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25화>
25화 혈통이 집결함 (2)
권한울은 눈을 뜸과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황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저택이었다.
“일어나셨습니까.”
옆에서 주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침대 옆에 의자를 두고 앉아 있었다.
“어떻게 된…… 윽!”
목덜미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불현듯 모든 일이 떠올랐다. 단체전 대표자 선출과 권명우와의 난타전과 패배까지.
“……제가 졌군요.”
과연 흑천제일권다운 실력이었다. 진짜 실력을 이끌어내기도 전에 패배하고 말았다.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권명우 님과 정면에서 맞서시는 모습에 다들 감탄만 터트리더군요.”
“그분께서 저를 봐주신 덕분이지 않습니까.”
“그걸 감안하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권명우 님의 투기와 기세는 쉽게 받아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주하연의 말을 듣고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밀려오는 허탈감에 권한울은 침대에 도로 대자로 뻗었다.
그러다 문득 더 중요한 게 떠올라 다시 일어나서 물었다.
“대표자 선출은 어떻게 됐죠?”
“권명우 님의 강한 지지 덕분에 권한울 님이 가장 먼저 대표자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그분께서 절 지지해 주셨다고요?”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흑천 그룹에 들어온 이후, 모두가 자신의 적이었다. 혈족 중에서 자신을 편 들어주는 사람이 나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더불어 의심도 같이 피어올랐다. 순수하게 흑천의 승리를 위함일까,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걸까.
“권한울 님이 굉장히 마음에 드신 모양입니다. 제게 권한울 님께서 소속된 팀이 있는지 몇 번이고 물어 보시더군요.”
“그건 왜 물어보신 거죠?”
“아무래도 영입 제안을 하실 생각인 모양입니다.”
권명우가 지휘를 하는 팀이라면 권한울도 자주 들어봤다.
흑천대(黑天隊).
흑천 그룹 내에서 유일하게 흑천(黑天)이라는 명칭이 허용된 팀이다.
그만큼 최고이자 최강으로 이름이 높다. 흑천의 혈족이라면, 아니 흑천의 위명을 아는 헌터라면 모두 들어가기를 선망했다.
“그분께는 죄송하지만 거절해야겠네요.”
하지만 권한울은 권명우의 제안이 크게 끌리지 않았다.
“저는 따로 팀을 만들 거니까요.”
권한울의 목적은 흑천의 정점에 오르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는 본인의 팀을 만들고 그 명성을 알릴 필요가 있다.
요컨대 권한울의 목적은 최강의 팀에 소속되는 게 아니다.
최강의 팀을 만드는 것이지.
“다른 두 명은 누가 뽑혔죠?”
“한 명은 권지석 님입니다.”
“팀을 만드느라 바쁠 텐데 대표자로 나온다고요?”
“그 때문에 자원하셨을 확률이 높습니다.”
잠시 의아했지만 이내 주하연의 말뜻을 깨달았다.
“저한테 내기에서 진 것 때문에 창단에 문제가 생겼군요.”
권선우는 가치로 사람을 판단한다.
권한울에게 두 번이나 패배한 권지석의 가치는 한없이 낮아졌을 것이며 당초 받기로 예정되어 있던 지원도 못 받게 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세 번째는 누구죠?”
“권후돈 님이십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권미 님의 막내 아드님이시죠.”
단체전의 총지휘권자가 본인의 자식을 추천한다?
“그래도 되는 겁니까?”
“안 그래도 불만이 나왔습니다만 다수의 동의를 얻고 대표자로 선출되셨습니다.”
“다수의 동의를 받았을 정도면…… 실력이 뛰어난 모양이네요.”
“권미 내외분의 막내 아드님이시니 그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죠. 하지만 권미 님께서 손을 쓰셨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주하연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권후돈 님은 출신을 생각하면 그렇게 많은 동의가 나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출신이라고요?”
“그분께서는 본래 열(劣) 흑룡혈이셨다가 순(順) 흑룡혈로 판명을 받으신 분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금시초문인 일이었기에.
“흑룡혈이 그렇게 바뀌기도 하는 건가요?”
“아뇨, 흑천의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권후돈 님이 유일하시죠. 그래서 한때 엄청난 화제가 됐습니다.”
