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81화>
81화 위험한 거래인 (1)
흑천 일가 내에 있는 연무장.
그곳에서 권한울은 한 명의 적과 마주보고 있었다.
“하, 한울아. 그럼 고, 공격할 게.”
권후돈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직후, 권후돈의 몸에서 검은 갑주가 생성되었다.
갑주는 권한울의 몸을 완전히 둘러싼 것도 모자라서 더욱 크기를 키워 나갔다.
기껏해야 160cm에 불과하던 권후돈의 작은 체형이 2미터가 넘는 거구로 변했다.
“…….”
투구 속에서 붉은 안광이 번쩍였다. 권후돈이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덩치와 달리 권후돈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가볍고 날렵했다. 흑린갑의 장점 중 하나였다. 뛰어난 성능에 비해서 무게가 상당히 가벼웠다.
둘 사이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권후돈의 움직임이 급격히 빨라졌다. 자동차의 기어를 두 개쯤 올린 듯한 격한 변화였다.
불패갑 불패굴곡(不敗鉀 不敗窟曲)
흑천 비고에서 권후돈이 얻은 패왕갑의 첫 번째 스킬이었다.
본래는 더 복잡한 이름이었지만 편의상 확 줄인 게 불패갑이었다.
권후돈은 그 속도 그래도 권한울을 들이박았다. 하지만 권한울은 어렵지 않게 옆으로 뛰며 권후돈의 공격을 피했다.
그때였다.
권후돈의 몸이 갑자기 확 꺾였다. 권한울을 뒤쫓으며 어깨로 들이박았다.
하지만 권한울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맨몸으로 권후돈의 공격을 받아냈다.
현룡승천공 기본형(玄龍昇天功 基本形)
호격식 강목(護格式 强木)
권후돈의 돌진에 몸이 밀려난다. 하지만 신체 곳곳에 퍼진 마력이 권한울의 몸을 보호한 덕분에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권후돈이 지체없이 다음 동작에 들어갔다.
두 주먹을 동시에 쥐고 용투기를 일으킨 것이다.
팔뚝의 갑주가 용투기에 휩싸이더니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불패갑 만파권(不敗鉀 萬破拳)
두 주먹을 동시에 내리쳤다.
권한울은 몸을 틀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두 주먹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파고들며 권후돈의 가슴에 주먹을 내질렀다.
현룡승천공 기본형(玄龍昇天功 基本形)
붕격식 나선파(韻擊式 頓線波)
권한울의 주먹에서 방출된 용투기가 권후돈의 갑주 전체를 뒤흔들었다. 갑옷에 금이 가더니 팔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으아앗!”
그 속에서 권후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였다.
권한울의 등 뒤에서 메이홍이 나타났다. 소리도, 기척도 없이 칼을 휘둘러서 권한울의 목을 베려고 했다.
하지만 권한울은 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여서 검격을 피해냈다.
“칫.”
메이홍은 짧게 혀를 차며 연달아 검술을 펼쳤다. 살기 어린 참격이 권한울의 몸 곳곳을 노렸다.
권한울은 검격을 피하며 용마기를 일으켰다.
현룡승천공 기본형(玄龍昇天功 基本形)
참격식 쌍수절흔(流格式 雙手絶痕)
두 손에 용마기가 칼날처럼 예리하게 맺힌다. 권한울은 손을 휘두르며 메이홍과 합을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거의 대등하게 공방을 주고받았으나 점점 메이홍이 밀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권한울은 두 손이고, 메이홍은 칼 한 자루라서 색인 차이가 아니었다.
권한울인 메이홍이 준비동작만 취해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공격을 막아냈다. 반면 권한울의 공격은 메이홍의 빈틈을 정확하게 치고 들어왔다.
치열하던 전투는 단숨에 결판이 났다.
권한울이 내리친 손날을 메이홍이 미처 흘려보내지 못하고 칼날을 세워서 막은 것이다.
“큭.”
손날에 실린 힘이 생각보다 컸는지. 메이홍은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권한울과 메이홍의 눈빛이 서로 만났다. 패배를 인정하겠냐는 권한울의 시선에 메이홍이 화답했다.
“지금이에요!”
권한울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갑옷이 박살이 난 권후돈이 맨몸으로 손바닥을 펼치고 있는 게 보였다.
“으, 으아아앗!”
기합소리와 함께 권후돈이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바닥에 널려 있던 흑린갑의 조각들이 빛나는가 싶더니 탄환이 되어 권한울에게 날아들었다.
둘의 협동 공격에 감탄하며 권한울은 다리를 들어서 땅을 내려찍었다.
현룡승천공 기본형(玄龍昇天功 基本形)
쇄격식 창류(能擊式 源流)
용마기가 파도가 되어 갑옷 조각들을 모조리 휩쓸었다.
“또 졌어…….”
회심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권후돈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에이, 한 번을 안 져 주시네요.”
메이홍도 칼을 거둬들이며 불평했다. 권한울은 둘을 향해 말했다.
“일부러 져 주면 훈련이 안 되잖아요.”
