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82화 (82/221)

<혈통이 깡패임 82화>

82화 위험한 거래인 (2)

정오.

하루 중 태양이 가장 높게 뜬 시간.

“끄아아악!”

“꺄아아악!”

멕시코의 어느 작은 마을이 소란스러워졌다.

갑자기 들이닥친 카르텔의 전투원들이 마을을 뒤엎기 시작한 것이다.

전투원들은 마을의 집이란 집은 모두 뒤지기 시작했다. 이내 한 가족을 마을 광으로 끌고 왔다.

느닷없이 끌려나온 두 부부는 영문도 모른 채 공포에 떨었다. 부부의 어린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잡아왔습니다.”

전투원들은 광장에 앉아 있는 남성을 향해 말했다. 몸집이 비대한 남성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확실하냐?”

“확실합니다!”

“그래, 수고들 했다.”

남성은 펑퍼짐한 엉덩이를 바닥에서 뗐다. 그리고 가족들을 향해 걸어갔다.

“hkk2021.”

그리고 뜬금없는 말을 툭 내뱉었다. 부부는 멍한 얼굴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hkk2021이 누구냐.”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살기가 가득한 목소리가 세 번은 없다는 무언의 경고를 했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었다.

아들이었다.

“제, 제가 인터넷에서 쓰는 아이디인데요.”

“하, 참나.”

아이의 말에 남성은 기가 찬다는 듯이 웃었다.

“이 밤톨만한 꼬맹이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부부는 아들과 남성을 연신 번갈아서 쳐다봤다.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부모가 돼서 아들이 뭐하는지도 몰랐나 본데. 이 당돌한 애새끼가 인터넷에 우리 파블로 패밀리에 대한 험담을 지껄였다 이거야.”

남성의 말에 두 부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파블로 패밀리는, 아니 남미의 카르텔은 자신들을 향한 어떤 비난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게 설사 어린 아이라도 말이다.

“요, 용서해 주십시오!”

남편이 황급히 바닥에 엎드렸다. 아내도 똑같이 행동했다.

“저, 저희 아들이 처, 철이 없어서 벌인 짓입니다!”

“다, 단단히 교육시킬 테니까 부디 살려주세요!”

두 손을 싹싹 빌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흠.”

남자는 무심한 얼굴로 부부를 내려다봤다.

“철이라…… 그래,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그 말에 부부의 얼굴에 조금 화색이 돌았다.

“파블로 패밀리는 전부 부모가 홀수라던가. 죽으면 악마한테 후장이 경매당할 거라든가. 밤마다 서로 못 붙어먹어서 안달이라던가.

그러나 뒤이어 들려오는 말에 다시 사색이 되었다.

“아주 좆같은 말만 골라서 했지만 이해할 수 있어. 애니까. 철이 없으니까. 하지만 말이야…….”

남성의 얼굴이 서서히 험악하게 변했다.

“부모가 그걸 방관하면 안 돼지. 안 그래?”

남성이 수하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남자랑 애새끼는 죽이고, 여자는 벗겨서 애들한테 싹 돌려.”

그 순간, 부부가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아들은 결국 졸도해버렸다.

“사, 살려주세요!”

“제, 제발! 제발!”

부부의 애원에도 카르텔의 전투원들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누, 누가 좀 도와주세요!”

아내가 마을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그러나 창문 몇 개가 닫힐 뿐,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질문 하나만 하겠소.”

나서지 않을 줄 알았다.

낯선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마을의 입구에 갈색 로브를 뒤집어쓴 괴한이 서 있었다.

“넌 또 뭐냐?”

퉁명스러운 물음에 괴한이 살짝 고개를 들어 남성을 쳐다봤다.

“파블로 패밀리의 청소꾼 리로 모로 맞소?”

“넌 뭐냐고.”

“질문은 내가 먼저 했소. 리로 모로가 맞냐고 물었소.”

“이게 미쳤냐. 그래, 내가 리로 모로가 맞다.”

남성, 리로 모로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었다.

“내 이름을 들었으니 값을 치러야지. 얘들아 시체 하나 더 늘려야겠다.”

그 명령에 전투원 몇 명이 남성을 향해 다가갔다.

“곱게 죽고 싶으면 얌전히 따라와…….”

“사람은…….”

그때, 괴한이 입을 열었다. 전투원이 인상을 썼다.

“뭐라고?”

