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42화 (42/221)

<혈통이 깡패임 42화>

42화 약속 지켜 (3)

권속혈(眷屬血)

블라가 가문에서 보유하고 있는 혈통으로 누군가를 지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너무 강력한 능력이기에 블라가 가문의 혈족들은 모두가 기피대상이 정도다.

그 능력이 권한울에 의해서 발현되었다.

<‘권속혈(眷屬血)’이 생명체들을 끌어들입니다.> 권속혈의 권능이 담긴 마력이 사방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근처의 땅을 파헤치며 머드트롤 두 마리가 솟아났다.

두 마리의 머드트롤을 보며 권한울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혈통이 깡패라니까.”

* * *

‘카탈리나 블라가 님께서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거지?’

숲을 내달리는 내내 루인 아스파담은 지독한 의문에 시달리고 있었다.

카탈리나 블라가가 이곳에 온 이유는 딱 하나, 권한울을 유혹해서 지배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 온 것도 우연이 아니다. 카탈리나 블라가가 손을 써서 일부러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어떻게든 접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여기까지는 딱히 이상할 게 없다.

카탈리나 블라가는 인간수집가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마음에 드는 이를 유혹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문제는 그 태도였다.

‘이전과는 다르다. 뭔가 달라.’

오랫동안 그녀를 곁에서 모셨기에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카탈리나 블라가의 관심과 집착이 너무 과하다는 것을.

델로스 경매장에서 돌아온 이후, 카탈리나 블라가는 매일 권한울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단순히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권한울에 대한 모든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콕 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짝사랑에 빠진 소녀 같았지.’

자신이 비유를 들고도 루인 아스파담은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짝사랑이라고? 소녀라고?

카탈리나 블라가는 앳된 외모와 달리 오랜 세월을 살았다.

그 무수한 밤을 혼자서 보냈겠는가?

적을 때는 둘이서, 많을 때는 수십 명과 함께 했다.

‘대체 그딴 놈에게…… 왜?’

카탈리나 블라가의 유혹을 이겨내서?

이런 사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의 정신은 신묘한 구석이 많기에 카탈리나 블라가의 유혹을 이겨낸 사람이 종종 나타나고는 했다.

‘결국 그런 놈들도 카탈리나 님께 복종했지.’

권한울의 경우에는 젊은 나이에, 아직은 미숙한 실력을 가지고 카탈리나 블라가의 유혹을 이겨냈기 때문에 희귀하기는 하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점은 그게 아니다.

이미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탈리나 블라가는 권한울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젠장.’

카탈리나 블라가가 권한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루인 아스파담은 입이 바짝 마르고, 내장이 뒤집히는 고통을 맛봐야했다.

사랑하는 이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기라고? 나한테 상의 한 마디 없이?’

원래 카탈리나 블라가는 수집대상을 유혹할 때마다 아랫사람들을 많이 이용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루인 아스파담을 동원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루인 아스파담은 카탈리나 블라가에게 특별한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 카탈리나 블라가는 루인 아스파담에게 명령을 내렸다.

빠득.

저절로 이가 갈렸다. 이래서야 꼭 자신이 권한울보다 못한 것 같지 않은가.

이렇게 된 이상 루인 아스파담이 할 일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철저하게, 압도적인 격차로 승리한다.’

그래서 카탈리나 블라가한테 증명하는 것이다.

당신이 사랑한 남자가 어느 정도의 존재인지. 그리고 권한울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찾았다!”

루인 아스파담이 고함을 내지르며 땅으로 낙하했다. 주먹으로 지면을 내리찍었다.

거대한 충격이 지면을 박살냈다. 흙과 자갈 대신, 피와 살점이 튀었다.

-그어어어!

몸통이 완전히 으스러진 머드트롤이 단말마를 내뱉었다.

루인 아스파담은 머드트롤의 뿔을 쥐어뜯은 뒤, 다음 사냥감을 찾아 떠났다.

“쉽군. 쉬워.”

루인 아스파담의 속도는 S급.

굳이 스킬 따위를 쓰지 않아도 차를 한 잔 마실 시간이면 숲의 반을 둘러볼 수 있다.

이 속도면 머드트롤을 찾아내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이 일이 끝나면 카탈리나 님께 어떤 선물을 달라고 할까?”

루인 아스파담은 행복한 고민을 하며 또 다시 숲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바로 장애물에 봉착했다.

“……왜 안 보이지?”

첫 번째 머드트롤을 죽인 이후, 아무리 숲을 뒤져도 머드트롤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설마 못보고 지나쳤나?”

루인 아스파담은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찾을 수 없었다.

“……젠장.”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내기가 갑자기 버겁게 다가왔다.

만약 이대로 권한울이 더 많은 머드트롤을 잡는다면?

