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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59화 (59/221)

<혈통이 깡패임 59화>

59화 강철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구언은 캠프의 입구를 쳐다봤다.

소리는 하나였으나 오고 있는 사람은 두 명이었다.

권한울이 노호민을 어깨에 짊어지고 걸어오고 있었다.

“잡아왔습니다.”

권한울은 구언의 앞에 노호민을 내동댕이쳤다. 구언은 순간, 자신이 뭘 잘못 봤나 싶었다.

“어떻게 노호민을 잡았지?”

“뼈 빠지게 달려서 붙잡았죠.”

당연하지 않냐는 듯이 권한울이 말했다. 구언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권한울이 돌아온 건가? 어떻게 됐지?

“뭘 어떻게 돼요. 잡아왔죠.”

-그 건방진 말투를 보아하니 사실인 모양이구나.

회장이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구언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구언이 알기로 회장은 이렇게 자주 웃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 권한울, 저 놈이 내기에서 이긴 건가?

“아직 확인할 게 남아 있습니다?”

-확인할 것이라니?

“제가 내건 조건은 노호민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잡아온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말에 권한울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패배를 인정하기 싫으세요.”

“뭘 모르는군. 이런 놈들은 모두 내면에 독을 품고 있다. 제어하기 위해서는 완벽하게 굴복시켜야 한다. 싸워서 이기는 것으로는 부족해.”

권한울은 구언의 얼굴을 살피다 깨달았다.

구언은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서 치졸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진심으로 저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어나.”

권한울은 발끝으로 노호민을 툭툭 걷어찼다. 노호민은 화들짝 놀라서 깨어났다.

“여, 여긴 어디…… 뭐, 뭐야 터, 턱이…… 턱이 멀쩡하잖아.”

“혹시 몰라서 치료를 해놨지.”

노호민이 천천히 권한울을 쳐다봤다.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

“으, 으아아아아악!”

“시끄럽다.”

“으, 으읍! 으으읍!”

노호민은 황급히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눈동자만 뒤룩뒤룩 굴리며 권한울의 눈치를 살폈다.

“꿇어라.”

노호민은 황급히 자세를 고쳐 잡았다. 노예처럼 비굴한 모습이었다.

“됐죠?”

권한울은 구언을 돌아봤다. 구언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굴복시킨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복종시켰군. 어떻게 한 거지?”

괜히 구언이 노호민을 고른 게 아니다. 노호민은 보기 드문 독종이었다. 그렇기에 구언조차 특별히 공을 들여서 교육을 시키려 했던 죄인이다.

그런 노호민을 불과 몇 분 만에 복종시켰다. 구언조차 힘든 일이었다.

“몇 대 때리니까 말 잘 듣던데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보다 이제 그쪽이 약속을 지킬 차례인데요.”

권한울의 말에 구언이 멈칫했다. 길게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그래, 인정하도록 하마. 너는 메이홍을 맡을 자격이 있다. 나와 강철대는 더 이상 메이홍에게 신경 쓰지 않겠다.”

구언이 패배를 인정했다. 그 순간,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악!”

새된 소리와 함께 메이홍이 달려들었다. 권한울의 목을 꽉 끌어안으며 환호했다.

“역시 제 눈은 틀리지 않았어요! 권한울 님을 따르길 잘했다니까요!”

그렇기 기뻤는지 메이홍은 권한울을 마구 흔들어댔다. 목이 무척이나 아파왔다.

“이만 진정하세요.”

그걸 알아봤는지 주하연이 메이홍의 어깨를 붙잡고 떼어냈다. 그래도 메이홍의 흥분은 가시질 않았다.

“언니! 보셨죠?”

“네, 봤습니다.”

“보신 거 치고는 너무 차분하신데요.”

“권한울 님을 모시다보면 이 정도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죠.”

그 말에 메이홍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와 은근슬쩍 자랑하시네요. 신입은 서러워서 어떻게 살라는 거예요.”

메이홍이 섭섭하다는 듯이 말할 때였다. 구언이 메이홍을 향해 말했다.

“메이홍, 안심하지 마라. 강철대는 언제나 너를 주시하고 있으니.”

여전히 싸늘한 목소리였다.

“혹시라도 네가 가문에 해를 끼친다면 곧바로 널 잡아들이겠다.”

-구언, 잠시 나랑 이야기를 좀 할 수 있겠나?

