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64화>
64화 임무 준비 (1)
이틀 뒤, 권한울은 임무를 위해서 전세기에 올랐다.
“그럼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주하연이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주하연이 손에 들고 있는 작은 리모컨을 눌렀다. 천장에 달려 있는 거대한 스크린에 자료가 떠올랐다.
“의뢰인은 타카미네 가문입니다. 헌터종합병원을 운영하는 가문으로 유명하죠. 두 분께서도 자주 들어보셨을 겁니다.”
자주 수준이 아니라 맨날 들어봤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신체 결손, 중독, 저주 등등.
던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처와 질환을 대처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니까.
전 세계의 유명한 헌터들은 던전 공략이 끝나면 항상 타카미네 헌터전문병원을 찾고는 했다.
“의뢰 내용은 판데모니엄의 악인을 막아달라는 것입니다.”
판데모니엄.
전 세계의 극악한 악인들만이 가입할 수 있다는 음지의 헌터 단체.
그곳 소속이라는 것만으로 실력과 잔악성은 입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판데모니엄의 악인이 보내온 요구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타카미네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유물 중에서 ‘태청의 관’을 자신에게 넘길 것.”
타카미네 헌터전문병원이 현재의 위치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유물들 덕분이었다.
타카미네 가문은 옛날부터 치료에 관련된 유물들을 수입해 왔다.
아무리 등급이 낮고, 수준이 떨어진다 해도 돈을 아끼지 않고 매입했다. 그리고 그 중에 잭팟이 터졌다.
태청의 관
누워 있는 것만으로 신체가 회복이 되고,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환골탈태(換骨奪胎)까지 가능하다는 희귀한 유물.
태청의 관이 있었기에 타카미네 헌터종합병원은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그런 것을 내어달라고 하니 응할 리가 있겠는가.
“판데모니엄의 악인은 약속된 시간까지 유물을 내놓지 않으면 계승식을 방해하겠다고 했습니다.”
판데모니엄의 악인이 말한 시간은 오늘까지다. 딱 권한울이 도착할 때쯤.
“타카미네 가문은 판데모니엄의 악인을 막아줄 헌터들을 찾았지만 다들 판데모니엄의 이름을 듣고 거절했다고 하더군요.”
판데모니엄은 이를 테면 악인들의 세계랭킹이나 다름없다.
소속된 것만으로 그 인물이 얼마나 악독하고 강한지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존재와 맞설 실력자가 어디 흔하겠는가.
“그래서 저희 흑천에 부탁을 한 겁니다.”
“흑천은 용케 받아들였네요?”
“타카미네 가문의 전전대 당주와 권선우 회장님은 서로 친우라 불릴 만큼 가까운 사이셨거든요.”
권한울은 눈을 깜빡거렸다.
친우의 가문이라면 권선우에게도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그런 가문을 지키는 일을 자신에게 맡겼을 줄은 몰랐다.
“계승식이라면 누구의 계승식이죠?”
“타카미네 가문의 장녀 타카미네 료코 양의 계승식입니다.”
3년 전, 타카미네 가문의 당주가 사고로 사망했다.
원칙대로라면 타카미네 료코가 가문과 병원을 물려받아야했지만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계승은 미뤄졌다.
“하연 언니!”
메이홍이 손을 들었다. 주하연이 질문하라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
“판데모니엄의 악인에 대한 정보는 없나요?”
“지금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주하연이 다시 리모컨을 눌렀다. 스크린에 청년의 얼굴이 나타났다.
“페르드랑스라는 인물입니다.”
권한울은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라틴계 특유의 굵직한 눈썹과 까무잡잡한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판데모니엄 소속으로 특기는 포이즌 스킬입니다.”
“어우, 독이라니.”
메이홍이 인상을 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포이즌 계열 스킬은 상대하기도 힘들고, 상대한 후에도 힘들었다. 어지간해서는 다들 피하려고 했다.
문득 권한울이 입을 열었다.
“잠깐, 페르드랑스라면 네팔에서 사람들을 죽인 그 남자인가요?”
“맞습니다. 3년 전, 네팔의 국영공항에서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한순간에 핏물로 만들어버렸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기 귀찮다는 이유로요.”
미쳤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이유였다.
“네팔은 자국의 헌터들을 모두 동원해서 페르드랑스를 잡으려 했습니다만 오히려 페르드랑스는 그들을 모두 죽이고 국경을 벗어났습니다.”
