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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51화 (51/221)

<혈통이 깡패임 51화>

51화 블라가의 선물 (1)

흑천 일가로 돌아온 뒤, 권한울은 한동안 앓아누웠다.

권능을 복수로 사용한 여파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큰 힘에는 대가가 따른다더니.’

오래전 봤던 히어로 영화에서 들었던 말이었는데. 설마 그 말을 자신이 겪게 될 줄이야.

‘대가를 몸으로 치르게 될 줄은 몰랐지만.’

며칠 뒤, 신체를 회복한 뒤에는 순광보(瞬光步)에 대해 연구했다.

원래 메모리페이지는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다행히 이 문제는 천재혈이 해결해줬다.

<‘천재혈(天才血)’이 메모리페이지를 해석합니다.> <스킬 ‘순광보(瞬光步)’를 습득합니다.> <단, 요구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으므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메모리페이지가 깨지며 순광보를 습득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습득했다고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 이걸 해석하고, 권한울 자신에게 적용해야 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정신이 아득해 지는 작업이 될 게 분명했다.

“권한울 님, 들어가겠습니다.”

노크 소리와 함께 주하연이 들어왔다. 품에 농구공 크기의 상자를 들고 있었다.

“권지석 님께서 보내신 백토(白土)입니다.”

흑천 일가로 귀환한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을 때, 권지석은 약속을 지켰다.

“이제 황금사과를 얻는 일만 남았네요.”

“쉽지 않으실 겁니다. 엄청나게 정성을 들여야 하거든요.”

“S급 능력치가 눈앞에 있는데. 그 정도 수고야 해야죠.”

권한울은 싱글벙글 웃으며 상자를 개봉했다. 이름 그대로 새하얗고 고운 흙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응?”

특이하게도 백토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잘 쓰기 바란다.

권지석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백토도 받았으니 이제 남은 문제는 딱 하나였다.

“박태식 명장님께서는 아직도 바쁘시데요?”

“아쉽게도 그러신 모양입니다.”

다음 전투를 위해서 아룡태를 수리하려고 했건만 제작자인 박태식 명장은 매번 바쁘다는 대답만 보내왔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유명한 명장인데다 가문 내외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던 것이다.

“가다려야지 별 수 있나요.”

그렇게 기다리기를 한 달 째, 권한울은 간신히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박태식의 공방에 도착했을 때.

“어째서 제 주문은 받을 수 없다는 겁니까.”

“너 같은 애송이한테 뭘 만들어줄 정도로 난 한가하지 않다.”

“박 명장, 말조심하십시오. 내 인내심도 한계가 있으니.”

“애송아. 실력만큼이나 협박하는 솜씨도 형편없구나.”

권한울은 순혈의 혈족과 실랑이를 벌이는 박태식을 보게 됐다.

* * *

“이유나 들어봅시다. 뭐가 불만입니까.”

“수준 미달이다.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말조심하라고 했을 텐데.”

순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아직까지는 예의를 차리고 있으나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말조심? 지랄 말고 이만 꺼져라. 더 상대할 가치도 없구나.”

문제는 박태식 병장이 말을 조심할 위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원래 장인들이 괴팍한 기질이 있다지만 박태식은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거듭되는 도발에 순혈의 얼굴이 서서히 험악하게 변했다.

권한울은 주하연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죠?”

“권마루 님이군요. 동남아시아 쪽에서 활동 중이신 분입니다.”

“대단한가요?”

“대단하시죠. 차기 흑천의 중요 전력이 될 거라는 평가를 받고 계시니까요. 이미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굉장히 유명하십니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저런 푸대접을 받고 있으니 화가 날 법도 했다.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박태식 명장이 타지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크흠.”

권한울이 낸 헛기침 소리에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돌렸다.

권한울을 보자 박태식 명장의 얼굴에 반가움이 번졌다.

“오, 왔냐? 빨리 들어가자. 넌 이만 꺼지고.”

박태식은 벌레를 쫓는 것처럼 손을 흔들었다. 권마루는 권한울을 가만히 노려봤다.

