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26화>
26화 혈통이 승리함 (1)
권한울은 잠시 굳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 여러 번 겪어봤던 일이기에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우선 상태창을 열어서 혈통을 확인해 봤다.
<특수항목 – 혈통>
1. 흑룡혈(黑龍血)
-등급 : SSS+
-순도 : 진(眞)
-용의 힘을 얻는다.
2. 건강혈(健康血)
-등급 : S+
-순도 : 진(眞)
-건강해진다.
3. 천재혈(天才血)
-등급 : S+
-순도 : 진(眞)
-똑똑해진다.
4. 수라혈(修羅血)
-등급 : SS+
-순도 : 진(眞)
-신체에 수라가 깃든다.
5. ???
-등급 : ???
-순도 : ???
‘……또 증식을 했어.’
혈통 ???는 이번에도 또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또 혈통이 발현할 가능성이 높았다.
‘대체 내 몸은 어떻게 된 거지?’
혈통은 하나만 가질 수 있기에 혈통이다. 두 개 이상을 보유하면 신체가 붕괴되어 죽는다.
만에 하나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두 개를 보유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권한울처럼 다섯 개나 되는 혈통을 보유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흑천의 혈족이셨다. 그럼 어머니 쪽에 뭔가가 있는 건가?’
반대로 아버지 쪽에 뭔가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양쪽 다일 수도 있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부모님에 대해서 알아보자.’
권한울은 그렇게 생각하며 우선 자신의 혈통에 대한 고민을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은 메이 가문과의 단체전을 준비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메이 가문에도 진혈은 없는 거 아니야?’
앞서 얻은 건강혈, 천재혈과 달리 수라혈은 메이 가문이라는 대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혈통이다.
그런 가문의 진혈을 손에 넣었다?
어쩌면 권한울이 진(眞) 수라혈을 개방한 것은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일일지도 몰랐다.
-이제 곧 착륙합니다.
권한울의 상념은 곧이어 들려온 기장의 안내 방송에 멈췄다.
* * *
중국 항저우의 어느 도시.
그곳에 대형 비행기 한 대가 활주를 따라 내려앉았다.
문이 열리자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이 쏜살 같이 튀어나왔다.
“으하하핫! 이곳도 오랜만이구나!”
여객기에서 가장 먼저 내린 사람은 권명우였다.
권명우는 이곳이 메이 가문 한가운데라는 것도 잊은 채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그 뒤를 이어서 흑천의 혈족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 중에는 권한울도 섞여 있었다.
권한울은 주변을 둘러봤다.
흑천 일가가 그랬던 것처럼 메이 가문도 항저우를 통째로 자신들의 거점으로 삼고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한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흑천 일가와 달리 메이 가문은 온통 현대식 건물로 가득했다.
“먼 길을 오느라 수고하셨소.”
저 멀리서 중국어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저 앞에 중국의 전통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권명우가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흑천의 혈족들도 그를 따라갔다.
붉은 전통복을 입은 메이 가문과 검은 정장을 입은 흑천의 혈족들이 서로를 마주 보는 형상이 됐다.
“메이 가(家)는 흑천가를 진심으로 환영하오!”
가운데에 있던 장년의 남성이 큰 소리로 외쳤다.
분명 중국어로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권한울은 중년 남성의 말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받은 통역 스킬 덕분이었다.
귀와 눈이 번쩍
-품질 : 유니크(A)
-설명
다른 문화권의 언어와 문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단, 미묘한 어휘까지는 알 수 없다.
아공간 스킬까지는 아니지만 통역 스킬 역시 상당히 구하기 힘든 물건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건 다른 곳에서나 통하는 이야기다. 흑천 그룹에서 통역 스킬쯤은 필요하면 바로바로 내주는 물건에 불과했다.
“메이티엔! 메이 가(家)의 가주가 직접 맞이해 줄 줄이야! 이거 영광이군!”
“귀한 손님이 오시는데. 당연히 주인이 맞이해야 하지 않겠소?”
의외로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고 봤지만 이내 그런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됐다.
“설마 흑천제일권이 같이 올 줄은 몰랐소. 메이 가문의 한복판에 들어오기가 그렇게 무서우셨나 보구려? 천하의 흑천이 이렇게 겁쟁이처럼 굴다니!”
메이 가문의 가주 메이티엔의 도발에 권명우는 비웃음을 지으며 화답했다.
“메이 가문 따위를 두려워했으면 오지도 않았겠지. 이 몸이 여기 온 이유는 순전히 심심해서요.”
서로 폭언이 오고 갔음에도 둘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때, 메이 가주의 뒤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여전히 오만이 지나치시구려.”
그 남자의 얼굴에 권명우의 눈빛이 달라졌다.
“메이룽. 매중제일검도 계셨군.”
“몇 번을 말하지 않았소. 중화제일검이라고.”
