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71화 (71/221)

<혈통이 깡패임 71화>

71화 배신자들 (1)

“이곳이에요.”

고리키 나나의 말에 락브레이커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도착한 곳은 사용인들이 사용하는 대형 식당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은신처로 쓰일 만한 곳이 아니었다.

“여기라고? 지금 농담하는 건가?”

“재촉하지 마세요. 여기는 입구일 뿐이니까.”

고리키 나나는 핀잔을 준 뒤, 주머니에서 손바닥 크기의 원판을 꺼냈다.

원판 위에는 한 개의 바늘이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계랑 비슷했지만 숫자가 0부터 20까지 있다는 게 다른 점이었다.

고리키 나나가 바늘을 세 번 돌렸다. 그러자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식당의 바닥이 반으로 갈라지더니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호오.”

락브레이커는 흥미로운 얼굴로 계단 입구를 살폈다.

“기계장치는 아닌 것 같은데…… 던전의 유적을 통째로 뜯어 와서 개량한 모양이군.”

던전 내부의 유적지는 지구의 문명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이렇게 비밀을 감추는 용도로 쓰기에 제격이었다.

“들어가죠.”

고리키 나나가 타카미네 료코와 함께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그 뒤를 노무라 마사타카 병원장이 따라갔다.

“우리도 가자.”

락브레이커가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팀원들도 계단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딱 한 명, 권후돈 만큼은 안절부절못하며 자꾸 식당 문을 바라봤다.

“이봐, 대장. 자꾸 그럴 거야?”

“그, 그렇지만…….”

“아니, 내가 공을 세워 주겠다니까. 그래도 불만이야?”

“하, 한울이의 명령을 어겼잖아…….”

락브레이커의 눈동자에 짜증이 떠올랐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권후돈에게 말했다.

“이 일은 권미 여사께서도 허락한 일이야. 대장은 어머니의 명령을 어길 생각이야?”

“……아니.”

“그럼 빨리 들어가자고.”

권후돈은 마지못해서 락브레이커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생각보다 굉장히 길었다.

한참을 내려간 끝에 사람들은 은신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은신처에 도착한 직후, 락브레이커는 감탄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뭐…… 은신처가 아니라 방공호 수준인데.”

천장은 높고 주위 공간은 운동장으로 써도 될 만큼 넓었다.

심지어 벽에는 다른 방으로 통하는 문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각각 저장고, 창고, 숙소 따위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이 은신처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저택의 모든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어요.”

불현듯 옆에 있던 타카미네 료코가 설명을 했다.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목적으로 지어져서 입구도 크고, 공간도 넓게 지어졌죠.”

“그런 곳에 당신네 둘이서만 들어가려고 했다 이건가?”

타카미네 료코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락브레이커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라면 어느 누구도 쉽게 들어올 수 없겠군. 아주 멋진 곳이야.”

“그리고 사냥감을 몰아넣기에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지.”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량도 높지 않고 어조도 특색 없이 평탄했다. 그럼에도 모두의 귓속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약속했던 손님이 언제쯤 도착할까 고대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숫자가 너무 많은데?”

모두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은신처 입구의 반대쪽에 위치한 벽, 그곳에 한 남성이 간이의자에 앉아 있었다.

안 그래도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이 약한데. 빛이 닿지 않는 외곽에 앉아 있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누구냐.”

락브레이커가 적의를 담아서 물었다. 짧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상상력이 부족한 친구로군. 이런 장소에서, 이렇게 수상한 놈이 있으면 대체 정체가 무엇이겠나?”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상상력을 발휘해 보라니까.”

남자가 간이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빛이 있는 곳으로 나왔다.

평균 정도의 체격. 그리고 라틴계 특유의 구릿빛 피부.

남자를 본 락브레이커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페르드랑스라고 한다.”

남자, 페르드랑스가 고요히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 * *

“페르드랑스?”

락브레이커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떻게 이 안에 들어온 거지? 흑천의 마녀가 펼쳐놓은 결계에는 아무도 걸리지 않았는데.”

“은신처에 입구가 하나뿐이겠나. 열쇠가 있으면 어떤 입구로든 들어올 수 있지.”

페르드랑스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내밀었다.

고리키 나나가 가지고 있던 것과 똑같이 생긴 원판이었다.