정말로 모든 총애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스킬을 사용하면 이깟 던전은 몇 번이고 뒤질 수 있는데……!”

하지만 루인 아스파담은 머리를 흔들며 그 생각을 지웠다.

내기에서 진다는 공포 이상으로 A급 능력치를 상대로 스킬을 사용할 수는 없다는 자존심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그깟 놈은 스킬을 안 써도 충분해!”

루인 아스파담이 다시 머드트롤을 찾기 시작했다.

* * *

권한울은 숲을 돌아다니며 머드트롤들을 하나둘 지배했다.

‘조사한 내용대로 골드 등급의 몬스터는 쉽게 지배할 수 있군.’

권속혈을 얻은 이후, 권한울은 권속혈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다행히 흑천 일가의 서고에는 블라가 가문과 권속혈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가장 낮은 잡혈조차 골드 등급의 몬스터를 지배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지.’

골드 등급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일류 헌터 세 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혈통이었다.

‘열혈은 플래티넘 등급까지, 순혈을 다이아 등급 몬스터까지 지배가 가능하다고 했던가?’

등급 외에 다른 차이점은 한 번에 지배가 가능한 몬스터의 숫자였다.

‘잡혈은 골드 등급의 몬스터를 세 마리까지. 열혈은 다섯 마리까지. 순혈은 일곱 마리까지.’

그리고 권한울이 지배에 성공한 머드트롤의 숫자는…….

‘너무 많은데.’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 머드트롤의 숫자는 족히 열 마리가 넘어갔다.

모두 권한울이 던전을 돌아다니며 지배에 성공한 머드트롤들의 숫자였다.

‘이걸 일일이 다 죽여야 하나.’

권한울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살이라도 해 주면 편할 텐데.’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생명체의 본능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은 생존본능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권능혈이라 해도 자살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

-게륵!

-게그그그!

별안간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머드트롤들이 나무에 머리를 박거나 손으로 본인의 목을 조이는 등 일제히 자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서 머드트롤들이 모두 시체로 변했다.

자욱하게 올라오는 피 냄새에 권한울은 혀를 내둘렀다.

“윽.”

그때, 강렬한 현기증이 권한울의 머리를 강타했다.

<정신력을 모두 소모했습니다. ‘권속혈(眷屬血)’의 활동이 정지됩니다.> 강한 현기증과 통증이 권한울의 머리를 후려쳤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종류의 통증이었다.

몇 번을 비틀거리던 권한울은 결국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끄윽.”

권한울은 머리를 부여잡고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참을 수 있을 정도로 통증이 약해지고 나서야 권한울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권속혈 이거…… 대단하긴 한데. 자주 쓰기는 힘들겠어.”

흑룡혈과 수라혈이 마력을 소모한다면 권능혈은 정신력을 소모하는 모양이었다.

정신력이 바닥나면서 찾아오는 고통은 상상이상이었다.

좀 약해졌다 뿐이지 두통은 여전했다. 여기에 속까지 미식거리기 시작했다.

권한울은 계획을 약간 수정하기로 했다.

“……일단 좀 쉬자.”

그리 말하며 권한울은 풀밭 위에 털썩 누웠다.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 * *

약속했던 4시간이 지났다.

어느덧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던전 게이트를 바라보며 권한울과 루인 아스파담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멍청한 놈.”

문득 권지석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주하연만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권한울 님에 대해 함부로 말씀하지 마세요.”

“욕을 안 하게 생겼어? 왜 하필 저런 내기를 받아들인 거야. 상대는 루인 아스파담이야! 이길 리가 없잖아!”

주하연은 인상을 쓴 채 권지석을 노려봤다.

따지고 보면 카탈리나 블라가에게 홀딱 넘어가서 제제하지 않은 권지석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던가?

주하연의 속마음을 눈치 챘는지. 권지석은 큼큼, 헛기침을 했다.

“아까는 내가 뭐에 홀려서…… 아니,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그 녀석은 이 내기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했어! 이러다 루인 아스파담에게 지면 무슨 망신이야! 하연이 너라도 말렸어야지!”

“저는 권한울님을 모실 뿐입니다. 조언을 드릴 수는 있지만 감히 그분의 행동을 제한할 수는 없습니다.”

주하연이 딱 잘라 말하자 권지석은 할 말이 궁해졌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말이 하나 있었다.

“모신다고? 너 정말 저 녀석의 밑에 있을 생각이냐?”

“권지석 님께서 신경 쓰실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봐. 저딴 놈한테 너는 아깝…….”

순간, 권지석이 멈칫했다.

“……뭐, 저놈도 실력이 제법이긴 한데. 그래도 네가 있을 곳은 아니야.”

