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74화>
74화 역발산 (1)
초인혈(超人血).
범죄가문으로 유명한 산체스 가(家)에서 보유하고 있는 혈통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초인혈의 권능은 육체를 강화시킨다.
다른 혈통과 비교했을 때, 심심하리만큼 단순한 효과다. 문제는 그 정도가 굉장히 심하다는 것이다.
근력만으로 몬스터를 압도하는 것은 기본.
신체의 강도가 너무 뛰어나서 현대 병기의 집중 포화를 당해도 멀쩡하다.
각종 내성까지 높아서 어떤 극한상황에서도 살아남는다.
심지어 독이나 질병에도 강력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
“당신, 산체스 가문의 사람이었군요.”
권한울의 말에 페르드랑스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 덕분에 알게 됐지만 그 사실을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호신기를 둘둘 말고 있는데. 눈치 못 채는 사람이 바보 아니겠습니까?”
호신기(護身氣)
초인혈을 가진 사람이 쓸 수 있는 권능이다. 기(氣)라고 하지만 용마기처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힘은 아니다.
언제나 몸을 지켜주는 보호막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했다.
“……호신기를 알아봤다고?”
페르드랑스의 얼굴에 떠오른 의문은 더욱 커졌다.
원래 호신기는 티가 나지 않는다. 그랬다면 페르드랑스의 비밀이 지금까지 지켜졌을 리가 없다.
권한울은 굳이 지저분하게 덧붙이기 보다는 말을 돌렸다.
“어째서 공격을 피하지 않았나 했더니. 믿는 구석이 있었군요.”
권미에게 들은 바로는 페르드랑스는 락브레이커를 일격에 패배시켰다고 한다.
포이즌스킬로 유명한 페르드랑스가 근접전에서 어떻게 락브레이커를 이겼는지 의아했는데. 그 비밀을 이제 알겠다.
호신기를 이용해서 락브레이커의 공격을 막아내고 당황을 유도해서 빈틈을 노린 것이다.
호신기는 최강의 방패임과 동시에 최강의 창이기도 하다. 호신기로 보호된 손날치기는 어중간한 무기보다 더 강력했을 터.
“그 속임수로 제법 재미를 많이 봤나 봅니다.”
결국 속임수에 불과한 짓이다.
만약 락브레이커가 페르드랑스가 초인혈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안이하게 정면에서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페르드랑스가 멀쩡했어도 놀라지 않고 곧바로 대처했으리라.
“속임수가 아니라 전략이지.”
페르드랑스의 태도는 당당했다. 목숨이 걸린 사투에서 정정당당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이.
“그리고 속임수라는 말은 굉장히 기분이 나쁘군. 호신기를 이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나? 산체스 가문에도 이만한 수준은 볼 수 없어.”
“그렇게 보이는군요.”
권한울의 입에서 인정한다는 말이 나오자 페르드랑스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겠다는 뜻입니다.”
‘???’가 초인혈에 접촉했을 때, 권한울은 느낄 수 있었다.
페르드랑스 안에 있는 초인혈의 존재를.
그리고 그 존재가 얼마나 희미한지 말이다.
“당신이 보유하고 있는 초인혈은 겨우 잡혈(雜血)…… 그 중에서도 특히 피가 옅은 쪽에 속하는 것 같은데.”
정답이었는지. 페르드랑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렇게 나약한 초인혈의 호신기를 세계랭커의 공격을 막아낼 정도 단련시키려면 보통 노력으로는 안 되겠죠.”
페르드랑스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권한울은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아니지, 노력만으로는 안 될 거 같은데. 혹시 초인혈의 다른 권능은 모두 버리고 호신기에만 집중한 거 아닙니까?”
“그만!”
결국 페르드랑스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고함을 내지름과 동시에 마력을 폭발시켰다.
갑자기 방출된 마력으로 바닥에 거미줄 같은 금이 번져나갔다.
“……그래, 맞다. 나는 산체스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초인혈이 너무 옅어서 쓸모가 없었지.”
격한 감정을 억누르는 티가 역력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포이즌스킬이다. 초인혈 덕분에 신체만큼은 튼튼해서 독을 실험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지.”
빠득.
페르드랑스는 이를 갈았다.
“그래, 다 듣고 나니 이제 좀 궁금증이 풀리셨나?”
“글쎄요. 딱히 궁금한 내용은 아니라서.”
그 말에 페르드랑스의 얼굴이 잠시 멍하졌다.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또 다시 분노했다.
“이래서 난 순혈 새끼들이 싫어. 운 좋게 상위 혈통을 타고난 주제에 자기가 잘난 것처럼 행동하거든!”
페르드랑스의 마력이 불타올랐다. 살기가 담긴 마력은 마치 분출하는 용암과도 같았다.
“너만큼은 내 손으로 직접 죽여주마!”
페르드랑스가 손목을 꺾으며 앞으로 걸어 놨다. 그 행동에 권한울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나랑 주먹질을 하자는 거 같은데…… 내가 흑천의 혈족인 걸 알고 하는 말이죠?”
