
“결국 외숙부께서 그 던전을 흑천에 넘기기로 하셨다.”
“저런…… 갓파더께서 그 던전에 거시는 기대가 크셨는데요.”
“갓파더께는 걱정 말라고 전해 드려. 내가 반드시 저지할 테니.”
“제가 말한다고 갓파더께서 노여움을 푸실지는…….”
“약한 척 하지 마. 너라면 가능하잖아.”
호세 딜 파블로의 말에 여성, 에슐리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 기왕 흑천에 넘겼으니 다른 식으로 사용하는 건 어떠세요?”
“무슨 말이지?”
에슐리가 호세 딜 파블로에게 귓속말을 했다.
귓속말이 길어질 수 록 호세 딜 파블로의 얼굴이 놀랐다가 굳어졌다.
“……외숙부를 배신하라고?”
“이대로 계속 파블로 패밀리를 분열된 채로 놔둘 수는 없잖아요? 흑천을 이용하면 일이 쉬워질 거예요.”
“그러다 흑천이 분노하면?”
흑천의 악명은 호세 딜 파블로도 자주 들어봤다.
딱히 겁먹은 것은 아니지만 찜찜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모든 원한은 리카르도 파블로 님께서 안고 가실 거예요.”
에슐리는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그리고 갓파더께서 계시는데 그깟 흑천이 무서우세요?”
그 말에 호세 딜 파블로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럴 리가…….”
말을 내뱉으려던 찰나 호세 딜 파블로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방금 전에 봤던 권한울이라는 남자의 얼굴을 말이다.
“…….”
어째서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보다 한참 약한 남자였다. 그런데 좀처럼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자신을 응시하던 그 눈.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그 검은색 눈동자를 좀처럼 잊을 수가 없었다.
“호세 님?”
에슐리가 재차 물었다. 그제야 호세 딜 파블로가 말했다.
“갓파더께서 계시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
* * *
저택을 나온 권한울은 리카르도 파블로가 준비한 자동차를 타고 던전으로 이동했다.
오늘 당장 공략할 생각은 없었다. 길잡이를 만나서 설명을 듣고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는 게 목표였다.
“이곳입니다.”
운전기사가 자동차를 멈췄다.
선인장이 곳곳에 피어 있는 사막 한가운데에 던전 게이트가 떠올라 있었다.
“이게 S급 던전…….”
다른 던전에서 느껴지는 마력양이 은은한 꽃향기라고 한다면 S급 던전에서 느껴지는 마력양은 향수 한 병을 통째로 들이부은 것 같았다.
“엄청나네요.”
“우와아아…….”
메이홍과 권후돈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반면 주하연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하연 씨는 별로 안 놀라시네요.”
“저야 많이 봤으니까요.”
과연 경험이 느껴지는 태도였다.
별안간 인기척이 느껴졌다.
“흑천에서 오신 분들이십니까?”
로브를 뒤집어쓴 남성이 권한울을 향해 물었다. 권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는 이번 던전의 안내를 맡은 길잡이입니다.”
남성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GG라고 불러주십시오.”
“반갑습니다. 권한울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다른 사람들을 소개하려던 찰나, 권한울은 움찔했다.
이 남자, GG에게서 옅은 혈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메이홍, 권후돈, 그리고 주하연이라고 합니다.”
암살자인가 싶었지만 살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앞으로 잘해 보죠.”
권한울은 일단 판단을 보류하며 악수를 청했다.
“저야 말로.”
GG가 권한울이 내민 손을 잡았다.
그때, 메시지가 떠올랐다.
<‘???’가 환수혈(幻獸血)을 감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