“사람은 죄를 지으면 벌을 받지 않으면 안 되오.”

“뭔 개소리…….”

괴한이 로드를 벗었다.

그 순간, 카르텔의 전투원들, 그리고 바닥에 있는 부부, 심지어 훔쳐보고 있던 마을 주민들 모두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토끼귀……?”

괴한의 머리 위에 새하얗고, 북슬북슬해 보이는 토끼귀 하나가 뿅 튀어나와 있었던 것이다.

“내 살다 살다 토끼 귀를 달고 다니는 미친놈은 또 처음 보네.”

리로 모로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때였다.

“오우거.”

괴한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러자 토끼귀가 사라졌다.

대신 피부가 푸르죽죽하게 물들었다. 이가 톱날처럼 뾰족하게 솟아났다. 두 눈에서 붉은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당황한 전투원을 향해 손바닥을 횡으로 휘둘렀다. 손바닥이 지나갈 때마다 전투원들의 머리가 전구처럼 터져나갔다.

괴한을 둘러싸고 있던 전투원들이 모조리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이 등신들아! 뭘 보고만 있냐! 당장 공격해!”

리로 모로가 소리쳤다. 전투원들이 등에 매고 있던 총기를 겨누고 격발했다.

굉음과 함께 수백 발의 총알이 난사됐다. 그러나 어떤 총알도 남자의 가죽을 뚫지 못했다.

“다 때려 박아! 전부!”

전투원 한 명이 유탄발사기를 남자에게 겨누었다.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유탄 한 발이 날아갔다.

콰앙!

폭발과 함께 남자의 몸이 불길에 휩싸였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안에서 걸어 나왔다.

“저 미친놈이……!”

괴한이 전투원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괴한이 날 뛸 때마다 대여섯 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헌터 새끼들은 왜 가만히 있는 거야!”

리로 모로의 외침에 후방에 있던 전투원들이 무기를 꺼내들었다.

섬뜩한 오러가 무기를 휘감았다. 파블로 패밀리의 헌터답게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카르텔의 헌터들이 괴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살기어린 오러가 괴한을 난도질하려 했다.

그들을 보며 괴한이 다시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샐러맨더.”

괴한의 피부에 붉은 비늘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파충류처럼 동공이 길쭉해졌다.

손을 뻗어서 손가락을 튕겼다. 가장 앞에 있던 카르텔 헌터의 몸이 불길에 휩싸였다.

“악! 아악!”

비명은 짧고, 고통은 더 짧았다. 곧바로 재로 변해버렸으니까.

“뭐?”

카르텔 헌터 한 명이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 찰나, 다시 괴한이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헌터 전원이 불길에 휩싸였다.

“으아아악!”

“끄아아아악!”

곧이어 비명소리가 끝나고 바닥에 검은 재들이 나뒹굴었다.

“으, 으아악!”

리로 모로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두 다리가 서로 엇갈려서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마, 막아! 막으란 말이야!”

리로 모로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다른 전투원들은 모두 도망친 뒤였다.

괴한은 리로 모로를 향해 다가갔다. 걸어갈 때마다 다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너, 넌 대체 뭐야!”

“이번에는 다른 것을 묻겠소.”

“내, 내가 누군지 몰라? 파블로 패밀리의 간부야!”

“가르시아 가문의 혈족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 말하시오.”

“나, 날 건드렸다가는 파블로 패밀리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리로 모로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가르…… 뭐라고?”

“3년 전, 파블로 패밀리에서 억지로 끌고 간 가르시아 가문의 혈족들은 지금 어디에 있냐고 물었소.”

리로 모로의 얼굴에 서서히 경악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가르시아? 네, 네놈 설마 화, 환수혈…….”

괴한이 리로 모로의 팔을 짓밟았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

“끄, 끄아아악!”

“쓸데없는 말은 허락하지 않겠소. 가르시아 가문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소.”

“나, 나는 몰라! 호세 님이…… 호세 딜 파블로가 데려갔단 말이야! 난 아무 것도 몰라!”

“그렇단 말이지.”

괴한의 말에 리로 모로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 남자가 자신을 사려둔 이유는 가문 사람들의 행방을 묻기 위해서였다.

그럼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자, 잠깐만…….”

리로 모로가 황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괴한의 발이 리로 모로의 머리를 으스러트렸다.