“네 녀석은 뭔데 끼어드는 거지?”

“오늘 이분과 예약이 잡혀 있어서요.”

“내가 먼저 왔다. 나중에 와라.”

권한울은 어떻게 해야 되도록 평화롭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때, 권마루와 함께 온 일행이 귓속말을 했다.

“형님, 저 남자가 바로 권한울 입니다.”

“……뭐? 저 놈이 그 배반자의 아들이란 말이냐?”

권마루의 눈동자가 커졌다. 반면 권한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배반자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또 한 바탕 소란이 벌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네놈…….”

아니나 다를까. 권마루의 얼굴이 서서히 험악하게 변했다.

권한울이 미리 대비했다. 만약 시비를 걸어온다면 피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권마루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그쪽과 약속이 잡혔다면 어쩔 수 없군.”

“……?”

순간, 권한울을 당황하고 말았다. 왜 이렇게 순순히 물러나는 거지?

“오늘은 이만 가겠다. 명장님께는 나중에 다시 뵙겠다고 전해 주게.”

권마루의 행동에 되레 수하들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형님, 하지만…….”

“뭐가 불만이냐?”

“형님께서도 사정이 급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먼저 도착한 사람은 형님……,”

“그만. 더 이상 시끄럽게 구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

권마루는 단칼에 수하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저 놈이라면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다.”

권한울은 망치에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존중이라니. 이 가문에 들어와서 난생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아, 그렇지.”

몇 걸음 걷다 말고 권마루는 권한울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혹시 유럽 지부의 혈족들을 만나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당신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모양이더군.”

그리고 권마루는 일행을 데리고 공방을 떠났다.

권한울은 새삼 신기하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

“인정을 받으신 거 같군요. 결국 흑천은 힘의 논리대로 움직이는 곳이니까요.”

확실히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는 상상도 못할 대우였다.

“뭐하냐. 안 들어오고.”

그때, 박태식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권한울은 냉큼 그를 따라서 들어갔다.

* * *

“그래서 왜 왔냐.”

“사람을 보내서 말씀을 드렸는데. 못 들으셨습니까?”

“바쁜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누가 오면 오는구나. 뭘 주문하면 주문하는구나. 그걸 기억할 시간도 부족한데.”

정말 박태식다운 대답이었다.

권한울은 아공간을 열어서 아룡태를 꺼냈다. 회색의 비늘이 아름답던 갑옷은 곳곳이 우그러지고 구멍이 뚫려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아룡태의 수리를 부탁…… 으악!”

순간, 머리 위에서 망치가 떨어졌다. 권한울은 황급히 뒤로 피했다.

“무, 무슨 짓이세요!”

“무슨 짓? 무슨 지이이이잇? 내 걸작을 이딴 식으로 망가트려 놓고 무슨 지이이이잇?”

박태식 명장은 거품을 물것처럼 고함을 내질렀다. 이미 이성을 잃었는지. 두 눈동자에 핏발이 서 있었다.

“당장 이리 와라! 네놈에게 내 자식의 고통을 직접 체험하게 해 줄 테니까!”

박태식이 망치를 든 채로 달려들었다. 그때, 좌우에서 제자 둘이 달려들어서 박태식을 붙잡았다.

“며, 명장님. 지, 진정하세요.”

“진정? 저 놈의 뚝배기를 깨면 알아서 진정할 테니 걱정 말거라!”

“아, 안 됩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박태식은 간신히 진정을 했다. 푹푹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병장기란 망가지기 마련이지. 주인을 대신해서 죽는 게 병장기의 숙명이 아니겠느냐.”

권한울은 박태식의 손을 쳐다봤다. 여전히 망치가 쥐어져 있었다.

“대체 누가 내 자식…… 아니, 아룡태를 이 모양으로 만든 거냐.”

“루인 아스파담이라고…….”

“내가 이름도 모르는 삼류 따위한테 내 자식을 죽게 내버려 뒀단 말이지!”

“벽력자의 제자인데요.”

“……아, 그러냐. 그럼 어쩔 수 없었지.”

박태식은 머리 위로 치켜들었던 망치를 도로 내려놓았다.