주하연은 슬쩍 권지석을 쳐다봤다. 망설임으로 가득한 권지석의 얼굴이 보였다.

“메이 가문이랑 싸울 때보니까 제법이긴 했지만 그거야 진혈이면 그 정도는 해 줘야 하는 거지.”

권지석은 계속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주하연은 조금 놀라고 말았다. 권지석의 입에서 권한울을 인정하는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이 태도는 권한울을 걱정하는 것 같지 않은가.

“권지석 님도 역시 흑천의 혈족이시군요.”

“무슨 당연한 소리야?”

주하연은 자신이 본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흑천의 혈족들은 자존심이 무척 강하다. 누군가를 함부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강자에게 이끌릴 수밖에 없다.

권지석이 그렇게 싫어하는 권한울을 인정한 것처럼.

“내 말 듣고 있어?”

“아뇨, 듣고 있지 않았습니다.”

“뭐야?”

권지석이 다시 노발대발하려던 찰나였다.

던전 게이트가 물결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밖으로 나온다는 뜻이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윽고 루인 아스파담이 걸어 나왔다.

“루인이 먼저 나왔어요!”

카탈리나 블라가는 어린애처럼 기뻐했다. 기대했던 반응인지 루인 아스파담의 입 꼬리가 쓱 올라갔다.

루인 아스파담은 오직 카탈리나 블라가만을 바라보며 다가왔다.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내밀었다.

“하나, 둘, 셋…… 일곱 마리나 잡았네요? 고생했어요.”

“카탈리나 님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루인 아스파담의 말투에서 진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승리를 확신하는 게 분명했다.

“하연아. 일곱 개면…… 어떻게 되는 거야? 많은 거야 적은 거야?”

“동면 중인 머드트롤을 찾아내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경험이 많은 헌터들도 성공률이 무척 낮습니다.”

“그래서 많다는 거야 적다는 거야!”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하연의 말에 권지석의 표정이 굳었다.

그때, 다시 던전 게이트가 꿀렁이기 시작했다. 잠시 뒤, 게이트를 열며 권한울이 나왔다.

“어, 제가 조금 늦었네요.”

권지석과 주하연이 황급히 권한울에게 다가왔다.

“야! 뿔! 뿔 몇 개 가져왔어!”

그 말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권한울은 눈을 깜빡이다 말했다.

“안 가져왔는데요.”

권지석이 이마를 딱 때렸다. 주하연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다른 흑천의 사람들도 한숨을 내쉬었다.

“리틀드래곤. 아무리 부끄러워도 말은 똑바로 해야 하지 않겠나.”

루인 아스파담이 입을 열었다. 얼굴에 승자의 미소가 가득했다.

“너는 안 가져온 게 아니라 못 가져온 거다. 머드트롤을 한 마리도 잡지 못했으니 말이야.”

권한울의 얼굴에 짜증이 서렸다. 상대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아직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뭔 헛소리야.”

“……뭐라고?”

권한울이 권지석을 돌아봤다. 던전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 보내서 정리 좀 하고 오세요. 들어가서 동쪽으로 걷다보면 나올 거예요. 뿔은 따로 가져오고.”

“뭐, 뭐라고?”

“내가 하려고 했는데. 지금 너무 피곤해서 안 되겠네요.”

그리 말하며 권한울은 나무 그늘 밑에 털썩 주저앉았다.

너무 황당한 상황이라 어느 누구도 따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뭘 정리하라는 거야?”

투덜거리면서도 권지석은 던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권지석을 따라갔다.

권한울이 말한 방향으로 조금만 걷자 믿기 힘든 광경이 나타났다.

그렇게 찾아도 나오지 않던 머드트롤들의 사체가 바닥을 뒤덮고 있었다.

권지석도, 팀원들도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시간이 한참 동안 흐른 뒤에야 한 마디가 나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입을 연 장본인은 루인 아스파담이었다. 그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이게 전부…… 대체 어떻게…….”

누가 봐도 루인 아스파담이 잡아온 일곱 마리보다 배로 많았다.

우두머리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있었다면 권한울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으리라.

“……말도 안 돼.”

뒤따라온 루인 아스파담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도 겨우 일곱 마리인데…… 어떻게 이렇게 많이…… 이건 말도 안 돼…….”

루인 아스파담의 목소리가 마구 떨렸다.

그때였다.

“……하.”

녹인 초콜릿처럼 뜨거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소리가 난 쪽을 돌아봤다.

어느새 카탈리나 블라가가 들어와 있었다.

카탈리나 블리가는 손으로 입가를 움켜쥐었다. 일그러진 시선으로 머드트롤들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가지고 싶어.”

카탈리나 블라가의 두 눈동자에 탐욕이 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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