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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38화 (38/221)

<혈통이 깡패임 38화>

38화 혈통이 동행함 (3)

유리창에 3000만 달러가 떠올랐다. 단숨에 치솟은 가격에 진행자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3, 3000만 달러! 3000만 달러 나왔습니다! 더 이상 없으십니까!”

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누군가 다시 금액을 띄웠다.

“3500만 달러 나왔습니다! 자자, 더 이상 없을…….”

권선우가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누른 뒤, 다시 말했다.

“5000만 달러.”

진행자의 입이 더더욱 벌어졌다. 진행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5000만 달러! 5000만 달러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몇 분이 지나도 더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진행자는 주먹을 쳐올리며 외쳤다.

“5000만 달러에 낙찰됐습니다!”

권한울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몇 십만 원 때문에 벌벌 떨었던 그로서는 5000만 달러, 한화로 600억 원 가까이 되는 돈을 망설임 없이 내지르는 행동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자, 저 성황수는 네 것이다.”

권한울은 깜짝 놀라 권선우를 돌아봤다.

“저걸 저한테 주신다고요?”

“시험 통과 선물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권한울은 그저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있었다. 권한울이 그러고 있는 사이 권선우가 주하연에게 말했다.

“하연아, 이만 화면을 꺼라.”

주하연이 자리에 일어나 다시 스위치를 조작했다.

그러자 경매장 풍경이 사라지고 다시 휑한 벽이 나타났다.

더 이상 경매에 관심이 없다는 태도였다. 그 모습에 권한울을 더더욱 혼란을 느꼈다.

‘오로지 날 시험하려는 목적으로만 경매장에 온 건가?’

회장이라는 인간들은 모두 저렇게 심보가 꼬여 있는 건지 진지하게 궁금했다.

그때, 주하연이 권한울의 옆에 앉으며 속삭였다.

“축하드려요. 회장님께 인정을 받으셨네요.”

“갑자기 왜 저러시는 겁니까?”

“권한울 님께서 메이 가문에서 벌인 활약을 생각하면 이상할 게 없죠.”

기뻐해야할 일인데. 어쩐지 마음이 복잡했다.

권선우가 자신에게 이렇게 살갑게 대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별안간 벨 소리가 들렸다. 주하연은 인터폰을 집어 들었다.

“무슨 일이시죠?”

-실례하겠습니다. 손님 중 한 분께서 성황수를 꼭 얻고 싶다면서 교환의사를 밝히셨습니다.

주하연이 권선우를 쳐다봤다. 권선우는 인터폰을 넘겨달라는 듯 손짓을 했다.

“성황수의 교환을 원한다고?”

-예, 그렇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본인의 신분을 먼저 밝히는 게 예의일 텐데.”

각각의 경매장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그리고 델로스 경매장에는 경매가 종료된 이후, 개인적인 거래 의사를 보낼 수 있는 대신 신분을 밝혀야 했다.

그래야 상대방이 거래에 응할지 말지 결정하기 쉬울 테니 말이다.

-카탈리나 블라가 님의 부탁입니다.

블라가?

그 말에 권한울의 눈동자가 커졌다.

모를 수가 없었다. 서양의 로열블러드 중 한 곳이자 흑천조차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 가문이었으니까.

사실 블라가 가문은 무력적인 부분에서는 흑천 일가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럼에도 흑천에서 블라가 가문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유는 블라가 가문이 가지고 있는 막대한 연줄 때문이었다.

……라고 알고 있었으나.

“그 천한 탕녀가 성황수를 원한다고?”

권선우의 태도로 보건데 블라가 가문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꺼지라고 전해…….”

문득, 권선우의 표정이 달라졌다. 턱을 매만지며 무언가를 고민하다 말했다.

“일단 얼굴이나 보자고 해라.”

-알겠습니다. 곧 카탈리나 블라가 님께서 올라가실 겁니다.

권선우는 인터폰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블라가 가문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느냐?”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럼 블라가 가문의 권능이 뭔지도 잘 알고 있겠군.”