은신처를 여는 열쇠가 여러 개 존재하는 것은 딱히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중 하나가 페르드랑스의 손에 있다는 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는 한 가지 진실을 의미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락브레이커가 사납게 웃기 시작했다.

“수상쩍은 놈을 따라가면 네 놈의 꼬리를 밟을 수 있을 줄 알았지.”

락브레이커는 고리키 나나를 노려봤다. 고리키 나나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거기 가만히 있어라. 나는 다른 건 몰라도 배신자 새끼는 못 참거든.”

“나, 나는…… 그, 그게…….”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감히 판데모니엄의 악인을 끌어들이다니. 네 년의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내 손으로 직접 교육시켜주마.”

“초를 쳐서 미안하지만 조금 잘못 짚었어.”

그때, 페르드랑스가 끼어들었다.

“그 여자가 협조를 한 건 맞지만 날 고용한 사람은 따로 있지.”

“배신자가 또 있다고?”

페르드랑스가 손가락으로 노무라 마사타카를 가리켰다.

본인이 지목 당했음에도 노무라 마사타카는 당황하지 않았다.

“페르드랑스. 그런 걸 굳이 말을 해야겠나?”

“뭐 어떻습니까. 어차피 저 놈도 대충 짐작하고 있을 거 같은데.”

“그래도 썩 달갑지는 않군.”

“그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려오면 어떻게 합니까. 원래는 타카미네 료코만 데려오기로 했잖아요.”

“미안하게 됐네. 이들이 끈질기게 따라붙어서 어쩔 수가 없었어. 하지만 자네 실력이면 이 정도 변수는 문제없지 않나?”

노무라 마사타카는 페르드랑스와 정겹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노무라 씨, 정말로 당신이 페르드랑스를 부르신 건가요?”

그때, 타카미네 료코가 입을 열었다. 노무라 마사타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료코 아가씨.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페르드랑스는 유물 때문에 저택을 공격한 게 아닙니다. 당신을 죽이라는 제 의뢰를 받고 온 것이지요.”

타카미네 료코는 말없이 노무라 마사타카를 응시했다. 노무라 마사타카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해해 주십시오. 선대 당주께서 돌아가신 이후, 저는 병원을 위해서 제 인생을 바쳤습니다. 그 결과 병원은 이전보다 더욱 커졌죠.”

노무라 마사타카가 꿈꾸듯이 말했다.

“그렇게 힘들게 키어온 병원을…… 당신 같은 핏덩어리한테 그냥 가져다 바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래서 페르드랑스를 끌어들인 건가요?”

“예, 이제 막 성인이 된 계집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지만 타카미네 가문이 쌓은 인맥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제 걱정대로 가문이 위험해지니 흑천 그룹이 관여하지 않았습니까.”

노무라 마사타카는 너스레를 떨었다.

“나나 씨는 왜 저를 배신하신 거죠?”

다음으로 타카미네 료코는 고리키 나나를 향해 물었다.

고리키 나나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가 풀어졌다.

“정당한 대가를 받기 위해서예요.”

“나나는 저택에서 가장 높은 임금을 받고 계시지 않나요. 애초에 임금을 책정한 것도 나나 씨가…….”

“누가 돈 때문에 이러는 줄 아세요!”

고리키 나나가 고함을 빽 질렀다.

“아가씨! 제가 타카미네 가문을 관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세요?”

“그러셨나요?”

“예, 그랬어요! 하지만 아가씨께서 당주가 되면 어떻게 되죠? 제가 관리해온 저택의 모든 것들을 전부 뺏기게 되잖아요.”

“그래서 병원장님의 계획에 동참하신 건가요?”

“그래요!”

고리키 나나의 태도는 무척 당당했다. 진심으로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믿는 듯 했다.

“이제 알겠어요. 두 분 다 왜 저를 죽이려 하셨는지.”

처음으로 타카미네 료코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대단한 이유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주인이 잠시 맡겨놓은 것을 자기 것이라 착각하고 나대는 거였군요.”

타카미네 료코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렇게 놀랍지도 않네요.”

“아가씨, 아무리 분해도 그렇지 허세를 부리시면…… 추해 보이십니다.”

“두 분께서 다른 마음을 품고 계시다는 건 이미 옛날에 알고 있었어요.”

노무라 마사타카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하지만 이내 웃음기가 사라졌다.