“흑천을 놔두고 감히 중화를 논하는 건 차치하더라도. 날 한 번도 못 꺾은 주제에 중화제일검이라?”
매중제일검 메이룽.
권한울도 여러 번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남자였다.
흑천 일가에 권명호가 있다면 메이 가문에는 메이룽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흑천과 메이 가문이 그러하듯 둘 사이의 격차는 무척 컸다.
수십 년 동안 메이룽은 권명우를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으니까.
‘저들이 메이 가문.’
권한울은 메이 가문의 혈족들을 천천히 관찰했다. 말은 많이 들어봤으나 이렇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만지면 하얀 모래가 묻어나올 것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족 전체가 하얗고 보송보송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 몇몇이 강한 적의를 품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놈들이 메이 가문의 대표자들인 모양이군.’
마침 남자 둘, 여자 한 명으로 인원수가 딱 맞았다. 다들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자 쪽만 빼고.’
메이 가문의 대표자들 중에서 유독 여자 대표자는 분위기가 어딘가 이질적이었다.
강렬한 적의를 품고 있었으나 그 대상이 흑천이 아닌 것 같았다.
무엇보다 어딘가 처연하고 굉장히 지쳐 보였다.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권한울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메이 가주가 권명우를 향해 물었다.
“오늘 오실 손님들을 위해서 내 특별히 연회를 준비했다오. 와서 드시겠소?”
“오, 그거 좋지. 안 그래도 배가 고프던 참…….”
“잠깐만요!”
권미가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이번 단체전의 책임자는 권명우 숙부님이 아니라 접니다! 그런 건 저한테 물어보셔야 합니다!”
메이 가주는 정말이냐는 얼굴로 권명우를 쳐다봤다. 권명우는 권미의 말이 맞는다는 듯 뒷짐을 지고 물러났다.
“이거 미안하게 됐구려. 그럼 어떻게 하시겠소?”
“호의에는 감사드립니다만 연회를 즐기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요.”
권한울은 권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상을 했다.
권미는 메이 가문이 어떤 농간을 부렸을지 모르는 음식에 입을 댈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소?”
“친목을 도모하러 온 자리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단체전의 시작을 제안합니다.”
도착한지 몇 분이 채 되지 않아서 단체전이라니.
메이 가문의 혈족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메이 가주는 다시 물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정말 쉬지 않아도 되겠소?”
“괜찮습니다. 휴식이라면 비행기 안에서 충분히 취했으니까요.”
메이 가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좋소. 그럼 바로 시작해 봅시다.”
* * *
메이 가문은 흑천의 혈족들을 자신들의 결투장으로 안내했다.
최신 공법으로 지어진 건물은 결투장보다는 경기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결투장을 중심으로 수만 명이 앉을 수 있도록 좌석이 둥글게 배치되어 있던 것이다.
좌석은 제법 많이 차 있었다. 흑천은 몇 사람 오지 않았으니 전부 메이 가문의 사람들이었다.
“오늘 따라 이놈들이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이런 거창한 무대까지 마련하고.”
권명우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다 대표자 세 명을 향해 소리쳤다.
“이놈들아! 반드시 이겨야 한다!”
“예!”
권한울 혼자만 큰 소리로 대답했다. 권후돈이야 말을 더듬어서 그렇다 쳐도 권지석의 목소리가 작은 건 뭔가 이상했다.
“으, 으윽 속 쓰려.”
권지석은 창백한 얼굴로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 모습에 권한울은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혹시 신경성 위염이 있는 겁니까?”
“이, 있으면 뭐 어, 어쩔 건데!”
권지석이 화를 냈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박력은 없었다.
‘어째서 작은 할아버님께서 긴장하지만 않으면 대장감이라고 말했는지 알겠군.’
어쩌면 형제들 중에서 가장 늦게 팀의 결성을 허락 받은 이유가 이것 때문일지도 몰랐다.
중요한 순간마다 위염 때문에 활약을 못했다면 그럴 만도 했다.
“그럼 양쪽 모두 선봉을 올려보냅시다.”
“알겠습니다.”
메이 가주의 말에 권미는 무서운 얼굴로 권한울을 노려봤다.
마치 패배하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얼굴이었다.
권한울은 아공간을 열어 손을 집어넣고 글러브를 꺼냈다.
이번 단체전의 공정성을 위해서 흑천 일가가 메이 가문은 서로 정해진 재료로만 장비를 제작해서 지급하기로 했다.
이 장갑과 각반이 바로 그 물건이었다.
“너 그거 설마 아공간이냐?”
옆에 있던 권지석이 놀라서 소리쳤다. 권한울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네, 맞는데요.”
“파는 사람이 없어서 나도 못 구했던 건데…… 대체 어디서 구한 거야?”
“회장님께서 주셨습니다.”
그 말에 권지석의 얼굴이 멍해졌다.
“할아버님께서 아공간 스킬을 그냥 주셨다고? 그 매정한 분이? 마, 말도 안 돼.”
