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61화>
61화 다 알고 있다
“여기가 아이언펭의 금고입니다!”
길드마스터는 권한울을 아이언펭의 금고로 안내했다.
“사실 제가 먼저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이동하는 내내 길드마스터는 입을 쉬지 않았다.
권한울에게 아이언펭의 물건을 바치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를 계속 설명했다.
그런 길드마스터를 보며 권한울은 루인 아스파담을 떠올렸다.
카탈리나 블라가에게 집착하던 그의 모습과 길드마스터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 이곳입니다!”
길드마스터가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소리쳤다.
지하 5층 전체를 금고로 쓰고 있었으나 권한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흑천 일가와 메이 가문의 금고와 비교하면 새발의 피였기 때문이다.
“제가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길드마스터는 금고에 있는 각종 물건들에 대해서 설명했다.
아쉽게도 그렇게 인상 깊은 물건은 없었다.
대부분의 물건이 레전더리 급이나 그에 준하는 물건이었던 흑천의 금고와 달리 아이언펭의 금고는 최고가 유니크 등급이었기 때문이다.
“레전더리 등급은 없습니까?”
“있기는 합니다만…… 실력 있는 길드원들이 모두 대여를 해가서…….”
“그럼 빌려간 것까지 합쳐서 총 몇 개나 있는데요?”
아이언펭 길드마스터가 수줍게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권한울은 조금 당황했다.
“수준 차이가 이렇게 날 줄이야…….”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흑천 그룹은 다이아 등급의 던전을 쉽게 공략하며 S급 이상 되는 몬스터의 토벌도 맡는다.
그에 비해서 아이언펭은 플래티넘 등급의 던전조차 버거워 하는 길드였다.
그러니 둘이 보유하고 있는 재화의 격차도 클 수박에 없었다.
“명령만 내리시면 회수해서 권한울 님께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아요.”
권한울이 단칼에 거절했다.
세 개밖에 없는 레전더리 유물은 아이언펭의 기둥이나 다름없는 물건들일 게 뻔했다.
그걸 빼앗는다면 아이언펭의 위상이 추락할 것은 당연.
권한울은 아이언펭을 두고두고 이용하고 싶었다.
“과연 권한울 님! 자비로우십니다!”
길드마스터의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감격했다.
권한울은 팔뚝을 쓸었다. 배불뚝이 아저씨가 저렇게 나오니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한참을 돈 끝에 권한울은 괜찮아 보이는 물건 두 개를 발견했다.
<염력(念力)>
-품질 : 유니크(A)
-설명 : 조금 떨어진 곳의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다.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하면 범위와 무게가 증가한다.
<핑거 불릿(Finger Bullet)> -품질 : 유니크(S+)
-설명 : 손가락에서 마탄을 발사할 수 있다. 마력양에 따라서 마탄의 위력이 달라진다.
권한울이 발견한 것은 두 가지의 스킬이었다.
염력은 유니크 등급의 스킬들 중에서 가장 효율이 좋다고 알려진 스킬이었다.
생활은 물론 전투 중에서 쏠쏠하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유니크 등급 치고는 상당히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었다.
핑거 불릿의 경우에는 간단하게 쓸 수 있는 원거리 스킬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라 선택했다.
권한울은 두 스킬들을 아공간에 집어넣고 창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문득, 구석에 있는 물건 하나가 권한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직사각형 모양의 철괴였다. 권한울은 상자를 들고 확인해봤다.
<철제 상자>
-등급 : 없음
-설명 : 철로 된 상자.
“이건 뭐죠?”
권한울의 물음에 길드마스터가 상자를 살펴봤다.
“아, 그거군요.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거 같아서 감정을 받았는데. 별 쓸모없는 물건이라 그냥 방치해둔 겁니다.”
“이게 감정을 한 번 받은 거라고요?”
“원래는 물음표만 가득했거든요. 그래서 뭔가 대단한 건 줄 알았는데. 돈만 낭비했지 뭡니까.”
길드마스터가 혀를 찼다.
“흠.”
권한울은 상자를 다시 한 번 더 살폈다.
그때였다.
<‘천재혈(天才血)’이 사물의 구조를 파악합니다.> <마력을 주입. 1차 봉인을 해제합니다.> <봉인궤>
-등급 : ???
-설명 : 무언가를 담겨 있는 상자. 극악한 악인만이 상자를 열 수 있다.
-해제 조건 : 1,000명 이상 살해
권한울은 인상을 찌푸렸다.
