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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29화 (29/221)

<혈통이 깡패임 29화>

29화 혈통이 눈치챔 (1)

권명우는 권한울을 대기석 뒤편으로 데려갔다.

“이쯤이면 되겠지.”

권명우가 오러를 발산해서 기막을 펼쳤다. 그러자 주변의 소리가 완전히 차단이 됐다.

오러에 통달한 이만 사용할 수 있다는 최상위 기공의 등장에 권한울은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요 녀석. 하필 그런 부탁을 하다니.”

“위험한 부탁이었나요?”

“당연히 위험한 부탁이지! 메이 가문의 자존심을 깔아뭉개고, 집 구경을 시켜 달라니! 놈들이 퍽이나 좋아하겠구나!”

권명우가 큰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질책하는 듯한 어조가 아니었다. 오히려 대견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야 흑천이지. 아주 훌륭한 부탁이었다. 메이 가문의 본토를 직접 눈으로 볼 기회는 흔치 않아.”

사실 진짜 이유는 진(眞) 수라혈을 이용해서 비밀을 찾기 위함이지만.

“자, 받아라.”

권명우가 목걸이 하나를 내밀었다. 엄지손톱 크기의 돌멩이가 달려 있는 목걸이였다.

신기하게도 돌멩이는 무지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칠색피독주라는 물건이다.”

권한울의 눈동자가 커졌다.

레전더리 유물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물건으로 세상의 거의 모든 독을 해독할 수 있다는 목걸이였다.

만독불침지체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레전더리 중에서는 최상위에 있는 유물이었다.

“이 귀한 걸 어째서 저한테…….”

“혹시 몰라서 주는 거다. 어차피 나는 더 이상 필요가 없거든.”

그 말은 권명우가 만독불침지체에 버금가는 경지를 이루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권한울은 새삼 이 노인이 흑천제일권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뭐, 별일은 없을 거다. 널 건드렸다가는 흑천 일가와 전쟁이 벌어질 텐데.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지.”

권명우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하지만 주의해서 나쁠 건 없지. 메이 가문은 도통 믿을 수 없는 놈들이야. 언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권명우가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 흑천 일가는 메이 가문과 무수히 충돌해 왔다. 나는 그 모든 전투를 지휘했지. 그래서 메이 가문의 성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단다.”

권한울은 권명우의 말에 집중했다.

“메이 가문은 우리 흑천을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그래서 가끔씩 극단적인 짓을 벌이기도 하지.”

“극단적인 짓이라면…….”

“독과 저주를 사용하거나 화평을 제의하고 야습 따위를 벌이거나 하는 걸 말하는 거다.”

권명우가 징글징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마다 철저하게 짓밟아 줬지만 놈들은 겁을 먹기는커녕 더욱 기어오르더구나. 그만큼 우리 흑천에게 뒤쳐지는 게 싫은 모양이지.”

가끔 사람은 실리보다 자존심이 앞설 때가 있다.

메이 가문이 바로 그랬다.

“게다가 너는 오늘부터 메이 가문이 가장 경계하고, 주의해야 할 무인이 되었단다.”

가문의 대표자로 뽑힐 정도면 언젠가 가문을 지탱할 인재라는 뜻이다.

권한울은 그런 대표자를 한 명은 압도했고, 다른 한 명은 검술로 꺾었다.

그 재능과 잠재력을 메이 가문이 두려워하지 않을 리가 없다.

“후환을 막는 가장 쉬운 방법이 뭔지 아느냐?”

“일찌감치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겠죠.”

“잘 알고 있구나. 그러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

권한울은 의문이 들었다.

“그럼 어째서 저를 말리지 않으신 겁니까?”

그런 위험부담이 있음에도 권명우는 권한울을 만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부추기기까지 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런 부분은 아직 흑천의 혈족으로서의 자각이 부족하구나.”

권명우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얘야, 너는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느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그래도 중국을 지배하는 대가문인 메이 가문을 구더기에 비유하다니.

“우리는 흑천이다. 세간은 우리를 동아시아 최강이라 부르지만 나는 다르다. 흑천은 세계최강이다. 그렇기에 초대 가주께서는 우리를 흑룡가(黑龍家)가 아니라 흑천가(黑天家)라고 칭하셨지.”

지독히 오만한 말이었다.

“최강이 어째서 최강이겠느냐. 언제나 정상에 서 있기 때문이다. 설사 비바람을 맞고, 태풍이 지나가도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에 최강인 것이다.”

권한울은 단어 하나하나 귀담아 들었다.

이게 흑천의 어른으로서 권명우가 내리는 가르침이라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원하는 게 있으면 취한다. 거슬리는 놈이 있으면 박살낸다. 그게 최강이요, 그게 흑천이다. 그런데 메이 가문의 술수가 무서워서 피해? 그런 놈이 있으면 내가 먼저 요절을 내버릴 거다!”

권한울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권명우가 흡족하다는 듯이 말했다.

“잘 알아들은 모양이구나.”

권한울과 권명우는 다시 결투장으로 돌아왔다. 그 둘을 메이 가주가 반갑게 맞이했다.

“오셨군! 그럼 메이룽. 우리의 어린 손님을 부디 잘 모시고 오게.”

메이룽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권한울을 향해 말했다.

“날 따라와라.”

아무래도 안내역은 메이룽으로 결정된 모양이었다.

* * *

그렇게 매중제일검과 함께 하는 메이 가문 투어가 시작됐다.

투어가 막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권한울은 크게 기대했다.

