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28화>
28화 혈통이 승리함 (3)
검은 파도가 메이펑을 집어삼키기 직전, 누군가 그 앞을 가로 막았다.
청아한 검명과 함께 용마기가 반으로 갈라졌다. 그 사이로 메이룽의 모습이 나타났다.
“흑천의 어린 용께서는 정도가 심하시군. 하마터면 우리 대표가 죽을 뻔했어.”
메이룽이 무서운 얼굴로 권한울을 노려봤다.
권한울이 방출한 용마기의 양은 무시무시했다. 만약 메이룽이 나서지 않았다면 메이펑은 온몸이 찢겨 죽었을 터.
메이룽의 핀잔에 권한울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매중제일검께서 지켜 주실 거라 믿고 있었죠.”
“중화제일검일세.”
메이룽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 말에 권한울을 허리를 살짝 숙였다.
“중화제일검의 일검을 견식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 한마디에 관중들은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메이룽이 나섰다는 것 이상으로 충격적인 사실. 그것은 그가 완전히 칼을 빼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메이룽 님이 칼을 뽑아들었어…….”
“그 공격이 그 정도였단 말이야?”
“서, 설마…… 그, 그냥 보여 주시려고…….”
메이룽이 그저 끼어들기만 했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투가 위험해지면 웃어른이 나서는 법이니까.
하지만 메이룽, 매중제일검이 칼을 빼들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아니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때, 누군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메이 가문이…… 졌어…… 흑천의 혈족한테…… 검으로 졌다고…….”
그 한마디가 가져온 파장은 무지막지했다. 메이 가문의 관중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저마다 소리쳤다.
“이, 이럴 수는 없어! 아무리 흑천 일가라고 해도! 무기술로 어떻게 메이 가문을……!”
“그, 그냥 힘으로 밀어붙인 거야! 방금 봤잖아! 그, 그래서 그런 거야!”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웅성거림은 작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그때였다.
메이룽이 손가락으로 칼날을 쓸었다. 그 순간, 귀를 찢는 듯한 검명이 결투장을 울렸다.
“조용!”
메이룽은 칼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권한울을 향해 물었다.
“하나만 물어보겠네. 흑천의 혈족이 어떻게 그런 검술을 익혔지?”
모두의 관심이 권한울에게 집중됐다. 메이 가문의 혈족뿐만 아니라 흑천의 혈족들도 관심을 기울였다.
“짬짬이 연습했습니다.”
“……짬짬이 연습한 걸로 그 정도 실력을 쌓았다고?”
“예, 그런데요.”
권한울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했다.
뭐…… 엄밀히 따지면 완전 거짓말도 아니니까.
그 말에 메이룽의 미간이 조금 더 좁아졌다.
“거짓말 하지 말게.”
“진짜입니다.”
사실 권한울로서는 억지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혈통을 복수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절대로 들통이 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 파장을 예측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본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굳이 들어낼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천재를 가장하기로 한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흑천에는 홍복이요. 우리 메이 가문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군.”
메이룽이 몸을 돌렸다. 한손으로 메이펑을 일으켜 세우며 소리쳤다.
“두 번째 결투는 메이 가문의 패배다!”
관중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아 보였으나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메이홍!”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대표자를 불렀다.
“이길 수 있겠느냐!”
메이홍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행동에 메이룽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메이룽은 메이펑을 질질 끌며 대기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메이홍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 순간, 메이홍의 눈동자가 커졌다. 증오스러운 얼굴로 메이룽을 쳐다봤다.
“이 쓰레기 같은…….”
“화낼 여유가 있으면 어떻게 이길지를 생각해라.”
메이홍은 얼마간 메이룽을 노려본 뒤, 결투장으로 올라섰다.
“메이홍이라 합니다.”
청아한 목소리로 말한 뒤, 메이홍은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이건…….’
메이차우처럼 대단한 기세도, 메이펑처럼 섬뜩한 예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들판 위에 앉아 있는 바위처럼 고요할 뿐.
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앞선 두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어째서 이런 실력자가 중견을 맡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뭔가 사정이 있는 모양인데.’
권한울이 상관할 바는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드디어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장검을 옆으로 집어던졌다. 그 모습에 메이홍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쪽은 대충 상대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수라혈 덕분에 모든 무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지만 모든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주먹을 써야 했다.
“양쪽 모두 준비!”
메이룽이 큰 소리로 말했다.
“시작하라!”
결투 선언이 떨어지자마자 메이홍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단숨에 자신의 팔뚝을 그었다.
검신이 단숨에 새빨갛게 물든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표면에 묘한 것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눈동자.
도마뱀처럼 쭉 찢어진 눈동자가 검신의 중앙에 나타났다.
메이펑이 꺼낸 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경지였다. 그게 고양이라면 저것은 호랑이나 다름이 없었다.
권한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가슴 깊은 곳에서 고양감이 차올랐다.
<동화율 18% -> 19%> 피가 들끓기 시작했다. 권한울의 용마기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그때였다.
“멈춰라!”
별안간 메이 가주가 소리쳤다. 권한울과 메이홍은 그대로 정지했다.
“우리 메이 가문은 이 결투를 포기하겠소.”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 유일하게 권한울만이 불쾌함을 느꼈다.
이제 막 재미있어 지려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가주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메이룽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메이 가주는 담담히 말했다.
“보지 않았는가. 저 흑천의 어린 용이 얼마나 강한지. 이미 결과는 뻔해.”
“하지만!”
메이 가주는 메이룽의 외침을 무시했다. 그리고는 권명우를 향해 말했다.