천 명을 죽이라니. 이런 괴랄 한 조건은 처음 들어봤다.
그냥 놔둘까 싶었지만 여러모로 호기심이 생겼다. 권한울은 이 상자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런 뒤, 아이언펭 길드를 나갔다.
건물을 나오자 노을이 진 하늘이 보였다. 메이홍을 찾아가기 위해서 전화를 걸려던 찰나였다.
“볼일은 다 끝나셨어요?”
고개를 돌리자 벤치에 앉아 있는 메이홍이 보였다.
“언제부터 기다리고 계셨어요?”
“꽤 됐어요. 조금 돌아다니다가 귀찮아져서 바로 왔거든요.”
권한울은 메이홍을 보다 깨달았다.
“옷이 달라졌네요?”
서울에 올 때는 예의 그 검은색 츄리닝 차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검은색 줄무늬 치마에 흰 티를 입고 있었다.
머리 모양도 달랐다.
원래는 대충 비녀로 묶어놓았던 머리가 펌이 살짝 들어간 생머리로 변해 있었다.
“잘 어울려요?”
“잘 어울리기는 하는데…… 갑작스러워서요.”
“언제까지 대충 입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매일 마주칠 텐데.”
누구를? 잠깐 의문이 떠올랐으나 권한울은 굳이 묻지 않았다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돌아가서 회의나 하죠.”
“회의요? 무슨 회의요?”
“플래티넘 던전을 공략해야죠. 설마 목적을 잊은 건 아니겠죠?”
메이홍이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아이언펭이 정보를 모을 때까지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내일은 일단 조사만 하는 걸로 하죠.”
* * *
아이언펭의 길드마스터는 권한울이 명령한대로 흑천 일가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흑천이라는 이름은 유명하지만 흑천 일가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적었다. 그만큼 흑천 일가가 비밀을 엄수하는데 철저했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혈족들의 단합력이었다.
흑천의 혈족들은 결코 가문에 대한 것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았다. 그 폐쇄성이 정보 수집을 더욱 어렵게 했다.
“이대로 포기할 수야 없지!”
하지만 길드마스터는 이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권한울의 명령을 완수해야 한다는 고귀한 목표가 있었다.
권한울에 대한 충성심과 책임감이 길드마스터의 열정을 불태웠다.
아이언펭의 모든 인력과 인맥을 동원해서 흑천 일가에 대해서 조사한지 3일째.
-안녕하세요. 아이언펭의 길드마스터 되시는 분이 맞으십니까?
어느 날 갑자기 익명의 전화가 걸려왔다.
장난전화라고 무시할 수 없었다. 이 전화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아는 비밀 회선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흑천의 뒤를 캐고 다니시던데. 아주 위험한 짓을 하고 계시네요.
“뭐하는 놈이냐.”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길드마스터의 질문에 남자가 말했다.
-김철수.
처음에는 자신을 조롱하는 줄 알았다.
-흑천 그룹의 정보부 소속 요원입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들려온 말에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시간과 장소를 말씀드리죠. 혼자 나오세요. 그렇지 않으면 아이언펭이라는 길드는 즉시 사라질 겁니다.
길드마스터는 김철수의 협박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이 남자가 정말로 흑천의 정보부 요원이라면 그 정도 권력은 충분히 가지고 있을 테니까.
이튿날.
길드마스터는 김철수가 말한 장소로 향했다.
시내 외곽의 한적한 뒷골목.
임대라는 종이가 붙어 있는 상가 지하 건물에서 김철수는 기다리고 있었다.
“딱 맞춰서 오셨군요.”
먼지와 쓰레기들이 가득한 지하건물과 달리 김철수는 정장을 틀에 맞춘 것처럼 입고 있었다.
머리도 2:8로 나눠서 머리카락 한 올 튀어나오지 않도록 전부 빗어 넘겼다.
“날…… 왜 보자고 한 겁니까.”
“이거 재미있는 분이네요. 흑천의 뒤를 실컷 캐놓고 왜 불렀냐고요?”
길드마스터는 온몸의 근육이 빳빳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부하들에게 은밀하게 진행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결국 들키고 말았다.
하지만 이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다. 아이언펭 따위가 흑천의 이목을 속이고 움직일 수는 없으니까.
그렇기에 이미 마음의 준비도 끝내놓았다.
“모든 건 내 독단입니다.”
최소한 권한울에게 피해가 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는 길드마스터의 빛이요, 희망이요, 삶의 목적이요. 그야말로 모든 것…….