“뭘 모르고 있군. 근접전 최강이라는 명성은 초인혈의 것이다.”
페르드랑스가 권한울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아니면 내가 잡혈이라고 우습게 보는 건가? 충고 하나만 해 주마. 똥개도 호랑이 새끼 정도는 죽일 수 있다. 알겠나?”
상위 혈통은 하위 혈통보다 강하다.
하지만 발달되지 않은 상위 혈통과 최대치까지 성장한 하위 혈통을 비교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 초인혈의 동화율은 80%다.”
페르드랑스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각오해라. 혈통만 믿고 나대던 네놈이 얼마나 미천한 존재였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줄 테니까.”
권한울은 대꾸하는 대신, 허공으로 시선을 옮겼다.
<‘???’가 ‘초인혈(超人血)’과 접촉했습니다.> <‘초인혈(超人血)’을 습득합니다.>
그 밑에 다른 메시지가 더 있었다.
<‘초인혈(超人血)’이 신체에 적응하는 중입니다.> <예상시간 10분.>
지금까지 계속 말을 건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초인혈이 적응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 막, 적응이 끝났다.
<‘초인혈(超人血)’이 신체를 변화시킵니다.> 근육과 뼈가 급격히 성장한다. 마력이 지나다니는 통로가 확장된다. 신체의 장기가 활발하게 움직이며 모든 기능을 끌어올린다.
<근력이 AAA급에 도달합니다.>
<모든 내성 및 저항력이 100 상승합니다.> <오감이 더욱 예리해집니다. 육감이 발달합니다.> <신체의 강도가 증가됩니다. 외부와 내부의 충격에 강해집니다.> <혈관 및 마력 통로가 더욱 견고하게 변모합니다. 무리한 움직임이 가능해집니다.> 일전에 황금사과를 섭취했을 당시, 권한울은 건강혈 덕분에 마력을 AAA등급까지 올린 적이 있다.
AAA등급은 A등급에서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이다.
A급과 S급의 격차가 너무 큰 탓에 S급에 못 미치는 수준까지 올랐을 때, AAA급이라는 특별한 능력치를 얻게 된다.
사실 AAA급 능력치도 S급 능력치에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A급과 달리 AAA급은 S급에 대항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진(眞) 초인혈의 권능 ‘패왕성(霸王星)’을 습득합니다.> <‘패왕성(霸王星)’이 마력과 정신력을 제외한 모든 신체능력을 증폭시킵니다!> <진(眞) 초인혈의 권능 ‘금강기(金剛氣)’를 습득합니다.> <‘금강기(金剛氣)’가 당신의 몸을 보호합니다.> 권한울은 공기를 깊게 마시고 내뱉었다.
숨을 쉰다는 단순한 동작을 행했음에도 느껴졌다.
초인혈에 의해 변화된 신체가 어떤 수준에 올랐는지 말이다.
“페르드랑스.”
권한울이 조용히 적의 이름을 말했다.
“내가 얼마나 미천한 놈인지 느끼게 해 주겠다고 말했습니까?”
대다수의 헌터들은 초인혈과 정면에서 싸우지 않는다. 그만큼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거 좋죠.”
하지만 그 초인혈이 권한울에게도 있다는 말이 달라진다.
권한울은 웃었다. 즐거워서 어찌할 수 없다는 듯이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초인혈을 실험해볼 수 있다는 기대감과 강자와 싸운다는 고양감이 권한울을 기쁘게 만들었다.
“어디 한 번 해봅시다.”
주인의 의지에 호응하듯 전신의 근육이 박동했다.
* * *
권한울의 기세가 격변한다.
페르드랑스의 살기가 순식간에 밀려난다. 그 빈자리를 권한울의 기세가 가득 채웠다.
“…….”
페르드랑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갑자기 권한울이라는 인간이 몇 배는 크게 보였다. 함부로 건드리기 힘들 만큼 부담스러웠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격차가 느껴졌다.
언젠가 이와 비슷한 위압감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순(純) 초인혈?”
아니다, 그 정도가 아니다. 그 이상이다. 그보다 더한 무언가가 권한울에게서 느껴졌다.
위험하다.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머리가 아플 정도로 크게.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싸우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페르드랑스는 생인형들을 쳐다봤다. 생인형들은 드래곤피어의 영향력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쓸모없는 놈들.”
페르드랑스는 하는 수 없이 최후의 수단을 꺼냈다.
주머니에서 호루라기를 꺼내서 힘껏 불었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리가 길게 들렸다.
생인형들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고, 전신의 피부에 검은 혈관들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
“----!!”
생인형들이 괴성을 질러댔다.
언제 드래곤피어에 고통 받았냐는 듯이 살기등등한 눈동자로 권한울을 노려봤다.
“직접 싸울 듯이 말하더니. 수하들한테 맡기고 꽁무니를 내빼시려고?”
권한울의 조롱에도 페르드랑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을 들어서 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공격해라.”
생인형들이 권한울을 향해 달려들었다. 권한울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뭐, 나야 시험해볼 상대가 많아서 좋지만.”
가장 선두에 있던 생인형이 권한울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권한울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똑같이 주먹을 내질렀다.
