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80화>
80화 조건부 (3)
“비고에 들어갈 수 있다고요?”
회장과의 면담에서 돌아온 권한울은 두 사람에게 비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그게 정말이세요?”
“하, 한울아. 진짜야?”
두 사람의 반응은 무척 격했다.
“세상에…… 메이 가문의 사람인 내가 흑천 비고에 들어가게 되다니.”
메이홍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곧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권한울에게 물었다.
“흑천 비고에는 엄청난 보물들만 모여 있다면서요. 그게 정말인가요?”
“소문 이상이죠.”
“꺄아아아악!”
급기야 메이홍은 비명까지 질렀다.
“권한울 님 덕에 이런 경험도 해 보네요!”
누군가 옷깃을 잡아당겼다. 고개를 돌리자 권후돈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자신을 보고 있었다.
“하, 한울아…… 고, 고마워. 나, 나는 내가 비고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는데…….”
흑천 비고는 어지간해서는 개방되지 않는 곳이다.
오직 흑천 일가의 지원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만이 출입이 허가된다.
그렇기에 흑천의 혈족으로서 비고 출입을 허가받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었다.
“두 분 다 진정하실 필요가 있을 거 같군요.”
그때, 주하연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목소리에 메이홍과 권후돈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지금은 흑천의 비고에서 무엇을 가져와야 할지. 그리고 어떤 경로로 이동해야 할지를 먼저 결정하셔야 합니다.”
흑천 비고는 지하 30층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모두 돌아보려면 30일이 걸려도 모자랄 정도다.
그에 비해서 비고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턱없이 짧다.
보안 때문에 정해진 날짜에만 비고를 개방할 수 있으며 그나마도 1시간밖에 이용할 수 없다.
미리 계획을 정하지 않으면 허탕을 치거나 쓸모없는 것을 가져오게 된다.
“저는 이미 정해놨어요.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비약을 가져올 생각이에요.”
메이홍의 대답에 주하연이 의견을 내놓았다.
“비약도 좋지만 비고에는 구하기 힘든 병기들도 많습니다.”
“무기는 괜찮아요. 이 검으로 충분하거든요.”
메이홍은 아버지의 유품을 내보이며 말했다.
“게다가 이번에 더욱 강화가 됐고요.”
메이홍이 칼을 살짝 뽑았다. 새하얀 검신 속에 검붉은 기운이 일렁였다.
그 기운을 본 순간, 권한울과 권후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저 검에 맺힌 기운은 락브레이커의 영혼이었기 때문이다.
귀검(鬼劍)
죽인 사람의 영혼을 사역해서 다룰 수 있는 수라혈의 권능이다.
권후돈에게 일격을 얻어맞은 락브레이커는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고, 그걸 메이홍이 죽임으로서 귀검을 만들었다.
추한 모습을 많이 보이기는 했어도 락브레이커는 세계랭커.
그런 영혼으로 만든 귀검이 얼마나 강할지는 안 봐도 뻔했다.
“귀검은 마력 소모가 심하거든요. 이번 기회에 마력을 S급으로 올리고 싶어요.”
“현명한 결정이신 것 같군요. 권후돈 님께서는 생각해 놓으신 게 있습니까.”
권후돈도 곧바로 대답했다.
“스킬을 가져오려고 해.”
“스킬이라고요?”
“응, 엄마한테 들었거든. 젊은 시절에 비고에 출입했을 때, 갑옷으로 공방을 펼치는 스킬을 본 적이 있다고 했거든.”
흑린갑을 주로 사용하는 권후돈에게 딱 맞는 스킬일 듯 했다.
게다가 비고에 보관이 될 정도면 무척 강력한 스킬일 게 분명했다.
“권한울 님께서는요?”
질문의 대상이 권한울에게 넘어왔다. 권한울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봉인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유물이 필요합니다.”
“자물쇠라고요?”
의외의 대답이라는 듯 주하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지금 당장 급한 것은 능력치를 상승시키는 비약이다.
하지만 권한울은 건강혈에게서 가능성을 봤다.
게다가 건강혈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른 혈통을 습득하면 능력치를 상승시킬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 마당에 비약을 선택하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던전을 공략하다보면 잠긴 문이나 보물 상자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잖습니까.”
그래서 헌터들은 유물이든 사람이든 어지간해서는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수단을 갖춰놓고는 했다.
권한울 역시 이번 기회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자 했다.
그 외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지금 권한울의 수중에는 아이언펭 길드의 창고에서 얻은 정체모를 상자가 있었다.
천 명을 죽여야 상자를 열 수 있는 극악한 조건 때문에 손도 못 대고 있었으나 이번 기회에 한 번 개방을 해 보고 싶었다.