권선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블라가 가문의 혈족들은 그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

순혈의 숫자는 열 명을 채 넘지 않으며 열혈과 잡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블라가 가문의 세력은 다른 가문 못지않게 크다.

그 이유는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권속혈(眷屬血), 바로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권능 때문이다.

블라가 가문은 이를 이용해 인간을 지배하고, 조종하며 본인들의 세력을 불려나갔다.

카탈리나 블라가는 그런 블라가 가문의 몇 안 되는 순혈이며 블라가 가문을 이끄는 다섯 원로 중 한 명이다.

지배의 권능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카탈리나 블라가를 보거든 한시도 마음을 놓지 마라. 그랬다가는 바로 지배당할 게다.”

“예.”

“혹시라도 그년에게 홀렸다가는 내 손수 네놈의 머리를 부숴 주마.”

“농담이시죠?”

“농담으로 들렸느냐?”

권선우의 눈동자에 살기가 맺혔다. 권한울은 마른 침을 삼켰다.

“흑천의 혈족이 그딴 더러운 놈들에게 홀리는 꼴은 내 죽어도 용납할 수 없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제안을 거절하지 뭐 하러 올라오라고 그랬냐, 라는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아니지, 혹시 이것도 시험인 거 아니야?’

권선우의 성향을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만약 그게 진짜라면 진짜 고약한 장난질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카탈리나 블라가 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딸칵, 문이 열렸다. 그 틈을 통해 달짝지근한 향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향기를 해치며 한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 두 명의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여인을 본 순간, 권한울은 발끝부터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같이 들어온 남자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황금빛으로 물들인 머리카락과 몸에 피부처럼 달라붙는 붉은 원피스.

“하아…….”

여인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느껴지는 갈증, 마치 애가 타는 듯한.

“대체 누가 성황수를 5000만 달러나 주고 샀나 했는데…….”

카탈리나 블라가.

“하필이면 흑천의 회장님이실 줄은 몰랐네요.”

블라가 가문의 순혈이 혀를 차며 말했다.

* * *

“다른 사람이었으면 성황수를 쉽게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카탈리나 블라가가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었다. 별거 아닌 행동 하나하나가 사람의 애간장을 녹였다.

“자네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군. 여전히 천박한 짓을 일삼고 있어.”

“천하다뇨. 혈족의 능력을 이용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권선우가 조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바로 그게 천박한 짓이라는 걸세.”

“아쉽네요. 그런 꽉 막힌 사고방식만 고치면 회장님도 정말 멋진 남자인데.”

카탈리나 블라가가 입술을 핥았다. 붉고 촉촉한 혀가 살짝 보였다 사라졌다.

“어떠세요. 오늘이야 말로 저랑 긴 밤을 보내시는 게.”

“거절하지. 나는 누더기를 깔고 자는 취미가 없어서 말이야.”

그 말에 뒤에 서 있던 남자 중 한 명이 발끈했다. 권한울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카탈리나 블라가가 청년에게 시선을 보냈다. 청년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꾹 참았다.

“회장님, 성황수를 제게 넘겨주실 수는 없나요?”

“어디다 쓸 생각이지?”

“남의 비밀을 함부로 물으시면 안 되죠.”

카탈리나가 눈웃음을 쳤다. 아름답다 못해 가슴이 두근거리는 광경이었으나 권선우는 인상만 찡그렸을 뿐이다.

“내게 부탁해도 소용없네. 성황수의 주인은 따로 있으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성황수의 주인은 저 아이일세. 그러니 저 아이와 직접 협상하도록 하게.”

권선우가 권한울을 가리켰다. 그 바람에 권한울은 카탈리나 블라가와 눈이 마주쳤다.

“그 말씀 후회 안 하시겠어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권한울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 * *

“그런데 이 분은 누구신가요? 처음 뵙는 분인데요.”

“자네도 알고 있을 텐데. 지금쯤 전 세계에 소문이 쫙 퍼졌다고 들었네만.”

“소문이라고요?”

카탈리나 블라가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설마 매중제일검을 죽였다는 흑천의 리틀드래곤인가요?”

리틀드래곤이라는 말에 권한울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유치한 별명은 대체 뭡니까.”