* * *

며칠 뒤, 권한울은 멕시코로 출발했다.

“저라면 그때 목이 아니라 다리를 노릴 거예요.”

“하지만 그랬다가 반격을 당하면 위험한 걸.”

멕시코로 향하는 전세기 안에서 메이홍과 권후돈은 모의대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출발하기 전에도 권한울과 대련을 하면서 지적받은 내용을 고치고 있던 것이다.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주하연이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두 분의 수준이…… 엄청 높아지셨네요.”

옆에 앉아 있던 권한울은 별 생각 없이 말했다.

“둘 다 열심히 하잖아요. 재능도 있고.”

“그건 그렇습니다만…….”

주하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단기간에 바뀌실 줄은 몰랐습니다.”

주하연 정도 되는 실력자가 놀랄 정도면 두 사람의 성장이 범상치 않다는 뜻이리라.

권한울은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둘이 급격한 성장을 이룬 것은 분명 권한울의 조언 덕분이리라.

진(眞) 천재혈과 진(眞) 수라혈이 분석하여 내놓은 노언이니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주하연이 감탄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 후돈 오빠. 말씀드렸잖아요. 거기서 뒤로 빠지시는 건 악수예요! 제가 검을 비틀어서 찌르면 어쩌려고요!”

“그, 그렇지만 파고드는 게 더 어려운 걸…….”

둘의 대화를 들으며 권한울은 태블릿피씨에 시선을 옮겼다.

태블릿피씨의 액정에는 이번 작전에 대한 개요와 구체적인 내용이 적힌 보고서가 떠올라 있었다.

<멕시코 지역의 S급 추정 던전 운송 계획서> 이번 임무는 단순히 S급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 아니다. 그 던전을 흑천 일가까지 옮겨야한다.

본래 던전이란 공략하면 소멸된다. 하지만 흑천 일가에는 모종의 방법을 통해 공략이 끝난 던전을 남겨놓고 용도에 맞게 사용했다.

이번 S급 던전도 마찬가지였다.

흑천 일가에 필요한 자원을 얻을 수 있기에 반드시 본가까지 옮겨야 했다.

“하연 씨, 여기 던전을 수송 가능하게끔 특수 처리를 해야 한다는데. 어떻게 하는 건가요?”

“아, 그건 제가 전부 알아서 할 겁니다.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던전을 수송 가능하게끔 가공하는 것은 흑천 일가를 비롯한 몇몇 가문들만 알고 있는 비전 중의 비전이었다.

얼마나 심한지 권한울에게조차 말해 주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 제 역할은 던전을 청소하면 끝나네요.”

그리 말하며 권한울은 화면을 넘길 때였다.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권후돈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잠깐 전화 좀 받고 올 게.”

권후돈은 전세기 구석진 곳에 가서 전화를 받았다. 몇 마디 주고받더니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어? 어어? 한울이를?”

느닷없이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권한울은 의아한 얼굴로 권후돈을 쳐다봤다.

권후돈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 한울아. 엄마가 전화 좀 바꿔달라는데…….”

순간, 권한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썩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노릇이었다. 권한울은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받았다.

-오랜만이구나.

받자마자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한울은 쓴웃음을 지었다. 권후돈을 구해 주기까지 했건만 둘의 관계는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고모님, 무슨 일이십니까.”

-당부 몇 마디 하려고.

당부? 경고가 아니라?

권한울은 속으로 의문을 가졌다. 지금 권미가 내뿜는 분위기는 당부처럼 부드러운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경고, 혹은 통보를 하러 왔다면 또 모를까.

-던전에 들어가면 절대로 긴장의 끊을 놓지 마렴. S급 던전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위험한 법이란다.

권미는 권한울에게 S급 던전에 대한 주의사항을 쭉 늘어놓았다. 권한울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 감사하기는 한데…… 이걸 왜 말해 주시는 겁니까.”

-무슨 헛소리니. 네가 판단을 잘못하면 우리 후돈이가 위험에 빠지잖아!

그럼 그렇지.

권미가 권한울을 걱정할 리가 있나. 하늘이 무너져도 그럴 일은 없었다.

“그리고 네가 임무를 잘 끝내지 못하면 내가 골치 아파 진단 말이야.

“고모님께서 왜 골치 아파지신단 말입니까?”

권한울의 의문에 권미가 혀를 차며 대답했다.