흑천 일가에 도착했을 때, 권한울은 진(眞) 흑룡혈 덕분에 흑천 가문의 시조 권현문이 남긴 안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메이 가문에서도 똑같이 시조가 남긴 안배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곳이 우리 가문의 혈족들이 수련하는 장소다.”

수련장 안으로 들어가도.

“저 유물은 심신을 차분하게 만들고, 명상의 효율을 높여주지.”

메이 가문이 자랑하는 유물을 찾아가도.

“이곳에는 메이 가문의 모든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곳이다.”

메이 가문에서 가장 오래된 장소를 찾아도 시조가 남긴 유산을 얻을 수는 없었다.

‘시조라고 해서 모두 안배를 마련해 두는 건 아닌 모양이야.’

실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진(眞) 수라혈이라고 특별한 권능이 생기는 건 아니었지.’

흑룡혈은 하위 혈통들은 용투기, 진혈은 용마기라는 전혀 다른 권능을 사용했다.

그러나 수라혈은 순혈, 진혈과 상관없이 그냥 수라기만 사용했다.

‘조금 더 강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특별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

권한울의 마음속에 점차 실망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좋은 경험이기도 했다. 진혈이라고 무조건 하위 혈통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안 따라오고 뭘 하는 건가?”

저 멀리서 메이룽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권한울은 걸음을 재촉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군.”

별안간 메이룽이 입을 열었다.

“정식으로 초대받은 손님이라지만 가문을 둘러보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하다니. 대담한 것인가. 아니면 생각이 부족한 것인가?”

메이룽의 분위기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찬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이곳은 우리 메이 가문의 중심이야. 무슨 짓을 해도 흑천은 자네를 지켜 줄 수 없어.”

메이룽이 허리춤의 검 자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만약 여기서 내가 자네를 죽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날 따라왔는가.”

“제게 손을 대면 흑천 일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조직의 구성원이 살해를 당했다는 것은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하물며 흑천 일가처럼 자존심이 강한 곳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메이룽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이 세상에는 별의별 유물이 다 있다네. 그중에는 사람을 잠결에 죽이는 독도 있고, 개인의 오성을 막아 버리는 저주도 존재하지.”

그저 겁주기 위한 소리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유물의 무서운 점은 종류가 다양한데다 그 힘에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유물을 사용하면 흑천 일가 몰래 자네를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지.”

협박.

메이룽은 살의도, 적의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엄청난 위압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만만치 않군.’

역시 매중제일검.

단순히 존재감만으로 권한울을 가볍게 압도하고 있었다. 까마득하게 높은 경지에 오른 이만이 가질 수 있는 존재감이었다.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 매중제일검씩이나 되는 인물이라면 마땅히 이래야지.’

과거에는 강자를 피해 다니기에 바빴다. 자칫 잘못해서 휩쓸렸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드니까.

하지만 지금은, 흑룡혈을 얻은 지금은 강자를 보면 즐겁기만 했다.

언젠가 도전할 그날이 너무나도 기다려졌다.

“왜 말이 없는가? 설마 내 말이 농담처럼 들리는가?”

메이룽의 목소리에 불쾌함이 깃들었다.

“그럴 리가요. 매중제일검께서 하시는 말을 어찌 농담처럼 여길 수 있겠습니까.”

“중화제일검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재미있게도 방금 전에 비슷한 문답을 나눴습니다.”

이번엔 메이룽의 얼굴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이미 나눴다고?”

“예,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권명우의 말을 토시 하나 빠트리지 않고 읊었다.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구냐고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내 메이룽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래서 흑천 놈들이 싫은 거야. 큰놈이나 작은 놈이나 건방지게 짝이 없어.”

“험한 말을 먼저 꺼낸 쪽은 매중제일검이십니다.”

“중화제일이라고…… 됐다. 마저 돌아보기나 하자.”

메이룽이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건물 하나를 지나칠 때였다.

문득, 권한울이 메이룽에게 물었다.

“저 건물은 왜 돌아보지 않는 겁니까?”

“저건 메이 가문의 시조님을 모시는 사당일세. 외인이 보기에는 지루할 것 같아서 그냥 지나친 것이라네.”

“한번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볼 게 없을 터인데.”

“여기까지 왔는데. 메이 가문의 시조께 인사라도 드려야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말은 핑계에 불과했다.

실제로는 저 사당이 너무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한번 들어가 보게.”

메이룽이 사당의 문을 열었다. 권한울은 안쪽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의 말대로 특별한 것은 없었다.

내부는 소박했고, 시조의 위패만 모셔져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특이한 것이라면…….

‘저게 뭐지?’

위패의 바로 뒤.

그곳에 여섯 개의 팔을 가진 괴인 그림이 걸려 있었다.

“초대 시조님일세.”

괴인의 그림을 보며 메이룽이 말했다.

“초대 시조께서는 던전에서 수라의 왕을 발견하고, 그 힘을 얻으셨다고 하네.”

과연 그림에 그려진 괴인은 수라의 왕에 걸맞은 외형을 하고 있었다.

“시조께서는 돌아가실 때, 누구든지 수라의 왕을 취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무도 가져가지 못했던 모양이군요.”

“얻기는커녕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지도 못했다네.”

메이룽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아, 말이 너무 많았군. 그럼 천천히 둘러보게.”

그리 말하며 메이룽이 문을 닫았다.

그 덕분에 권한울은 그림을 마음 놓고 들여다볼 수 있었다.

“흠…….”

권한울이 그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닿는 순간, 그림에 그려진 괴인이 눈을 떴다.

<아수라왕(阿修羅王)이 진(眞) 수라혈을 인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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