“음…… 당장 생각나는 유물이 몇 가지 있긴 합니다. 나중에 자세히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렇게 계획이 정해졌다.
“그럼 비고의 방문 예약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 * *
한 달 뒤, 비고가 열리는 날이 됐다.
세 사람은 복잡한 보안 절차를 몇 번이나 거친 끝에야 비고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랫동안 내려간 끝에야 겨우 비고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비고의 보안을 담당하는 권수진이라고 합니다!”
도착하자마자 젊은 여자가 세 사람을 반겼다.
“권한울 님은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시네요! 두 분은 처음이시고요!”
그 말에 권한울은 쓴웃음을 지었다.
첫 방문 때도 권수진의 수다스러움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빨리 비고를 재방문하시다니! 흔치 않은 일이에요! 역시 권한울 님! 진혈다우세요!”
권수진은 눈동자를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하긴 당연한 일이죠. 페드르당스를 이기셨잖아요! 세상에 제 입으로 말하고도 믿기지 않네요. 아직 세계랭커도 아니신데 판데모니엄의 악인을 이기시다뇨.”
권수진은 주먹을 불끈 쥐며 몸을 떨었다. 해낸 것은 권한울인데. 권수진이 감격하고 있었다.
“그거 아세요? 지금 흑천 그룹에 있는 사람이란 사람은 모두 그 이야기뿐이에요!”
알다마다.
요 며칠 동안 권한울이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서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오곤 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이라뇨! 페르드랑스가 어떤 인간인데요! 판데모니엄에서 포이즌 스킬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인간이에요! 그걸 이기고 운이라뇨!”
권수진은 속사포처럼 떠들어 댔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한도 끝도 없이 질문을 던질 기세였다.
다행히 권한울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아아…… 이제 비고를 열 시간이네요. 아쉽지만 다음에 다시 여쭈어볼 게요.”
권수진은 세 사람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따라서 이동하자 거인이 지나다닐 법한 커다란 문이 나타났다.
“지금부터 비고의 보안을 해제하도록 하겠습니다. 비고는 안에 사람이 있든 없든 1시간 뒤에 닫히니 시간을 잘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 말하며 권수진은 덧붙였다.
“참고로 비고 내에서는 아공간을 열 수 없도록 결계가 생성되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그리 말하며 권수진은 비고의 문을 열었다.
안에는 또 다른 엘리베이터가 놓여 있었다.
“그럼 어디로 모실까요?”
* * *
세 사람은 각자 원하는 물건이 있는 층으로 흩어졌다.
권한울이 향한 곳은 20층이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권수진은 그런 인사를 남긴 뒤,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
권한울은 20층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두 번째 방문이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신기했다.
“어디보자…… 하연 씨가 말한 게…….”
선반에 놓인 유물들을 쭉 훑어 내렸다. 그러다 우뚝 멈췄다.
“이거군.”
권한울은 새끼손톱만한 유리구슬을 발견했다.
<열려라 참깨>
-품질 : 레전더리(A+)
-설명 : 고대의 장인이 제작한 유물. 으깨서 열고 싶은 자물쇠에 뿌리면 된다.
-능력
잠겨 있는 모든 것들을 연다. 단, 일회용이다.
권한울은 구슬을 만지거리다 내려놓았다.
원하던 기능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으나 일회용인 게 너무 아쉬웠다.
“또 다른 게 있었는데…….”
권한울은 다시 선반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녹이 잔뜩 쓸어 있는 열쇠를 발견했다.
“이거다.”
권한울은 냉큼 열쇠를 집어 들고 확인했다.
<잡능열쇠>
-품질 : 레전더리(S-)
-설명 : 못 여는 것 빼고는 다 열 수 있다는 정체불명의 열쇠. 한 번 사용할 때마다 마력을 충전해 줘야 한다.
-능력
1. 잠겨 있는 물건을 연다. 구멍이 없어도 열 수 있다.
무엇이든 열 수 있는데다 사용 제한이 없다. 과연 S-등급이 책정될 만 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물건이 여태 비고에 처박혀 있을 리가 없다.
“마력 충전하는 게 지랄맞다고 했지.”
열쇠를 충전하기 위해서는 직접 마력을 집어넣어야 하는데. 이 회로가 미로처럼 복잡하다고 들었다.
그것만 해도 화가 나는데. 사용할 때마다 내부 구조가 바뀌어서 다시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다고 미리미리 마력을 충전할 수도 없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내부 회로가 바뀌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하연은 이 유물을 추천하지 않았다.
<천재혈(天才血)이 내부 구조를 파악합니다.> 물론 권한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천재혈(天才血)이 자동적으로 마력을 주입합니다..