-왜긴 왜야. 수송대를 맡게 된 사람이 나니까 그렇지.

권한울은 잠시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던전 게이트를 옮기는 수송대를 권미가 맡게 됐다고?

“그…… 바쁘실 텐데 어려운 결정을 하셨네요.”

-어째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구나?

“그럴 리가요.”

예리하기는.

권한울은 속으로 툴툴거렸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이야기 하마.

이야기 거리가 또 잇단 말인가.

권한울이 속으로 질려할 때였다.

-파블로 패밀리를 조심하렴.

뜻밖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파블로 패밀리가 저희를 공격하기라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어지간해서는 그럴 일은 없겠지. 그놈들도 생각이 있으면 흑천을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여기까지는 주하연이 했던 말과 똑같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상황이 바뀌었단다. 파블로 패밀리의 주인인 리카르도 파블로와 남미 카르텔 연합의 수장인 갓파더 사이에 불화가 생겼거든.

남미 카르텔들은 서로 긴밀한 연합을 맺고 있다.

브라질 카르텔은 마약의 생산을, 멕시코 카르텔은 가공을, 콜롬비아 카르텔은 밀수출을 맡는 등등.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총괄하는 관리자가 바로 갓파더라는 인물이다.

남미 카르텔 연합의 수장이니 만큼 실질적인 남미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조언 감사합니다. 하지만 말씀하시는 내용을 들어보면 파블로 패밀리가 아니라 갓파더를 조심해야할 거 같은데요.”

-현재 파블로 패밀리는 갓파더와의 대립 때문에 파블로 패밀리가 두 파벌로 갈라진 상태야.

권미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반(反) 갓파더 파벌 쪽이 파블로 패밀리의 수장인 리카르도 파블로. 그리고 친(親) 갓파더 파벌 쪽은 호세 딜 파블로란다.

둘 다 보고서에 적힌 내용이었다.

“호세 딜 파블로라면…… 파블로 패밀리 최강의 헌터를 말하시는 겁니까?”

호세 딜 파블로.

리카르도 파블로의 조카이자 파블로 패밀리 최강의 헌터.

남미 카르텔 연합에서도 독보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오죽했으면 갓파더가 그를 따로 불러서 양아들로 삼았을까.

보고서에서도 그 인물을 특히 비중 있게 다룰 정도였다.

“세계랭커 둘과 판데모니엄의 악인 한 명을 죽였다고 적혀 있던데요.”

권한울은 믿기 힘들다는 어투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남미에서만 활동하는 헌터가 이렇게 강하단 말인가.

-엄청난 사건이라 당시 헌터 업계가 떠들썩했지.

하지만 권미마저 이렇게 말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인물이 가주와 대립을 하고 있다.

단순한 의견차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마 패밀리의 주도권을 가지고 싸우고 있는 것이겠지.

그제야 권한울은 권미가 왜 조심하라고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럼 이만 끊으마.

볼일이 끝나자마자 권미는 바로 통화를 끝내려 했다.

그 칼 같은 태도에 권한울은 쓴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마지막으로.

아까도 마지막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권한울이 의문을 느꼈을 때였다.

-후돈이를 구해 줘서 고마웠다.

권한울의 눈동자가 커졌다.

하지만 이미 권미의 통화는 끊어진 상태였다.

“…….”

권한울은 한동안 멍하니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권후돈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하, 한울아 왜 그래?”

권한울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 * *

그렇게 꼬박 몇 시간을 날아갔을까.

드디어 멕시코에 상공에 도착했다.

비행기의 고도가 낮아지더니 활주로에 착륙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파블로 패밀리에서 보낸 안내자가 권한울을 일행을 반겼다.

“흑천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권한울은 인사를 받는 대신 안내자와 조직원들을 한 명 한 명 살폈다.

귀빈용 차량을 중심으로 중무장한 병사들과 철갑을 두른 운송차량, 그리고 장갑차가 포진해 있었다.

지금 이 상태로도 전쟁을 치룰 수 있을 정도로 굉장한 무장이었다.

“환영이 좀 과한 거 같군요.”

권한울의 말에 안내자가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불순한 의도는 없습니다. 며칠 전, 파블로 패밀리의 간부가 살해당하는 일이 생겼기에 경호에 좀 더 신경을 쓴 겁니다.”

“습격이라고요?”