“앗, 말했다. 목소리가 굉장히 듣기 좋네요.”

“설명이나 빨리 해 주시죠.”

카탈리나 블라가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매중제일검을 죽인 수퍼 루키에게 지어진 별명이에요. 귀엽지 않나요?”

“유치한데요.”

“어머, 마음에 안 드시나 봐. 그런데 어쩌죠. 그쪽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마다 모두 리틀드래곤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정말 싫다.

표정 컨트롤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리틀드래곤이라니.

그런 권한울을 보며 카탈리나 블라가는 다시 한 번 더 고개를 주억거렸다.

“반응이 좀 이상하신 거 같은데.”

“뭐라고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고개를 저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귀여우면서도 요사한 여자였다.

“안 그래도 흑천의 리틀드래곤이 어떤 분일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뵙게 되네요. 정말 반가워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손을 내밀었다. 권한울은 자신도 모르게 그 손을 잡았다.

비단처럼 매끄러운 피부결이 손에 감겼다. 권한울은 몸이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권한울은 위험을 느끼고 손을 빼려고 했다. 그보다 먼저 카탈리나 블라가가 권한울을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권한울은 카탈리나 블라가와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럼 리틀드래곤 씨, 성황수를 제게 주시면 안 될까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권한울의 팔뚝을 끌어안았다. 여체의 부드러움이 팔뚝 전체에 느껴졌다.

“이렇게 부탁을 드릴게요.”

콧속으로 달콤한 향기가 들어왔다. 머릿속이 핑 돌았다.

“예? 꼭 부탁드려요.”

비음이 섞인 애교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꼭 뇌를 농락당하는 것 같았다.

그런 혼란 속에서 권한울이 대답했다.

“싫습니다.”

아주 단호하게.

* * *

카탈리나 블라가를 처음 만났을 때, 권한울은 두려움을 느꼈다.

강적을 대할 때와는 다른 공포심이었다. 남성으로서, 성적으로서 느껴지는 두려움이었다.

‘정말 무서울 정도군.’

남자라면 아니, 사람이라면 카탈리나 블라가의 매력을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당장 권한울부터가 그녀에게 쩔쩔 매고 있으니 말이다.

자칫 잘못했으면 권한울 역시 카탈리나 블라가에게 빠져서 성황수를 넘겨줄 뻔했다.

<‘천재혈(天才血)’이 ‘정신공격 – 유혹’에 저항하는 중입니다.> 천재혈이 아니었다면.

<‘천재혈(天才血)’이 정신오염에 저항합니다.> <‘천재혈(天才血)’이 정신을 맑게 유지합니다.> 권한울은 카탈리나 블라가에게서 팔뚝을 떼어놓았다.

천재혈이 저항하고 있는 순간에도 아쉬움이 앞서는 것을 보면 카탈리나 블라가의 능력은 섬뜩할 정도로 강력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아쉬움을 마저 덜어 내기 위해 권한울은 팔뚝을 탁탁 털었다.

“성황수는 제게도 꼭 필요한 물건이라 넘겨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데도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촉촉한 눈빛으로 권한울을 올려다봤다.

<‘천재혈(天才血)’이 ‘정신공격 – 유혹’을 완전히 떨쳐 냅니다.> “예.”

권한울의 단호한 대답에 카탈리나 블라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리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재미있네.”

카탈리나 블라가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딘가 순진하게 보였던 눈동자가 뱀 꼬리처럼 휘어졌다.

아니, 눈빛뿐만이 아니었다. 분위기기 자체가 반전됐다.

“아무리 흑천의 혈족이라지만 저렇게 젊은 나이에 날 거부한단 말이지?”

위험하다.

본능이 경고했다. 이대로 있으면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빨리 자리를 벗어나라고.

“블라가 가문의 혈족이기 이전에 여자로서 무척 자존심이 상하는데.”

카탈리나 블라가의 눈동자가 뱀처럼 길게 찢어졌다. 그 순간, 권한울은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이 움켜쥐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때였다.

<‘???’가 ‘권속혈(眷屬血’의 권능에 반응합니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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