당시의 그 상황은 세계로 송출이 되었다. 굉장히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이후, 페르드랑스는 국제지명수배자가 되고 판데모니엄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잡히지 않고 있죠.”
그 남자를 이번에 상대해야 한다.
권한울은 살짝 어깨를 떨었다. 공포심 때문이 아니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대감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특이 사항으로 다수의 헌터들을 강제로 복종시켜서 수하로 부린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권한울의 물음이었다. 주하연은 바로 대답했다.
“잠복독을 이용해서 협박을 한다더군요.”
“언제까지 해독약을 안 먹으면 죽는다. 이런 식으로요?”
주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카미네 가문 쪽에서 보내온 사진입니다.”
스크린 속 화면이 바뀌었다. 화물선 한 대와 그 내부로 보이는 사진이 떠올랐다.
화물선의 바닥은 온통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속에 검게 변색된 뼈가 보였다.
“오늘 새벽, 일본 항구에서 발견된 화물선의 내부입니다. 페르드랑스와 그 수하들은 이미 배를 타고 일본에 도착한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그럼 도착하자마자 습격당할 수도 있겠군요?”
“그럴 가능성은 적을 겁니다. 페르드랑스가 예고한 날은 계승식 당일이니까요. 판데모니엄의 악인이 그 정도 약속도 지키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악당도 나름의 긍지를 가지고 있을 터. 약속을 어길 리는 없다는 게 주하연의 의견이었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죠. 도착하면 우선 저택의 방범 상태를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릴 게요.”
그 이후로도 브리핑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비행기가 일본에 도착했다.
* * *
일본 공항에 도착한 뒤, 권한울은 타카미네 가문이 보내온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타카미네 가문의 저택으로 가는 동안 권한울은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리했다.
우선 타카미네 가문의 후계자인 타카미네 료코를 만나서 계획을 설명하고, 저택의 방범체계를 살펴볼 예정이었다.
그러나 권한울의 계획은 첫 단추부터 어그러졌다.
“1시간 정도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시종의 말에 권한울은 살짝 불쾌감을 느꼈다.
권한울은 타카미네 가문이 부탁한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다.
그런데 먼저 시간을 정한 쪽에서 늦어진다니? 그것도 1시간이나?
“타카미네 아가씨께서 안 계신 겁니까?”
“그게 아니라…… 준비할 게 있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권한울의 불쾌감은 더욱 커졌다.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 준비가 덜 끝났다?
“저기요.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요.”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권한울 대신 메이홍과 주하연이 화를 냈다. 시종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쩔쩔 맸다.
“죄, 죄송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아니에요. 그냥 기다리죠.”
권한울이 시녀의 행동을 막았다.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죠? 그동안 저택을 둘러봐도 될까요?”
“네, 괜찮습니다.”
시녀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권한울은 두 사람을 데리고 방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메이홍이 권한울에게 항의했다.
“왜 막으신 거예요? 자기들이 급해서 불러놓고 권한울 님을 내팽개쳐두다니요!”
“정말 무례한 곳입니다.”
주하연도 조용히 분노하고 있었다. 권한울은 쓴웃음을 지으며 둘을 진정시켰다.
“얼굴을 보고 화내도 늦지 않잖아요. 어차피 보안을 파악하려면 저택을 둘러봐야 하니 일의 순서가 좀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되죠.”
그 말에 두 사람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저택의 밖을 먼저 둘러보도록 하죠.”
“내부가 아니라요?”
저택의 내부는 나중에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게 좋을 겁니다.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비밀통로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 밖을 먼저 살피는 게 좋겠다는 게 주하연의 의견이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 권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부지가 너무 크지 않고 딱 적당하군요. 이 정도면 마법의 범위 안에 다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 말에 권한울은 약간 어이가 없었다.
타카미네 가문은 넓은 정원에 둘러싸여 있다. 흑천 일가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나 다름없지만 넓은 것은 변함이 없었다.
마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이만한 부지를 전부 마법의 범위에 넣는 게 쉬울 리가 없다.
“정원에 큰 나무가 없네요. 덕분에 옥상에 있으면 누가 침입하는지 다 알 수 있겠어요.”
메이홍도 한 마디 거들었다.
메이 가문에서 여러 훈련을 받았던 그녀다. 암살 방법도, 대처 방법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권한울은 조금 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응?”
울타리처럼 사각형으로 깎여 있는 회양목의 뒤편으로 한 소녀가 보였다.