“이번 단체전은 흑천 일가의 승리일세. 약속대로 던전의 소유권은 포기하도록 하지.”
“좋소! 우리 흑천은 메이 가문의 항복을 받아들이리라! 으하하핫!”
권명우의 웃음소리가 결투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메이룽을 비롯한 메이 가문의 혈족들은 그런 권명우를 아니꼽게 바라봤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승리를 만끽하는 것은 승자의 당연한 권리였으니까.
“이놈아!”
권명우가 대기석을 박차고 달려왔다. 권한울을 끌어안고 높이 들어올렸다.
“혼자서 세 명을 다 쓰러트리다니! 정말 대단했다!”
“작은 할아버님. 숨 막힙니다.”
“좀 참아라, 이놈아! 으하하하핫!”
다른 흑천의 혈족들도 결투장 위로 올라왔다. 그중에 한 명, 권지석은 불만으로 가득한 얼굴로 소리쳤다.
“이 자식이 혼자 다 처먹고…… 젠장! 내가 오늘을 얼마나 벼르고 있었는지 알아?”
“꼬우면 선봉을 하셨어야죠.”
“뭐야!”
권지석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머리를 긁적였다.
“젠장, 이 빌어먹을 놈. 그래도 대단하기는 했다.”
권한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게 정말 권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인가 말이다.
“물론 내가 하면 더 잘했겠지만! 너도 잘했으니 하는 말이야 인마! 다음에는 절대 이런 일 없을 거다.”
권지석이 연신 구시렁거렸다. 그때, 권후돈이 권한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 아, 안녕.”
권후돈은 어김없이 말을 더듬고 있었다.
“어, 엄청. 엄청났어. 진짜 대단…… 그러니까…… 그…… 표현은 못하겠는데…….”
권후돈은 팔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생긴 건 대단한 미남인데. 하는 행동이 이러니 괴리감이 컸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도 되, 될까.”
초등학생들끼리 친구하자는 이야기나 다를 바가 없었다.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할까. 권한울이 당황해하고 있을 때였다.
“후돈이, 너!”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큼성큼 다가온 권미가 권후돈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내가 이러지 말랬지!”
“어, 엄마…….”
“빨리 네 자리로 돌아기 못해!”
권후돈은 시무룩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권미는 살벌한 눈동자로 권한울을 노려봤다.
“……오늘 조금 잘나갔다고 해서 잘난 척하지 마라.”
권미는 여전히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누가 맡았어도 너랑 똑같은 결과를 냈을 테니까.”
“예, 명심하도록 하죠.”
권한울이 대충 대답하자 권미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다들 기쁨은 충분히 나누었소?”
그때, 메이 가주가 물었다. 권명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이제 흑천 일가에 돌아가서 이 일을 알리고 축제를 벌여야지! 으하하핫!”
메이 가주의 표정을 살짝 구겨졌다.
흑천 일가에게는 기뻐 마지않을 일이었으나 메이 가문의 입장에서는 대대손손 놀림거리가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오늘의 주인공을 이대로 떠나보내자니 마음이 편치 않군.”
그때, 메이 가주가 뜬금없는 말을 했다.
“메이 가문의 심부에 들어와서, 메이 가문의 혈족을 검술로 꺾었다…… 직접 본 나조차 믿기지 않는 엄청난 일일세.”
메이 가주는 권한울을 향해 물었다.
“흑천의 어린용이여.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시게. 내 무엇이든 들어주도록 하지.”
권한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정말이고말고.”
생각지도 못한 행운에 권한울은 잠시 고민했다. 이 기회를 어떻게 사용해야 가장 도움이 될지 말이다.
‘무엇이든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정말 그렇지는 않을 거다.’
가문의 비전, 보물 같은 것을 요구하는 건 불가능하리라. 이건 어디까지나 메이 가주의 호의였으니까.
‘그렇다면 요구할 건 정해져 있지.’
권한울은 메이 가주를 향해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 메이 가문을 돌아보고 견문을 넓히고 싶습니다.”
* * *
권한울의 물음에 메이 가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견문이라고?”
달리 말하자면 관광을 해 보고 싶다는 것이다.
대가문 중 하나인 메이 가문을 돌아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모처럼 메이 가주가 청을 들어주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가문을 둘러보고 싶다니?
그때였다.
“으하하핫! 요요 당돌한 뇨석!”
별안간 권명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모두들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권명우를 쳐다봤다.
“언젠가 메이 가문과 적이 될 테니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겠다는 뜻이 아니더냐!”
권명우의 말에 모두의 표정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딱 한 명, 권한울만 빼고.
‘그런 건 생각은 안 했는데.’
권한울로서는 그저 진(眞) 수라혈을 통해서 뭔가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가문을 돌아보겠다고 말한 것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권명우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과연 흑천의 혈족…… 이런 사소한 기회조차 놓치지 않다니.”
“저 재능…… 저 과감함…… 오늘만큼 흑천이 두려웠던 적이 없습니다.”
메이 가문의 혈족들이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메이 가주 역시 살짝 안색을 굳혔다.
“……섬뜩하군. 지금도 이런데 나중에는 어떤 거물이 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아.”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들어맞는 경우가 또 있을까 싶었다.
“이미 약속을 했으니 부탁을 안 들어줄 수는 없지. 하지만 내가 제안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저 어린용뿐이요. 나머지 흑천 분들은 기다리셔야 할 거요.”
“당연한 말을 하는군. 승자의 권리는 오로지 승자가 취해야지. 하하하핫.”
권명우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아, 그렇지. 잠깐 일로 와 봐라.”
갑자기 권명우가 권한울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