타카미네 료코의 얼굴이, 눈빛이,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말 알고 계셨던 겁니까?”

“다만 증거가 없으니까. 내 힘이 약하니까.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두 사람은 타카미네 료코를 대신해서 가문과 병원을 관리해 왔다.

그런 둘을 명분도 없이 내쫓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보다 여기에 계속 서 계셔도 되겠어요?”

노무라 마사타카는 그제야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락브레이커의 시선을 발견했다.

“당장 저쪽으로 꺼져. 네놈들은 조금 이따 손봐줄 테니까.”

노무라 마사타카와 고리키 나나는 허둥거리며 페르드랑스 쪽으로 도망쳤다.

“이제 편 가르기가 끝난 것 같은데.”

짝.

페르드랑스가 손뼉을 쳤다. 그러자 벽의 문이 열리며 생인형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미리 말해두지만 저택을 습격한 것들하고는 격이 달라. 각별히 신경을 쓴 특제품들이거든.”

저택을 습격했던 생인형들이 찰흙을 마구잡이로 주물러놓은 것처럼 생겼다면 저들은 정교하게 제작된 도자기처럼 규격에 맞춰져 있었다.

“일류 헌터들만 끌어 모아서 다이어 등급의 몬스터와 융합시켰지. 아주 골치 아플 걸?”

페르드랑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생인형들이 달려들었다.

“온다!”

“겁먹지 마! 별 거 아니야!”

팀원들이 호기롭게 외치며 무기를 손에 쥐었다. 각자 스킬을 사용해서 원거리에서 공격을 퍼부었다.

형형색색의 스킬들이 생인형들의 몸을 두드렸다. 하지만 상처는커녕 걸음을 늦추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저, 저게 뭐야!”

“꾸, 꿈쩍도 안하잖아! 으아아악!”

팀원이 비명을 내질렀다. 생인형들은 망설임 없이 팀원들을 덮쳤다.

그때, 락브레이커가 생인형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생인형 한 명이 두 주먹을 높게 쳐들었다. 놀랍게도 두 주먹에는 오러가 맺혀 있었다.

높게 올린 주먹을 단숨에 내리친다. 두 주먹이 락브레이커의 어깨를 강타했다.

“흠.”

하지만 락브레이커는 멀쩡했다. 인상조차 쓰지 않았다.

“별 거 아니군.”

락브레이커가 주먹으로 생인형의 복부를 강타했다. 그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콰앙!

거대한 소리와 함께 생인형의 상반신이 완전히 사라졌다. 락브레이커는 하반신만 남은 시체를 밀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전방을 향해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아까보다 더욱 강력한 폭발이 생인형들을 집어삼켰다. 동시에 짙은 폭연이 은신처를 가득 채웠다.

이윽고 폭연이 가라앉았다. 생인형들의 숫자가 반이나 줄어들어 있었다.

“…….”

페르드랑스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수십 가지의 스킬에 적중당하고도 멀쩡했던 생인형들이 일격에 사망했다. 아니, 파괴되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했다.

“내가 누군지 잊은 모양이지?”

락브레이커가 두 주먹을 서로 맞대며 말했다.

“이딴 잔챙이들은 수백 명이 있어도 내 털끝하나 건드릴 수 없어.”

“……그렇게 보이는군.”

페르드랑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생인형들을 향해 손짓했다.

“다들 물러나라.”

남아 있는 생인형들이 벽 쪽으로 물러났다.

락브레이커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부하들을 고생시키면 쓰나. 여기서는 대가리끼리 해결해야지. 안 그래?”

“공감이 되는 말을 하는군. 의외로 자네랑 성향이 잘 맞을지도 모르겠어.”

“개소리하고 있네. 난 너 같이 배신이나 종용하는 새끼는 딱 질색이야.”

그 말에 페르드랑스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쉽군. 그럼 하던 일이나 계속할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락브레이커가 땅을 박찼다. 페르드랑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반면 페르드랑스는 가만히 서서 락브레이커를 기다렸다.

‘무슨 속셈인지 뻔히 보이는군.’

락브레이커는 속으로 페르드랑스를 비웃었다.

‘포이즌 스킬이 있으니 언제든지 날 죽일 자신이 있다 이거겠지. 하지만 이쪽도 대비를 해 왔다.’