“금방 흉수를 찾아낼 테니 마음 푹 놓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는 안내자의 눈빛은 실로 섬뜩했다. 권한울은 속으로 얼굴도, 이름도 모를 흉수를 동정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권한울 일행을 태운 차량이 출발했다. 그 뒤를 병사들이 뒤따랐다.

파블로 패밀리의 저택까지 가는 길을 굉장히 멀었다.

카르텔의 군대가 지키는 검문소를 다섯 개쯤 지나고 나서야 권한울은 파블로 패밀리의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

“와아.”

“허…….”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그만큼 파블로 패밀리의 저택이 사치스러웠기 때문이다.

바닥은 호박 보석으로, 벽은 백금으로 치장이 되어 있었다. 복도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들은 모두 유명한 명화들 뿐이었다.

흑천에서 나고 자란 권후돈과 주하연까지 놀랄 정도라니.

마약을 팔아서 얻은 부가 이토록 대단할 줄은 몰랐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안내자는 커다란 응접실로 그들을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방 안에 한 남성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권한울은 남자를 살폈다. 일반인인 듯 어떤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인이라고 하기에는 전신에서 풍기는 피비린내가 너무 심했다.

진짜로 냄새가 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분위기와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느껴졌다.

이 남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여 왔는지.

“만나서 반갑군.”

남자가 입을 열었다. 마력 한줌 없는 몸임에도 상당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본인은 파블로 패밀리를 책임지고 있는 리카르도 파블로라 하오.”

과연.

파블로 패밀리쯤 되면 수장마저 범상치 않다는 뜻인가.

나름대로 감탄하며 권한울은 자신을 소개했다.

“흑천 일가의 권한울이라고 합니다.”

이름을 듣자마자 리카르도 파블로의 미간이 좁아졌다.

“흑천도 참 너무하시는군.”

이유는 몰랐지만 리카르도 파블로의 목소리에 짙은 불만이 느껴졌다.

“우리 파블로 패밀리가 비록 약이나 팔아먹는 놈들이지만 거래자로 당신 같은 사람을 보내다니.”

객관적으로 놓고 봤을 때, 권한울의 지위는 무척 낮았다.

그런 권한울을 거래상대로 보냈으니 리카르도 파블로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만이 생길 터.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리카르도 파블로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권한울을 향해 다가갔다.

그가 다가올 동안 권한울은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어떻게 해야 리카르도 파블로를 달래면서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을지를…….

별안간 리카르도 파블로가 권한울의 손을 붙잡았다.

“이런 영광이 다 있나.”

“……예?”

“소문이 자자한 흑천의 신예를 직접 보게 되다니!”

순간, 권한울은 리카르도 파블로가 자신을 조롱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초롱초롱한 두 눈하며 만개한 미소가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줬다.

“저를 잘 아시는 듯 한데…….”

“모를 리가 있겠나. 판데모니엄의 악인 페르드랑스를 쓰러트린 흑천의 소룡(小龍)!”

권한울이 어리둥절해 하자 리카르도 파블로는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흑천의 신예께서는 본인이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시는 모양이로군. 다른 놈들이 하는 말에 비하면 내 말은 띄워주는 것도 아니지.”

처음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리카르도 파블로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다 말하시오. 던전을 공략할 때까지 모든 편의를 다 봐드릴 테니.”

“음…… 감사합니다.”

권한울은 이 호의를 그냥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던전 공략은 언제쯤 시작할 예정이오?”

“일주일 뒤로 잡았습니다.”

“현명하군! 그 정도 준비는 필요하지! 내 길잡이를 한 명 붙여드리지. 그 던전을 직접 탐사하고 온 놈이니 쓸 만할 걸세.”

감사를 표하면서도 권한울은 묘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그때였다.

“아, 안 됩니다! 안에 손님이 와 계십니다!”

“제, 제발 걸음을 멈춰주세요.”

별안간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곧이어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외숙부!”

레게 머리를 한 청년이 거친 어조로 소리쳤다.

“기어코 그 던전을 흑천 나부랭이들한테 팔 생각이십니까?”

리카르도 파블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 지금 손님이 와계시는 게 안 보이느냐!”

청년은 리카르도 파블로의 호통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권한울을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네가 흑천에서 온 놈이냐?”

“그러는 그쪽은 누구십니까.”

권한울의 물음에 청년이 대답했다.

“호세 딜 파블로라고 한다. 이 마더퍼커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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