<잡능열쇠가 충분히 마력을 머금었습니다. 기능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천재혈이 있으면 언제든지 잡능열쇠를 사용할 수 있다. 권한울은 흡족한 얼굴로 열쇠를 집어넣었다.
가능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철괴를 열고 싶었다.
하지만 비고 안에서는 아공간을 열 수 없는 결계가 펼쳐져 있다. 나중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다 끝나셨나요?”
엘리베이터로 돌아오자 권수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권한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30층을 한 번 더 둘러보고 싶습니다.”
“30층을요?”
권수진은 의아해하면서도 엘리베이터를 작동시켰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30분 남았습니다~.”
권수진의 친절한 알림을 뒤로한 채, 권한울은 30층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가장 구석진 곳에서 멈춰 섰다. 그러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진(眞) 흑룡혈을 감지합니다.> <소유자 ‘권현문’의 비밀 금고를 발견하셨습니다.> <인증 절차에 들어가겠습니까?>
권한울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 *
권현문.
흑천 일가의 시조.
흑천 일가 곳곳에는 그가 남긴 안배가 남아 있었다.
“저번에는 자격이 부족했지.”
현재 권한울의 동화율은 30%.
열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으나 기왕 왔으니 꼭 한 번 들리고 싶었다.
“인증 절차를 밟도록 하겠다.”
권한울의 말과 함께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동화율이 낮아서 금고를 열 수 없습니다.> 권한울은 혀를 찼다. 역시 30%로는 부족한 모양이었다.
잡능열쇠를 사용해볼까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잡능열쇠가 열 수 있는 어디까지나 잠겨 있는 물건뿐이다.
봉인, 혹은 자격을 인정받아야 하는 시험까지 어찌할 수는 없다. 그랬다면 잡능이 아니라 만능이라 이름 붙여졌겠지.
아쉬움을 접고 몸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시험자의 동화율이 일정기준을 달성했습니다.> <사용자 ‘권현문’이 첫 번째 안배를 전달합니다.>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것을 본 순간, 권한울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이건…….”
* * *
“자, 시간이 다 됐습니다~.”
당초에 약속되었던 약속시간이 지났다.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또 큰 공을 세우셔서 다시 방문해 주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권수진은 마치 식당 사장 같은 인사말과 함께 세 사람을 밖으로 내보냈다.
“으아아앗!”
“흐아아아앗!”
밖으로 나오자마자 메이홍과 권후돈은 큰 소리로 외쳤다.
“엄청났어요! 구경만 하는데도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거 있죠?”
“그, 그러게 말이야. 진짜 엄청난 것들만 있더라.”
첫 방문인 두 사람은 쉽사리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래서 권후돈 님은 뭘 가져오셨어요?”
“나?”
권후돈의 얼굴이 미소가 떠올랐다. 권후돈은 품에서 메모리페이지를 꺼냈다.
“이걸 가져왔어.”
<스킬 : 패왕전설불멸천존지존>
-품질 : 레전더리(SS-)
-설명 : 스스로를 절대자라 칭하던 정신병자가 창시한 전투술. 사용자의 정신상태가 심각하게 걱정되지만 스킬의 강력함만은 확실하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권한울과 메이홍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권후돈을 쳐다봤다.
권후돈은 멋쩍은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괘, 괜찮을 거야. SS-등급이잖아!”
뭐 스킬이 강력하면 될 일이니 권한울은 이만 걱정을 접기로 했다.
“저는 이걸 가져왔어요.”
메이홍은 작은 목함을 열었다. 그러자 청량한 향기가 가득 퍼졌다.
<대환단(大還丹)>
-품질 : 레전더리(SS)
-설명 :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전의 제조법으로 만들어진 영약이다. 섭취할 시, 엄청난 힘을 가져다준다.
“권한울 님께서는 뭘 가져오셨나요?”
메이홍의 물음에 권한울은 잡능열쇠를 꺼내서 내보였다.
두 사람은 신기하다는 얼굴로 잡능열쇠를 살폈다.
“이거 하연 언니가 말한 그 유물이죠?”
“사용하기 어렵다면서. 괜찮겠어?”
권한울은 괜찮다고 말하며 두 사람을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눈으로는 방금 전에 떠오른 또 다른 메시지로 향했다.
<담천조룡(談天雕龍)>
-품질 : 측정불가
-설명 : 현룡승천공의 세 가지 식(式)을 극성까지 익히면 습득할 수 있는 절기 중 하나.
하늘을 논하고, 용을 조각한다. 절기를 펼치는 날, 하늘로 승천하는 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감히 감당하기 힘든 물건이 손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