이어지는 설명에 의하면 모든 분가 혈족들이 권미를 찾아오고, 심지어 회장마저 물어봤을 정도라고 한다.
“권미 님께서는 아들의 자질이 흑룡혈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많이 않은 것 같습니다만.”
확실히 그런 말로 납득하기에는 너무 수상쩍은 일이었다.
“단체전 순서도 정해졌습니다. 여기 명단을 가져 왔습니다.”
주하연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이번 단체전의 규칙과 각 가문이 대표자 이름이 쭉 적혀 있었다.
권한울은 그 중에서 출전 순서에 주목했다.
선봉 : 권후돈.
중견 : 권한울.
대장 : 권지석.
잠시 생각을 한 뒤, 주하연에게 물었다.
“단체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자리는 선봉이죠?”
“맞습니다.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임과 동시에 승패에 따라서 팀의 분위기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가장 높은 자리는 대장이구요.”
“예, 팀의 주장이기에 가장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내보냅니다.”
“그럼 중견은…….”
“실력이 부족한 이를 내보내는 자리입니다. 선봉과 대장에 비하면 경기에 끼치는 영향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권한울은 다시 한 번 더 명단을 쳐다봤다.
“제가 중견인 건 납득을 못하겠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권한울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목을 좌우로 움직였다. 아직 통증이 남아 있었으나 건강혈 덕분에 놀랍도록 회복되어 있었다.
“가서 이의를 제기하고 오겠습니다.”
“지금쯤이면 권미 님께서 회의장에서 다른 두 대표자 분들과 함께 단체전 계획을 작성하고 계실 겁니다.”
“잘됐네요.”
권한울은 망설임 없이 밖으로 나갔다. 회의장까진 금방이다.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권미와 권지석, 그리고 처음 보는 청년이 깜짝 놀라 권한울을 돌아봤다.
“너! 버릇없이 이게 무슨 짓이야!”
“물어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권한울은 권미의 앞에 종이를 들이밀었다. 권미의 양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제가 어째서 중견이죠?”
“그거야 당연히 네가 다른 둘에 비해서 실력이 뒤떨어지니까 그렇지!”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요.”
그 한 마디에 되레 옆에 있던 권지석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너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내가 너한테 안 된다는 소리야?”
권지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내가 그렇게 우스워 보여! 내기에서 두 번 이겼다고 앞뒤 분간이 안 되는 모양인데. 제대로 붙으면 넌 나한테 안 돼!”
“정 못 믿으시면 내기나 한 번 더 할까요?”
“뭐야?”
“저는 제가 이긴다는데 걸겠습니다.”
권지석의 얼굴이 점점 험악하게 변했다.
“야! 임마! 너도 뭐라고 해 봐! 너도 대표자잖아!”
권지석이 옆에 앉은 청년을 향해 소리쳤다. 청년은 몸을 움찔 떨었다.
권한울도 고개를 돌려 청년을 살펴봤다.
작은 체구에 조각상 같은 얼굴이 보였다. 권지석이나 권찬성도 한 수 접어 줘야 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어…… 으음…….”
청년, 권후돈은 권한울과 권지석의 눈치를 살폈다.
“어, 엄마가 말씀하셨어. 나, 나는 선봉을 꼭 맡아야 한다고. 그러니까 나는 선봉할 거야.”
권후돈은 연신 말을 더듬었다. 내용도 이상했다. 잘생긴 외모에 도통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휴, 됐다. 너한테 뭔 기대를 하겠냐. 그래, 네가 우리 둘보다 강하다 이거지? 나와, 어디 한 번 붙어보자.”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그때였다. 전혀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천장을 향했다. 회의장의 천장을 떠받치고 뼈대 위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권명우 숙부님?”
“권명우 할아버님?”
권명우는 천장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약간의 소음도 없는 착지.
권미는 놀라서 그에게 물었다.
“대체 그 위에서 뭘 하고 계셨던 거예요?”
“저 녀석이 달려가길래 한번 몰래 따라와 봤지. 어떠냐, 감쪽같은 솜씨가 아니더냐.”
권명우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권한울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끌어안았다.