“거짓말 하지 마세요. 권한울 님의 지시잖습니까.”
길드마스터는 큰 충격을 받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떻게…….”
“지금 그걸 물을 때가 아닐 텐데요?”
그건 그랬다.
흑천의 뒤를 캐는 걸 들켰으니 아이언펭에게 남은 운명은 하나밖에 없었다.
멸망.
길드마스터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언펭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으니까. 물론 권한울 님께도 말입니다.”
길드마스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길드마스터의 발치에 USB 하나가 툭 떨어졌다.
“이게 뭡니까?”
“그쪽에서 원하던 정보입니다. 흑천 일가와 권천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죠.”
길드마스터는 얼이 빠졌다. 그러니까 이걸 지금 나한테 왜 주는 거지?
“그걸 권한울 님께 전달하세요.”
“이, 이걸 말입니까? 대체 왜……?”
길드마스터의 물음에 김철수의 얼굴이 변했다.
사람 좋은 청년처럼 보였던 얼굴이 뱀처럼 섬뜩하게 바뀌었다.
예리한 살기가 길드마스터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너무 자세하게 알려고 하면 그때는 진짜 죽습니다.”
“조, 조, 조심하겠습니다.”
“정보를 건네고 꼭 권한울 님의 반응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 뒤, 이곳으로 다시 오십시오. 알겠습니까?”
아이언펭의 길드마스터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만약 나와의 일을 권한울 님께 말하면…… 아이언펭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겁니다.”
길드마스터는 고개를 맹렬하게 끄덕였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도망쳤다.
길드마스터가 사라진 뒤, 김철수는 어디론가 정화를 걸었다.
“예, 팀장님. 저입니다. 일은 잘 끝났습니다.”
스마트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철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분의 지시인만큼 각별히 신경을 썼죠. 걱정 마시고 정보부 애들이나 잘 설득해 주십쇼. 제가 정보부를 사칭한 걸 알면 노발대발할 게 뻔하잖습니까.”
스마트폰으로 걱정스러운 물음이 들려왔다. 상사의 걱정에 김철수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언펭의 길드마스터가 권한울에게 발설하지 않겠냐고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김철수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아이언펭 따위가 흑천의 이름을 거역한다고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경고를 단단히 해놨으니 절대 말하지 못할 겁니다. 그 정도 기개도 없는 인간이에요.”
* * *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언펭 길드마스터의 보고를 들으며 권한울은 턱을 매만졌다.
자신의 행적이 이미 파악이 되었다니. 놀랐지만 천하의 흑천 그룹이니 그러려니 했다.
지금 신경 써야할 것은 정보를 주고 간 그 남자였다.
흑천 일가의 사람이 와서 정보를 주고 갔다고? 나한테 넘기라면서?
“이거 수상한 티가 너무 많이 나는데.”
어쩌면 흑천 그룹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다. 다른 곳에서 권한울에게 수작을 부렸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
“흠.”
권한울은 USB를 노트북에 꽂았다.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권천>
현(現) 흑천 일가의 가주 권선우의 차남.
흑천의 혈족들 중에서도 드물다는 플래티넘 등급의 던전에서 데뷔전을 치름.
기대를 받는 인재였으나 사형을 선고받고 가문을 탈주. 후에 일반인 여성 사이에서 아들을 낳음.
여기까지는 배철민에게 들었던 것과 똑같은 내용이었다.
권한울은 그 밑의 내용까지 읽어 내려갔다.
<사형 선고>
흑천 일가의 가주 권선우는 장남인 권혁과 차남인 권천을 놓고 차기 가주의 자질을 비교.
이 과정에서 권천은 권선우의 기준에 미달. 이에 권선우는 권혁을 차기 가주로 내점.
권선우는 조금의 화근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 권천을 없애기로 결정.
죄목을 뒤집어 씌워서 권천에게 사형을 선고. 권천은 사형선고에 불복. 청송 배씨 가문의 도움으로 도주.
충격적인 내용이었으나 권한울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게 진실이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누구지?”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이다.
남자의 정체가 흑천의 사람이 맞는지. 흑천이라 해도 정보부가 맞는지. 그리고 대체 누구의 지시로 움직이는지.
이럴 때는 좀 과격하지만 확실한 방법을 써야 했다.
“그 남자가 있는 곳이 어디죠?”
그렇게 물으며 권한울은 색욕의 반지를 약지손가락에 착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