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63화>
63화 임무 준비 (1)
메시지를 받았지만 바로 본가로 복귀할 수는 없었다.
메이홍이 플래티넘 등급의 던전을 공략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에야 권한울은 본가로 돌아갔다.
“오셨군요.”
도착하자마자 주하연이 기다렸다는 듯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물건은 어떻게 됐나요?”
“이미 받아다 놨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주하연의 말에 따라서 권한울은 자신의 저택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사각형의 가방이 보였다. 흔히 007 가방이라 불리는 아타셰케이스였다.
“제작부서에서 보안을 유지할 때 사용하는 특수한 상자입니다. 사전에 지정된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열 수 없죠.”
주하연이 권한울에게 권유했다.
“상자 위에 손을 올려보시죠.”
권한울은 주하연이 말한 대로 상자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상자가 권한울의 마력을 흡수하더니 철컥,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열렸다.
권한울은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가방을 열었다. 상자의 안에는 구두와 장갑이 한 켤레씩 담겨 있었다.
회사원들이 신을 법한 가죽 구두와 장갑이었다. 장식 없이 깔끔한 디자인이었다.
권한울은 의아한 얼굴로 주하연을 돌아봤다.
“정말 박태식 명장님께서 만드신 게 맞나요?”
“맞습니다. 왜 그러시나요?”
“박태식 명장님께서 이런 장비를 만드셨다고요?”
블랙리버 세트의 디자인을 그렇게 욕하던 박태식이 이런 모습의 장비를 만들다니? 권한울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가 기왕이면 블랙리버 세트랑 모양을 맞춰달라고 부탁드렸죠. 그 편이 보기 좋으니까요.”
“뭐라고 안하시던가요?”
“많이 하셨죠. 그래도 계속 부탁을 드리니 다행히 들어주시더군요.”
그리 말하며 주하연이 생긋 웃었다. 권한울은 살짝 오한이 들었다. 대체 어떻게 부탁을 했기에 그 꼿꼿한 사람이 자존심을 굽힌 걸까.
“한 번 착용해 보시죠.”
권한울은 먼저 장갑을 착용했다. 신기하게도 착용하자마자 장갑이 찰싹 달라붙었다. 꼭 장갑이 아니라 피부가 덧씌워진 기분이었다.
<묵강(墨强) - 장갑>
-품질 : 레전더리(SS)
-설명 : 명장 박태식이 드래곤헤츨링의 송곳니와 가죽을 이용해서 만든 가죽 장갑. 압축 재료를 사용한 덕분에 모든 성능이 크게 강화되었다.
-능력
1. 오러의 위력이 30%까지 증가.
2. 관통, 참격계 공격의 위력이 30%까지 증가.
3. 적의 방호력을 최대 30%까지 무시.
다음으로 구두를 착용했다.
<묵강(墨强) - 구두>
-품질 : 레전더리(SS)
-설명 : 명장 박태식이 드래곤헤츨링의 송곳니와 가죽을 이용해서 만든 가죽 구두. 압축 재료를 사용한 덕분에 모든 성능이 크게 강화되었다.
-능력
1. 오러의 위력이 30%까지 증가.
2. 타격계 공격의 위력이 30%까지 증가.
3. 적의 방호력을 최대 30%까지 무시.
*묵강 세트를 모두 착용할 시, 특수 스킬을 사용 가능.
묵강 세트 효과
1. 용공기 – 적의 마력을 무력화시키는 특수한 기운을 일으킨다.
연금대마법사 위버 하인켈이 만든 블랙리버의 등급은 레전더리 S++였다.
그리고 박태식이 만든 묵강 세트는 SS등급. 위버 하인켈보다 자신이 위라는 박태식의 호언장담은 거짓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와아…….”
옆에 있던 메이홍의 얼굴에 감탄이 어렸다. 무기의 전문가인 만큼 메이홍은 묵강 세트가 얼마나 굉장한 물건인지 바로 알아봤다.
“한 번 써보세요!”
“쓰다뇨?”
“아이참, 주먹질이라도 해 보시라는 거죠.”
권한울은 메이홍의 말대로 허공에 주먹을 뻗었다.
팡!
가볍게 뻗었는데도 주변의 공기가 확 밀려나가며 큰 소리가 났다.
권한울은 살짝 전율했다. 만약 이대로 전력을 다한다면? 설사 태산이라 해도 무너트릴 자신이 있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최고에요 진짜. 이대로도 강력한데. 아직 특수 스킬이 남아 있잖아요? 그것까지 사용하면…….”
권한울은 자신도 모르게 신이 나서 떠들었다. 주하연도 기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참, 메이홍. 당신한테도 줄 물건이 있어요.”
“저한테요?”
“네, 회장님의 특별 지시가 있었답니다.”