“이놈아! 다행히 멀쩡하구나!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뭘 걱정까지 하십니까. 그렇게 아프지도 않던데요.”
“뭐라고? 으하핫! 여전히 건방진 녀석이구나!”
권명우는 더욱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나저나 위에서 들어보니까. 이 건방진 놈이 중견이라던데. 진짜냐?”
“예, 맞아요. 개인의 실력과 그룹 내의 위치를 고려해서 결정한…….”
“실력이니 그룹의 위치니 뭐니. 시끄러워 죽겠구나.”
권명우는 파리라도 쫓듯이 허공에 손짓을 했다. 그러더니 대뜸 권한울에게 물었다.
“얘야, 너는 어떤 자리를 맡고 싶으냐?”
권한울은 고민하지 않고 즉시 대답했다.
“선봉을 맡고 싶습니다.”
단체전의 포문을 여는 데다 가장 주목을 받는 자리다. 무엇보다 첫 번째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
권한울은 대장보다 선봉을 맡고 싶었다.
“크하하핫! 그래, 그래야지. 흑천의 혈족이라면 마땅히 앞에 서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되지! 그렇게 됐으니 선봉은 이 아이에게 맡겨라.”
권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권명우의 말에 쉽사리 승복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숙부님! 아무리 숙부님이라 할지라도 이번 일은 제 소관입니다!”
“그러냐?”
“순서는 예정대로 할 겁니다!”
“미야, 네가 뭘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형님께서 널 총책임자에 앉힌 건 제멋대로 하라는 뜻이 아니다.”
“저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자기 아들을 대표자에 넣은 것도 모자라서 선봉이라…….”
권명우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싸늘한 눈빛으로 권미를 내려다봤다.
“형님께서 널 그 자리에 앉힌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룹에 도움이 되라는 뜻이다. 형님께서 너의 방종을 어디까지 용납하실지.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게다.”
권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후, 후돈이가 대표자가 된 건 어, 어디까지나 동의를…….”
“내가 괜히 이런 이야기를 꺼낸 줄 아느냐. 회장님께서는 다 알고 계신다.”
권미는 입을 다물었다. 권명우의 말을 따르겠다는 뜻이었다.
권명우는 권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걱정 말 거라. 내 안목은 정확하니까. 내 말을 따른 걸 후회하지 않을 거다. 으하하핫.”
그때, 가만히 있던 권지석이 나섰다.
“작은 할아버님. 그럼 나머지 자리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네 고모한테 말해야지.”
권명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권지석은 권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우위에 있는 사람은 권미가 아니라 권명우였으니까.
“뭐, 지석이 정도면 대장을 맡기에 충분하지. 긴장만 안한다면 말이야.”
“긴장은요! 이번에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겁니다!”
“흠…… 내가 저 이야기를 몇 번 들었더라.”
권명우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권지석은 울컥했으나 뭐라 반박을 하지는 못했다.
“그럼 이야기가 대충 끝난 것 같구나. 그럼 나는 이만 나가보마.”
권명우가 몸을 돌려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권한울은 황급히 그를 따라갔다.
“권명우 전무님!”
권명우가 뒤를 돌아보며 화를 냈다.
“야!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아!”
권한울은 잠시 당황했다. 혹시 호칭을 실수했나 싶어 사과하려 했다.
그러나 권명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걱정과는 전혀 달랐다.
“전무? 그렇게 딱딱하게 말하면 내가 섭섭하지! 작은 할아버지라고 불러!”
권한울은 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허물없는 태도는 처음 겪는 것이었다.
“작은 할아버님. 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냥 건방진 줄 알았다만 예의도 차릴 줄 아는구나!”
“이 일은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권명우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다 떠올랐다는 듯이 물었다.
“큼큼, 그렇지. 마침 잘됐다, 욘석아. 내 팀에 들어올 생각 없냐?”
권명우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넘쳤다. 거절당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런 권명우를 향해 권한울은 곧바로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후회하지 않을…… 뭐, 뭐야? 어, 없다고?”
“저는 따로 팀을 만들 생각입니다.”
“뭐, 뭐야?”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권한울이 걸음을 옮겼다. 권명우는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야야,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 응?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아요.”
“생각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응? 으응?”