박태식이 이렇게 반응할 정도면 벽력자의 명성이 정말 대단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달라고?”

“수리해 주세요.”

“그건 안 돼.”

“예?”

박태식이 망치로 아룡태를 내려찍었다. 쩍, 소리를 내며 갑옷이 반으로 갈라졌다.

“내가 말했잖냐. 이미 죽었다고. 이제 이건 고쳐도 제 성능을 낼 수 없어.”

권한울은 씁쓸한 눈빛으로 아룡태를 바라봤다.

아룡태는 권한울에게도 뜻깊은 물건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얻게 된 레전더리 장비인데다 위험한 사투를 함께 해온 전우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아버지의 유품이기도 했다.

“새로 만들어야 할 거다.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기만 어차피 지금의 너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갑옷이니 말이야.”

“어울리지 않았다고요?”

“이 갑옷을 쓰기에는 너무 많이 강해져버렸다는 뜻이다.

아룡태를 만드는데 쓰인 재료는 이무기의 비늘이다.

이무기는 겨우 플래티넘 등급의 몬스터다. 다이아 등급의 몬스터도 쉽게 격살하는 권한울이 쓰기에는 손색이 있었다.

“이게 다 네 놈이 너무 빨리 성장해서 그래. 다른 혈족이었으면 넉넉히 몇 년을 썼을 거다.”

박태식은 투덜거렸다. 아룡태를 그렇게 아끼는 그로서는 굉장히 화가 나는 상황이었다.

“그럼 제작을 부탁드리는 걸로…….”

“재료는 준비해놓고 하는 말이냐?”

“…….”

권한울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박태식의 말대로 현재의 권한울에게는 갑옷을 제작한 재료가 없었다.

“재료라면 걱정 마세요. 제가 준비를 할 테니까요.”

그때, 주하연이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박태식 명장은 크게 놀랐다.

“……네가? 정말?”

“예.”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설마 제게 그 정도 능력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박태식은 멍한 얼굴로 말했다.

“능력이야 충분하지…… 하지만 그 흑천의 마녀가…… 그 짠돌이가 자기 돈을…… 그것도 남자한테…… 거참.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군…….”

권한울은 주하연을 붙잡았다.

“하연씨, 저 때문에 이러실 필요는…….”

“무슨 걱정이신지는 알겠습니다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정도 능력은 있으니까요.”

순간, 주하연의 몸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권한울을 세삼 주하연이 흑천 그룹 내에서도 높은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 빚은 최대한 빨리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주하연은 말없이 미소를 짓기만 했다.

“흥을 깨서 미안한데. 갑옷을 만들어줄 수는 없다.”

뜬금없는 말에 두 사람은 박태식 명장을 쳐다봤다.

“예?”

“내가 언제 만들어주겠다고 말한 적 있냐?”

없다. 그저 재료가 있냐고 물어봤을 뿐이지.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네 놈의 갑옷까지 만들 여유는 없다.”

박태식 명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권한울은 박태식 명장의 속내를 짐작하려 했다. 바쁘다고 말했지만 핑계일 가능성이 높았다.

‘설마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건가?’

협박이나 회유가 통할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일이란 알 수 없는 법이다.

권한울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박태식 명장의 제자들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명장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뭐가? 난 사실을 말했는데.”

“만들어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셔야죠!”

권한울과 주하연은 거의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 듣고 보니 그렇구나. 그래, 네 놈은 따로 갑옷을 만들 필요가 없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블라가 가문에서 네 놈 앞으로 보낸 물건이 있거든.”

블라가 가문?

권한울은 카탈리나 블라가를 떠올렸다. 뭔가를 보낸다면 그 여자밖에 없었다.

“전 처음 듣는데요.”

“그렇겠지. 외부에서 보낸 장비들은 우선 우리들이 검사를 하게 되어 있다. 혹시라도 저주가 걸려 있다거나 숨겨진 옵션 중에 안 좋은 게 있을 지도 모르거든.”

박태식이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침 잘 왔다. 검사는 끝났으니. 네가 직접 확인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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