권한울은 권지석을 내버려 둔 채 결투장으로 올라갔다.
반대쪽에서 메이 가문의 선봉을 맡은 메이차우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손목을 풀기 위한 동작인지 메이차우는 허공에 칼을 몇 번이고 회전시켰다.
그럴 때마다 바닥에 얇은 선이 그려졌다. 오러의 예기가 섬뜩할 정도로 강했다.
“이봐 검은 지렁이!”
별안간 메이차우가 고함을 질렀다.
검은 지렁이?
그게 무슨 소린가 싶던 권한울은 이내 흑천의 혈족을 비하하는 말임을 깨달았다.
“충고하나 하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아.”
메이차우는 무척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랑 나는 혈통이 달라. 내 아버지는 중화제일검이거든.”
그 말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아무리 혈통이 잘나봤자 순혈일 텐데 그걸 내세우는 꼴이라니.
그것도 하필이면 진혈인 자신에게 말이다.
“개소리하다 얻어맞고 울지 말고 닥쳐.”
권한울에게는 지금 메이차우의 헛소리를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전투에 대한 고양감이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자신의 힘을 폭발시키고, 자랑하고 싶었다.
“이 놈이…….”
메이차우의 눈매가 험악해졌다. 그때, 메이 가주가 소리쳤다.
“양쪽 다 좌우 끝까지 이동하거라.”
결투장은 타원형이었다.
권한울과 메이차우는 결투장의 양쪽으로 움직였다.
결투장 끝에 도착하자 메이차우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였다.
권한울은 손에 글러브를 착용했다. 그러자 글러브에 묘한 기운이 담기는 게 느껴졌다.
<수라기가 글러브에 깃듭니다.>
<글러브의 내구력, 공격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권격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설마 글러브에도 수라혈이 적용되다니. 잠시 놀랐지만 바로 적응하려 했다.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피니, 안 그래도 가볍던 글러브가 이제는 아예 착용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시작!”
메이 가주가 소리쳤다. 그 즉시 메이차우는 자세를 잡으며 기합을 질렀다.
“하아아압!”
나름대로 전투 직전, 투지를 불을 붙이기 위한 동작이리라.
하지만 그래서야 늦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쪽은 시작 신호가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났다.
권한울이 두 무릎을 굽혔다. 그가 서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공기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악마의 권능 ‘모나르크’가 발현됩니다.> 악마 후작 ‘버나크’를 굴복시키고 손에 넣은 권능.
그 권능이 강풍을 불러왔다. 강풍은 권한울의 발밑에 응축되어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췄다.
“저게 뭐야?”
“바람? 흑천에 저런 기술이 있었나?”
심상치 않은 광경에 메이 가문의 혈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권능 ‘용마기(龍魔氣)’를 방출합니다.> 권한울의 전신에 검은 오러가 솟구쳤다. 검은 오러는 모나르크의 강풍과 충돌하며 반발했다.
그 힘을 화약 삼아서 땅을 박찼다. 바닥이 박살나며 몸이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강풍이 몸을 밀어 낸다. 땅을 박찰 때마다 발밑에서 용마기가 폭발하며 속도가 빨라진다.
“어, 어어? 어?”
메이차우의 얼굴에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판단을 내리는 것보다 권한울이 도달하는 게 더 빨랐다. 메이차우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했다.
그사이, 권한울이 도달했다. 온 힘을 실어서 주먹을 내질렀다. 메이차우는 가까스로 칼날을 눕혀서 공격을 막아냈다.
글러브와 장검이 서로 격돌한다. 그 순간, 권한울은 볼 수 있었다.
글러브에 담긴 수라기가 검에 담긴 수라기를 박살 내는 것을.
검이 산산이 부서진다. 기세를 잃지 않은 주먹이 메이차우의 몸통을 꿰뚫는다.
그와 동시에 메이차우의 몸이 결투장 밖의 벽에 처박혔다.
벽이 박살이 나면서 흙먼지가 사방을 뒤덮었다.
이윽고 먼지가 걷히고, 처참한 몰골로 벽에 처박혀 있는 메이차우의 모습이 나타났다.
단 한 번의 유효타로 결착이 났다.
결투장 내에 정적이 흘렀다. 권한울은 손을 탁탁 털며 짧게 내뱉었다.
“쉽네.”
그 직후, 메이 가문의 혈족들에게서 경악에 찬 반응이 쏟아졌다.
“지, 지금 설마 메이차우가 진 거야?”
“메이룽 님의 후계자가 졌다고?”
“저, 저 흑천의 혈족은 대체 누구지?”
결투가 시작된 지 10초도 지나지 않아서 승패가 결정됐다.
제 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고 있던 관객들조차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 버거워했다.
“으하하하핫! 그래! 그래야지! 내가 뭐랬냐! 저 아이야 말로 선봉에 어울린다고 했지!”
권명우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권한울은 결투장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