매달리는 듯한 물음과 단호한 대답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 * *
며칠 뒤, 흑천 일가에서 대형 비행기 하나가 출발했다.
내부에는 다수의 흑천 혈족들이 타고 있었다. 그중에는 권한울도 있었다.
‘해외로 나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
먹고 살기에 바빠서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조차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데 생애 첫 여행이 해외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여행은 아니지만.’
지금 권한울은 메이 가문과 단체전을 위해서 이동하는 중이다.
결과가 어떻든 단체전이 끝나면 분위기가 험악해질 테니 관광은 꿈도 꿀 수 없으리라.
‘하연 씨도 없고, 모처럼 혼자네.’
살짝은 쓸쓸한 기분.
언제나 주하연에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일까. 빈자리가 무척 크게 느껴졌다.
그러나 권한울은 감상에 젖을 틈이 없었다.
“인마, 진짜 들어올 생각 없냐?”
옆자리에서 권명우가 끈덕지게 영입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이놈아, 내가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우리 흑천대는 최고이자 최강이야! 들어오기만 하면 모두가 널 두려워할 텐데. 안 들어오겠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따로 팀을 만들 생각이라고요.”
“이게 얼마나 큰 기회인 줄 모르고…… 그래 인심 썼다. 마침 조장 자리가 비었는데. 너한테 주마. 어떠냐?”
“싫습니다.”
권한울과 권명우는 비행기가 날아가는 내내 투닥 거렸다.
권미는 그 모습을 아니꼽게 쳐다봤다. 권명우가 있으면 본인이 마음대로 명령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작은 할아버님.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때, 권지석이 끼어들었다. 권명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냐?”
“이번 단체전에 대해서 작은 할아버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그 말에 권명우는 혀를 찼다.
“조언? 그딴 놈들을 상대하는 데 조언은 무슨 조언. 걱정할 필요 하나도 없어! 그냥 쥐어 패면 돼!”
명색에 중국을 지배하는 대가문이 그딴 놈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뭐…… 무기를 다루는 솜씨 하나는 기가 막힌 놈들이지.”
권명우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권지석, 권후돈, 그리고 권한울도 권명우의 말을 경청했다.
세 사람 모두 메이 가문이 어떤 곳인지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식으로만 알고 있을 뿐, 직접 경험해 본 적은 없다.
“메이 가문은 혈족 전체가 모든 무기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 칼을 썼다가도 창을 쓸 수 있고, 창을 썼다가도 활을 쓸 수 있지.”
전투 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리다.
적이 공격할 수 있는 거리, 그리고 자신이 공격할 수 있는 거리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하지만 적이 무기를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면?
거리 감각이 엉망이 되어 버린다.
“그게 메이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수라혈(修羅血)의 능력이다. 한 가지 무기만 잘 써도 천 가지 무기를 쓸 수 있다나. 근데 진짜 골치 아픈 능력은 따로 있어.”
권명우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수라혈을 직접 바른 무기는 변질이 일어난다. 성능이 강화되고, 특별한 능력까지 쓸 수 있게 되지. 메이 가문 놈들은 그걸 수라가 깃든다고 표현 하더구나.”
“그까짓 거 용투기를 사용해서 박살내면 되는 거 아닙니까!”
권지석이 호기롭게 외쳤다. 그런 권지석의 말에 권명우가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수라가 깃든 무기는 용투기도 뚫는다.”
그 말에 권지석의 얼굴은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수라가 깃든 무기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야. 하나의 마물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며 권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주하연이 메이 가문과의 전투에서 보법을 강조했는지 이해가 됐다.
어설프게 대처하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뭐, 수라가 깃든 무기는 메이 가문 놈들도 쉽게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니 걱정할 필요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두 번째 권능이 있지 않더냐.”
“맞습니다! 놈들이 아무리 대단해도 흑린갑(黑鱗鉀)을 어떻게 뚫겠습니까!”
권지석이 맞장구를 쳤다.
이해는 하고 저러는 걸까.
그때 기장의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메이 가문의 영공에 진입했습니다. 이제 곧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몸속에 수라가 깃듭니다.>
<‘진(眞) 수라혈’이 생성됩니다.>