분명 포이즌 스킬은 굉장히 치명적이다. 잘만하면 자신보다 한두 단계 높은 상대까지 죽일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강력한 만큼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포이즌 스킬은 범위가 좁아.’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강한 독성을 가진 포이즌 스킬일 수 록 범위가 좁다.

광범위 하게 살포하는 포이즌 스킬은 위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래서 내 스킬하고는 상극이라고 할 수 있지.’

그가 주특기로 삼고 있는 스킬은 ‘봄버맨(Bomber Man)’이다.

타격 시에 폭발을 일으키는 단순한 스킬이지만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까지 봄버맨을 사용해서 부수지 못한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붙여진 별명이 락브레이커가 아니던가.

‘봄버맨의 폭발력이면 네놈의 독을 모조리 날려버릴 수 있다.’

게다가 락브레이커는 이 날을 위해서 전 재산을 털어서 유물을 구비해 놨다.

생명수의 이슬.

비록 일회성이기는 하지만 이쪽 분야의 최고라는 칠색피독주에 버금가는 해독력을 가지고 있다는 유물이다.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다. 놓칠 수야 없지!’

주먹이 닿을 정도로 거리가 좁아졌음에도 페르드랑스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락브레이커는 방심하지 않았다.

독공의 무서운 점은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준비 자세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페르드랑스가 방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언제든지 독을 내뿜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가까워지면…… 내 주먹이 더 빠르지!’

락브레이커가 엄청난 속도로 주먹을 내질렀다. 그 직후, 거대한 폭발이 페르드랑스를 집어삼켰다.

“하, 멍청한 놈.”

자욱하게 올라오는 폭연을 바라보며 락브레이커는 비웃음을 머금었다.

“너무 놀라서 스킬을 사용할 틈도 없었나 보지?”

그러나 다음 순간, 락브레이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폭연이 걷히면서 멀쩡하게 서 있는 페르드랑스의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뭐?”

“괜찮은 주먹이야.”

페르드랑스가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말했다.

“하지만 좀 가볍군.”

별안간 페르드랑스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락브레이커는 이제 곧 펼쳐질 포이즌 스킬에 대비했다.

하지만 페르드랑스는 독을 풀지 않았다. 대신 손날을 내리쳤다.

‘이 새끼가!’

감히 주특기가 아니라 근접전을 걸어오다니. 락브레이커의 얼굴에 분노가 차올랐다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때려 박아주마.’

락브레이커는 팔뚝으로 머리를 가렸다. 수도를 막아내고 비어 있는 페르드랑스의 늑골에 주먹을 꽂아 넣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우드득, 팔뚝이 부러졌다. 손날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락브레이커의 쇄골까지 부수고 나서야 멈췄다.

“커, 커헉!”

락브레이커는 괴성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숨조차 쉬기 힘든 고통이 전신을 괴롭혔다.

“다들 너처럼 착각을 하지. 내가 근접전에서 약할 거라고 말이야.”

페르드랑스가 손목을 털며 말했다.

“어때? 제법 괜찮은 내려치기라고 생각하지 않나?”

락브레이커는 이를 악물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말을 할 수 없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즐거웠다.”

페르드랑스가 주먹을 쥐었다. 마무리를 지으려던 찰나, 락브레이커가 소리쳤다.

“사, 살려줘!”

페르드랑스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지금 뭐라고 했지?”

“사, 살려달라고 했다! 뭐, 뭐든지 할 테니 모, 목숨만큼은 살려줘!”

“당황스럽군. 아까 내게 배신자는 용서 못한다고 그렇게 떠들지 않았나?”

페르드랑스가 허물을 들췄음에도 락브레이커는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바닥에 엎드린 채 애원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이거 참…… 이렇게 쉽게 목숨을 구걸하는 놈은 또 처음인데.”

페르드랑스는 잠시 고민하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살려주지.”

“저, 정말이십니까.”

“대신 조건이 있다.”

페르드랑스는 아공간을 열어서 작은 약병을 하나 꺼냈다.

“이걸 먹으면 살려주마.”

“이, 이게 뭡니까.”

“잠복독이라는 물건이다.

페르드랑스는 독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독은 먹어도 당장 죽지는 않아. 하지만 일정기간이 지나면 중독이 시작되고 복용자의 장기를 모두 녹여버리지.”