구언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공손하게 전화기를 붙잡고 말했다.

“지금 말씀이십니까?”

-그래, 가급적이면 조용한 곳이 좋겠군. 혹시라도 이 대화를 누가 들을 수 있으니 말이야.

“이 자리에는 배씨 가문의 혈족이 있습니다. 함부로 자리를 비우는 것은…….”

-괜찮네. 가급적이면 하연이도 같이 왔으면 하는데.

주하연의 얼굴에 잠시 의문이 떠올랐다. 둘을 함께 부른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너희들은 죄인을 포박하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라.”

강철대원들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권한울 님, 잠깐 갔다 오겠습니다.”

주하연은 구언을 따라 자리를 떠났다.

“음…… 저희들은 그동안 뭐하죠?”

메이홍의 물음에 권한울은 어깨를 으쓱했다.

“앞으로 계획이나 논해 보죠. 조만간 임무를 하나 맡아야 하거든요.”

“어떤 임무인데요?”

“호위 임무인데…….”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남자 강철대원 한 명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권한울 님, 처음 뵙겠습니다.”

태도는 공손했다. 적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 그래도 당신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얻게 됐네요. 오늘 하루는 운이 좋으려나 봅니다.”

그럼에도 온몸의 감각이 꿈틀거렸다. 본능이 이 남자를 경계했다.

남자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구언 대장님이랑 흑천의 마녀가 바로 옆에 있는데. 제가 뭘 어쩌겠습니까. 그럴 생각도 없고요.”

그 말을 듣고도 권한울은 안심할 수 없었다.

이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 거대했기 때문이다.

평균보다 약간 작은 키. 지저분한 더벅머리. 그리고 볼품없이 삐쩍 마른 몸.

하지만 마치 태산을 압축시켜 놓은 것 같은 위압감이 느껴졌다.

어째서 지금까지 알아보지 못했던 것일까. 이 남자가 이토록 강하다는 것을.

“누구십니까.”

“이름은 아까 들으셨잖아요? 배철민이라고 합니다. 배철민.”

기억을 더듬어봤다.

구언의 명령에 따라서 노호민을 철제감옥에서 꺼냈던 남자가 바로 이 남자였다.

“당신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꼭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아마 당신도 저랑 똑같은 생각이었을 겁니다.”

“제가, 그쪽하고?”

권한울의 반응에 배철민이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모르는 척 하면 섭섭한데요. 회장에게 인정받았으니 우리 가문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건가요?”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설마 절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모릅니다.”

당황했는지 그렇게 시끄럽던 배철민이 입을 다물었다.

“말도 안 돼…… 나에 대해서 모른다면 청송 배씨 가문이랑 건강혈도 모른다는 뜻인데?”

“둘 더 처음 들어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금 뭐라고요? 건강혈이요?”

권한울의 말에 배철민이 조소를 지었다.

“하, 이럴 수가…… 흑천의 가주께서도 참 너무하시는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은 우리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

화가 나는지 배철민이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다른 동료가 배철민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 배철민. 딴 짓하지 마! 구언 대장이 내린 명령을 빨리…….”

“입 다물어.”

배철민이 한 마디를 내뱉으며 강철대원을 노려봤다. 강철대원은 곧바로 침묵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었다.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서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을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난 지금 바빠. 방해하지 마.”

몇 마디 말하지 않았음에도 지독한 살기가 주위를 짓눌렀다.

“아, 이거 실례했군요. 죄송합니다.”

배철민은 다시 권한울을 돌아봤다. 권한울은 굳은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우리 청송 배씨 가문은 오래 저부터 흑천 일가에 봉사해온 가문입니다. 건강혈을 보유한 덕분이었습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건강혈이 맞았다.

“하지만 몇 십 년 전, 가문 전체가 몰락해버리고 지금은 노예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다름이 아닌 흑천 일가의 손에 말이죠.”

“그게 저랑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권한울의 물음에 배철민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권한울 님, 당신은 아버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많이 알고 있는 건 아닙니다.”

아버지에 대해서 알려고 할 때마다 권선우와 주하연이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가문에서 도망치고, 외인인 어머니와 피를 섞어 저를 낳은 탓에 배반자라고 불린다고만 들었습니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완전한 진실이라고 할 수도 없군요. 당신의 아버지는 스스로 가문에서 도망친 게 아니라 쫓겨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쫓겨났다고요?”

