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66화>
66화 각자의 속내 (1)
지휘권을 인정받은 뒤, 권한울은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권후돈.”
“왜, 왜?”
“타카미네 료코 양을 안전한 곳으로 모셔라. 그리고 팀을 나눠서 저택의 외부를 수색시키도록.”
“아, 알겠어.”
권후돈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락브레이커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우리한테 다 시키는 거 같은데. 그쪽은 뭘 할 계획이지?”
왜 우리만 일을 시키냐는 항변……이라기보다는 트집 잡기에 가까웠다.
권한울은 락브레이커를 정면에서 응시하며 말했다.
“아직 살아 있는 침입자들을 추궁해서 페르드랑스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합니다.
락브레이커가 뭐라 하려고 했다. 그보다 먼저 권한울이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책임자는 나입니다. 닥치고 따르세요.”
락브레이커는 잠시 권한울을 노려봤다. 그러다 혀를 차며 권후돈과 함께 타카미네 료코를 호위하며 사라졌다.
락브레이커가 사라지자 메이홍이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뭐가 저렇게 재수가 없대요. 세계랭커는 원래 다 저래요?”
“그럴 리가요.”
주하연이 조용한 목소리로 부정했다. 메이홍은 슬쩍 그녀에게 붙었다.
“근데 언니. 정말 제로넘버에요?”
“그렇습니다.”
“아닌 거 같은데…… 언니가 저런 자존심만 강한 얼간이랑 같은 급이라고요?”
주하연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메이홍이 몇 차례 더 물어봤으나 소용없었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권한울은 침입자들을 살폈다.
즐비한 시체들 속에서 딱 한 명, 살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허억…… 허억…….”
하지만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복부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핑거불릿에 적중당한 상처였다.
“페르드랑스가 보냈습니까?”
“그래, 그 빌어먹을 새끼가 보냈다. 타카미네 료코를 잡아오면 해독제를 주겠다고 하더군.”
“해독제? 잠복독에 감염된 겁니까?”
“그래, 아주 뭐 같은 독이지.”
남자가 증오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한테 물어봐도 소용없어. 아는 게 없거든.”
“그쪽은 누구시죠?”
“다윗 길드 소속 용병이다.”
다윗이라는 말에 주하연이 반응했다.
“다윗? 초거대 몬스터 토벌을 주특기로 삼는 그 용병 길드요?”
“미녀께서 알아봐주니 영광이군.”
권한울은 이들이 어떻게 들키지 않고 저택에 침입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다.
다윗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초거대 몬스터 토벌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다.
초거대 몬스터 토벌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은신, 혹은 기척을 차단하는 능력이다.
그런 능력이 있어야 초거대 몬스터에게 근접한 뒤, 약점을 찌를 수 있기 때문이다.
천장을 달리는 그 기묘한 스킬도 초거대 몬스터의 몸통에 붙기 위해서 습득한 게 분명했다.
“어쩌다 페르드랑스에게 붙잡혔지?”
“운이 없었지. 몬스터를 토벌하다가 마주쳤거든.”
남자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갑자기 남자의 피부에 검은 혈관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밀랍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잠복독이 남자를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널 원망하지는 않겠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대신, 그 개 같은 새끼는 꼭 죽여 다오.”
권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남자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 직후, 남자의 몸이 완전히 녹아내렸다. 바닥에 검은 웅덩이가 생겨났다.
권한울이 웅덩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주하연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위험해요!”
주하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권한울은 손가락으로 웅덩이를 매만졌다.
<극독에 중독되었습니다!>
<독에 접촉한 부분부터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순식간에 손가락이 검게 변색되었다. 사람을 순식간에 녹여버린 독다웠다.
“페르드랑스가 포이즌 스킬이 주력이라더니. 진짜 지독하네요.”
과연 위협적인 스킬이다. 타인을 조종하기 위해 조절한 독이 이 정도다.
죽이기 위해 발산하는 독은 이보다 훨씬 더 지독할 터.
이 독을 어떻게 해결하지 않으면 페르드랑스를 어쩌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때였다.
<‘건강혈(健康血)’이 극독을 감지합니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건강혈이 독을 해독하기 시작합니다! 망가진 신체를 회복시킵니다!> <특성 ‘백독불침(百毒不侵)’이 독을 이겨냅니다!> <영구적으로 독 저항력이 6 상승합니다!> <영구적으로 해독력이 6 상승합니다!> 권한울이 손끝을 털어냈다. 독이 떨어져나가며 멀쩡한 손가락이 드러났다.
“독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손가락을 움직이며 권한울이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해볼만 하겠는데요?”
* * *
타카미네 료코는 호위를 받으며 침실에 들어왔다. 문밖에는 권후돈과 락브레이커가 경비를 서고 있었다.
세계랭커가 버티고 있으니 이 저택에서 이곳보다 안전한 장소는 없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타카미네 류코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아가씨! 대체 무슨 생각이세요!”
자신을 질책하고 있는 고리키 나나 때문이었다.
“저한테 허락도 받지 않고 그 남자에게 지휘권을 주다뇨!”