“팀원들의 사기저하를 고려해서 한 번은 져줘도 돼요.”
정말 섭섭했는지 메이홍의 투덜거림이 조금 더 길어졌다.
“진 건 그렇다 쳐도 상처 한 번 못 입혔잖아요. 이게 말이 돼요?”
“사, 상처라니. 큰일 날 소리…….”
권후돈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그 말에 메이홍이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후돈 오빠, 권한울 님을 인정사정없이 공격하셨으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설득력이 없어요.”
“그, 그건…… 어차피 한울이는 안 다치니까…… 그보다 오빠라는 호칭 그만…….”
권후돈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메이홍이 쿡쿡 웃었다.
둘이 노는 동안 권한울은 구석에 놔둔 물병을 열었다.
그때였다.
“그래서 한울아. 어떤 점이 문제였어?”
“맞아요. 뭐가 아쉬우셨나요?”
두 사람이 동시에 권한울을 향해 물었다. 권한울은 두 사람을 향해 원망스럽게 말했다.
“물 좀 마시고 말합시다.”:
“안 돼요! 물은 나중에 마셔도 되잖아요!”
“마, 맞아. 일단 고칠 점부터 말해 줘.”
둘의 닦달에 권한울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입맛을 다시며 물병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우선 후돈이부터 말하자면…….”
본래 이 대련은 팀워크의 향상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목적이 조금 변질되었다.
“스킬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내 생각에 불패굴곡은 돌진하면서 쓰는 기술이 아닌 거 같아. 준비동작이 적고, 급격한 운동방향 변화에 강하지. 근접된 상태에서 적의 허를 찌르는 기술이 분명해.”
원인은 권한울에게 있었다.
압둘 라사드와의 만남 이후, 권한울은 자신이 보유한 천재혈로도 조율을 할 수 있는지 시험해 봤다. 대상자는 권후돈과 메이홍 둘이었다.
“그리고 메이홍. 아까 전의 기습은 아주 좋았어요. 하지만 공격할 때, 기척이 확 드러나더군요. 칼을 휘두를 때마다 내딛는 발에 힘이 너무 들어가는 버릇 때문에 그렇습니다.”
조율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싸울 때와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움직임을 읽은 다음, 단점을 찾아내면 끝이었다.
“마지막으로 팀플레이가 너무 위험했어요. 둘 다 서로를 미끼로 내던지고 공격하면 어떻게 합니까.”
문제는 권한울의 천재혈이 진혈이라는 점. 그리고 수라혈까지 더해졌다는 것이었다.
권한울의 조언을 들은 두 사람은 하루 종일 충격을 받았고.
“그 외에는? 또 없어?”
“아까 검을 내지를 때, 타점이 좀 어긋나지 않았나요?”
지금은 권한울이 귀찮을 정도로 집요하게 달라붙고 있었다.
“없어요. 없어.”
권한울이 귀찮다는 얼굴로 팔을 휘휘 내저었다. 그제야 두 사람은 떨어져나갔다.
그런 뒤, 두 사람은 권한울이 지적한 내용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그 기세가 사뭇 진지했던 터라 권한울조차 섣불리 다가가기 힘들 정도였다.
그제야 권한울은 안심을 하고 물병을 다시 들어올렸다.
“아, 그렇지.”
그때, 권후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또 뭘 물어보려고.”
“그, 그게 아니라…… 혹시 어디 아픈지 물어보려고 했지…….”
“내가? 아프다고?”
권한울로서는 금시초문이었다.
“아, 저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오늘 따라 움직임이 영 둔하시더라고요.”
권한울은 그제야 두 사람이 왜 이러는지 깨달았다.
“걱정할 거 없어. 아픈 거 아니니까.”
그리 말하며 권한울은 슬쩍 자신의 손을 쳐다봤다.
권한울의 손목에는 글자를 이어놓은 듯한 괴상한 생김새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나태의 반지>
-품질 : 레전더리(SSS+)
-설명
7대 죄악 중 하나인 나태를 상징하는 반지. 반지조차 게으른지 능력이 하나밖에 없다.
-능력
제약 : 스스로에게 제약을 건다. 제약이 클 수 록 성과가 커진다.
아이언펭의 길드 창고에서 얻은 철괴 안에서 나온 물건이었다.
처음에는 능력의 효과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몇 번 사용해 보자 감이 잡혔다.
모래주머니의 강화판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했다.
신체에 일부러 과부하를 줌으로서 운동능력을 더 향상시키는.
물론 그보다 효과도 더 뛰어나고, 적용범위도 넓으며, 엄청나게 위험했지만.
<제약 : 한 달 동안 전신에 3톤의 무게가 추가 된다.> <제약을 견뎌낼 시, 3배의 근력 능력치를 습득한다.> 제약 덕분에 움직일 때마다 죽을 맛이었다. 처음에는 누워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다행히 고생을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초인혈이 무식한 훈련법을 반깁니다!> <동화율 8% -> 9%>
<패왕성의 성능이 향상됩니다! 앞으로 신체능력이 더욱 증폭됩니다!> <건강혈이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을 감지합니다!> <영구적으로 근력이 0.01 상승합니다!> <영구적으로 체력이 0.001 상승합니다!> 멈춰 있던 건강혈에 의한 능력치 향상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권한울로서는 반갑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권한울 님, 계십니까.”