그 광경을 보고 페르드랑스는 혀를 찼다.
기본 능력치만 놓고 봤을 때, 생인형들은 권한울보다 강했다. 게다가 지금은 독을 통해서 신체의 잠재력을 폭발시킨 상태였다.
그런 생인형을 권한울은 정면에서, 그것도 맨주먹으로 맞서려고 하고 있었다.
“미친 건가?”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둘의 주먹이 서로 충돌했다.
그 직후, 무언가가 페르드랑스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곧 이어서 굉음이 들렸다.
페르드랑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생인형이 구겨진 채로 벽에 처박혀 있었다.
“이건 또 뭔…….”
페르드랑스는 황망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 * *
“---!”
생인형이 고함을 지르며 주먹을 내질렀다. 권한울도 똑같이 주먹을 휘둘렀다.
몬스터의 신체로 강화가 된 생인형의 주먹은 바위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거대했다. 그에 비하면 권한울의 주먹은 어린아이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가 봐도 결과는 뻔했다.
하지만 권한울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패왕성(霸王星)’이 당신의 근력을 증폭시킵니다.> 상체의 근육이 거칠게 요동치는 모습과
<‘금강기(金剛起)’가 당신의 신체를 보호합니다.> 옅은 황금빛 보호막이 자신의 주먹을 뒤덮는 모습을.
“----?!”
생인형의 주먹이 뭉개진다. 팔뿐만이 아니다 어깨까지 으스러진다.
“----!”
권압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생인형을 통째 날려버렸다.
생인형이 공처럼 뒤로 날아갔다. 페르드랑스의 옆을 스치고 지나가서 벽에 처박히며 찌부러진다.
꼭 으깬 토마토랑 비슷한 몰골이었다.
“하핫!”
시원시원한 타격감에 권한울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
“---!!”
남은 생인형들이 연달아 달려들었다. 권한울은 물러나지 않고 정면에서 맞이했다.
양 손을 뻗어서 두 생인형의 얼굴을 동시에 움켜잡았다. 그대로 땅으로 내려찍어서 머리를 으깼다.
“---!”
그 틈을 노리고 생인형 한 명이 두 주먹을 모아서 내리쳤다.
<‘금강기(金剛起)’가 적의 공격을 받아냅니다.> 하지만 역으로 생인형의 주먹이 박살이 났다. 고통스러워하는 생인형의 가슴에 권격을 박아 넣었다.
주먹이 뼈를 부수고 심장을 터트리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
또 다른 생인형이 달려든다. 다리로 옆구리를 걷어찼다. 옆구리가 깊이 파이며 생인형의 척추가 부러졌다.
연달아 다른 생인형들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야구공을 때리는 듯한 경쾌한 소리와 함께 생인형들이 몸이 벽과 천장에 연달아 처박혔다.
“---!”
등 뒤에서 나타난 생인형이 양팔로 권한울의 목을 휘감았다.
본래 붙잡혔을 때, 풀려나오려면 상대방보다 두 배 가까이 되는 힘이 필요하다. 생인형도 그것을 노리고 달라붙은 것이다.
생인형의 양팔에 힘이 들어간다. 권한울의 목을 부러트리려 했다.
하지만 권한울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인형의 손을 붙잡고 떨어트렸다.
“---?”
생인형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린다. 그 순간, 권한울이 역으로 생인형의 목을 잡고 꺾어버렸다.
생인형의 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땅으로 허물어졌다.
“후우.”
권한울은 목을 좌우로 꺾었다. 마치 체조라도 한 것처럼 개운한 얼굴이었다.
“이제 그쪽만 남았네요?”
페르드랑스는 말없이 권한울을 쳐다봤다. 혼이 빠져나가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큭, 크큭.”
이윽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괴물 같은 놈이군. 흑천에는 모두 너 같은 놈만 있는 건가?”
페르드랑스는 한참을 웃었다.
“역시 순혈이야. 추월했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따라잡지를 않나. 조금만 노력하는 걸로 나보다 강해지질 않나.”
페르드랑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인정하지. 너는 진짜 나와 싸울 자격이 있다.”
페르드랑스의 발밑에 검은 늪이 퍼졌다. 그 늪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늪에서 아나콘다처럼 거대한 뱀이 튀어나왔다. 뱀은 페르드랑스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뱀의 입에서 녹색 연무가 흘러나왔다.
독(毒).
페르드랑스를 이 자리까지 올려놓은 진짜 무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충고 하나 해 주지. 이제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는 게 좋을 거다.”
뱀이 입을 벌렸다. 길쭉한 송곳니에서 뚝뚝 독이 떨어졌다.
독이 떨어지자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며 바닥에 큼직한 구멍이 뚫렸다.
“생체기라도 났다가는 그대로 죽을 테니 말이다.”
포이즌스킬의 두려운 점이 저것이었다.
약간의 상처라도 생겼다가는 그대로 독이 침투해서 죽고 만다.
하지만 정작 권한울은 그다지 긴장한 기색이 아니었다.
“독을 쓰려고?”
권한울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거 나한테 안 통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