“실력이 확실해서 믿어도 된다고 판단했어요.”
“실력? 락브레이커가 있잖아요!”
고리키 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세요. 누구든지 그 남자보다 락브레이커를 믿어야 한다고 말했을 거예요! 세계랭커니까요!”
“주하연이라는 분도 세계랭커…….”
“자꾸 말대답하실 거예요?”
고리키 나나가 강압적으로 나오자 타카미네 료코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아가씨께 가문을 맡기기 불안한 거예요. 제가 아니면 이렇게 매번 잘못된 판단을 하시잖아요.”
고리키 나나는 의자에 앉아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일단 노무라 님과 상의를 해봐야겠어요?”
“병원장님께요?”
원래 타카미네 가문의 당주가 병원장도 겸임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현재 병원장은 오랫동안 전임교수였던 노무라 마사타카가 맡고 있었다.
“당연하죠. 가문과 병원의 미래를 결정지을지 모르는 중요한 일인데요. 잠깐 기다리고 계세요.”
고리키 나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잠시 뒤, 말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통화를 하는 내내 고리키 나나는 단 한 번도 타카미네 료코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타카미네 료코는 창문을 쳐다봤다. 유리창에 비치는 정원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지치기해야 하는데…….”
* * *
타카미네 료코의 방문 앞.
락브레이커와 권후돈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대장, 그 놈은 대체 뭐하는 놈이야?”
락브레이커가 권후돈을 쳐다보며 물어봤다. 두 눈동자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권후돈은 어깨를 움츠렸다.
“누, 누구?”
“권한울인지 뭔지 하는 그 놈 말이야.”
“하, 한울이 말이야? 정말 대, 대단하지?”
“지금 그 놈을 칭찬하려고 말을 꺼낸 줄 알아?”
락브레이커가 으르렁거렸다. 격한 감정을 드러낼 정도로 락브레이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그놈…… 나보다 먼저 침입을 감지했어. 그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해?”
변명거리는 있다.
헌터들은 각자 특화된 분야가 다르다. 락브레이커의 특기는 전투에 집중되어 있기에 탐지 능력은 다소 약했다.
하지만 락브레이커는 세계랭커다. 권한울과의 격차는 하늘과 땅차이다.
“하, 한울이는…… 원래 대, 대단해서…….”
“내가 말했지. 그딴 말 들으려고 물어본 게 아니라고…….”
-마크 그리핀. 선을 넘는군요.
별안간 권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락브레이커는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문득, 권후돈이 목에 걸고 있는 수정구슬 목걸이에 눈길이 갔다.
“명전옥(名傳玉)?”
언제 어디서든 상황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유물.
레전더리 유물답게 던전 안팎에서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유물이기도 했다.
“혹시 지금까지 계속 그걸로 지켜보고 있었던 겁니까?”
-예, 우리 후돈이가 언제 위험에 빠질지 모르니까요.
락브레이커는 속으로 경악했다. 저런 귀한 유물을 사용하면서까지 자식을 감시하다니.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건 당연하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과보호도 이런 과보호가 없었다.
-락브레이커, 저와 약속했을 텐데요? 저는 당신을 지원해 주고, 당신은 최선을 다해서 후돈이를 보좌하기로.
“예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금 전 행동은 뭐죠?
락브레이커는 이를 갈았다. 수치심을 꾹 참고 고개를 숙였다.
“대장, 내가 너무 무례했어. 사과하도록 하지.”
“어, 어…… 괘, 괜찮아.”
락브레이커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천하의 마크 그리핀이 저렇게 대가리 딸리는 놈한테 고개를 숙여야 한다니.
수치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락브레이커는 꾹 참았다. 미래를 위해서 이 정도 굴욕을 감내할 수 있었다.
-후돈아.
수정구슬 속에서 권미가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어, 엄마…….”
-너는 왜 그 자리에서 한울이에게 권한울 뺏겼니? 당연히 네가 지휘권을 가져왔어야지.
“미, 미안…….”
-명심하렴. 이번 임무는 회장님께서 주시하고 계셔. 반드시 네가 주도해야만 해. 그래서 내가 억지로 널 참가시킨 거야.
“으, 으응…….”
권후돈의 목소리에서 망설임이 묻어 나왔다. 권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또 왜 그러니? 뭐가 걱정돼서 그래?
“그렇게 중요한 임무를…… 내가 망치면 큰일이잖아……,”
잠시 권미의 말이 끊어졌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가 말을 잘못했구나. 실패해도 돼.
“어, 어어……?”
-실패하면 뭐 어때. 그때 가서 엄마가 다른 계획을 세우면 돼지.
누가 봐도 권후돈을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효과는 있었다. 창백했던 권후돈의 얼굴이 서서히 혈색을 되찾기 시작했으니까.
-대신 후돈아, 이것만큼은 잊지 마렴.
“뭐, 먼데…….”
-언제 어디서든.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흑천의 긍지만큼은 잊지 말도록 하렴.