소녀는 커다란 정원용 가위를 들고 삐죽 튀어나온 가지를 잘라내고 있었다.
가위질을 할 때마다 어깨까지 오는 둥근 단발머리가 살짝살짝 흔들렸다.
“정원사?”
무심코 말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정원사 치고는 너무 나이가 어렸다. 게다가 어딘가 묘한 기품이 느껴졌다.
정원을 가꾸는 게 좋은지. 소녀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소녀는 회양목을 반듯하게 깎은 뒤, 옆으로 자리를 옮기려 했다.
그때, 권한울과 눈이 마주쳤다.
“어머?”
소녀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어디서 오신 분들이신가요?”
“흑천에서 왔습니다.”
“흑천이요? 아하…… 그럼 그쪽이 권한울 님이시군요. 뒤에 두 분은 주하연 님하고 메이홍 님이겠네요?”
소녀의 입에서 세 사람의 이름이 바로 튀어나왔다. 권한울은 이 소녀가 보통 인물이 아님을 직감했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아, 맞다. 제 이름을 먼저 말씀드려야 했는데.”
소녀는 가위를 옆에 세웠다. 손으로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곧 타카미네 가문을 이을 타카미네 료코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권한울이 눈동자가 커졌다. 설마 이곳에서 타카미네 료코를 만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준비 중이라 기다리라고 해놓고 여기서 정원을 가꾸고 계셨네요?”
메이홍이 날선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들을 기다리게 한 타카미네 료코를 질책하는 말이었다.
“기다리라고 했다고요?”
그런데 타카미네 료코는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세 분이 오신 것도 지금 알았…… 아아, 나나 씨가 또 혼자 결정을 내린 모양이네요.”
타카미네 료코는 알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내 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타카미네 가문이 후계자로서 대처가 미흡했습니다.”
타카미네 료코가 먼저 사과를 하자 더 이상 따지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방금 전에 나왔던 나나라는 이름도 신경이 쓰였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제가 모시도록 할 게요.”
권한울은 타카미네 료코를 따라서 저택으로 향했다. 입구까지 왔을 때였다.
“료코 아가씨! 료코 아가씨!”
요란스러운 외침과 함께 한 여성이 튀어나왔다.
머리를 둥글게 묶고, 둥근 안경을 쓴 여성이었다. 굳게 다문 입과 팔자 주름이 무척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대체 어디 계셨던 거예요! 제가 오늘은 안에서 기다리라고 하셨잖아요!”
“정원의 나무가 많이 자란 거 같아서요.”
“그런 건 정원사한테 맡기세요! 타카미네 가문의 후계자가 그런 무식하게 큰 가위를 들고 다닌다고 소문이 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여인은 타카미네 료코를 계속 몰아붙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여인을 상전으로 알 것 같았다.
“나나 씨, 알겠어요. 앞으로 조심할 게요.”
타카미네 료코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여인의 잔소리를 들었다.
“하여간 진짜 제가 없으면 어쩌려고…… 근데 저 세 명은 누구죠?”
그제야 여인은 권한울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흑천에서 왔습니다.”
권한울의 말에 여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흑천? 안에서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요? 왜 밖에 계신 거죠?”
“호위를 위해서 저택을 좀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분명히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나요?”
권한울의 얼굴이 굳었다. 여인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의 뒤에서 살기를 일으키고 있는 주하연과 메이홍 때문이었다.
“나나, 그만하세요. 저 때문에 와주신 귀한 손님께 뭐하는 짓이세요.”
적절하게 타카미네 료코가 끼어들었다. 여인은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딱 적절하게 왔네요. 그 사람들도 도착했으니까요.”
여인은 그리 말한 뒤,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여인이 사라진 뒤에 타카미네 료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분은 누굽니까?”
“아, 나나…… 고리키 나나라고 해요.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절 도와주신 고마운 분이죠.”
흐음.
권한울은 입가를 매만졌다.
타카미네 료코는 미성년자라 계승식이 미뤄졌다. 그동안 타카미네 료코를 보좌했다면 사실상 보호자나 다름없는 위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고압적인 태도였던 건가?’
하지만 뭔가 달랐다. 꼭 자신이 가문의 주인인 것 마냥 행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저희도 들어가요.”
권한울은 타카미네 료코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에서 익숙한 얼굴을 봤다.
“하, 한울아…… 자, 잘 지냈어?”
권후돈과 그의 팀원들이 권한울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