그때, 연무장 안으로 주하연이 들어왔다. 권한울은 의아해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평소에는 훈련에 방해가 된다며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 있나요?”
“회장님께서 임무를 내리셨습니다.”
주하연의 말에 권한울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일본에 갔다 오고 시간이 꽤 지났다. 슬슬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되리라 생각했다.
“무슨 임무인데요?”
회장이 직접 부르지 않고 주하연을 통해 전달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리 위험한 임무는 아닐 것 같았다.
……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S급 추정 던전의 클리어입니다.”
주하연의 입에서 경악스러운 말이 흘러나왔다.
* * *
몬스터와 던전을 나누는 등급은 다섯 가지다.
브론즈, 실버, 골드, 플래티넘, 다이어.
하지만 지구는 넓고, 출몰하는 던전과 몬스터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했다.
그 중에는 다이아 등급 ‘따위’에 넣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하고 위험한 몬스터도 존재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대륙 하나를 위험에 빠트리고, 때에 따라서는 인류의 존속까지 위협할 만큼 강력한 몬스터들 말이다.
헌터들은 그런 몬스터들에게 S라는 명칭을 붙이기로 결정했다.
“엄밀히 말해서 아직 S급이라고 결정된 건 아닙니다. 추정일 뿐이죠.”
주하연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던전을 판매하기로 한 쪽에서 독자적으로 측정한 뒤, 내놓은 결과라서요.”
“어쨌든 측정이 어려울 만큼 위험하다는 뜻이잖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세계랭커가 S급 던전. 혹은 몬스터에게 도전했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일화가 심심찮게 들려올 정도로 S급의 위험성은 엄청났다.
“하지만 그만큼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게 S급 던전입니다.”
그렇게 위험함에도 사람들이 S급에 도전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S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토벌하시면 기본적으로 많은 양의 능력치를 습득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특수한 스킬을 얻으실 수도 있습니다. 유물은 말할 것도 없죠.”
권한울은 능력치라는 말에 주목했다.
5개월 뒤에 있을 천공투기장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능력치를 향상시켜야 했다.
이번 보스 몬스터를 토벌하면 목표에 크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거부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뇨, 그럴 생각은 없어요.”
권한울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은 겁을 먹었기 때문이 아니다.
팀을 결성한지 얼마 안 됐을 때, s급 던전을 맡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다.
하여간 그 노인네,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다만, 저는 상관없지만 둘이 걱정이네요.”
권한울이 메이홍과 권후돈을 쳐다보며 물었다. 두 사람은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나는 괜찮아.”
“저도요.”
두 사람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말했다.
“의견이 모인 것 같군요. 그럼 이걸 한 권씩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주하연이 손바닥 크기의 작은 책자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아, 고마워요.”
권한울은 책자를 받으며 감사를 표했다.
무슨 내용인지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S급 던전에 대한 공략법, 혹은 주의사항이 적힌 책자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제목을 확인했다.
<여행 가이드북>
-멕시코-
권한울은 두 손으로 눈을 비빈 뒤, 다시 제목을 읽었다.
“하연 씨?”
“말씀하세요.”
“이건 뭔가요?”
“멕시코 여행 가이드북이에요.”
주하연은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듯이 대답했다.
“그건 보면 아는데…… 이걸 왜 주신 거죠?”
“S급 던전을 제공하기로 한 쪽이 멕시코의 카르텔인 파블로 패밀리라서요.”
카르텔이라는 말에 권한울은 눈을 연신 깜빡였다.
“파블로 패밀리라고요?”
던전이 열린 이후에도 지구상에서 가치가 변하지 않는 물건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마약이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그 악마의 물건 만큼은 여전히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 마약의 최대 생산자이자 유통자가 바로 남미 지역의 카르텔들이다.
파블로 패밀리는 그 중에서도 특히 세력이 크고 지위가 높은 카르텔이었다.
“거래처 한 번 살벌하네요.”
과거 남미 지역의 카르텔은 국가와 맞먹는 규모의 군대를 운용했다고 한다.
현재도 다를 건 없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헌터들의 이능력, 그리고 던전에서 나오는 각종 유물들 덕분에 남미 지역의 카르텔은 이미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
“별 일은 없을 겁니다. 이미 협상이 다 끝난 데다 흑천의 이름을 가볍게 여길 리가 없으니까요.”
주하연의 목소리에는 강한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카르텔이 아무리 대단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흑천 그룹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했다.
그런데 굳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릴 리가 없었다.
“진짜 별일 없겠죠?”
하지만 권한울은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자신이 맡은 임무가 제대로 흘러간 적이 몇 번이나 되던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없을 겁니다.”
주하연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권한울은 오히려 그런 태도가 더 불안했다.
“권한울 님께서는 걱정 말고 던전의 공략에만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