권후돈의 얼굴이 잠시 멍해졌다. 이내, 권후돈은 흑천의 긍지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진짜 웃기는 모자네.”
반면 락브레이커는 조소를 지었다. 같은 혈족의 임무를 억지로 빼앗으려 했으면서 긍지? 긍지라?
락브레이커는 굳이 그 사실을 꼬집지 않았다. 저 둘이 어떤 말을 하던 자신과는 상관없으니까.
자신은 그저 적당히 권후돈을 상대하다 권미에게 보상만 얻어내면 된다.
“……아니지, 아니야.”
락브레이커는 권한울과 주하연을 떠올렸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큰 굴욕을 맛본 적은 없었다.
“……갚을 건 갚아줘야지.
으득.
락브레이커가 이를 갈았다.
* * *
타카미네 가문의 저택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
7층의 건물 옥상에서 젊은 여자가 말했다.
“다 죽었네?”
여인은 옆에 앉아 있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다 죽었어.”
마치 놀리는 듯한 여인의 말에 남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죽어도 상관없는 쓰레기들 입니다. 덕분에 흑천의 전력을 확인했으니 남는 장사죠.”
“정말? 그래도 아깝지 않아?”
“어차피 제 진짜 수족들은 따로 있습니다.”
남자가 뒤쪽을 힐끔거렸다. 그곳에는 검은 복장을 입고 있는 남녀 스무 명이 서 있었다.
눈조차 깜빡이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는 그 모습은 어딘가 섬뜩함이 느껴졌다.
“흐음, 그래봤자 독에 절여진 인형들이잖아. 저걸로 흑천을 어쩔 수 있겠어?”
“그럭저럭 쓸 만합니다.”
남자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방금 전에 봤던 광경을 떠올렸다.
“권한울이라고 했던가요? 저 남자…… 실로 충격적이군요.”
쓰레기라고 비하하기는 했지만 저택에 들어간 헌터들은 결코 만만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원 초거대 몬스터를 전문적으로 토벌하는 다윗의 용병들이다.
초거대 몬스터를 토벌하는 것은 일반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렵다.
다윗에 소속되어 있는 것만으로 저들의 기량은 평범한 헌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 이들이 권한울에게 손도 못 쓰고 당했다.
“락브레이커는?”
“그 놈이야 볼 것도 없습니다. 세계랭커지만 그 외에는 특별할 게 없는 놈입니다.”
권한울과 달리 락브레이커에 대한 평가는 박하기 짝이 없었다.
“아마 1년만 지나도 락브레이커는 권한울을 우러러볼 수도 없을 겁니다.”
“너무 칭찬하는데. 혹시 이러다 싸워도 지는 거 아니야?”
여인의 말에 남자는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래봤자 아직은 애송이 입니다. 제가 마음만 먹으면 백 번, 천 번도 넘게 녹여버릴 수 있습니다.”
“하긴, 네가 다른 건 몰라도 독만큼은 쓸 만하지.”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보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 말해봐.”
“왜 당신이 온 겁니까.”
남자의 물음에 여자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가 먼저 판데모니엄의 의회에 부탁했잖아. 주하연의 발을 묶어놓을 사람을 보내달라면서.”
“그러니까 왜 하필 당신이 왔냐는 말입니다.”
“어머, 우리가 어디 보통 사이야?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여인이 한껏 웃으며 말했다. 남자는 여전히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흑천의 마녀를 상대하는데. 어중이떠중이를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주하연이 그렇게 대단하단 말입니까?”
“다 알고 판데모니엄 의회에 도움을 요청한 거 아니었어?”
“위험한 인물이라는 건 알았지만 당신이 올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판데모니엄 내에서 이 여자는 굉장히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마리아 산체스.
초인혈이라는 혈통을 보유하고 있으며 천재적인 재능을 통해서 순식간에 판데모니엄의 일석을 차지한 여걸이다.
그녀를 얕잡아보다가 머리가 깨진 거악들의 숫자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마리아 산체스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 배경이다.
그녀가 소속되어 있는 산체스 가문은 구성원 전체가 범죄에 몸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대대로 판데모니엄의 악인을 배출해냈으며 그만큼 판데모니엄 내에서 영향력이 컸다.
“몰랐으면 이번 기회에 알아둬. 저 여자는 정말 무서운 여자야. 어지간해서는 나도 맞붙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남자는 여인의 표정을 살폈다. 워낙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인물이라 쉽게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 물론 제대로 싸우면 내가 이겨. 그러니까 오해하면 안 돼?”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럼 이제부터 계획이 어떻게 돼?”
“계승식까지 기다릴 겁니다.”
“그렇게 여유를 부려도 되겠어? 권한울이 대비를 할 텐데?”
그 말에 남자가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 일은 이미 마무리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흑천은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셈이죠.”
그때 남자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스마트폰의 화면에는 ‘의뢰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남자는 통화를 위해 잠시 자리를 벗어났다. 마리아 산체스는 슬쩍 남자를 따라가서 통화를 엿들었다.
그러다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저 작은 가문에 무슨 배신자가 이렇게 많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