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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39화 (39/221)

<혈통이 깡패임 39화>

39화 혈통이 동행함 (4)

카탈리나 블라가의 눈빛이 연분홍색으로 물들자마자 권선우는 호통을 쳤다.

“카탈리나 블라가!”

권선우의 외침에 건물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인간의 목으로 낼 수 있는 성량이 아니었다.

“일전에 경고했을 텐데. 흑천의 혈족에게 함부로 권능을 사용했다가는 눈깔을 뽑아버리겠다고!”

카탈리나 블라가는 재빨리 눈동자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양손바닥을 내보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머, 죄송해요. 리틀드래곤께서 너무 매력적이라 저도 모르게 권능을 사용하고 말았네요.”

“그따위 말로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마라!”

“지금 당장 세뇌를 풀어드릴 테니 진정하세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생긋 웃으며 권한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권한울이 말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카탈리나 블라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상하네. 나는 말을 해도 된다고 명령을 내린 적이 없는…….”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고 손 좀 치우세요. 정신 사납습니다.”

그제야 카탈리나 블라가의 눈동자가 커졌다.

* * *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카탈리나 블라가를 보며 권한울은 생각했다.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데. 실제로는 1초도 지나지도 않았군.’

카탈리나 블라가가 권능을 사용한 순간, 권한울은 엉겁의 시간이 흐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달리 말하자면 카탈리나 블라가의 권능이 그 정도로 강력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권속혈이 아니었으면 완전히 지배당할 뻔했어.’

권한울은 고개를 들어 상태창과 메시지를 확인했다.

<‘진(眞) 권속혈(眷屬血)’을 습득합니다.> 권속혈(眷屬血)

-등급 : SS+

-순도 : 진(眞)

-심(心)과 신(身)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어느 혈통이 그렇듯 권속혈 역시 설명이 두루뭉술했다.

하지만 몇 가지는 지금 당장 알 수 있었다.

<‘진(眞) 권속혈(眷屬血)’이 하위 혈통의 권능을 차단합니다.> 상위 권속혈은 하위 권속혈의 지배에 면역이라는 것.

<지배력이 낮습니다. ‘순(順) 권속혈(眷屬血)’를 복종시킬 수 없습니다.> 지금의 권한울은 카탈리나 블라가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블라가 가문은 혈통 간의 위계질서가 다른 가문보다 훨씬 철저하다.’

그 이유는 권속혈의 지배 권능이 같은 혈족 간에는 더 강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권한울은 권속혈을 이제 막 습득한 직후였다.

그에 비해서 카탈리나 블라가는 진혈의 바로 밑인 순혈인데다 블라가 가문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원로였다.

아직은 권한울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동화율이 높을수록 권속혈에 의한 지배력도 강화됩니다.> <동화율이 높으면 권능이 해금됩니다.> 아직은 말이다.

권한울이 손에 넣은 권속혈은 진혈이다. 언젠가 카탈리나 블라가는 권한울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아니, 카탈리나 블라가뿐만이 아니지.’

블라가 가문 전체를 발아래에 둘 수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권한울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흑천 일가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대 가문인 블라가 가문을 발밑에 둘 수 있다면? 그들을 아군으로 삼을 수 있다면?

장담컨대 엄청난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풋.”

별안간 들려온 비웃음 소리에 권한울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놀랍게도 비웃음의 주인공은 권선우였다.

“그 카탈리나 블라가가 권능까지 사용해 놓고서 남자 하나를 어쩌지 못하다니. 오늘 진귀한 구경을 하는군.”

권선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카탈리나 블라가를 조롱했다.

“블라가 가문이 천박하게 놀기는 해도 사람을 가지고 노는 재주 하나는 일품이었거늘. 이제 그마저도 못하는 겐가?”

카탈리나 블라가는 말이 없었다.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제 볼일도 끝난 것 같은데. 이만 나가시게. 더 이상 자네랑 함께 있다가는 내 몸에 고약한 냄새가 배길 거 같아.”

그때였다.

“……흑천의 주인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카탈리나 블라가와 함께 들어왔던 두 사내 중 젊은 청년이 입을 열었다.