친절한 동네 의사 같은 어조였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주기적으로 내가 주는 해독약을 먹으면 괜찮으니까.”

락브레이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 혹시 해독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안하는 게 좋을 거야. 외부에서 침입하는 독이면 몰라도 식도를 통해서 섭취된 독은 해독하기 골치 아픈 법이거든.”

페르드랑스가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알겠나? 내게 목숨을 구걸한다는 건…… 내 노예가 되겠다는 뜻이야. 아마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될 걸.”

페르드랑스는 락브레이커의 눈앞에 약병을 내려놓았다.

“선택은 네 자유다. 이 독을 먹고 평생 동안 내게 굴복하며 살아갈지. 아니면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락브레이커가 잠복독을 들이켰다. 페르드랑스는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쉽게 잠복독을 마시는 놈은 또 처음인데. 세계랭커라는 놈이 이렇게 자존심이 없나?”

“머, 먹었습니다. 이, 이제 살려주시는 겁니까?”

“내가 또 약속은 잘 지키지. 여기 회복약도 주지.”

페르드랑스는 포션을 꺼내서 던졌다.

락브레이커는 재빨리 포션을 들이켰다. 부러진 쇄골과 팔뚝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자, 그럼…… 남은 놈들은 어떻게 할까?”

페르드랑스가 남아 있는 팀원들을 쳐다봤다.

팀원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락브레이커까지 페르드랑스에게 굴복한 마당에 그들에게 희망이 있을 리가 없었다.

“너희들은 운이 참 좋아. 평소 같으면 전부 죽여 버렸겠지만 이번 의뢰 때문에 수하들을 많이 잃어서 일손이 부족하거든.”

페르드랑스가 다시 아공간을 열었다. 잠복독이 담긴 약병을 바닥에 쏟아냈다.

“마셔라. 그럼 살려주도록 하마.”

팀원들은 선뜻 독을 마시지 않았다.

페드르랑스의 노예가 되는 게 두렵기도 하거니와 여기서 독을 마신다는 것은 흑천 그룹을 배신하는 것이다.

눈앞의 늑대를 피하자고 호랑이를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원래 이런 반응이 나와야지. 암만 생각해봐도 저놈은 너무 쉽게 굴복했어.”

페르드랑스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것과 별개로 목적을 이루어야 했다.

“락브레이커.”

“예!”

“지금 당장 네놈이 쓸 만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줘야겠다. 1분 안에 저놈들이 자발적으로 잠복독을 마시게 해라.”

“1분이라고요……?”

“그래, 못하면 너도 생인형과 똑같은 신세가 될 줄 알아라.”

락브레이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멍청한 새끼들아! 방금 못 들었냐? 이걸 마시면 살려준다잖아!”

락브레이커는 망설임 없이 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순식간에 달라진 태도에 팀원들은 어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말하는데도 망설인단 말이지? 오냐, 계속 그렇게 있어라. 내가 직접 죽여줄 테니까!”

락브레이커가 살기를 일으켰다. 표정을 보나 살기를 보나 농담이 아니었다. 정말로 죽일 작정이었다.

“마, 마시겠습니다!”

그때, 팀원 한 명이 튀어나와서 잠복독을 들이켰다. 그게 시발점이었다.

“비켜! 내가 먼저야!”

“나도 먹어야 할 거 아니야! 옆으로 꺼져!”

한 번 터지자 막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잠복독을 마시기 위해서 아웅다웅 다투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모든 팀원들이 잠복독을 들이켰다.

“아무래도 이제 다 끝난 모양이군.”

줄곧 사태를 관망하던 병원장이 입을 열었다.

“페르드랑스. 이제 의뢰도 마무리 짓도록 합세. 그래야 자네도 원하는 것을 이룰 게 아닌가.”

“노무라 병원장. 아직 다 끝난 건 아닙니다.”

“무슨 소리인가?”

페르드랑스가 시선을 옮겼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팀원들이 서 있던 자리에 아지 두 명이 남아 있었다.

타카미네 료코와 권후돈이었다.

“이봐, 대장.”

락브레이커가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뭐하는 거야? 빨리 이쪽으로 오지 못해?”

권후돈은 불안한 눈동자로 락브레이커와 다른 팀원들을 바라봤다.

이윽고 숨을 크게 마신 뒤, 말했다.

“……나는 독을 마시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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