주하연이 아공간을 열어서 무언가를 꺼냈다. 호랑이 무늬가 돋보이는 붉은 빛깔의 의복이었다.
“회장님께서 팀의 가입을 축하하며 건네라하신 장비입니다. 적혈호의 가죽으로 제작되었고 효과는…….”
“꺄아아아악!”
메이홍이 환호성을 지르며 의복을 받았다. 이리저리 확인하더니 한 번 더 소리를 질렀다.
“진짜 이걸 저한테 주신다고요? 정말이죠? 꿈은 아니죠?”
“저도 부탁을 좀 했습니다. 기왕이면 좋은 걸…….”
“언니! 진짜 사랑해요!”
메이홍이 주하연을 껴안았다. 주하연은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떼어놓았다.
“일단 착용해 보세요.”
“네!”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메이홍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녀가 사라지자 권한울이 주하연에게 물었다.
“저게 그렇게 좋은 장비에요?”
“레전더리 A+++급 장비입니다. 검사에게는 최고의 장비라고 할 수 있죠. 탐내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주지 않을 줄 알았는데. 회장님의 명령이라 군말 없이 주더군요.”
“그 구두쇠 같은 사람이 진짜 그런 명령을 내렸다고요?”
권한울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회장님께서는 권한울 님 덕분이라고 말하던데요.”
“제 덕분이라고요?”
“예, 내기에서 진 대가로 권한울 님의 팀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던데요.”
그 말을 들으니 괜히 억울해졌다.
“아니, 왜 나한테는 아무 것도 안 해 주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계속 커져갈 때였다. 옷을 갈아입은 메이홍이 밖으론 나왔다.
“언니! 이거 진짜 대단해요! 입고 있으니까 몸도 가벼워지고, 힘도 넘쳐요!”
“마음에 드시니 다행입니다.”
“드는 정도가 아니에요! 이런 건 메이 가문에도 없는 건데!”
메이홍은 몇 번이고 옷을 둘러봤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아, 그리고 이것도 챙겨왔습니다.”
다음으로 주하연은 장검 한 자루를 꺼내서 내밀었다.
“백강검(白江劍)입니다. 던전에서 발견된 희귀 금속들을 재련해서 벼려낸 검이죠.”
검을 본 순간, 메이홍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두 손으로 검을 받아든 뒤, 조심스럽게 살폈다.
칼자루를 뽑아서 검신을 확인하고, 멀리 뻗어서 균형을 확인했다.
그렇게 얼마나 봤을까.
“……좋은 검이네요.”
말과 달리 메이홍의 표정은 조금 굳어 있었다. 그걸 눈치 챘는지 주하연이 그녀에게 물었다.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검을 챙겨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에요! 지금 저한테는 과분한 검인 걸요! 진짜 대단한 검이에요! 다만…….”
메이홍이 말꼬리를 흐렸다. 지켜보고 있던 권한울이 물었다.
“아버지의 검을 생각하고 있었군요.”
그 말에 메이홍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그녀의 아버지가 사용했다가 매중제일검에게 넘어갔던 검은 지금 권미의 손에 있다.
아마 메이홍이 그 검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검을 줄 테니 권후돈의 팀에 들어오라는 권미의 제안을 거절했으니까.
“후회하십니까?”
“아뇨, 그럴 리가요.”
메이홍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빠는 제가 그깟 유품에 집착하는 것보다 복수하는 걸 더 바라실 테니까요.”
메이홍의 눈동자에 미미한 살기가 어렸다가 사라졌다.
“아, 그리고 권한울 님.”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지려던 찰나, 주하연이 또 다른 물건을 꺼냈다.
“이게 남아 있습니다.”
주하연이 사용인들에게 손짓을 했다. 사용인 한 명이 둥근 뚜껑이 닫혀 있는 쟁반을 들고 왔다.
그런데 사용인의 행동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마치 이 행동이 일생일대에 꼭 이루어야 할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용인이 쟁반을 내려놓고 뚜껑을 들었다. 살짝 열린 틈으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시원한 향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권한울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쟁반에서 뚜껑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쟁반 위에는 황금색 사과 한 알이 눈부신 빛을 내뿜고 있었다.
“나무는 열매를 맺자마자 바로 시들어버렸습니다.”
주하연의 설명도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권한울의 두 눈은 오직 황금사과에만 집중이 되었다.
“어떤 능력치를 올릴지 결정하셨습니까?”
권한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섭취하시지요.”
주하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권한울은 황금사과를 베어 물었다.
* * *
입에 넣자말자 황금사과의 과육이 녹아내렸다. 액체가 아니라 기체가 되어 권한울의 몸에 흡수되었다.
‘……엄청난 양이야.’