“카탈리나 님은 블라가 가문의 원로이십니다! 아무리 흑천의 회장님이라 해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년의 몸이 벽에 처박혔다.

권한울은 깜짝 놀라 권선우를 쳐다봤다.

‘의기상인(意氣傷人)!’

수십 명의 메이 혈족들은 한순가에 죽여 버린 그 기예였다.

“발정난 개새끼 주제에 어디서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게냐.”

박살이 난 벽을 노려보며 권선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잔해를 해치며 청년이 튀어나왔다. 입에서 피를 왈칵 토해냈다.

“내 의기(意氣)를 견뎌 내다니. 나름 쓸 만한 개새끼구나.”

견뎠다고 하기에 청년의 몸은 너무 망가져 있었다.

권선우가 한 번 더 의기를 날리면 그때야 말로 죽을 게 분명했다.

그때 권선우의 앞을 카탈리나 블라가가 가로막았다.

“아이참, 회장님. 진정하세요. 저희 쪽 아이가 저를 너무 좋아해서 재롱을 좀 과하게 부렸네요.”

“재롱? 역겨운 소리를 하고 있구나. 이래서 네 년이 데리고 다니는 개새끼들이 마음에 안 들어. 사시사철 발정이 나 있으니 눈앞에 있는 게 범인지. 용인지도 구분을 못하지 않느냐.”

“네! 제가 책임지고 다시 교육시켜 놓겠습니다!”

카탈리나 블라가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청년에게 다가갔다.

“좀 참지 그랬어.”

“죄, 죄송합니다.”

“그래도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잘 버텼어.”

카탈리나 블라가가 검지손톱으로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붉은 핏방울이 흘러내려 손가락 끝에 맺혔다.

핏방울을 보자마자 청년의 눈빛이 몽롱하게 변했다.

“자, 핥으렴.”

청년은 사막에서 이슬을 발견한 조난자처럼 카탈리나 블라가의 손가락을 핥았다.

피를 마신 청년의 몸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권한울은 그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저게 권속이로군.’

권속혈의 또 다른 능력은 누군가를 자신의 권속으로 변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권속이 되면 모든 능력이 증가하는 대신, 권속혈에 완전히 종속된다.

한마디로 영원한 노예가 되는 것이다.

“또 젊은 것을 노리개로 삼은 게냐.”

권선우가 역겹다는 듯이 말했다.

“저 놈은 누구기에 내 의기(意氣)를 견뎌 낸 것이냐.”

메이 가문의 혈족들도 견뎌 내지 못하고 즉사한 권선우의 의기를 저 청년은 무려 한 번을 버텨 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실력자임이 입증된 셈이다.

“벽력권(霹靂拳)의 제자랍니다.”

“오호, 계승자란 소리…….”

권선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진심으로 혐오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사이를 못 참고 또 남의 제자에게 손을 댄 건가.”

“정말 멋진 남자라서 저도 모르게 손을 대고 말았답니다.”

“적당히 하시게.”

“저도 그러고 싶기는 한데…….”

그리 말하며 카탈리나 블라가가 권한울을 돌아봤다.

“탐이 나는 사람이 또 생기고 말았네요.”

카탈리나 블라가의 눈동자가 권능을 쓰기 직전처럼 위험하게 변했다.

아무래도 권한울은 카탈리나 블라가의 위험한 면을 자극한 듯했다.

“눈깔을 뽑아버리기 전에 고개를 돌려라.”

“아이참, 무서운 말은 하지 마세요.”

“이번 기회에 다시 경고하마. 흑천의 혈족을 지배하려 들었다가는 네년은 물론 블라가 가문까지 명맥을 끊어 버리겠다.”

카탈리나 블라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다른 가문의 혈통은 안 건드린다니까요.”

“인간수집가로 유명한 네년이 그런 말을 하니 우습기 짝이 없구나.”

카탈리나 블라가가 말없이 웃었다. 무척 불길하게 보이는 미소였다.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갈게요. 그럼 다음에 봐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두 사내를 데리고 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리틀드래곤 씨.”

나가기 직전, 권한울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중에 식사라도 한번 같이하죠.”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카탈리나 블라가의 모습은 시선을 뺏길 만큼 아름다웠다.