“예, 가문에 남아 있었으면 사형을 당할 처지였으니까요.”

단단한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사형이라고요? 왜죠?”

“왜 그렇겠습니까. 흑천의 가주께서 그런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무슨 죄목으로요?”

“모릅니다.”

권한울이 인상을 썼다. 배철민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흑천의 가주께서는 죄목을 밝히지도 않고 당신의 아버지에게 사형을 선고했죠. 몇몇 사람들이 이유를 알려고 했지만 가주께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배철민이 웃음소리를 내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도 이유를 몰랐죠. 심지어 당신 아버지조차 몰랐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포박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게 됐습니다.”

“이유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아버지에게 사형을 명령했다고요?”

“하하핫, 권한울 님.”

배철민이 웃음을 터트렸다. 안쓰러운 어린아이를 보는 듯한 눈초리였다.

“흑천의 가주는 그런 인간입니다. 그 사실을 설마 모르셨던 겁니까?”

권한울은 할 말을 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던 청송 배씨 가문의 가주가 당신의 아버지를 구해서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그 대가로…… 여기서부터는 굳이 말씀드릴 필요가 없겠군요.”

배철민이 권한울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제 아시겠죠. 어째서 제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했는지.”

이해가 됐다.

권한울은 태생부터 이 남자와 청송 배씨 가문과 얽혀 있었다.

“내게 뭘 원하는 겁니까.”

“원하다뇨. 가당치도 않습니다. 단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배철민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청송 배씨 가문이 당신의 아버지를 위해서 노력했다는 사실을요.”

권한울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가문이 저지른 죄 때문에 강철대에 들어가게 된 겁니까.”

“흑천이 개 같은 곳이기는 하지만 옛날 일로 강철대에 집어넣지는 않습니다.”

“그럼 무슨 죄목으로 강철대에 있는 겁니까.”

“가주암살미수죄입니다.”

권한울은 놀란 얼굴로 배철민을 쳐다봤다. 배철민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너무 많이 떠들었군요.”

이미 강철대원들은 노호민의 팔다리를 묶고 철창에 집어넣은 지 오래였다.

배철민은 강철대원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를 권한울이 붙잡았다. 배철민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강해진 겁니까.”

몰락한 가문 출신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배철민은 강했다.

어지간한 흑천의 순혈들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별 거 없습니다. 그저 제 혈통에 집중한 것뿐이죠.”

“건강혈로 그 정도 수준에 올랐다고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건강혈이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전투에 어울리는 혈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건강혈은 극한의 상황에서 소유자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혈통입니다.”

알고 있다.

건강혈은 소유자가 고통을 맛보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강해진다.

하지만 그걸로 어떻게 저 정도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강해졌다는 겁니까?”

“물론 그 정도로는 안 되죠.”

배철민은 웃는 얼굴 그대로 말했다.

“매일 지옥 속에서 살면 됩니다.”

* * *

“회장님, 저놈이 떠들도록 내버려둬도 괜찮겠습니까?”

구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괜찮네. 어차피 영원히 숨길 수 없는 일이었어.

“하지만 배철민은 아직도 흑천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그런 놈이 진실을 말할 리가 없습니다.”

-진실이 뭐가 중요하겠나. 알아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네. 그렇지 않니 하연아?

주하연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구언은 아직도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저는 아무래도 걱정이 됩니다. 그 일을 이런 식으로 알리시다뇨. 좀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저 아이는 어린애가 아니야. 붙잡아놓고 차근차근 설명할 생각은 없네.

권선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구언, 자네는 뭔가를 착각하고 있군. 나는 저 아이에게 사실을 알리고자 이러는 게 아니야. 자기 아비에 대해서 알고 어떻게 행동할지 그것을 보고자 하는 게야.

권선우의 관심사는 예나 지금이나 하나뿐이다.

권한울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그 가치를 어떻게 해야 확인할 수 있을지.

권한울의 아버지에 대한 일도 그 도구일 뿐이었다.

“권한울 님께서는 부모님에 대해 그다지 궁금해 하지 않으십니다.”

그때, 주하연이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별 다른 수확은 없겠구나.

“하지만 이런 방식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설마 지금 날 질책하는 게냐?

“제가 어떻게 감히 그렇게 하겠습니까.”

주하연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다만, 걱정이 돼서 말씀을 드린 것뿐입니다.”

하지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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