거대한 댐에 가득 고여 있는 물을 몸속에 집어넣는 것 같았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엄청난 양의 힘이 무리 없이 몸에 흡수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황금사과(Golden apple)’를 섭취했습니다.> <막대한 기운이 당신의 몸을 변화시킵니다.> <능력치 중 하나를 S급으로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어떤 능력치를 상승시키겠습니까?> 권한울은 망설임 없이 능력치를 골랐다.
<황금사과의 기운이 체력을 상승시킵니다.> 근력, 민첩, 체력, 마력, 감각, 정신력 중에서 권한울이 선택한 것은 체력이었다.
사실은 마력을 올리고 싶었다. 모든 헌터들이 여섯 가지 능력치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치는 것은 마력이다.
다른 능력치가 뼈대라면 마력은 몸에 흐르는 연료라고 할 수 있다. 마력만 뛰어나도 다른 능력치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그럼에도 권한울은 굳이 체력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혈통들 때문이었다.
현재 권한울은 혈통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서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다.
S급에 오르지 못한 몸으로 루인 아스파담과 노호민을 쓰러트린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강력한 힘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혈통을 중복해서 쓸 때마다 신체가 상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우선 체력을 선택했다.
<‘체력’이 S급에 도달합니다.> 체력 능력치가 상승할 수 록 헌터는 오래 활동할 수 있으며 소모된 기력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다.
그리고 S급의 체력은 헌터의 육신을 금속처럼 강인하게 탈바꿈시킨다.
어지간한 날붙이로는 상처도 낼 수 없다. 오러를 덧씌워도 마찬가지다.
황금사과에 의한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황금사과를 섭취하셨습니다. 특수 스킬 ‘황금령’을 획득합니다.> <황금령(黃金聆)>
-품질 : 레전더리(A++)
-설명 : 황금사과를 섭취한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 황금사과의 기운을 발산하여 생명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능력
1. 자신 혹은 타인의 생명력을 강화시켜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2. 식물에게 황금령을 사용할 시, 성장속도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능력치를 S급까지 도달시켜주는 영약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황금사과가 으뜸으로 꼽히는 이유가 이 황금령 때문이다.
상처를 회복시키는 스킬은 그 종류가 무척 적다. 하물며 높은 등급의 회복 스킬은 그 종류가 더욱 적다.
‘이걸로 얻을 건 다 얻었네.’
권한울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건강혈(健康血)’이 황금사과에 반응합니다!> <‘건강혈(健康血)’이 황금사과의 기운을 흡수합니다! 권능이 더욱 강화됩니다!> 권한울의 몸속에 있던 건강혈의 힘이 더욱 커지는 게 느껴졌다. 이윽고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건강혈(健康血)’이 당신의 신체를 강화시킵니다!> <능력치 하나를 AAA급으로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AAA급?’
난생 처음 들어보는 등급이었다. 능력치는 무조건 A 다음에 S일 텐데?
‘그래도 올려준다는데 나쁠 건 없지.’
두 번째 고민은 길지 않았다.
<‘마력’이 AAA급에 도달합니다.> 고요하게 잠자고 있던 마력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권한울은 진땀을 흘리며 마력을 제어했다.
S급이 아니라서 방심했는데. AAA급에 도달한 마력은 그야말로 격이 달랐다.
훨씬 거칠고, 강인했다. 제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마치 고양이가 표범으로 변한 것 같았다.
“……후우.”
권한울은 긴 숨을 내쉬었다. 짧은 순간 동안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
“고생하셨습니다.”
주하연이 권한울에게 말했다.
“마력을 선택하신 것 같습니다.”
“아뇨.”
“네? 그럴 리가요. 방금 전의 파동은 분명…….”
권한울은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메이홍을 향해 명령했다.
“그 칼로 제 목을 베어보세요.”
메이홍은 망설임 없이 발도했다. 그러나 메이홍의 칼은 권한울의 목을 베지 못하고 막혔다.
“……베란다고 진짜 베네요.”
권한울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망설임이 없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괜찮으니까 시키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메이홍이 천천히 칼을 거둬들였다. 칼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엷은 자상만 남아 있었다.
오러를 담지 않았다고 하지만 백강검은 바위를 물살처럼 가르는 명검이다.
그런 검으로도 권한울의 목을 벨 수 없었다.
“……체력을 선택하셨군요.”
“예, 그렇습니다.”
권한울은 목을 매만졌다. 상처는 어느새 완전히 아물어 있었다. 이 역시 S급 체력 덕분이었다.
장비도 챙겼고 능력치고 상승시켰다. 그럼 이제 남은 일은 하나였다.
“하연 씨, 회장님이 맡긴 임무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
“내일 모레까지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셔야 합니다.”
그 말에 권한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딱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