하지만 눈동자의 이면으로 집착과 독점욕이 엿보였다.

어중간한 수준이 아니었다. 섬뜩함이 벌레가 되어 온몸을 물어뜯는 것 같았다.

“그거 좋죠.”

하지만 권한울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었다.

“불러 주신다면 억지로 시간을 내서라도 찾아뵙겠습니다.”

권한울의 대답이 의외였는지. 카탈리나 블라가의 표정이 변했다. 그녀는 쿡쿡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러니 더 탐이 나네요.”

그 말을 남긴 채, 카탈리나 블라가는 두 사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권선우가 권한울을 붙잡고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한 것이냐? 어떻게 권속혈의 지배를 떨쳐 낸 게야?”

음.

당연히 권속혈 덕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회장님, 혹시 잊으신 건 아니죠.”

“뭘 말이냐.”

“제가 진혈이라는 걸요.”

권선우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맞아. 너는 진혈이었지. 그래, 진(眞) 흑룡혈을 저딴 천한 년이 어쩔 수 있을 리가 없지.”

급조한 변명이었으나 의외로 잘 먹혀들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해야 권속혈의 동화율을 높일 수 있지?’

블라가 가문을 발밑에 두기 위해서는 동화율을 높여서 권속혈의 지배력을 강화해야 했다.

권한울의 경험상, 혈통마다 동화율을 높이는 방법이 달랐다.

흑룡혈은 전투를 통해서만 동화율이 높일 수 있었으며, 수라혈은 아수라왕을 꺼내야 했다.

‘아마 권속혈은 사람을 지배할 때 동화율이 올라가겠지.’

권한울이 마땅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이제 네 실력도 증명이 됐으니 내가 약속을 지킬 차례구나.”

갑자기 권선우가 그런 말을 했다.

“일전에 약속했지. 메이 가문에서 좋은 결과를 내면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 주겠다고.”

권선우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어디 한번 네 마음대로 팀을 꾸려 봐라.”

* * *

“재미있네요.”

본인의 룸으로 돌아온 카탈리나 블라가가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떻게 흑천의 혈통이, 그것도 저렇게 젊은 청년이 제 권능을 견뎌 낼 수 있었을까요?”

그녀와 동행했던 두 사내는 말없이 서 있기만 했다.

지금 카탈리나 블라가가 요구하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경청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아…….”

카탈리나 블라가가 달뜬 한숨을 내뱉었다. 이토록 몸이 달아오른 적이 얼마만이던가.

“꼭 손에 넣고 싶네요.”

카탈리나 블라가의 눈동자에 탐욕이 담겼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욕망이 아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려 드는 어둡고, 질척한 감정이 번들거렸다.

“가서 그 남자에 대해서 알아오세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두 사내를 향해 말했다.

“나이, 출생, 경력, 음식 취향, 모든 것을 알아내야 해요.”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그만한 조사가 필요한 법이다.

“특히 앞으로 흑천 일가 내에서 어떤 일을 맡게 되는지 철저하게 조사해 오세요.”

그리고 보물을 훔치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많은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카탈리나 님.”

그때, 사내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방금 전, 권선우에게 혼쭐이 났던 청년이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너무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카탈리나 님의 권능을 견뎌 낸 건 그놈의 능력이 아닙니다.”

청년은 계속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중제일검을 죽인 인재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있겠습니까. 분명히 정신지배를 막는 유물로 중무장시켜 놨을 겁니다.”

청년의 어조는 어딘가 다급해 보였다.

“그러니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는 게…….”

“루인, 이리 오세요.”

별안간 카탈리나 블라가가 양팔을 벌렸다. 청년은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팔 아파요.”

청년은 머뭇거리며 카탈리나 블라가의 품에 안겼다. 카탈리나 블라가는 청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루인이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요. 저한테는 루인도 소중한 사람인 걸요.”

청년은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카탈리나 블라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 바람에 미처 보지 못했다.

카탈리나 블라가가 지루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을.

이제 슬슬 질리네.

짧게 중얼거리며 카탈리나 블라가는 나른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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